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낮에 전화로 친정엄마와 다투었다. 별거 아닌 이야기였고 평소라면 알았어 알았어 하며 귓등으로 듣고 일단 습관처럶 대꾸한 다음 통화가 끝나면 그냥 흘려버릴 것이었는데  오늘따라 무슨 감정이 들었는지 따박따박 말대꾸하며 목청이 커졌다. 나의 단점인 흥분하면 소리가 커지고 빨라지고 일단 무조건 뱉고보는 것...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하다보니 이건 내 변명밖에 안된다는 걸 알아채면서도 말을 멈출 수 없었다,

엄마가 틀린 말을 하는 건 아니지만 그 말을 전하는 말투 뉘앙스 그리고 늘 같은 패턴의 잔소리가 유난히 거슬리는 날이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참기 싫었고 나도 대꾸했고 언성이 높아졌고 서로 말꼬리를 자르고 마구마구 퍼붓다가 울다가 끊어버렸다,. 이러려고 통화한게 아니었고 이럴 의도가 전혀 아니었다는 이성을 누르면서 그래도 정말 저런 태도는 싫다는 감정이 점점 커졌다.

아.... 문득  생각지도 못한 어린시절이 마구 떠올랐다,

엄마는 늘  말이 많았고 틀이 강했고 징징거리기까지 했다.

아니 징징거린다는 표현은 너무 심하고 자기 하소연이 많은 사람이었다,

낯선 시집환경 무뚝뚝한 남편 상상과는 다른 결혼생활 그래도 견디고 살아야 하는 상황에서 엄마는  어느순간 우리를 앉혀놓고 하소연을 했다. 남편에 대해 시집식구들에 대해서....

오죽하면 우리에게 할까 싶어 듣고 듣고 또 듣다보면 나중에는 들으면서 딴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기도 했다. 엄마니까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함께 미워해주었는데 가만 생각하면 그게 너무 싫었다. 그러서 어쩌라고....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걸까

 그런 우리 엄마가 너무 싫었다.

제발... 엄마 스스로 강해지면 안되나? 자기 혼자  잘 정리하고 추스르면 안되나?

정말 싫다. 듣기 싫다. 진심으로 싫다고 말하고 싶다. 싫어 엄마 참 싫다,

전혀 상관없는 통화에서 생각이 꼬리를 물고 기억들은 들추어지고 그러서 어쩌라고 우리보고 어쩌라고... 다 풀면 소설 서너권은 나온다는 엄마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한이고 아픔이지만 그걸 듣는 자식입장은 너무 괴로웠다. 이제는 늙어서 엄마가 변할 수 없으니 내가 참아야 한다고 그것만 빼면 정말정말 좋은 엄마고 희생적인 엄마고 우릴 위해 산 엄마니까 그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마음을 다독이면서도 힘들었던 거 같다. 너무 오래되었다. 너무 내 표현을 하질 못했다. 그게 결국 터져버린 걸까?

한편으로 후회되고 죄스러우면서 한편으로 계속 말하고 싶었다,

싫어 엄마가 너무 싫어. 그러는 거 정말 싫어. 나 엄마 별로 안좋아했나봐... 엄마 싫어했나봐

후련하면서 아팠다,

아... 이런다고 변하는 건 없는데 내 속을 뒤집어서 내 상처를 마주한다고 엄마랑 어떻게 변할것인가,....

나는 스스로 강해지고 스스로 소중하게 여기는 엄마가 되어 존재만으로 든든한 엄마가 되겠다는 것은 생기지만 결심은 하게 하지만

엄마와 나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될까?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제 와서 엄마가 변하지 않을 것인데 결국은 내가 견디는 것인데.. 계속 엄마 하소연을 듣고 잔소리를 듣고  원망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조금 살갑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 말고는 할게 없는데

내 속의 아이가 이렇게 불쑥 느닷없이 튀어나올줄 몰랐다,

지금 40이 넘은 나는 그냥 이대로 살면 된다고  엄마도 그땐 젊어서 아무것도 몰라서 힘들어서 그런걸 어떻게 잘못이라고 할 수 있냐고..70넘은 노인네를 그게 옳다고 믿고 살아온 걸 바꿀 수는 없다고  이제 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큰 일 만들지 말라고 하는데 새로 만난 아이는 그게 아니라고 한다. 그때 힘들었던 걸 아는데 그걸 위로받지도 못했는데 힘들다고 말하지도 못했는데 그냥 덮고 지나가면 내가 아픈 건 어떻하냐고 두 다리를 뻣대며   고집을 피운다,

나이든 나는 그 아이를 멍하니 바라본다. 그래서 변하는게 뭔데? 내가 괜찮다고 그동안 힘들었구나 하면 되냐고 물어보지만.. 말에 욺음이 섞인다. 어쩌자고 어린게 위로받을 둥지하나 없이  갑옷을 두르고 살았냐고  그건 니 잘못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엄마와 딸이 몽골로 여행을 떠난다,

둘만의 여행이 아니라 엄마가 고교 동창들과 함께 떠나는 첫 여행에 딸이 함께 하는 것이다,

볼 것 없이 허허벌판 고비시막으로 떠난 여행에서 모녀는 제각각 자기 생각에 빠지고 자기의 시선으로 상대를 본다,

딸은 딱 그 나이 아이다운 시선으로 어른을 보고 잘 생긴 가이드를 보고 엄마를 본다,

유치하고  경박한 아줌마들의 수다와 풀어진 모습에 혀를 차고 매사 자기를 방해하는 엄마를 미워도 했다가 필요도 했다가 하면서 자기 방식으로 세상을 본다.

어리다도 마음도 감정도 마냥 유치하지 않다,

설레임도 있고 내적 고민도 있고 생각도 많아진다, 다만 그것이 타인에게 제대로 전달 되지 않고 전달하기 힘들고 나를 이해받기힘들고 나를 보여주기 힘들 뿐이다,

 

그리고 책은 엄마에게 넘어간다.

엄마는 엄마니까 딸 다인이를 챙겨야 하고 잘 이끌어야 한다,

그래서 엄마는 늘 종종거린다, 친구들과 풀어지다가도 다인이를 의식하고 있다,

아이를 이해하려고 하면서도 자기가 원하는대로 이끌고 싶다,

엄마는 엄마 방식의 사랑을 준다. 그게 최선이라고 엄마는 생각한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이런건 필요없고 이런건 정말 살아가는데 팁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엄마는 엑기스만 뿝아주고 싶다. 기왕이면 시행착오 없는 인생을 아이앞에 펼쳐주고 싶다,

엄마는 딸을 생각하고 딸도 엄마를 챙기지만 둘은 자꾸 어긋난다.

나의 좋은 의도가 타인에게 전달되지 쉽지 않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고 내가 누구보다 잘 안다고 믿는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힘들어 두 사람은 각각 아프다. 다인이도 힘들고 엄마도 힘들다.

그러면서 엄마는 한구석이 허하다. 자꾸 바람이 불고 사막앞에서 기어이 눈물을 보인다,

엄마는 강가에서 어린 나를 발견하고 내가 깊이 묻어둔 상처를 마주한다,

기억하고 싶어하지 않은 것 말하고 싶지 않은 것  엄마는 그 상처를 마주하는 것이 이 여행의절정이며 끝이라고 믿으려 한다. 그러나  엄마의 여행은 여러 절정들의  연속이다,

 

다 같이 모여 모래 언덕에 앉아 우는 것이 여행의 대단원이었어야 했다. 그러면 갑자기 쏟아졌던 눈물을 마두금 소리때문이었다고 여행이 끝나가는 게 너무 아쉬워서였다고 또는 그저 친구의 울음에 눈물 한방울 보탰을 뿐이라고 변명한 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건 울음의 의미를 자기 자신에게 만이라도 솔직하게 고백해야 하는 시간이 남아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번 여행이 한 편의 소설이라면 나는 윌, 아니 내가 위기에 봉착했음을 , 대단원은 위기의 절정을 겪어내야만 맞이 할 수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p 112 

 

 

다인이 엄마 정숙씨는 자꾸 이것이 이 여행의 절정이기를 바라지만 그날 모래 언덕 이후 자꾸 훅훅 튀어나오는 기억과 감정들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이럴려고 여행을 온건 아니었을텐데 어떤 사소한 무언가가 그녀의 저 아래 그림자를 자꾸 건드리고 깨워내고 있었다.

암 선고를 받고 아직 돌봄이 필요한 자식들을 생각하고 내 삶을 돌아보기 위해 여행을 온 엄마는 자기를 통해 눌러 놓은 친정엄마의 기억을 떠올리고 그리고 이제야 깊이깊이 묵혀둔 원망을 터뜨린다. 순간순간 눌러서 몰랐던 감정이 뱀처럼 꼿꼿하게 머리를 쳐들고 그녀를 마주보고 있다. 피하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이제 안다.

 

 

내가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엄마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농약병의 뚜껑을 따려는 순간인가? 그때로 돌아가서 엄마를 막고 싶은 걸까? 다시 자문 해보았지만 놀랍게도 아니었다. 나는 어떻게 하면 동새을 떼어 놓고 미숙이와 놀 수 있을 까가 가장 큰 고민이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다. 엄마한테 억울하게 부지깽이로 맞고 나서도 엄마가 슬쩍 쥐어준 박하사탕 한개에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했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면 나는 엄마한테 혼나고 구박 당해도 동생들이 엄마를 차지하고 있어도 그래서 엄마가 너무 미워서 엄마 곁을 떠나지 않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화해하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더할 수 없이 사랑할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엄마가 그 추억과 사랑만으로도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비록 여전히 짦은 시간이라 할지라도 끝까지 견디고 살아 낼 수 있게 하고 싶었다. 그런 다음 그동안 우리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웠다고 사랑한다고 인사하며 엄마를 보내고 싶었다.  p 188

 

 

가끔 별 거 아닌 일이 툭 하고 터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휩쓸리면서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내가 왜 그랬을까 싶다. 그러나 그때 감정에서 내가 몰랐던 내 모습을 떠오르고 정신없고 나도 낯설어서 힘들어진다, 다인이 엄마 정숙씨가 불쑥 친구의 한마디 "다시 돌아간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 그 말에 과거 묻어둔 기억으로 돌아가고 갑자기 느껴지는 감정이 혼란스럽다, 물론 이전 차근차근 쌓아올린 감정과 사건들이 있긴 하다. 암선고가 있고 그때 엄마의 병이 떠오르고 그때 나의 나이가 내 아들의 나이라는 것 어떤 동질감 엄마로서 엄마를 생각하게 하는 것 그리고 묻어둔 기억까지....

그때 하지 못한 말들 하지 못한 행동들로 인한 결과들을 꾹 꾹 눌러담고 살다가 그것이 지금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서 터져버릴 때 이미 지금은 그때 그 말이 그 행동이  낯설어져버린 시간과 장소인데 지금이라도 그 말을 그 행동을 하지 않으면 미칠거 같은 기분,. 그러나 지금 하다간 허공에 하이킥을 마구 날릴만큼 뒷감당이 힘들다는 것도 알아버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막막함그건 그때 내가 알게 된 감정이고  정숙씨의 감정이다.

결국 그건 내 앞의 정숙씨 앞의  각자의 숙제이다,

정숙씨의 숙제는 자기가 받은 상처가 다시 아이에게 넝어가는 세대전수에 대한 경계여야 하는 것이다. 이미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엄마와 정숙씨 사이의 문제가 눌려져서 다른 곳 자식과의 관계에서 튀어나오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라면  나의 과제는 아직 내 옆에 있는 엄마와 어떻게 풀어야 하나 하는 것이다, 물론 이제 와서 엄마에게 아프다고 말하거나 바뀌라고 할 수 없는 것이고 내가 이해한만큼 내가 조금 변하는 것 그리고 그걸 억울하게 생각하지 않은 마음을 먹는 것 그리고 정숙씨처럼 내 아이에게 전이되지 않게 늘 생각하고 있을 것...

과제는 알지만 역시 머리에서 다리까지의 거리만큼 아는 걸 행하는 것이 내겐 과제가 된다,

내 속에 얼마나 많은 생각이 있었는지 많은 감정이 있었는지 그걸 알아내는 것 그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그리고 그 감정을 따라가고 아직 자라지 못한 어린 아이를 바라보고 그 마음을 만져 주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 그러고 나면 나와 그녀는 함께 각가의 엄마를 이해하고 그리고 자녀에게 그러지 않은 엄마가 되는 것이겠지...

덜컥 내게 들켜버린 내 마음이 당황하지 않게 담담하게 마주보는 연습이 필요한 때이다,

 

p.s.  그녀가 정숙씨가 아니라 숙희싸다.

       다인이 엄마 숙희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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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 모리어티의 죽음 앤터니 호로비츠 셜록 홈즈
앤터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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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가   사망하고도 몇십년이 흘렀으나 영국  런던 베이커 가에는 아직도 그를 그리워 하는 사람이 많다

요즘은 헤리포터때문에 영국을 가고 헤리포터를 추억하는 사람이 맣다고 하지만

그래도 영국 런던은 아직 홈즈가 아닐까...

나의 미스테리물의 입문서는 당연히 셜록 홈즈였다,

그당시 아동 청소년 문고로 나온 책들을 야금야금 읽으면서 밤에 무서워서 화장실 가는 것도 힘들어하면서도 책을 놓지 못했다. 읽어도 읽어도 계속 나오는 시리즈를 찾아 읽으면서 한때 탐정이 되거나 아니면 절대 잡히지 않는 킬러가 되면 어떨까 하는 공상을 했다,

차갑고 이성적이고 고독하며  시니컬했던 홈즈를 나름 혼자 상상하면서 무지 좋아했던 거 같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약간의  소시오 패스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차가운 이성으로 사건을 뚫어보고 추리해 내는 모습에 혼자 많이 좋아했던 거 같다,

그리고 이후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들을 보며서 따뜻하고 소녀소녀한 분위기의 미스테리물에 푹 빠졌다가 성인이 되면서 일본 미스테리물에 푹 빠졌드랬다,

그래도 역시 미스테리물에서 그리고 탐정들 중에서 최고는 셜록 홈즈다,

 

정말  이십년만에 다시  셜록 홈즈라고 씌여진 책을 읽는다,

비록 이 책에는 홈즈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책에 나오지 않아도 그 존재감이 대단하다

책장을 넘기면서 다음 페이지에는 다음 장에는 그가 불쑥 나오지 않을까 그렇더라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내내 생각하면서 페이지를 넘겼다,

프레더릭 체이스와  애니셜 존스가 사건과 부딪쳐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등장할까 이제 나올지도 몰라 하면서 사건 그 자체보다 어디선가 홈즈가 지켜보고 있다는 설레임에 더 빠져서 책을 보았다.

그가 해결한 사건들이 오마주처럼 불쑥 불쑥 튀어나오고 그때의 인물들이 나오지면 그의 모습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사건이 결말로 치닫는데 체이스의 옆방 사내는 모습을 드러내지않고 (그가 홈즈인지 아닌지 알수 없지만) 결국 냄새만 몹시 피우다고  책은 끝이난다,

같이 배신감을 느꼈을 독자를 위해 마지막에 그의 사건 한 꼭지가 실려있긴 하지만 ...

내내 고깃집 앞에서 냄새만 맡가디 한점도 먹지 못하고 돌아서는 배고픈 동네 개마냥 허탈하고 허탈하다,

이렇게 냄새를 희안하게 유혹적으로 피울 줄 아는 걸 보면 코넌도일 재단에서 선책한 작가 답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내가 미국과 영국의 차이점을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셜록을 읽고 크리스티의  포와로나 마플을 읽으며  했던 생각은  영국은 참 살인이나 범죄도 우아하고 진지하게 일어나는 구나 하는 거였다. 물론 피바다가 되고 잔인한 사건들도 있지만 지금 내 기억에는 어떤 당위성과 인과관계가 잘 맞춰진 사건들이었고 나름 계산적이고 이유가 있다는 기억이다,

현대물에 오면서 피냄새가 진하고 더욱 잔인해지는 방법들을 보면서  거부감도 들었던게 내게 첫 기억인 홈즈가 꽤나 신사적이었고 그가 풀어낸 사건들도 나름 신사적었다는 선입견인지 모르겠다 (그때 아동문고나 청소년 문고라  표현을 순화했던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이 책에서 표현되는 피칠감 장면들을 이건 영국이 아니라 미국에서 건너온 악당이라서... 라고 나름대로 이유를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홈즈라면 이렇게 해결하지 않았을 텐데.. 냄새는 그만 피우고 좀 나오지 싶은 감질맛만 실컷 느끼면서도 책에 빨려 들었고 ... 유감스럽게도 모리어티도 나름 꽤 매력이 있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이 책은 이십년전 나와 홈즈의 첫만남을 기억하게 하고 그때 처럼 책을 놓지 못하는 경험을 하게 하고 그리고 올 여름 그를 다시 만나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한다,

지금은 미스터리를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한때 홈즈를 알았던 사람이라면 이 여름 읽을 만한 책이다,

아 참... 예전 홈즈와 뤼팡을 라이벌로 묶어서 대결하고 했던 책을 읽으며 내내 밀리는 홈즈 때문에 읽다가 책을 집어던진 기억이 있다. 나로선 뤼팡따위가 홈즈와 라이벌이라니.. 하는 마음에 분했었는데... 이 책 이후... 모리아티라면.. 그의 라이벌로 나쁘지 않다고 인정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볼 만하다고...생각되어기지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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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의 아이들 - 제5회 문학동네 청소년 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28
이선주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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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급식에 대한 이야기가 떠들썩했을 때

무료급식이 아니라 선별급식이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던 이웃에게 무어라라고 할게 아니라 이 책을 권해야 했다,

적어도 밥 먹는 일은 누구와 누구가 달라서는 안되는 거 아니냐고

가난하니까 돈을 내지 않고 부자니까 돈을 내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아이들이니까 함께 먹어야 하는게 아니냐고 버버벅대며 말하는게 아니라 책을 내밀어야 했다,

그때 이 책을 알았더라면...

밥이라는 게 누가 돈을 내고 못내는 문제는 아니라고 말해줄 걸 그랬다,

김치에 김에 계란 후라이 하나씩 그리고 늘 먹던 된장찌게에 하루는 물을 더 붓고 하루는 된장을 좀더 넣으면서 하루는 멀겋다가 하루는 짰다가 하는 걸 떠먹더라도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고 작은 밥상에 엉덩이를 밀어넣을 수만 있다면 '함께 먹는"다는 것이 중요하지 "돈을 누가 내느냐"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한다면..

그건 더 설득력이 없을까?

다른 무엇보다 란이네 가족의 밥상이야기가 좋았다,

민성이가 오고 클레어가 오고 옆집 아줌마가 수시로 드나들어도 그냥 의자하나 더 두고 수저 하나 더 올리면 그만이다, 누군가가 몹시 아프고 추울 때 주전자를 올리고 설탕 한스푼 가득 넣어서 마시는 것 고작 그것뿐인데 누구나 그 집에서는 입맛이 돌고 몸살이 풀린다,

밥이라는 게 그런 것이다,

그냥 함께 어깨를 맞대고 함께 밥을 먹고 등을 대고 누워 잠드는 것

란이에게 가장 부끄러운 부분들이 누군가에게는 힘이 되기도 한다는 것 그게 좋았다,

 

 

엄마가 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소녀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꼬부라진 할머니

아무일도 하지 않고 상처받고 텔레비젼만 보는 남자

엄마를 보내고 악착같이 돈을 모으며 기다려야하는 조선족 소년

누구나 부러워하는 부유한 부모는 가졌지만 사랑대신 폭력과 방치를 받은 소녀

아프고 힘든 청춘들 이웃들 이야기에서 가장 와 닿는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밥상 이야기다,

돈이 많건 적건 세끼 이상 먹는 거 아니고

화려한 요리를 먹건 멀건 죽이나 물말을 밥을 후루룩 넘기건 그건 결국 똥으로 나온다는 것도 같다.

가아끔 맛있는 밥상을 혼자 먹는게 맛없고 우울한 밥상을 함께 먹는 것보다 나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음식은 혼자보다 함께가 더 맛있다.

어떤 고통이든  란이 할머니는 주섬주섬 상을 차리고 된장찌게를 끓이고 계란 후라이를 부치거나 물을 끓이고 설탕물을 타준다.

마음이 허한 사람에게 함께 먹는 밥은 무엇보다 좋은 치료제이다,

배우지 못하고 돈이 없는 할머니도  몸으로 그걸 알고 있다,

일단 밥을 먹고 배를 채우고 몸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행위자체가 위안이 된다는 것

 

어쩌면 위로는 아주 사소한 몸짓에서 시작된다,

어떤 이론을 알고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 보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믿으면서

등을 쓸어주고 함께 밥을 먹고 손을 잡아주고 안아주는 것

생각보다 먼저 몸이 나가고  마음이  먼저 닿아 있는 것 그게 위로일 때가 있다,

가족이 아니라 식구라는 말

함께 밥을 먹는 밥상공동체라는 것이 나는 참 좋다.

어깨를 부딪치고 하나 남은 달걀 말이에 내적 고뇌가 담겨 젓가락이 허공을 헤매고 있을 그런 사람들의 멈칫거림과 과감한 몸짓이  섞인 한상의 밥상

그것이 화려한 언변이나 구조적인 제도들보다 더 필요한 것이다,

내 밥상에 기꺼이 수저를 하나 더 놓고 공깃밥을 하나 더 올려놓는 배려와

남이 가져간 마지막 계란에 그 마음을 먼저 헤아려 주는 공감과

초라하다고 멈칫거리지 않고 당당하게 내놓고 받을 줄 아는 용기가 더 좋다,

 

삶은 동사의 연속이다,

먹고 자고 이야기하고 일하고 공부하고 걷고  뛰고 부딪친다,

종일 앉아 엉덩이로 이겨내며 머리로 집을 짓는 일보다 몸으로 부딪치고

음식으로 위로하는 일

그런 동사의 삶이 지금 내게도 필요하다,

내가 하는 행동은 위로가 될 수도 있지만

내가 하는 생각은 그저 생각일 뿐이므로...

 

그래서 나는 먼저 움직이고 모듬어주는 란이네 가족과 이웃이 정말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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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 창문을 향해 몸을 기울이자 겨울밤의 침묵이 들려왔다. 섬세하고 복잡하며 조직이 성긴 눈이라는 존재에 흡수된 소리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 하얀 풍경 위에서 움직이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 죽음같은 풍경이 그를 잡아 당기고 그의 의식을 빨아들이는 것같았다. 공기중에 소리를 끌어당겨 차갑고 하얗고 부드러운 눈 밑에 묻어버릴 때처럼, 그는 자신이 그 하얀 풍경을 향해 끌려가는 것을 느꼈다. 눈 앞에 한없이 펼쳐진 하얀 풍경은 어둠의 일부가 되어 반짝였다. 그것은 높이도 깊이도 가늠할 수 없는 구름 한점 없이 맑은 하늘의 일부였다. 순간적응로 그는 창가에 꼼짝도 않고 앉아 있는 몸에서 자신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그러니까 그 하얗기만 한 풍경과 hvdms 기둥들과 밤과 저 멀리의 별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작고 멀어 보였다. 마치 그것들이 무를 향해 점처 졸아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등 뒤에서 라디에이터가 쩡 하는 소리를 냈다. 그가 몸을 움직이자 풍경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는 이상할 정도로 내키지 않은 안도감을 느끼며 다시 책상위에 불을 켰다. 그리고 책 한권가 눈문 몇권을 챙겨서 연구실을 나가 어두운 복도를 걸었다. 제시 홀 뒤편의 널찍한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간 그는 집까지 천천히 걸었다. 마른 눈 속에 발을 디딜 때마다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억눌린 듯 커다랗게 울리는 것을 의식하면서   p 253

 

나이 마흔셋에 월리엄 스토너는 다른 사람들이 훨씬 더 어린 나이에 이미 배운 것을 배웠다. 첫 사랑이 곧 마지막 사랑은 아니며 사랑은 종착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두 사람 모두 수줍어하면서 천천히 조심스럽게 서로를 알아갔다.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기도 하고 서로에게 손을 내밀었다가 물러나기도했다. 두 사람 모두 상대방에게 억지로 자신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두 사람을 보호해주던 과묵함이라는 막이 한층 씩 떨어져 나가서 마침내  두사람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지극히 수줍어하면서도 서로에게 무방비하게 마음을 열고 함께 있을 때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해지는 관계가 되었다.

                                                         p 272 

 

하지만 그는 초월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앞으로 영원히 초월하지 못할 것이다. 무감각 무심함 초연함 밑에 그것이 아직도 남아있었다. 강렬하고 꾸준하게 옛날부터 항상 그곳에 있었다. 젊었을 때는 잘 생각해보지 않고 거리낌없이 그 열정을 주었다. 아처 슬론이 자신에게 보여준 지식의 세게에 열정을 주었다. 그게 몇 년 전이더라?  어리석고 맹목적이던 연애시절과 신혼시절에는 이디스에게 그 열정을 주었다. 그리고 캐서린에게도 주었다. 그때까지 한 번도 열정을 주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그는 방식이 조금 기묘하기는 했어도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열정을 주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을 때 가장 완전히 열정을 바친 것 같다. 그것은 정신의 열정도 마음의 열정도 아니었다. 그 두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힘이었다. 그 두가지가 사랑읙 ㅜ체적인 알맹이인 것처럼 상대가 여성이든 시든 그 열정이 하는 말을 간단했다. 봐! 나는 살아있어.             p353

 

넌 무엇을 기대했나?

 

 

책을 덮으며 생각한다.

어떤 팟캐스트에서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꼭 읽어야 겠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이 책의 주인공이 나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도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주지도 않고 안으로 안으로 침잠하는 주인공의 무던하고 안온한 그래서 조금 지루한 일생이 내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읽으며 나는 누군가를 생각했다. 책으로 빠지고 책으로 도망가고 그리고 누구의 말이든 듣고 흘리고 견디는 삶이 누군가와도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보웬의 가족치료에 대해 강의를 들었다.

가족 세대 전수에 대해 들으며 그 누군가가 가진 고독과 무심함과 어쩔 줄 몰라 묵묵히 견디던 유전자가 내개로 전수되었다는 생각을 했고 그리고 내 속에 있던 그 유전자가 또 누군가에게 전수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순간 소름이 돋았다,

 

누구나 스토너다,

책 뒷편에 씌여진 그 말은 맞다,

읽는 사람은 누구나 나를 그리고 내가 아는 누군가를 스토너에 넣어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일을 고지식하게 처리고 묵묵하게 견뎌내는 사람

책속으로 들어가고 책속에서 위안을 얻는 사람

현실생활에는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사람

자기를 위해 변명할 줄 모르고 남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할 줄도 모르고 때에 따라 처세를 부리고 유들유들하게 넘어갈줄도 모르는 꽉 막힌 사람

그저 잘하는 것은 침묵하고 견디고 또 견디는 사람

사람보다 책이 더 편한 사람

그가 바로 스토너이고 바로 나이고 바로 또 누군가이다,

그의 일생을 읽으면서 문득 생각했다,

그는 소년에서 바로 노년으로 건너뛴 사람이구나

한번도 뫈전한 성인이었던 시절은 없었구나

성인이라는 것이 어떠해야한다는 규정은 제각각이겠지만 사회를 알고 적당히 맞출 줄 아는 여유를 가진 그레서 모서리가 많이 깍이고 둥글어진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볼때 그는 소년에서 그냥 노년이 되어버린 사람이다.

그의 견딤은 선한 행위만은 아니었다,

이디스가, 대학의 동료가 그를 무시하고 모욕을 주었다는 것을 알아도 그냥 견디는 그의 침묵은 또 다시 그들에게는 공격으로 느껴졌다. 나를 무시하는구나 나를 얕잡아보는 구나 하고 충분히 느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는 보편적으로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한 사람이다,

동시에 누군가의 보편적인 삶이 이렇게 숭고하게 느껴질 수도 있구나 하는 걸 스토너를 통해 보았다.

 

그는 선하며 동시에 악하다.

본인의 적극적인 의사가 개입되지 않았다지만 우직하고 원칙적인 그의 고집과 무던함 그리고 어떤 저항도 반항도 없이 견디는 그 단단한 벽같은 성격이 누군가에게는 고통일 것이다,

한때 내가 아는 누군가를  이렇게 묘사한 이가 있었다,

" 너무 잘나서  내가 하는 수준낮은 말에는 어떤 대꾸도 안하더라. 너는 떠들어라 나는 듣지 않겠 다 딱  사람무시하는 태도다. 어떻게 아냐고? 꼭 말을 해야 아니? 사람 말에 대꾸도 안하고 들리지도 않은 것처럼 입을 딱 닫고 있으면 그걸로 무시하는게 느껴지지 내가 바보도 아니고 그것도 모를까.

 난 세상에서 말안하는 사람이 제일 무섭더라. 속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을 먹고 있는지 어떻게 알겠니? 너도 딱 그 사람 닮아서 말안하고 다 알면서 모른 척하고 못들은 척하고 가만있는거 그거 얼마나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줄 아니? 잘났다 잘났어

난 잘난 것들 다 지긋지긋하다..."

어쩌며 스토너에게 이디스가 퍼붓고 싶은 진짜 마음은 이게 아니었을까?

그러나 스토너의 입장에서는 어떤 말을 해야하고 어떤 행동으로 반응을 해야할지 몰랐던 것 뿐이다,. 아주 단순한 그로서 모르는 건 할 수 없는 일이다,

때때로 모르는 걸 아는 척 할 줄 모르는 사람도 있다,

유감스럽게도 모른다는 걸 들키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오해를 받는다

견디고 있음이 오만하고 냉정한 태도라고 오해받는다.

수줍고 어색함이  모질고 무심하다고 오해받는다.

변명을 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그럴지도 모른다는 깊은 고민속에서 아직 답을 찾지 못했기때문이다. 스토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몰랐던 것은 그런 자기속으로 파고드는 사고와 통찰이 누군가에게는 의사소통을 거부당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고 무심하고 차가운 사람으로 여겨저 상처가 된다는 것이다.

 

그의 삶은 평범하고 클라이막스가 없고 일상의 파도가 지극히 잔잔하다. 격정을 느끼지도 않은 밋밋한 삶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성공한 삶이다 실패한 삶이다 라는 규정은 살아온 자신과는 하등 상관없는 누군가의 타인이 나중에 규졍내리는 것일 뿐 삶을 살아온 본인에게는 어떤 의미도 없는 짓이란 생각이 든다,

누구도 스토너의 삶에 대해 뭐라고 할 수 없다,

그저 무난했다고도 할 것이고  조교수를 마감했으니 학자로서 실패라고 할 수도 있고 잘 풀리지 않은 가족때문에 힘들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삶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스토너 뿐이다.

결국 나의 삶에 대해 만족하거나 불만을 갖거나 하는 건 타인이 아니라 니일 수 밖에 없다.

 

 

스토너를 타자를 놓고 보면서 그는  주변 사람에게 어떤 사람이었을까 궁금해진다,

가족에게 스토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책에서는 이니스의 악행들이 나오지만 어쩌면 그녀 입장에서는 하고 싶은 말이 따로 있지 않았을까? 싸움을 걸고 말을 해도 침묵하고 견디는 스토너는 거대하고 이길 수 없는 대상이 아니었을까?

그레이스에게 아버지 스토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어릴 적 그레이스에게 보여준 다정하고 조용한 애정표현은 그녀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겠지만 이후 무조건 지켜보고 침묵하기만 한 아버지 스토너는 그레이스 입장에게 들들볶아대는 엄마보다 더 두렵고 원망스러운 존재가 아니었을까?

사람은 누구나 사회적인 얼굴을 가진다. 융이 말한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다,

내면의 그림자를 가려줄 페르소나는 위선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그것을 쓴다는 것은 내가 사회에 잘 적응하고 맞추겠다는 의미일 수도 있는데 스토너는 전혀 그것을 쓰지 않은 인물처럼 보인다,

두가지 얼굴을 가지는 것을 전혀 알지못하는 사람처럼 언제나 같은 표정 같은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상대를 당황하게 만드는 것이다, 자기의 완전한 모습을 알지도 못하고 그걸 감추지도 못하는 것을 보면 그가 성인기를 제대로 살아내지 못했다는 걸 다시 깨닫는다. '

결국 그는 소년에서 그냥 노년으로 뛰어버린  그래서 사람들의 세상에서 서성거리기만 했던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 서성임이 고독했을 것이고 그러다 익숙했을 것이고 그리고 이후 잊혀졌을 것이다,

그는 스토너이고 그리고 내가 아는 누군가이고 그리고 나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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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다 보면 순간 반짝이는 때가 있다,

사실 그 순간에는 이것이 반짝임인지 무엇인지 모른다.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 돌아보면 그 순간이 반짝이는 순간이라는 걸 알게 되기도 하고 영영 모르고 지나가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순간의 반짝임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그 삶의 한순간 반짝임을 겪은 사람들이 그 경험을 이야기한다,

 

지구반대편 너무 복잡해서 한 번 들어서는 도저히 발음할 수 있을 것같지 않은 마을에서 단체관광객이  반정부 게릴라의 습격을 받아 납치가 되었다, 모든 작전이 끝나고 결국 납치범도 인질도 모두 죽음으로 마무리되는데 이후 그때 납치된 인질들이무언가를 낭독한 것이 발견된다,

인질로 잡혀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언제 죽음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들은 자기가 경험한 반짝이는 순간에 대해 글로 적어 발표를 한다,

사실 극적인 사건이 없었다면 그들 중 몇이나 자기의 삶을 돌아보고 반짝이는 순간에 대해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다는 절박함이 그리고 어떤 막연함이 삶을 돌아보게 하고 삶속에서 잊고 있던 한 순간을 기억하게 하고 그 순간이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보니 반짝하고 빛나던 순간이라는 걸 알았거나 삶의 어떤 모퉁이였음을 알게 된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특별한 것도 극적인 것도 아니지만 그 본인에게는 그 일 이전과 이후가 달라지는 어떤 모퉁이였음을 알게 된다,

 

주인공들은 모두 외로운 사람들이다,

혼자 철공소를 보며  여러가지 상상을 하는 소녀

불량 비스켓을 가져와 괴팍한 노인네와 함께 시간을 갖는 처녀

우연히 여러가지 독특한 모임에 참여하게 되는 출판교열자

등교길에 만난 조잡한 인형을 만들어 파는 노인과 공감하게 되는 소년

어느날 이웃집 딸과 함께 낯선 음식 콩소메를 함께만드는 경험을  혼자만 간직하는 소년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청년을 따라가 창던지기를 관람하고 스스로를 들여다보던 여자

돌아가신 할머니를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듣는 여자

아르바이트가 끝나는 날 단골에게 받은 꽃다발을 들고 돌아가는 청년

그리고 어린 시절 만난 일본인과의 경험을 기억하는 병사

그저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는 주인공들에게 한 순간 반짝하는 순간이 왔다,

그 순간은 엄청나게 드라마틱하지도 않고 대단한 반전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다,

몇몇은 그 순간에는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러나 삶을 되돌아보았을 때 찬찬히 자기의 속을 들여다 보며 되집어 보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때 나는 어떤 강을 건넜구나

이제 다시는 그 이전으로 돌아기진 않을 것이고 그로 인해 미세하게라마 나는 달라렸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다,

그건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은 순간이기도 하고 누군가를 위로한 순간이기도 하다,

상대가 알지 못하지만 혼자 위안받고 자기를 돌아보기도 한다,

 

어쩌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그런 삶의 지점을 기억나게 했을 수도 있다,

그저 어제같은 오늘을 하루하루 살아가는 중이라면 내가 모퉁이를 언제 돌았는지 언제 반짝하는 빛이 있었는지조차 되돌아 볼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냥 그때가 좋았엇지 하는 건 있어도 그때 그 반짝거림을 찾은 적은 없다,

몹시도 외롭고 서러워도 그래도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것 살아간다는 게 괜찮은 일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그 순간을 찾아보고 싶다,

이만하면 괜찮지 않을까 스스로  위안하고 토닥거리는 순간이 반짝이는 순간이기도 할것이고

이제 뭔가 강을 건너버렸다는 느낌, 방금 전의 나와는 다른 내가 되어버린, 훌쩍 자라버린 낯선 나를 느낄때가 그때 이기도 할것이다,

 

 

개인적으로 메아리 비스켓이랑 창을 던지는 남자를 바라보던 여자 이야기가 좋았다,

비스켓 이야기는 나와 전혀 다른 누군가와 소통하고 공감해나가는 이야기여서 좋았고

창 던지는 남자 이야기는 그냥 아무것도 아닌 어느 날의 하루가 나에게 좋은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조금 다른 시각이 좋았다,

화려하고 극적이지 않아도 조금씩 내 속에서 찰랑거리는 물결을 느끼는 것

오롯이 나만 느끼는 것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작가 오가와 요코는 사람의 마음을 참 세심하게 만져준다

<박사가 사랑하는 수식>에서도 그랬듯이 자분자분 사람을 관찰하고 따뜻하게 품어주는 느낌이랄까.. 별 것 아닌것에도  눈 맞추고 고개를 끄덕여 줄 줄 아는 사람일거 같다,

 

별 것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오래 품고  들여다 보며 기운 낼 수 있는 무언가

그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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