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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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제가 어릴 때 촌에서 자랐는데요. 집에서 기르던 송아지 한 마리만 팔아도 그 어미 소가 밤새 울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게 시끄럽다거나 하지 않고, 다들 소가 울음을 멈출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유족들에게 '이제 그만 좀 하라'고 하는 건 맞지 않습니다.
(슬픔의) 기한은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라, 여러분의 눈물이 멈출 때까지입니다.”

              - 김제동 -

 

 

저 말을 처음 인터넷으로 접하고는 역시.. 김제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닫고 나서 저 말이 다시 떠올랐다.

슬픔의 기한은 정해진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잃고 누군가가 죽어버리고  남은 사람들이 비탄하고 애도하는 기간은 정해진 것이 아니다.

타인의 눈에는 너무 질질끈다 싶을 수도 있고 너무 매정한게 아닌가 싶게 쉽게 일상으로 돌아가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눈에서는 더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더라도 내내 절절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도 있고 그 절절함이 겉으로 드러나 도저히 일상을 견디기 힘든 사람도 있다.

 

책을 시작하면서 도데체 이건 무선 이야기를 하려는건가 싶었다.

내가 들은 첵 소개로는 저자가 아내가 죽고 난 뒤의 감정을 거의 5년이 지난 뒤에 써낸 최초의 작품이라는데..  엉뚱하게 기구 이야기가 나온다.

하늘로 올라가는 기구

내가 사는 곳을 다른 시선에서 볼 수 있게 되는 도구

내가 발을 딛고 선 그 곳을 또다른 높에에서 바라보는 도구

하늘로 올라갈 때는 마음대로 올라갈 수 있지만 내려올 때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발란스를 떨어뜨리고 가스를 조정하고 아래 무엇이 있는가도 살펴야 한다.

사람이 살면서 내 멋대로 할 수 잇는 일과 되지 않은 일 어떤 것이 더 많을까?

 

기구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기구에 탔던 사람들의 삶과 사랑에 대해 꾸역꾸역 읽으면서  어디서 죽음이 ... 이별이 나오는지 기다렸다.

드디어 세번째 이야기에서 절묘하게 이야기는 연결된다.

애도와 비탄은 내가 내 감정이 정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서고 사실 엄마가 너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살뜰한 부부도 아니었고  지독한 시집살이 고지식하고 가부장적인 남편 철철이 돌아오는 제사와 행사들 할머니 돌아가시고 처음 떠나 본 부부여행등등 내 기억으로는 아빠는 엄마의 그리운 그 사람이 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암치료때 아빠가 보여준 이기적인 건강욕심과 그 후의 무심하고 자기중심적인 행동들 그리고 변하지 않은 가족사랑 (자기 친가쪽의0 그리고 마지막 재발과 악화로 인한 고생등등

어쩌면  돌아가신 분께는 죄송하지만 이제 홀가분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했다.

이제 자유로울수 있는 거 아닐까

엄마도 이미 70을 넘긴 나이지만 이제는 조금 편하게 지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엄마는 매일매일 우셨다.

삼일장동안도  너무 미망인답지 않게 말도 잘하시고 손님도 잘 챙겼던 분이 모든 일이 끝나고 혼자 남겨진 순간 그렇게 낯설게 울기만 하셨다.

창밖을 보아도 눈물이 나고 텔레비젼을 보아도 울음만 나고 남은 감정은 미안하고 아쉬운거밖에 없다는 말이... 사실  나는 몹시 낯설었다.

나도 아버지를 보내고 문득문득 밀려드는 감정에 무릎이 꺽이고 목이 매이기는 했지만 적어도 나는 아버지의 딸이었고 애증을 나눈 사이라기보다는 그래도 애정을 받은 사이였으니 그랬다고 생각을 했다.

혼자 계신 분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에 전화를 하면 늘 마지막은 울음이고 나도 곧 죽고 싶다는 말뿐이고 자식은 다 소용없다는 말뿐이어써 그 전화조차 점점 사이가 벌어졌다.

사람인... 두개의 사람이 서로 기대고 있는 모양이라고 한다.

어쩌면 두 분은 서로 욕을 하고 미워하고 저주를 퍼부으면서 우리가 둘이어서 이렇게 존재하는 거란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책장을 덮으며 너무나 무지하고 단순하고 멍청한 나에게 조용히 욕해줬다.

책을 읽으면 무엇하나..... 아는 게 늘어나면 무엇하나...

눈뜬 장님이고  속빈 강정이고 헛똑똑인인것을....

사랑이라고 하기엔 너무 간지르우니 우리네 정이라고 하자

정이란 놈은 그렇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미운만큼 원망이 컸던 만큼 애도의 기간이 탄식의 기간이 길어지리라...

자식들 자 짝지워놓으면 다 자리잡으면 이혼할거라고 다짐했던 엄마는 결국 그 때가 오자 암에 걸린 아빠를 덜컥 맞게 되고 그렇게 다시 자유를 꺽고 15년을 사셨다

그 애도의 깊이를 내가 안다고 하는 것은 오만일 뿐일것이다.

어쩌면 엄마도 내성적이고 수줍은 아빠를 이미 나보다 먼저 알아봤을 것이고

미워하고 미워하며 쌓은 정 사이에  더 어찌 할 수 없는 애정이 켜켜이 들어있었을 것이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저 바다 건너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외국 중늙은이 작가의 절절한 글에서

나는 내 엄마를 본다.

 

 

 

그리고 이제 떼를 그만쓰라고 헛소리하는 그들이 이 절절하고 아픈 애도의 마음을 알기나 할지 ..

그들에게 읽어보라고 .. 이해좀 해보라고 한들....

우리 반스씨가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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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붉게 피던 집
송시우 지음 / 시공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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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그 무게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일이 마음 깊이 눌려져서 삭히고 또 삭혀서 이젠 형체도 없이 흐물흐물해졌다고 믿는 순간 그 비밀은 이제 두껑만 열면 폭발해버릴만한 무시무시한 상태가 되어있다.

마음에 눌러놓은 비밀은 그렇게 저 혼자 익어가고 형태픞 바꾸어가며 나를 두렵게 만든다,.

어쩌면 처음엔 사소하고 작았을 무언가가 비밀로 봉해져서 세상으로 나가지 못하는 순간 그것은 혼자 자란다.비밀은 여자를 아름답게도 한다지만 (코난에서)  사람을 눌러버리는 무시무시한 힘도 가진다.

 

사람의 기억은 믿을 수가 없다. 누구나 자기에게 유리하게 그리고 편하게 기억을 만들어 지닌다.

의도한 바가 아니다. 그냥  본능적으로 그런 것이다.

같은 상황을 겪은 사람들의 나중 진술이 제각각이라는 건 어디서나 알 수 있다.

그 제각각의 기억들은 내가 상처받지 않고 내가 피해받지 않을 어떤 방어기제로 내 속에 형성되어 간직된다. 그래서 그 기억은 나를 어루어만져주고 따뜻하게 왜곡될 수밖에 없다. 그건 기억을 간직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절박함이기도 하다.

 

문화평론가 수빈은 신문에 80년대 유년기의 추억을 칼럼으로 개재한다. 어린 시절 여러 가족이 함께 오글거리며 살았던 라일락 하우스의 기억을 연재한다.

단칸방. 연탄 아궁이 공동 화장실 부업  골목길과 구멍가게등 아련한 향수를 일으키는 소재를 통해 추억을 재생산한다. 어렸다는 이유도 있지만 수빈의 추억은 그 시절을 함께 살아왔던 지금의 남자친구 수돌과도 조금씩 어긋난다. 그때의 소재를 더 얻고자 SNS에 그때의 사람을 찾는 광고를 내고 하나 둘씩 그때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하지만 각자가 가진 기억은 제각각이다.

기억은 그렇게 내가 보고 싶은 것 내게 유리한 쪽으로 형성된다. 내가 알 고 싶지 않거나 관심이 없는 것은 정말 하얗게 지워지고 내가 유리한대로 내가 본것조차 각색되어 기억된다.

거기다 누구에게나 감추고 싶은 비밀과 그 기억들이 뒤섞이면서 두렵고 괴이한 냄새를 피워올린다.

책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들을 가지고 사람들이 가진 주관적 기억과 비밀을 교차시키며 이야기를 발전시킨다. 어릴적 추억이라는건 아름답게 포장되기 마련이다. 수빈도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을 꺼집어 낸것이겠지만 그 때의 일들이 세상에 다시 드러나면서 그리고 그때의 사람들의 기억을 퍼즐처럼 맞추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혹은 정말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난다. 사람들의 기억들이 하나하나 퍼즐조각처럼 이어지면서 그때 그 장소에서 생긴 일들이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고 아름다운 라일락 하우스의 실체는 음습하고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내게 아름다운 기억이 누군가에게도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나는 절대로 되살려야할 그 때 그 시절이 누군가에게는 지우고 지워 절대 세상에 드러나면 안되는 두려운 대상이기도 하다.

철없던 수빈에게 그 집은 즐겁고 좋았던 사람들의 공동공간이었고

수돌에게는 눌러서 절대 다시는 머리를 들지 못하도록 밟아 묻어야 할 악몽같은 곳이었고

또 누군가에게는 한껀 잡아 편하게 살꺼리를 마련할 로또같은 곳이며

누군가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악몽이 다시 시작되는 곳이다.

함께 가진 기억조차 이렇게 사람에 따라 제각각이다.

누군가가 말했다. 악은 정말 평범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피가 낭자하고 누군가가 죽어나가는 것만이 악이고 공포가 아니다.

타인은 태연하게 살아가는 일상이 내게는 지옥같고 벗어나고 지워버리고 싶어지는 것이 되는 순간 그것은 악이고 공포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태연하게 내 앞에 펼쳐지는 일상이 악몽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건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고 지워버릴 수도 없는 끔찍한 존재다.

덮어버린 악은 비밀의 이름으로 혼자 자라 감당할 수 없는 괴물이 되고

타인의 아름다운 추억마저 증오하고 두려워하게 만든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 일상속에 태연하게 자리잡은.. 그 까짓거... 하는 사소함이 더 무섭다.

 

라일락이 붉게 피던 그 집이

누군가에겐 추억이고 누군가에게는 지우고 싶은 악몽이었다.

그 집은  집일 뿐이지만 그 속의 사람들은 복잡하고 미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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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영원의 아이 - 전2권 영원의 아이
덴도 아라타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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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넌 괜찮은 사람이야

니 잘못이 아니야

넌 착한 아이야.

괜찮아. 다시 하면 돼

한 번 더 기회가 있어.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

 

아이를 키우면서 해야하는 말들  아이들이 가장 듣고 싶은 말

자라면서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너무나 듣고 싶은 말과 따뜻한  관심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어떻게 자랄 수 밖에 없는가.. 책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건 일본의 특수성이니까.. 일본이라는 민족성이 특이하니까

하고 치부하기엔 지금 우리와도 다르지 않다.

여기저기 괴물이 나온다.

학교에도 있고 군대에도 있고 심지어 직장에도 거리에도 있다.

그들은 얼굴에 괴물이라고 쓰여있지 않다.

누가 말했듯이 악은 가장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고 괴물도 우리와 닮은 꼴이며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 괴물일 수도 있다.

책에 나온 세명의 아이도 사랑이 필요했고 니 잘못이 아니야 하고 어렵게 꺼집어 낸 말에 귀를 열어주고 믿어주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혹자는 말했다. 굳이 부모가 아니라도 누군가에게 병원의 누군가에게라도 털어놓을 수 없었을까?

그러나 한번 마음이 닫히고 모든것이 내 탓이라고 결정되어버린 상황에서는 누구도 믿을 수 없다.

내가 여자라서인지 딸을 키워서인지 모울이나 지라프의 일보다 유키의 일이 너무 마음이 아프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받고  그 상처가 모두 내 잘못이며 나하나 입다물면 사랑하는 가족이 편안할 수 있다는 일그러진 믿음은 어디서 왔을까

현실을 마주 할 수 없어 거짓을 만들고 거짓은 비밀을 만들고 또 비밀이 거짓을 낳고 그러는동안 사실은 현실은 점점 사라진다. 일단 마주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 아무것도 아닌것이 아프다는 것도 잘 안다.

용기를 내어 사실을 말해. 현실을 봐..

말은 쉽지만 그게 쉽지 않은 사람이 있다. 정말 있다.

그걸 알아서 유키가 아프고 지라프나 모울이 안타까웠다.

세심한 묘사와 설명에 조금 지루한 감도 있지만 사회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사회탓이야. 가정이 문제야.. 라고 하지 않는 작은 울림이 좋았다.

사회와 가족은 서로탓하기 바쁘다.

가정교육이 제대로 되었으면 그런 괴물은 사회에 나온지도 않아

사회가 제대로 돌아간다면 가족에서 벗어나도 안심할 수 있는 거잖아..

누구탓인가.. 결국 모두의 탓이다.

가족이든 사회든 제몸에 묻은 허물은 보지 못한다.

 

아이를 많이 안아주고 사랑해주자는  생각이상으로 어쩌면 어른이 되어도 저 말들을 목말라 하는 사람이 있을 거란 생각이 퍼뜩든다.

나이를 먹어서 어른이 아니라고 비밀과 거짓말로 살아가는  나이먹어버린 아이도 있다고 책은 말한다. 그 모든 아이들에게 괜찮다고 니 잘못은 아니라고지금이라도 말해주어야 하지 않을가

그리고 조금 기다려주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막막한 지금 책을 읽고 더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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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든 것을 잃기 전 날 밤도 여느 밤과 다를 바가 없었단다.

.........................................

그 날 밤 말고도 새털같이 많은 날이 있을  줄 알았지

.......................................................

내가 말했어 "언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언니가 말했어 "내일 말해도 되잖아"

내가 언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한번도 말하지 않았지

그녀는 내 언니였어

우리는 한 침대에서 잤어.

그 얘기를 할 기회가 한 번도 없었어

언제나 그럴 필요가 없었단다

.................................

그 날 밤만 밤이었던 건 아니니까

게다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겠니

내가 너에게 지금까지 전하려 했던 모든 이야기의 요점은 바로 이것이란다. 오스카

그 말은 언제나 해야해

사랑한다.

할머니가.

 

인간의 역사는 근원도 의미도 알 수 없는 얼굴없는 폭력앞에서 하릴없이 상처입는 개인의 삶이 반복되는 이야기다. 거대한 역사속에서 개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되풀이되는 폭력의 역사성. 전전쟁의 폭력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안전해 보이던 일상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는 경험이다   - 옮긴이의 말-중에서

 

주인공 오스카는 9.11 테러로 아버지를 잃은 아폽살 소년이다.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으로 살아가는 중에 아버지의 물건에서 파란 꽃병과 그 속에 들어있는 열쇠를 발견한다. 아버지의 부재앞에 어쩔 줄 몰라하며 끊임없이 발명을 상상하던 오스카는 그 열쇠가 어떤 단서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열쇠가 든 봉투에 써 있는 black. 이라는 단어를 바탕으로 세상사람들을 만나러 간다.

이야기는 열쇠의 비밀을 찾느는 오스카의 이야기를 한 축으로 그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야기가 교차되어 전개된다. 오스카의 할아버지는 이차 세계대전 독일 드레스덴 폭격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 집과 마을과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가족을 잃은 할아버지는 상실감과 충격에 말을 잃었고 삶을 포기하며 살지만 우연한 기회에 할머니를 만나 함께 살게되지만 자기의 아이가 생긴 순간 집을 떠났다.

아빠의 흔적을 찾아가는 오스카와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들에게 편지를 쓰는 할아버지 그리고 그 사이에서 상실감과 고독을 견딘 할머니가 오스카에게 보내는 편지가 이야기를 이룬다.

모두가 본인이 의도하지 않은 폭력앞에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이다. 정신적인 외상과 소통의 부재 그리고 누구도 믿을 수 없고 마음을 터 놓을 수 없는 외로움에 시달리면서 누군가는 말을 잃었고 누군가는 끊임없이 수다를 늘어놓고 누군가는 빈 종에에  스페이스바로 자서전을 썼다.

'결국 모두가 모두를 잃는다"

폭력앞에서 모두는 모두를 잃었다.

타인이 보기엔 가진것 중 일부일 수 있지만 내가 잃은 무언가를 남과 나눌 수 없고 소통할 수 없는 순간에 그는 세상 모두를 잃은 것과 다름이 없다.

누구에게도 말 할 수 없는 비밀이 가슴에서 자라면 모두를 잃은 것이다.

이야기는 수백피스짜리 퍼즐을 맞춰가는 것같다. 결말에 이르면서 전체적인 그림이 서서히 드러나는데 완성된 그림은 결국 서로가 서로를 지독하게 그리워하고 사랑했다는 사실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한 한이 마음속에 비밀을 만들고 그 비밀이 자라서 나를 잡아먹을듯이 커지고 괴물이 되고 나는 점점 누군가와 소통하기 힘들어지는 일이다.

오스카에게 전화기가 그랬었다. 여섯개의 메세지를 엄마나 할머니에게 말 할 수 없어서 벽장속에 감춰버릴 일은 오스카에게 큰 비밀이고 아픔이다. 아빠를 잃기 싫어서 아빠를 거부했다는 죄책감과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무력감이 그 전화기 속에 있다. 하지만 결국 모든 퍼즐을 맞추고 나면 오스카는 아빠를 잃는 것이 두려웠던 것 뿐이었다.

할아버지에게 아픔은 죽은 애나였다. 아내가 그 애나의 여동생이라는 것 그리고 애나가 죽기전 뱃속에 아이가 있다는 말을 하며 행복했다는 것 그것이 큰 아픔이어서 현실에서 생긴 아들은 부정하고 두려워 세상으로 떠나버렸다.

할머니는 언니를 사랑하고 아버지를 사랑했는데 표현하지 않았다. 새털같은 날이 계속될 줄만 알았으니까 언니의 비밀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할아버지의 아픔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모른 척 했다. 그만큼 할아버지를 사랑했었다고 믿었다.

모든 건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잊지 않는다는 거였는데 그걸 말하지 못하게 되고 서로 전달하지 못하게 되면서 그건 비밀이 되고 괴물이 되었다

 

일상을 살아가다가 어떤 일이 터지고 큰 상실감을 갖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그래도 삶은 계속 지속되고  변하는 것은 없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 일이 일어나기 전의 나와는 다르다.

죄책감 상실감 두려움이 내 속에 크게 자리해버린다.

비밀이 내속에 숨어버리고 그것은 점점 크게 자라면서 나는 잡아먹을듯이 위협한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것을 나는 자꾸 눌러서 저 아래로 넣어버리려고 한다.

하지만 그 비밀을 마주하는 순간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것이 될 수 있다.

하찮은 것 별 일 아닌 것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 그리고 위로받을 수도 있는 일이 된다.

비밀을 마주해야하는 순간은 가장 무섭다. 그러나 마주하지 않으면 끝없는 공포와 함께 살아야 한다.

오스카는 비밀을 전화기와 함께 벽장 속에 숨기고 아빠의 흔적을 찾으러 다녔다.

그래서 만난 수많은 black들과 이야기를 하며 세상에는 세상 사람들의 수만큼 많은 아픔과 상실이 있다는 걸 알게된다. 그리고 마지막 열쇠의 비밀을 풀고  오스카는 새로운 모험을 꾸민다.

찾을 수 없는 시신대신 빈 관으로 매장한 아빠의 관을 채워넎는다.

텅 빈 상실감을 채우는 것은 내가 그 존재를 기억하고 채워넣은 일이다.

그때 할아버지는 오스카와 함께 부치지 못한 편지들을 관에 채워넣는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이 아이가 너를 사랑한다고 우리는 너를 기억할거라고 그렇게 사라진 아빠의 존재를 채워넣으며 둘은 이제 그 존재로 부터 자유롭다. 영원히 기억할 것이므로 자유롭다.

아빠가 오스카에게 뉴욕 제 6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실 뉴욕에는 6구 가 있었는데 그것이 센트럴 파크만을 남기고 사라졌다고..

존재하지 않지만 영원히 있는 존재.. 그것이 바로 뉴욕6구이며 우리 누구에게나 있는 그 무엇일것이다.

 

p.s.

지금 이 순간 그 사람에게 표현하라.. 시간은 생각만큼 많지 않다.

 

오스카의 아빠 토마스 셀은 참 멋진 사람이다.

 

세상은 9.11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한다. 미국인들에게 세계인들에게 그게 무엇을 의미하든 또다른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9.11이후 미국은 세상에 분노할 자격을 얻었고 세상을 향해 마구 공격해도 되는 면죄부를 얻었다. 이제 이슬람은 공식적인 악이 되었고  그렇게 큰 아픔을 겪은 이에게 누구도 이의를 제기해서는 안된다는 어마어마한 권리를 얻었다. 그것이 지금 이. 팔 사태로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책을 읽으며 문득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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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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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역꾸역 우겨넣은 기억은 저 무의식의 바닥에 가라앉아있지만 불쑥 나도 모르게 그 기억이 떠오를때가 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말하고 싶지 않고 그저 꾸역꾸역 우겨넣었지만 잊고 싶지도 않고 지우고 싶지도 않다.

 

헤더는 결혼을 생각하는 콜린이 있지만 로버트와의 관계를 끊어내지 못한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채워줄 수 있다거나 당신을 구원해 줄 수 있다고- 이 두가지가 사실상 다른 것인지 모르겠지만 추정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나는 콜린과의 관계에서 그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 나는 다만 그가 나의 일부, 나의 중요한 일부를 채워주고 있고 로버트 역시 똑같이 중요한 나의 또다른 일부를 채워주었다고 믿을 뿐이다. 로버트가 채워준 나의 일부는 내가 생각하기론 지금도 콜린은 그 존재를 모르는 부분이다. 그것은 무언가를 혹응ㄴ 누군가를 사랑하는 만큼 쉽게 파괴할 수 있는 나의 일부다. 그것은 닫힌 문 뒤에 있을 때 어두운 침실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고 제일 편하다고 느끼는 유일한 진실을 우리가 서로 숨기는 비밀에 있따고 믿는 나의 일부이다. 로버트는 거의 10년동안 내가 콜린에게 숨긴 비밀이다.

 

누구에게 드러내놓고 보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버릴 수도 외면할 수 도 있는 부분을 누구나 가지고 있지 않을까. 어쩌면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고 너무나  사소한 것이지만 그래서 안타깝고 나조차 이제는 마주하고 바라보기 두려워진 기억들

머리로 아는 기억이 아니라 어쩌면 몸이 기억하고 있는 그때의 바람 그때의 냄새 그때의 감촉이 있을 것이다

헤더에게 로버트는 그렇게 꾸역꾸역 우겨넣고 가라앉혔지만 아무때고 불쑥 불쑥 떠오를 그런 몸이 기억하는 한 부분이다.

 

이 책의 등장인물은 모두가 그런 한조각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명확하지 않고 정확한 사실이 아닐 때도 있고 별거 아니잖아... 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본인에게는 깊이 새겨지고 몸에 익어버린 기억들이다.

구멍에 빠진 친구에 대한 기억  무언가 잘못된 일을 저지른 형에 대한 기억 부모가 어떻게 헤어졌는지에 대한 기억 그리고 그때 나의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  엄마의 부정하고 비윤리적인 애정행각을 목격한 아들의 복잡하고 어쩔 수 없는 감정들.. 이미 시간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보면 어쪄면 사소한 일이었고 이해못할 일도 아니지만 그땐 심각하고 두려웠다.

 

초등시절 지금과 다르지 않게 물건을 깜빡 깜빡 자주 잃어버렸다. 내가 잃어버린 우산은 이미 두자리 숫자를 기록했고 어딘가 벗어놓고 잊어버린 웃옷도 있고 잃어버린 돈도 합치면 꽤 상당한 액수였다. 잃어버린 물건들은 기가 막히게도 집 현관을 들어서는 순간 조금 더 걸리면 신발을 벗는 순간 생각이 났다. 아차....

몇번을 혼나고 맞아도 고쳐지지 않았다. 어느날 모든 우산을 다 잃어버리고 엄마가 아끼는 우산을 들고 피아노 학원에 갔는데 그만 두고와버렸다. 그날따라 그날은 전혀 기억하지 못했고 엄마도 잊어버렸는데 며칠이 지난 후 그 우산이 없다는 걸 우리 모녀는 기억했고 그 당사자가 나라는 것도 알았다. 그때도 혼났었다.

그런데 지금도 기억하는게 그때라고 엄마가 더 심하게 야단치거나 한것도 아니었는데 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겨우 초등학교 5학년이었는데 이렇게 모든걸 잃어버리고 다니는 나 자신이 너무 싫었고 다시 피아노 학원에 가서 우산이 없냐고 물어볼 용기도 없는 내 바보같은 성격도 너무 싫어서 그냥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 내가 기억하는 건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것이 아니라 그때 너무 심각하게 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죽어야 할까 고민했다는 것이다.

바다에 빠져버릴까 높은 데서 떨어져 버릴까 아니면 숨을 오래 참으면 죽지않을까하는 생각까지

그 고민의 모습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런데 난 누구에게도 그때 그런 일이 있었고 죽고 싶었다는 말을 하지않았다.

그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을 테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사소한 일로 죽고 싶었나 싶은 부끄러움도 있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그때 내가 얼마나 절절하고 진심으로 죽음을 생각했는지를 삶을 놓고 싶었는지를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잃어버린 우산이나 겉옷은 핑계일지도 모른다. 무언가 다른 것이 있는데 그건 내 기억 저 바닥으로 깊이 밀어넣고 절대 떠오르지 않도록 꾸역꾸역 누 르고 있었던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별거 아니었다.

그런데 그때 그 기억을 하면 아직도 부끄럽게도 나는 몹시 아프다.

어린 나이에 죽고 싶다고 생각하고 죽을 결심을 누구도 모르게 외롭게 다짐한 나 자신이 부끄럽고 동시에 짠하다.

그런 거다.

내가 간직한 기억은 말로 꺼내고 누군가에게 말하면 피식 웃음을 흘리게 만들고  별거 아니잖아~ 하는 반응을 얻을 지 모르지만 나는 그것을 절대 잊을 수 없다.

확실하지도 않고 내가 모든걸 알지도 못하지만 어떤 이미지 하나 어떤 말소리  하나가 깊이 박히는 때가 있는 법이다. 그렇게 박힌 말과 모습은 유리조각이 피부에 박히는 것처럼 아프고 서럽고 그리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표제작인 "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 가장 좋았고 말할 수 없는 나의 무언가를 건드리기도 했지만 " 폭풍"과 " 구멍" 이 주는 미묘한  감정도 오래 남는다.

사실이란게 드러나면 별거아닌 민낯을 가지지만 그 민낯을  바라보기 전까지는 몹시도 두 렵고 불안하다. 사실이라는게 그런거다.

당신의 기억은 당신이 가지고 있으라.. 그건 당신속에서만 보석처럼 빛날 것이고 유리조각처럼 아플 것이다. 그것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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