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모든 것을 잃기 전 날 밤도 여느 밤과 다를 바가 없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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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밤 말고도 새털같이 많은 날이 있을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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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했어 "언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언니가 말했어 "내일 말해도 되잖아"

내가 언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한번도 말하지 않았지

그녀는 내 언니였어

우리는 한 침대에서 잤어.

그 얘기를 할 기회가 한 번도 없었어

언제나 그럴 필요가 없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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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밤만 밤이었던 건 아니니까

게다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겠니

내가 너에게 지금까지 전하려 했던 모든 이야기의 요점은 바로 이것이란다. 오스카

그 말은 언제나 해야해

사랑한다.

할머니가.

 

인간의 역사는 근원도 의미도 알 수 없는 얼굴없는 폭력앞에서 하릴없이 상처입는 개인의 삶이 반복되는 이야기다. 거대한 역사속에서 개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되풀이되는 폭력의 역사성. 전전쟁의 폭력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안전해 보이던 일상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는 경험이다   - 옮긴이의 말-중에서

 

주인공 오스카는 9.11 테러로 아버지를 잃은 아폽살 소년이다.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으로 살아가는 중에 아버지의 물건에서 파란 꽃병과 그 속에 들어있는 열쇠를 발견한다. 아버지의 부재앞에 어쩔 줄 몰라하며 끊임없이 발명을 상상하던 오스카는 그 열쇠가 어떤 단서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열쇠가 든 봉투에 써 있는 black. 이라는 단어를 바탕으로 세상사람들을 만나러 간다.

이야기는 열쇠의 비밀을 찾느는 오스카의 이야기를 한 축으로 그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야기가 교차되어 전개된다. 오스카의 할아버지는 이차 세계대전 독일 드레스덴 폭격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 집과 마을과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가족을 잃은 할아버지는 상실감과 충격에 말을 잃었고 삶을 포기하며 살지만 우연한 기회에 할머니를 만나 함께 살게되지만 자기의 아이가 생긴 순간 집을 떠났다.

아빠의 흔적을 찾아가는 오스카와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들에게 편지를 쓰는 할아버지 그리고 그 사이에서 상실감과 고독을 견딘 할머니가 오스카에게 보내는 편지가 이야기를 이룬다.

모두가 본인이 의도하지 않은 폭력앞에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이다. 정신적인 외상과 소통의 부재 그리고 누구도 믿을 수 없고 마음을 터 놓을 수 없는 외로움에 시달리면서 누군가는 말을 잃었고 누군가는 끊임없이 수다를 늘어놓고 누군가는 빈 종에에  스페이스바로 자서전을 썼다.

'결국 모두가 모두를 잃는다"

폭력앞에서 모두는 모두를 잃었다.

타인이 보기엔 가진것 중 일부일 수 있지만 내가 잃은 무언가를 남과 나눌 수 없고 소통할 수 없는 순간에 그는 세상 모두를 잃은 것과 다름이 없다.

누구에게도 말 할 수 없는 비밀이 가슴에서 자라면 모두를 잃은 것이다.

이야기는 수백피스짜리 퍼즐을 맞춰가는 것같다. 결말에 이르면서 전체적인 그림이 서서히 드러나는데 완성된 그림은 결국 서로가 서로를 지독하게 그리워하고 사랑했다는 사실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한 한이 마음속에 비밀을 만들고 그 비밀이 자라서 나를 잡아먹을듯이 커지고 괴물이 되고 나는 점점 누군가와 소통하기 힘들어지는 일이다.

오스카에게 전화기가 그랬었다. 여섯개의 메세지를 엄마나 할머니에게 말 할 수 없어서 벽장속에 감춰버릴 일은 오스카에게 큰 비밀이고 아픔이다. 아빠를 잃기 싫어서 아빠를 거부했다는 죄책감과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무력감이 그 전화기 속에 있다. 하지만 결국 모든 퍼즐을 맞추고 나면 오스카는 아빠를 잃는 것이 두려웠던 것 뿐이었다.

할아버지에게 아픔은 죽은 애나였다. 아내가 그 애나의 여동생이라는 것 그리고 애나가 죽기전 뱃속에 아이가 있다는 말을 하며 행복했다는 것 그것이 큰 아픔이어서 현실에서 생긴 아들은 부정하고 두려워 세상으로 떠나버렸다.

할머니는 언니를 사랑하고 아버지를 사랑했는데 표현하지 않았다. 새털같은 날이 계속될 줄만 알았으니까 언니의 비밀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할아버지의 아픔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모른 척 했다. 그만큼 할아버지를 사랑했었다고 믿었다.

모든 건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잊지 않는다는 거였는데 그걸 말하지 못하게 되고 서로 전달하지 못하게 되면서 그건 비밀이 되고 괴물이 되었다

 

일상을 살아가다가 어떤 일이 터지고 큰 상실감을 갖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그래도 삶은 계속 지속되고  변하는 것은 없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 일이 일어나기 전의 나와는 다르다.

죄책감 상실감 두려움이 내 속에 크게 자리해버린다.

비밀이 내속에 숨어버리고 그것은 점점 크게 자라면서 나는 잡아먹을듯이 위협한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것을 나는 자꾸 눌러서 저 아래로 넣어버리려고 한다.

하지만 그 비밀을 마주하는 순간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것이 될 수 있다.

하찮은 것 별 일 아닌 것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 그리고 위로받을 수도 있는 일이 된다.

비밀을 마주해야하는 순간은 가장 무섭다. 그러나 마주하지 않으면 끝없는 공포와 함께 살아야 한다.

오스카는 비밀을 전화기와 함께 벽장 속에 숨기고 아빠의 흔적을 찾으러 다녔다.

그래서 만난 수많은 black들과 이야기를 하며 세상에는 세상 사람들의 수만큼 많은 아픔과 상실이 있다는 걸 알게된다. 그리고 마지막 열쇠의 비밀을 풀고  오스카는 새로운 모험을 꾸민다.

찾을 수 없는 시신대신 빈 관으로 매장한 아빠의 관을 채워넎는다.

텅 빈 상실감을 채우는 것은 내가 그 존재를 기억하고 채워넣은 일이다.

그때 할아버지는 오스카와 함께 부치지 못한 편지들을 관에 채워넣는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이 아이가 너를 사랑한다고 우리는 너를 기억할거라고 그렇게 사라진 아빠의 존재를 채워넣으며 둘은 이제 그 존재로 부터 자유롭다. 영원히 기억할 것이므로 자유롭다.

아빠가 오스카에게 뉴욕 제 6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실 뉴욕에는 6구 가 있었는데 그것이 센트럴 파크만을 남기고 사라졌다고..

존재하지 않지만 영원히 있는 존재.. 그것이 바로 뉴욕6구이며 우리 누구에게나 있는 그 무엇일것이다.

 

p.s.

지금 이 순간 그 사람에게 표현하라.. 시간은 생각만큼 많지 않다.

 

오스카의 아빠 토마스 셀은 참 멋진 사람이다.

 

세상은 9.11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한다. 미국인들에게 세계인들에게 그게 무엇을 의미하든 또다른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9.11이후 미국은 세상에 분노할 자격을 얻었고 세상을 향해 마구 공격해도 되는 면죄부를 얻었다. 이제 이슬람은 공식적인 악이 되었고  그렇게 큰 아픔을 겪은 이에게 누구도 이의를 제기해서는 안된다는 어마어마한 권리를 얻었다. 그것이 지금 이. 팔 사태로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책을 읽으며 문득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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