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낮에 전화로 친정엄마와 다투었다. 별거 아닌 이야기였고 평소라면 알았어 알았어 하며 귓등으로 듣고 일단 습관처럶 대꾸한 다음 통화가 끝나면 그냥 흘려버릴 것이었는데  오늘따라 무슨 감정이 들었는지 따박따박 말대꾸하며 목청이 커졌다. 나의 단점인 흥분하면 소리가 커지고 빨라지고 일단 무조건 뱉고보는 것...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하다보니 이건 내 변명밖에 안된다는 걸 알아채면서도 말을 멈출 수 없었다,

엄마가 틀린 말을 하는 건 아니지만 그 말을 전하는 말투 뉘앙스 그리고 늘 같은 패턴의 잔소리가 유난히 거슬리는 날이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참기 싫었고 나도 대꾸했고 언성이 높아졌고 서로 말꼬리를 자르고 마구마구 퍼붓다가 울다가 끊어버렸다,. 이러려고 통화한게 아니었고 이럴 의도가 전혀 아니었다는 이성을 누르면서 그래도 정말 저런 태도는 싫다는 감정이 점점 커졌다.

아.... 문득  생각지도 못한 어린시절이 마구 떠올랐다,

엄마는 늘  말이 많았고 틀이 강했고 징징거리기까지 했다.

아니 징징거린다는 표현은 너무 심하고 자기 하소연이 많은 사람이었다,

낯선 시집환경 무뚝뚝한 남편 상상과는 다른 결혼생활 그래도 견디고 살아야 하는 상황에서 엄마는  어느순간 우리를 앉혀놓고 하소연을 했다. 남편에 대해 시집식구들에 대해서....

오죽하면 우리에게 할까 싶어 듣고 듣고 또 듣다보면 나중에는 들으면서 딴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기도 했다. 엄마니까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함께 미워해주었는데 가만 생각하면 그게 너무 싫었다. 그러서 어쩌라고....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걸까

 그런 우리 엄마가 너무 싫었다.

제발... 엄마 스스로 강해지면 안되나? 자기 혼자  잘 정리하고 추스르면 안되나?

정말 싫다. 듣기 싫다. 진심으로 싫다고 말하고 싶다. 싫어 엄마 참 싫다,

전혀 상관없는 통화에서 생각이 꼬리를 물고 기억들은 들추어지고 그러서 어쩌라고 우리보고 어쩌라고... 다 풀면 소설 서너권은 나온다는 엄마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한이고 아픔이지만 그걸 듣는 자식입장은 너무 괴로웠다. 이제는 늙어서 엄마가 변할 수 없으니 내가 참아야 한다고 그것만 빼면 정말정말 좋은 엄마고 희생적인 엄마고 우릴 위해 산 엄마니까 그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마음을 다독이면서도 힘들었던 거 같다. 너무 오래되었다. 너무 내 표현을 하질 못했다. 그게 결국 터져버린 걸까?

한편으로 후회되고 죄스러우면서 한편으로 계속 말하고 싶었다,

싫어 엄마가 너무 싫어. 그러는 거 정말 싫어. 나 엄마 별로 안좋아했나봐... 엄마 싫어했나봐

후련하면서 아팠다,

아... 이런다고 변하는 건 없는데 내 속을 뒤집어서 내 상처를 마주한다고 엄마랑 어떻게 변할것인가,....

나는 스스로 강해지고 스스로 소중하게 여기는 엄마가 되어 존재만으로 든든한 엄마가 되겠다는 것은 생기지만 결심은 하게 하지만

엄마와 나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될까?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제 와서 엄마가 변하지 않을 것인데 결국은 내가 견디는 것인데.. 계속 엄마 하소연을 듣고 잔소리를 듣고  원망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조금 살갑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 말고는 할게 없는데

내 속의 아이가 이렇게 불쑥 느닷없이 튀어나올줄 몰랐다,

지금 40이 넘은 나는 그냥 이대로 살면 된다고  엄마도 그땐 젊어서 아무것도 몰라서 힘들어서 그런걸 어떻게 잘못이라고 할 수 있냐고..70넘은 노인네를 그게 옳다고 믿고 살아온 걸 바꿀 수는 없다고  이제 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큰 일 만들지 말라고 하는데 새로 만난 아이는 그게 아니라고 한다. 그때 힘들었던 걸 아는데 그걸 위로받지도 못했는데 힘들다고 말하지도 못했는데 그냥 덮고 지나가면 내가 아픈 건 어떻하냐고 두 다리를 뻣대며   고집을 피운다,

나이든 나는 그 아이를 멍하니 바라본다. 그래서 변하는게 뭔데? 내가 괜찮다고 그동안 힘들었구나 하면 되냐고 물어보지만.. 말에 욺음이 섞인다. 어쩌자고 어린게 위로받을 둥지하나 없이  갑옷을 두르고 살았냐고  그건 니 잘못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엄마와 딸이 몽골로 여행을 떠난다,

둘만의 여행이 아니라 엄마가 고교 동창들과 함께 떠나는 첫 여행에 딸이 함께 하는 것이다,

볼 것 없이 허허벌판 고비시막으로 떠난 여행에서 모녀는 제각각 자기 생각에 빠지고 자기의 시선으로 상대를 본다,

딸은 딱 그 나이 아이다운 시선으로 어른을 보고 잘 생긴 가이드를 보고 엄마를 본다,

유치하고  경박한 아줌마들의 수다와 풀어진 모습에 혀를 차고 매사 자기를 방해하는 엄마를 미워도 했다가 필요도 했다가 하면서 자기 방식으로 세상을 본다.

어리다도 마음도 감정도 마냥 유치하지 않다,

설레임도 있고 내적 고민도 있고 생각도 많아진다, 다만 그것이 타인에게 제대로 전달 되지 않고 전달하기 힘들고 나를 이해받기힘들고 나를 보여주기 힘들 뿐이다,

 

그리고 책은 엄마에게 넘어간다.

엄마는 엄마니까 딸 다인이를 챙겨야 하고 잘 이끌어야 한다,

그래서 엄마는 늘 종종거린다, 친구들과 풀어지다가도 다인이를 의식하고 있다,

아이를 이해하려고 하면서도 자기가 원하는대로 이끌고 싶다,

엄마는 엄마 방식의 사랑을 준다. 그게 최선이라고 엄마는 생각한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이런건 필요없고 이런건 정말 살아가는데 팁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엄마는 엑기스만 뿝아주고 싶다. 기왕이면 시행착오 없는 인생을 아이앞에 펼쳐주고 싶다,

엄마는 딸을 생각하고 딸도 엄마를 챙기지만 둘은 자꾸 어긋난다.

나의 좋은 의도가 타인에게 전달되지 쉽지 않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고 내가 누구보다 잘 안다고 믿는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힘들어 두 사람은 각각 아프다. 다인이도 힘들고 엄마도 힘들다.

그러면서 엄마는 한구석이 허하다. 자꾸 바람이 불고 사막앞에서 기어이 눈물을 보인다,

엄마는 강가에서 어린 나를 발견하고 내가 깊이 묻어둔 상처를 마주한다,

기억하고 싶어하지 않은 것 말하고 싶지 않은 것  엄마는 그 상처를 마주하는 것이 이 여행의절정이며 끝이라고 믿으려 한다. 그러나  엄마의 여행은 여러 절정들의  연속이다,

 

다 같이 모여 모래 언덕에 앉아 우는 것이 여행의 대단원이었어야 했다. 그러면 갑자기 쏟아졌던 눈물을 마두금 소리때문이었다고 여행이 끝나가는 게 너무 아쉬워서였다고 또는 그저 친구의 울음에 눈물 한방울 보탰을 뿐이라고 변명한 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건 울음의 의미를 자기 자신에게 만이라도 솔직하게 고백해야 하는 시간이 남아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번 여행이 한 편의 소설이라면 나는 윌, 아니 내가 위기에 봉착했음을 , 대단원은 위기의 절정을 겪어내야만 맞이 할 수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p 112 

 

 

다인이 엄마 정숙씨는 자꾸 이것이 이 여행의 절정이기를 바라지만 그날 모래 언덕 이후 자꾸 훅훅 튀어나오는 기억과 감정들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이럴려고 여행을 온건 아니었을텐데 어떤 사소한 무언가가 그녀의 저 아래 그림자를 자꾸 건드리고 깨워내고 있었다.

암 선고를 받고 아직 돌봄이 필요한 자식들을 생각하고 내 삶을 돌아보기 위해 여행을 온 엄마는 자기를 통해 눌러 놓은 친정엄마의 기억을 떠올리고 그리고 이제야 깊이깊이 묵혀둔 원망을 터뜨린다. 순간순간 눌러서 몰랐던 감정이 뱀처럼 꼿꼿하게 머리를 쳐들고 그녀를 마주보고 있다. 피하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이제 안다.

 

 

내가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엄마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농약병의 뚜껑을 따려는 순간인가? 그때로 돌아가서 엄마를 막고 싶은 걸까? 다시 자문 해보았지만 놀랍게도 아니었다. 나는 어떻게 하면 동새을 떼어 놓고 미숙이와 놀 수 있을 까가 가장 큰 고민이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다. 엄마한테 억울하게 부지깽이로 맞고 나서도 엄마가 슬쩍 쥐어준 박하사탕 한개에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했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면 나는 엄마한테 혼나고 구박 당해도 동생들이 엄마를 차지하고 있어도 그래서 엄마가 너무 미워서 엄마 곁을 떠나지 않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화해하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더할 수 없이 사랑할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엄마가 그 추억과 사랑만으로도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비록 여전히 짦은 시간이라 할지라도 끝까지 견디고 살아 낼 수 있게 하고 싶었다. 그런 다음 그동안 우리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웠다고 사랑한다고 인사하며 엄마를 보내고 싶었다.  p 188

 

 

가끔 별 거 아닌 일이 툭 하고 터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휩쓸리면서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내가 왜 그랬을까 싶다. 그러나 그때 감정에서 내가 몰랐던 내 모습을 떠오르고 정신없고 나도 낯설어서 힘들어진다, 다인이 엄마 정숙씨가 불쑥 친구의 한마디 "다시 돌아간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 그 말에 과거 묻어둔 기억으로 돌아가고 갑자기 느껴지는 감정이 혼란스럽다, 물론 이전 차근차근 쌓아올린 감정과 사건들이 있긴 하다. 암선고가 있고 그때 엄마의 병이 떠오르고 그때 나의 나이가 내 아들의 나이라는 것 어떤 동질감 엄마로서 엄마를 생각하게 하는 것 그리고 묻어둔 기억까지....

그때 하지 못한 말들 하지 못한 행동들로 인한 결과들을 꾹 꾹 눌러담고 살다가 그것이 지금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서 터져버릴 때 이미 지금은 그때 그 말이 그 행동이  낯설어져버린 시간과 장소인데 지금이라도 그 말을 그 행동을 하지 않으면 미칠거 같은 기분,. 그러나 지금 하다간 허공에 하이킥을 마구 날릴만큼 뒷감당이 힘들다는 것도 알아버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막막함그건 그때 내가 알게 된 감정이고  정숙씨의 감정이다.

결국 그건 내 앞의 정숙씨 앞의  각자의 숙제이다,

정숙씨의 숙제는 자기가 받은 상처가 다시 아이에게 넝어가는 세대전수에 대한 경계여야 하는 것이다. 이미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엄마와 정숙씨 사이의 문제가 눌려져서 다른 곳 자식과의 관계에서 튀어나오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라면  나의 과제는 아직 내 옆에 있는 엄마와 어떻게 풀어야 하나 하는 것이다, 물론 이제 와서 엄마에게 아프다고 말하거나 바뀌라고 할 수 없는 것이고 내가 이해한만큼 내가 조금 변하는 것 그리고 그걸 억울하게 생각하지 않은 마음을 먹는 것 그리고 정숙씨처럼 내 아이에게 전이되지 않게 늘 생각하고 있을 것...

과제는 알지만 역시 머리에서 다리까지의 거리만큼 아는 걸 행하는 것이 내겐 과제가 된다,

내 속에 얼마나 많은 생각이 있었는지 많은 감정이 있었는지 그걸 알아내는 것 그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그리고 그 감정을 따라가고 아직 자라지 못한 어린 아이를 바라보고 그 마음을 만져 주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 그러고 나면 나와 그녀는 함께 각가의 엄마를 이해하고 그리고 자녀에게 그러지 않은 엄마가 되는 것이겠지...

덜컥 내게 들켜버린 내 마음이 당황하지 않게 담담하게 마주보는 연습이 필요한 때이다,

 

p.s.  그녀가 정숙씨가 아니라 숙희싸다.

       다인이 엄마 숙희싸..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