사월의 미, 칠월의 솔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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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들의 서평이나 책읽기에 대한 글을 읽어보면 책을 읽으며 마음에 드는 구절에 줄을 긋고 한 귀퉁이에 자신의 생각을 끄적이는 습관을 가진 이들이 많다.

늘 읽는 책에서 내 마음을 움직이는 한 구절이라든가  작가의 중심생각이라든가 의미있는 어떤 문장.. 하다 못해 어딘가 인용하기 근사한 문장들을 기가 막히게 찾아낸다.

난 서평이나 리뷰를 읽으면서 저자가 책에서 느낀 그 무엇보다 기가 막히게 뽑아내는 그 인용들이 더 놀라웠다.

나도 나름 책을 읽는다는 사람이고 생각했는데 난 영 밑줄과 친하지 않다.

아무리 좋았던 책이어도 몇번을 되풀이 해서 읽은 책에서도 난 밑줄을 긋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겨우겨우 억지로 이것이 저자의 생각이 아닐까 싶은 것 혹은 이게 그 순간 내 무언가를 건드렸따는 문장을 찾기는 하지만.. 그게 영 서툴렀고 뭔가 억지스러운 면이 있었다 적어도 내게는...

 

이번 소설은 정말 남은  페이지를 세기가 아까웠다.

다른 단편에 비해 많은 작품이 수록되었다 싶었지만 야금야금 아껴 읽었는데 어느새 작가후기가 눈앞에 나타났다.

열한편의 이야기들은 모두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내가 겪었던 일들 내가 들었던 일들 그동안 깊이 묻어두기만 했던 일들을 누군가에게 담담하게 전해준다.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누군가가 행동하고 경험한 무언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나즈막하게 풀어내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 이야기들은 지극히 사소하고 사적인 것이지만 그 작은 이야기들은 묵직하게 마음에 자리를 만들어간다. 팸 이모의 젊은 날의 사랑이 그러하고 낡은 시계사의 노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도 그러하다. 큰 누나가 술을 마시며 들려주는 엄마의 이야기.. 그리고 이혼한 소설가 엄마가 들려주던 이야기와 내 기억속에서 아버지가 들려줬던 이야기. 모든 이야기들이 아주 사소하면서도 사소하지 않다.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깊이 공감하고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가 좋아서 어딘가 나도 밑줄을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연필을 들고도 어디에 줄을 그어야 하는지 몰랐다.

내가 깊이 느끼고 공감하고 울컥했던 건 어떤 문장 하나하나가 아니었던 것이다.

난 그 문장들이 쌓이고 쌓여서 만들어낸 이야기에 감동하고 행복하고 아팠던 거였다.

이야기 하나하나를 통째로  줄을 긋든가 아예 복기를 하지 않는 이상 어디에도 밑줄을 그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소설을 읽으면서 누구는 문장이 화려하고 누구는 구성이 좋고 누구는 이야기의 힘이 좋다고 한다. 난 아직 초보 독자라 그런 깊고 세밀한 독서법은 아직 알지 못한다.

하지만 어떤 문장과 어떤 구성이 모이더라고 그것이 만들어 내는 하나의 이야기가 더 좋다.

천일야화를 들려주던 세라자데도 그녀의 목소리가 좋았다거나 말을 잘했다거나 문장구성력이 좋아서 그렇게 오랫동안 죽지 않았던 것은 아닐것이다. 어눌하고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고 표현이 서툴더라도 그 이야기가 가지는 진정성과 힘이 그녀의 목숨이 오랫동안 이어지도록 한게 아니었을까

내게 소설 읽기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함께 웃고 울고 한숨쉬고 가슴을 쾅쾅 두들기면서 분하고 안타까운 그 우엇이었다.

 

열한편의 이야기는  담담하게 들려줬다.

지난 시간을 후회하지 말라고 그 순간의 서툴고 찌질했던 순간도 지금의 나를 성장시켰던 좋은 기억있었다고 아픈 가족사도  그게 최선의 진심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때로는 나의 진심이 타인에게는 의미가 없을 수 있다는 것  오히려 그것이 누군가에게 부담이고 실패를 부를 수도 있는 것이니까 그리고 내가 아는 무언가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 내가 눈을 감고 모른 척 넘어간 그 순간 그 갈피가 깊은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는 ....작가를 통해서 누군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그렇게 가만히 내게 왔고 스며들었고 아프고 위안이 되었다.

그래서 너무 좋다고 생각하면서 마지막 장을 덮었는데 다시 펼쳐 읽으면서 어디에도 밑줄을 칠 수가 없었다 도데체 어떻게 이 이야기들을 어느 한부분만 툭 잘라내서 밑줄을 그을 수 있단 말인지...

그게 나의 무능이라면 무능이고 단순함이라고 해도 할 수 없다.

 

작가는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그 많은 이야기가 11개의 단편으로 나왔다. 누군가에게 들었던 어디선가 본.. 그리고 내가 경험하기도 했던 이야기들이 서로 섞이고 녹여지고 발효하고 부풀어서 또다른 의미를 가지고 그에게서 흘러나왔고 독자들은 나는 그 이야기를 듣는다.

누군가가 나즈막하게 들려주는 별로 대단하지도 않고 큰 의미를 가질 수는 없을 지 모르는 이야기들이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 큰 의미가 없고 대단하지 않더라도 지금 이 순간 내게  그 이야기들을 조곤조곤 들려주는 그에게 지금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이 이야기는 대단한 의미를 가지고 소중하다. 모두에게 감동을 주는 이야기는 많지 않다. 모두에게 의미있는 이야기도 많지 않다.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소설같은 이야기라고 하거나.. 심심풀이 땅콩으로 읽는 소설이라거나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저  소일거리일뿐이고 누군가의 지어낸 별 쓰잘데 없는 소설이라는 것이.. 그 이야기라는 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기도 하고 공감이 되어주고 괜찮다 다 괜찮다고 내 어깨를 쓸어주는 눈물나는 손끝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멋진 캐시미어 코트도 훌륭하고  캐나다에서 넘어온  구스도 겨울나기에 멋지지만 그저 솜을 두둑히 넣은 깔깔이나 오래되어서 귀퉁이가 낡고 밤중에 파다닥 튀는 불꽃쇼마저 보여주는 낡은 나이론 담요만으로도 충분히 겨울을 날 수도 있다. 오히려 그 낡고 반들반들한 촉감이주는 눈물나는 위로가 있다.

이야기는  소설은 대단한 것이어서가 아니라  노벨상을 받을  위대한 걸작이어서도 아니라

그냥  누군가 무심히 던지는 이야기에 귀기울여주는 소박한 공감이 있고 그리고 남에게는 말하기 부끄러운 하지만 나는  혼자 충분히 알 수 있는 위로가 있다.

다들 김연수 김연수 하지만 난 아직 그가 왜 좋은 소설가이니.. 과연 대단하긴 한지 모른다.

하지만 추운날 그의 책을 한장한장 넘기면서 한숨쉬고 웃고  눈가가 붉어지면서 때로는 무슨 말인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그냥 낡은 담요를 덮은 것처럼 포근하고 좋았다.

그건 그라서 좋았다기 보다 그가 들려준 그 이야기들의 소박함이 하지만 은밀하게 누군가 소중하게 간직했던 무언가를 엿보는 기분이 주는  정전기의 불쫓처럼 짜릿하고 눈물나게 따뜻한 그것들이 좋았다.

그래서 한때 행복했고 책장을 넘기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책을 다 읽고  누군가의 서평을 보면서 나는 밑줄 그을 문장을 발견했다. 내가 책을 일으며 생각은 했지만 표현하지 못한 문장이 그제야 나왔다.

 

집 나갔던 아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은 사람들의 에상처럼 그가 가진 것을 모두 잃었기 때문이 아니라 방랑의 체험을 통해 또다시 성장하고 성숙하여 가장 심원하고 놀라운 섹는 바로집이고 고향이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소설이 결국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가장 새로운 것은 바로 인물의 존재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이전에는 문학을 알거나 기어하지 못했던 고유명사를 하나의 인물을 이곳으로 데려와 소개하는 것이 작가의 새로운 일일 것이다. ....................................

편견어린 시선을 보았을 때 그저 그러 소년들 중 한 명에 불과할 존재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그 이름이 거느릴 수 있는 다양한 모습들을 상상함으로써  우리는 이제 새로운 지평을 마련한다.

 

 

작가들이 글을 쓸 때 치통같은 개별적인 고통에만 절대적으로 함몰되면 결국 글쓰기는 유아론적인환상에 그치게 되다. 우리가 세계와 시대로부터 무언가를 빌리고 있으며 그 ㅍ채무의 대상에는 고통도 포함된다는 것을 푸른 색 볼펜과 초상의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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