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는 속이 깊고 야무진 아이니까 자신의 삶을 꿋꿋하게 잘 살아가고 있을 거예요.

나는 소희를 믿어요.

                                -작가의 말-중

 

작가의 전작 <너도 하늘 말니리야>에서 소희는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다,

할머니와 함께 사는 소위 말하는 결손가정임에도 밝고 똑 부러지는 아이였고 자기 할일을 잘 알아서 손이 가지 않는 아이 믿거니 하는 아이였다,

그 소희가 자라서 15살이 되었고 그 동안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고모집과 작은 집을 전전하다가 얼굴도 기억못하는 엄마를 만나 엄마의 새 가정으로 들어간다,

이야기는 거기서 시작한다,

어디서든 제몫을 해내는 아이  공부도 잘하고 일도 잘 도와주고 늘 반듯하고 모범적인 아이 소희는 작가의 말처럼 그저 잘 하고 있으리라 믿음을 주는 착한 아이다,

착한아이....

그 말이 아플 수 있다는 걸 나는 최근 알았다,

이 멍충한 놈.  약에 쓸래도 쓸 곳도 없는 놈 . 밥만 축내는 놈. 등등의 부정적인 단정과 언어도 사람을 망치지만 든든한 큰 아들, 착한 큰 딸  귀염둥이 막내 등등의 긍정적인 의미의 말들도 아이에게는 부담이 된다, 착한아이는 계속 착해야하고 든든한 아이는 언제나 알아서 해야하고 귀염둥이는 외로워도 슬퍼도 웃어야 한다.

소희는 엄마집에 와서도 착한  딸, 착한 누나가 되기 위해 애를 쓴다,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놓고 엄마와 아저씨 에게 좋은 딸이 되려한다,

친구들에게도 그들이 보는대 부유하고 부러울 것 없는 공주님으로 살아야만 했다.

하지만 우진은  아직 어려서인지 아니면 남의 표정이나 마음 따위를 읽으면서 살 필요가 없어서인지 소희가 아무리 인상을 쓰거나 짜증을 내도 주눅 드는 법이 없었다. 우진은 자신이 남에게 그런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런 우진을 보무녀서 소희는 늘 다른 사람 눈부터 살피고 있는 자기 자신이 떠올라 가슴이 쓰라렸다., 62

 

 

돌이켜보면  소희는 늘 나이에 비해 조숙하고 생각이 깊은 아이로 칭찬받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소희는 칭찬을 들을 때마다 느꼈던 기쁨에 곰팡이가 피어오르고 있음을 미처 알지 못했다. 본능적으로 자기 감정에 충실하고 솔직한 친구를 찾아내 어설프게나마 그 애를 흉내 내며 눅눅한 마음에 햇볕을 쬐고 있음도 알지 못했다.      p 72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솔직한 자신으로 살지 못하고 있는 소희는 익명 뒤에 숨어서 오래간만에 자유를 느꼈다.                      p 91

 

엄마가 날 왜 이 집에 데리고 왔는지 모르겠어요

아저씨보다 엄마가 새엉마 같아요

아니, 나는 이 집에 입양된 아이 같아요

 

엄마와 있으면 더 다정한 말투 관심 특별한 애정 같은 것들을 끊임없이 바라게 됐고 소희의 기대에 비해 엄마가 주는 것들은 언제나 성에 차지 않았다. 그 때문에 엄마와 함께 있으면 끊임없이 감정을 소모하게 되고 그만큼 상처받았다. 아저씨한테는 바라는 게 없어서 편한 건지도 몰랐다.                                    p109

 

 

..................

그러던 중 소희가 부모 없이 작은 집에 얹혀살며 무료 급식을 먹는 아이란 사실이 알려졌다. 소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영후를 향해 조금씩 열리던 마음의 문을 닫은 일이었다. 그리고 그 기억마저 지워버렸다. 까맣게 잊고 있던 일이 빼빼로 상자의 포장을 벗기는 순간 기억난 것이다.

앞으로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제 소희는 부모 없는 아이도 무료 급식을 먹는 아이도 아니니까 말이다.                       p 140

 

 

 '우리 애들은 그런 짓 안해'

가슴에 박혔던 말의 파편이 소희의 가슴을 조각냈다. 창 끝처럼 뾰족하고 날카로워진 그 조각들이 입을 열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와 엄마에게로 날아갈 것 같았다. 소희는 안간힘을 써서 입을 막았다. 입만이 아니라 엄마로 향하던 온갖 감정이 담긴 마음가지도 막았다. 소희는 더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엄마는 자신의 말이 소희에게 어떤 반향을 일으켰는지조차 까맣게 모르는 듯 했다.

                                            p156

 

엄마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어쩌나 겁나요

나 때문에 고생한 엄마에게 뭐가 남을까 두려워요

난 엄마가 자식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엄마집으로 온 뒤 소희는 물질적으로 아무것도 궁한 게 없었다. 돈 때문에 마음 졸여 본 적도 없고 휴대폰 요금 많이 나올까봐 걱정해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게 고맙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소희는 엄마가 아저씨 돈으로 모든 걸 해주는 거면서도 자신에게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있다고 여기는 게 싫었다. 더 나아가 소희는 엄마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아기였던 자신과 맞바꿔 얻은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p165

 

나를 이렇게 만든 건 엄마야 나를 엄마의 아이들 밖으로 밀어낸 건 엄마라구, 그러니까 엄마가 바라지 않는 행동을 해도 이건 모두 엄마 탓이야.

거울 속의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희는 문득 그동안 자청한거라고 여겼던 모범생 역할이 실은 보이지 않은 강요에 의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 없이 할머니와 사는 환경이 할머니로부터도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동정이나 비난이 죽기보다 싫었던 자존심이 모범생 노릇을 할 때나 따뜻ㄷ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어른들이..... 보이지 않는 강요는 잠깐 동안 생각해도 줄줄이 떠오를 만큼 많았다.

소희는 자신에 대한 연민이 울컥 솟구치는 것을 지그시 눌렀다.이제 상관없었다. 강요에 의해 억지로 입고 있었던 모범생 옷은 조금 전 화장실에서 벗어 버렸다.

 

                                                    p 180

 

소희는 갑자기 투명한 대형 풍선에 갇혀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상상인데도 실제로 날아오른 듯 속이 울렁거렸다. 풍선 안에는 공기 대신 소희가 그동안 말하고 행동했던 거짓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어느 순간 거짓말의 부피를 이기지 못한 풍선이 터지고 자신은 바닥에 내동댕이쳐질지 몰랐다. 끔찍했다. 소희는 허겁지겁 자신을 아이들 틈으로 밀어 넣은 뒤 더 많이 떠들고 더 많이 웃었다.

 

                                                      p 195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주려면 그 삶이 필요로 할 때 주어야 하는 법이다.

                                                                         p 202

 

 

아뇨,  이런 애 아니었어요 거짓말 같은 건 해 본 적도 없고 누구한테나 칭찬받는 모범생이었어요. 그런데 애들은 내가 불쌍한 고아주제에 모범생인게 재수가 없었나 봐요. 전학 와서 까지 아이들한테 그런 취급 받는 거 싫었어요. 고맙게도 엄마가 그럴 듯하게 포장해 줬어요, 비싼 옷과 학용품 아침마다 데려다 주는 자가용 같은 것들료요 성도 바꿔 줬구요. 그러다 보니 내가 어쩔 수 없이 겉포장에 걸맞은 거짓망르 해야 했어요, 그게 내 잘못이예요? 애들한테 시골에서 할머니랑 살다가 작은 집에 얹혀 살다가 지금은 재혼한 엄마 집에서 살고 있다고 내가 가진 것들은 다 나와 상관 없는 거라고 솔직하게 이야기 했어야 해요?

 

난 엄마하고 이 집 식구들에게도 칭찬 받는 모범생이 되고 잇었어요 그런데 엄마가 날 봐준 적 있어요? 엄만 늘 날 눈치 보고 주눅 들게 만들었어요. 아기 때 팽개쳐 놓았다가 이제 겨우 데려와 놓구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이럴 거면 왜 데려 왔어요/

 

 

사람 사는 일도 그런 거 아닌가 싶다.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떨어져 산 세월이 얼만데 그렇게 금방 그 시간들을 뛰어 넘을 수 있겠니? 휴대폰 약정 기간처럼 너와 네 엄마 그리고 네 동생들도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채워야 하는 시간이 필요한 거같아.

 

그럼 너도  여긴 우리 집인데 어딜 나가냐고 되받아 쳐 그때 그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다 쏟아 놓고 꺼내 놔. 그동안은 일찍 철든 게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했는데 이제보니 아닌 것 같어 애들이 부모 속 썩이고 반항하고 형제들하고 싸우는 시간도 다 약정 시간에 있는 거야. 너희 때는 그게 더 웅ㄹ리는 거고 당연한 거야. 그러니까 앞으로  하고 싶은 거 갖고 싶은 거 있으면 참지 말고 네 엄마에게 말해. 응석도 부리고 떼도 쓰고... 동생들이 못되게 굴면 화도 내고 야단도 치고 그래. 눈치 보지 말고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러면 네 엄마나 새아빠가 널 미워하고 내쫒을 거 같지? 새 아빠는 몰라도 네 엄마는 못그래 자식이 속썩이고 대들 땐 미워죽겠다가도 돌아서는 순간 보고싶고 그리워지는 게 엄마 마음이거든 그래서 만일 쫒겨나면그땐 고모 집으로 와. 그래도 네 잘못이 아니야. 그 집에 들어가기 전에 이런 말을 해줬어야 했는데  무조건 너한테만 잘하라고 한 게 잘못이었어. 더 오래 산 어른들이 이해하고 받아 줘야지 어린 너한테 그 짐을 떠맡으라고 하는 게 아니었어.

 

                                                       p 227-228

 

그 동안 소희는 자신의 일이면서도 모르고 있는 게 너무 많았다. 두려워서였을 것이다. 어른들의 결정에 의문을 품고 질문을 하는 것이 그들을 귀찮게 하고 불편하게 만들까봐 그러다 마음이나 버림을 받을 까 겁이 나서였을 것이다.        p 228

 

 

잘못 꿴  첫 단추를 바로 잡으려면 모두 풀어 다시 잠가야 하는 법이다. 소희는 잘못 꿴 단추 때문에거짓말에 거짓말을 보태야 했던 일을 계속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p 294

 

 

엄마집에 오기전에 소희가 가진 얼굴은 의연하고 꿋꿋한 소녀의 모습이다,

할머니와 살 때는 보여지는 얼굴과 원래의 얼굴에 큰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남들에게 있는 부모가 없지만 할머니만으로도 충분하고 바우와 미르같은 마음을 나누는 친구 그리고 자기를 잘 아는 동네 사람이 있었다.

그땐 착하다, 의젓하다 어른스럽다는 말들의 밀어주는 힘으로 버티고 견디였다

그리고 고모집으로 작은 집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소희는 의연함과 아무렇지 않음 견뎌냄을 자기 얼굴로 삼았다.  도시에서 삶에서 소희는 남들과 다름이 확연이 드러난다,

무료급식을 먹는 아이 부모 없이 작은 집에 얹혀사는 아이

남들의 시선을 받으며 더 아무렇지 않게 어른스럽고 공부 잘하고  일도 잘 거들고 어떤 상황에도 자존심이 다칠 일은 미리 스스로 차단하면서 소희는 그것에 제 본모습이라고 믿었다,

어른들에게 잘 보이는 일은 좋은  성적을 받고 손가는 일 없이 알아서 제 앞가림을 잘하고 말하기 전에 나서서 도웅이 되는 것 그러면서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을 것.

그리고 엄마집으로 옮겨가면서  거기에 감사한 마음 그리고 어떤 어두운 과거도 없는 행복하고 부러울 것 없는 아이라는  모습을 가진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어린 나이라도 나름의 사회적 얼굴 즉 페르소나를 가질 수 밖에 없다,.

내 마음대로 하면 안된다는 걸 알아가는 순간, 즉 철이 드는 순간 내 멋대로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서 착하고 말 잘듣는 얼굴을 가져야 하는 걸 알게 된다. 물론 어리면 본모습이 불쑥 나오고 페르소나나 민얼굴이나 다를게 없지만 점점 사회적 영역이 넓어지면서 다양한 얼굴을 갖는 것이 사회적 예의나 질서라는 걸 안다,

소희는 그것을  일찍 알게 되고 그리고 누구보다 타인에게 많이 맞추는 얼굴을 가져 버렸다,.

새 가족과는 좋은 딸 좋은 누나가 되어야 하고 학교에서는 과거는 싹 지우고  처음부터 부자이고 사랑받은 아이로 행동해야헸다. 그러나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늘 방긋거리고 괜찮다는 얼굴로  내가 아닌 타인에게 맞추고 그들이 바라보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불쑥 불쑥 올라오는 달밭골의 기억은 내리 눌러가며  진우에게 들은 말을 바탕으로 정보를 모르고 미리 연습하며 자기 과거를 만들고 그렇게 연기한다.

소희는 또 내쳐지고 싶지 않고 아이들이 불쌍하게 보는 것이 싫다.

그냥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보다 그들이 봐주는 모습에 내가 맞추겠다고 마음 먹는다.

그래도 자꾸 차올라 오는 자기 모습을 그림자로 깊이 눌러버리지만 그것들이 어쩔 수 없이 터져 나올때는 익명속으로 숨어서 자기를 드러낸다. 하늘 말나리라는 닉네임으로 디졸브에게 보여주는 마음은 소희의 민낯이고 솔직한 속내다. 그렇게 풀어버리고 살지만 결국은 그 응어리는 터져나온다. 

가장 쉬운거 같으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은 자기를 마주보는 일이다,

나의 감정 나의 욕망이 무엇인지 들여다 보는 일이다,

나를 모르면서 나 아닌 누군가를 이해할 수는 없다.

나의 감정과 욕망을 알고 그것의 근원을 알아가는 것 그건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소희는  그걸 몰랐다 어려서 몰랐고 그래야 하는 걸 몰라서 몰랐고 너무 오래 눌러서 몰랐다,

그래도 너무 늦지 않게 엄마와 터지고 사건을 겪으며 소희는 스스로를 들여다 보는 법을 알았다.

내가 힘들었구나  내가 무섭고 불안했구나를 마주하면서 소희는 한걸음 다가간다,

친구에게 본 모습을 고백하고 자기의 본 모습을 알아버린 이를 친구로 받아들이고 맞지 않은 가면 뒤에서 어설프고 짜내며 하던 연기를 그만두면서 소희는 이제 성장을 시작한다,

스스로 정지시켜 버린 기간을 풀어버리고 그간 겪어야 할 갈등과 즐거움 등등의 기본 약정기간을 즐기기로 한다. 늦었지만 더 늦지 않아 다행이고 모르고 넘기지 않아 더 다행이다.

 

착한 아이는 더 오래 깊이 들여다 보아야 할 아이인지 모른다,

속썩이고  말을 듣지 않은 아이가 오히려 자기 욕망과 감정에 솔직하고 잘 알고 있어서 다행인 아이다, 착하고 의젓한 아이 나이에 비해 조숙한 아이들은  자기를 들여다 보지 못한 그래서 제 감정과 욕망을 누르고 있는 아이일수도 있다. 그 아이에게 욕망해도 괜찮다고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유치하고 나쁜 짓이 아니라고 말해야하는 건 어른의 몫이다,

그리고 어른도 때때로 자기 감정과 욕망을 알아야 하고 드러낼 때도 있는 거라고 말해 줄 줄 알아야 한다. 타인의 솔직한 모습을 이해하는 것 나를 드러내는 것에 예의를 가질 줄 아는 것 그건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규칙인지 모르겠다,

 

이제 소희가 더 이상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소희도 나이가 먹으면 또 다른 표정을 가질 수 있겠지만 드러난 표정뒤에 숨은 자기의 원래 모습을 알고만 있다면 괜찮을 거라 믿는다.

나를 아는 건 참 쉬운 거 같으면서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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