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 붉게 피던 집
송시우 지음 / 시공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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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그 무게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일이 마음 깊이 눌려져서 삭히고 또 삭혀서 이젠 형체도 없이 흐물흐물해졌다고 믿는 순간 그 비밀은 이제 두껑만 열면 폭발해버릴만한 무시무시한 상태가 되어있다.

마음에 눌러놓은 비밀은 그렇게 저 혼자 익어가고 형태픞 바꾸어가며 나를 두렵게 만든다,.

어쩌면 처음엔 사소하고 작았을 무언가가 비밀로 봉해져서 세상으로 나가지 못하는 순간 그것은 혼자 자란다.비밀은 여자를 아름답게도 한다지만 (코난에서)  사람을 눌러버리는 무시무시한 힘도 가진다.

 

사람의 기억은 믿을 수가 없다. 누구나 자기에게 유리하게 그리고 편하게 기억을 만들어 지닌다.

의도한 바가 아니다. 그냥  본능적으로 그런 것이다.

같은 상황을 겪은 사람들의 나중 진술이 제각각이라는 건 어디서나 알 수 있다.

그 제각각의 기억들은 내가 상처받지 않고 내가 피해받지 않을 어떤 방어기제로 내 속에 형성되어 간직된다. 그래서 그 기억은 나를 어루어만져주고 따뜻하게 왜곡될 수밖에 없다. 그건 기억을 간직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절박함이기도 하다.

 

문화평론가 수빈은 신문에 80년대 유년기의 추억을 칼럼으로 개재한다. 어린 시절 여러 가족이 함께 오글거리며 살았던 라일락 하우스의 기억을 연재한다.

단칸방. 연탄 아궁이 공동 화장실 부업  골목길과 구멍가게등 아련한 향수를 일으키는 소재를 통해 추억을 재생산한다. 어렸다는 이유도 있지만 수빈의 추억은 그 시절을 함께 살아왔던 지금의 남자친구 수돌과도 조금씩 어긋난다. 그때의 소재를 더 얻고자 SNS에 그때의 사람을 찾는 광고를 내고 하나 둘씩 그때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하지만 각자가 가진 기억은 제각각이다.

기억은 그렇게 내가 보고 싶은 것 내게 유리한 쪽으로 형성된다. 내가 알 고 싶지 않거나 관심이 없는 것은 정말 하얗게 지워지고 내가 유리한대로 내가 본것조차 각색되어 기억된다.

거기다 누구에게나 감추고 싶은 비밀과 그 기억들이 뒤섞이면서 두렵고 괴이한 냄새를 피워올린다.

책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들을 가지고 사람들이 가진 주관적 기억과 비밀을 교차시키며 이야기를 발전시킨다. 어릴적 추억이라는건 아름답게 포장되기 마련이다. 수빈도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을 꺼집어 낸것이겠지만 그 때의 일들이 세상에 다시 드러나면서 그리고 그때의 사람들의 기억을 퍼즐처럼 맞추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혹은 정말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난다. 사람들의 기억들이 하나하나 퍼즐조각처럼 이어지면서 그때 그 장소에서 생긴 일들이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고 아름다운 라일락 하우스의 실체는 음습하고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내게 아름다운 기억이 누군가에게도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나는 절대로 되살려야할 그 때 그 시절이 누군가에게는 지우고 지워 절대 세상에 드러나면 안되는 두려운 대상이기도 하다.

철없던 수빈에게 그 집은 즐겁고 좋았던 사람들의 공동공간이었고

수돌에게는 눌러서 절대 다시는 머리를 들지 못하도록 밟아 묻어야 할 악몽같은 곳이었고

또 누군가에게는 한껀 잡아 편하게 살꺼리를 마련할 로또같은 곳이며

누군가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악몽이 다시 시작되는 곳이다.

함께 가진 기억조차 이렇게 사람에 따라 제각각이다.

누군가가 말했다. 악은 정말 평범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피가 낭자하고 누군가가 죽어나가는 것만이 악이고 공포가 아니다.

타인은 태연하게 살아가는 일상이 내게는 지옥같고 벗어나고 지워버리고 싶어지는 것이 되는 순간 그것은 악이고 공포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태연하게 내 앞에 펼쳐지는 일상이 악몽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건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고 지워버릴 수도 없는 끔찍한 존재다.

덮어버린 악은 비밀의 이름으로 혼자 자라 감당할 수 없는 괴물이 되고

타인의 아름다운 추억마저 증오하고 두려워하게 만든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 일상속에 태연하게 자리잡은.. 그 까짓거... 하는 사소함이 더 무섭다.

 

라일락이 붉게 피던 그 집이

누군가에겐 추억이고 누군가에게는 지우고 싶은 악몽이었다.

그 집은  집일 뿐이지만 그 속의 사람들은 복잡하고 미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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