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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창문을 향해 몸을 기울이자 겨울밤의 침묵이 들려왔다. 섬세하고 복잡하며 조직이 성긴 눈이라는 존재에 흡수된 소리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 하얀 풍경 위에서 움직이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 죽음같은 풍경이 그를 잡아 당기고 그의 의식을 빨아들이는 것같았다. 공기중에 소리를 끌어당겨 차갑고 하얗고 부드러운 눈 밑에 묻어버릴 때처럼, 그는 자신이 그 하얀 풍경을 향해 끌려가는 것을 느꼈다. 눈 앞에 한없이 펼쳐진 하얀 풍경은 어둠의 일부가 되어 반짝였다. 그것은 높이도 깊이도 가늠할 수 없는 구름 한점 없이 맑은 하늘의 일부였다. 순간적응로 그는 창가에 꼼짝도 않고 앉아 있는 몸에서 자신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그러니까 그 하얗기만 한 풍경과 hvdms 기둥들과 밤과 저 멀리의 별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작고 멀어 보였다. 마치 그것들이 무를 향해 점처 졸아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등 뒤에서 라디에이터가 쩡 하는 소리를 냈다. 그가 몸을 움직이자 풍경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는 이상할 정도로 내키지 않은 안도감을 느끼며 다시 책상위에 불을 켰다. 그리고 책 한권가 눈문 몇권을 챙겨서 연구실을 나가 어두운 복도를 걸었다. 제시 홀 뒤편의 널찍한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간 그는 집까지 천천히 걸었다. 마른 눈 속에 발을 디딜 때마다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억눌린 듯 커다랗게 울리는 것을 의식하면서   p 253

 

나이 마흔셋에 월리엄 스토너는 다른 사람들이 훨씬 더 어린 나이에 이미 배운 것을 배웠다. 첫 사랑이 곧 마지막 사랑은 아니며 사랑은 종착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두 사람 모두 수줍어하면서 천천히 조심스럽게 서로를 알아갔다.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기도 하고 서로에게 손을 내밀었다가 물러나기도했다. 두 사람 모두 상대방에게 억지로 자신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두 사람을 보호해주던 과묵함이라는 막이 한층 씩 떨어져 나가서 마침내  두사람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지극히 수줍어하면서도 서로에게 무방비하게 마음을 열고 함께 있을 때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해지는 관계가 되었다.

                                                         p 272 

 

하지만 그는 초월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앞으로 영원히 초월하지 못할 것이다. 무감각 무심함 초연함 밑에 그것이 아직도 남아있었다. 강렬하고 꾸준하게 옛날부터 항상 그곳에 있었다. 젊었을 때는 잘 생각해보지 않고 거리낌없이 그 열정을 주었다. 아처 슬론이 자신에게 보여준 지식의 세게에 열정을 주었다. 그게 몇 년 전이더라?  어리석고 맹목적이던 연애시절과 신혼시절에는 이디스에게 그 열정을 주었다. 그리고 캐서린에게도 주었다. 그때까지 한 번도 열정을 주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그는 방식이 조금 기묘하기는 했어도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열정을 주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을 때 가장 완전히 열정을 바친 것 같다. 그것은 정신의 열정도 마음의 열정도 아니었다. 그 두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힘이었다. 그 두가지가 사랑읙 ㅜ체적인 알맹이인 것처럼 상대가 여성이든 시든 그 열정이 하는 말을 간단했다. 봐! 나는 살아있어.             p353

 

넌 무엇을 기대했나?

 

 

책을 덮으며 생각한다.

어떤 팟캐스트에서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꼭 읽어야 겠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이 책의 주인공이 나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도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주지도 않고 안으로 안으로 침잠하는 주인공의 무던하고 안온한 그래서 조금 지루한 일생이 내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읽으며 나는 누군가를 생각했다. 책으로 빠지고 책으로 도망가고 그리고 누구의 말이든 듣고 흘리고 견디는 삶이 누군가와도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보웬의 가족치료에 대해 강의를 들었다.

가족 세대 전수에 대해 들으며 그 누군가가 가진 고독과 무심함과 어쩔 줄 몰라 묵묵히 견디던 유전자가 내개로 전수되었다는 생각을 했고 그리고 내 속에 있던 그 유전자가 또 누군가에게 전수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순간 소름이 돋았다,

 

누구나 스토너다,

책 뒷편에 씌여진 그 말은 맞다,

읽는 사람은 누구나 나를 그리고 내가 아는 누군가를 스토너에 넣어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일을 고지식하게 처리고 묵묵하게 견뎌내는 사람

책속으로 들어가고 책속에서 위안을 얻는 사람

현실생활에는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사람

자기를 위해 변명할 줄 모르고 남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할 줄도 모르고 때에 따라 처세를 부리고 유들유들하게 넘어갈줄도 모르는 꽉 막힌 사람

그저 잘하는 것은 침묵하고 견디고 또 견디는 사람

사람보다 책이 더 편한 사람

그가 바로 스토너이고 바로 나이고 바로 또 누군가이다,

그의 일생을 읽으면서 문득 생각했다,

그는 소년에서 바로 노년으로 건너뛴 사람이구나

한번도 뫈전한 성인이었던 시절은 없었구나

성인이라는 것이 어떠해야한다는 규정은 제각각이겠지만 사회를 알고 적당히 맞출 줄 아는 여유를 가진 그레서 모서리가 많이 깍이고 둥글어진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볼때 그는 소년에서 그냥 노년이 되어버린 사람이다.

그의 견딤은 선한 행위만은 아니었다,

이디스가, 대학의 동료가 그를 무시하고 모욕을 주었다는 것을 알아도 그냥 견디는 그의 침묵은 또 다시 그들에게는 공격으로 느껴졌다. 나를 무시하는구나 나를 얕잡아보는 구나 하고 충분히 느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는 보편적으로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한 사람이다,

동시에 누군가의 보편적인 삶이 이렇게 숭고하게 느껴질 수도 있구나 하는 걸 스토너를 통해 보았다.

 

그는 선하며 동시에 악하다.

본인의 적극적인 의사가 개입되지 않았다지만 우직하고 원칙적인 그의 고집과 무던함 그리고 어떤 저항도 반항도 없이 견디는 그 단단한 벽같은 성격이 누군가에게는 고통일 것이다,

한때 내가 아는 누군가를  이렇게 묘사한 이가 있었다,

" 너무 잘나서  내가 하는 수준낮은 말에는 어떤 대꾸도 안하더라. 너는 떠들어라 나는 듣지 않겠 다 딱  사람무시하는 태도다. 어떻게 아냐고? 꼭 말을 해야 아니? 사람 말에 대꾸도 안하고 들리지도 않은 것처럼 입을 딱 닫고 있으면 그걸로 무시하는게 느껴지지 내가 바보도 아니고 그것도 모를까.

 난 세상에서 말안하는 사람이 제일 무섭더라. 속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을 먹고 있는지 어떻게 알겠니? 너도 딱 그 사람 닮아서 말안하고 다 알면서 모른 척하고 못들은 척하고 가만있는거 그거 얼마나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줄 아니? 잘났다 잘났어

난 잘난 것들 다 지긋지긋하다..."

어쩌며 스토너에게 이디스가 퍼붓고 싶은 진짜 마음은 이게 아니었을까?

그러나 스토너의 입장에서는 어떤 말을 해야하고 어떤 행동으로 반응을 해야할지 몰랐던 것 뿐이다,. 아주 단순한 그로서 모르는 건 할 수 없는 일이다,

때때로 모르는 걸 아는 척 할 줄 모르는 사람도 있다,

유감스럽게도 모른다는 걸 들키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오해를 받는다

견디고 있음이 오만하고 냉정한 태도라고 오해받는다.

수줍고 어색함이  모질고 무심하다고 오해받는다.

변명을 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그럴지도 모른다는 깊은 고민속에서 아직 답을 찾지 못했기때문이다. 스토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몰랐던 것은 그런 자기속으로 파고드는 사고와 통찰이 누군가에게는 의사소통을 거부당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고 무심하고 차가운 사람으로 여겨저 상처가 된다는 것이다.

 

그의 삶은 평범하고 클라이막스가 없고 일상의 파도가 지극히 잔잔하다. 격정을 느끼지도 않은 밋밋한 삶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성공한 삶이다 실패한 삶이다 라는 규정은 살아온 자신과는 하등 상관없는 누군가의 타인이 나중에 규졍내리는 것일 뿐 삶을 살아온 본인에게는 어떤 의미도 없는 짓이란 생각이 든다,

누구도 스토너의 삶에 대해 뭐라고 할 수 없다,

그저 무난했다고도 할 것이고  조교수를 마감했으니 학자로서 실패라고 할 수도 있고 잘 풀리지 않은 가족때문에 힘들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삶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스토너 뿐이다.

결국 나의 삶에 대해 만족하거나 불만을 갖거나 하는 건 타인이 아니라 니일 수 밖에 없다.

 

 

스토너를 타자를 놓고 보면서 그는  주변 사람에게 어떤 사람이었을까 궁금해진다,

가족에게 스토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책에서는 이니스의 악행들이 나오지만 어쩌면 그녀 입장에서는 하고 싶은 말이 따로 있지 않았을까? 싸움을 걸고 말을 해도 침묵하고 견디는 스토너는 거대하고 이길 수 없는 대상이 아니었을까?

그레이스에게 아버지 스토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어릴 적 그레이스에게 보여준 다정하고 조용한 애정표현은 그녀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겠지만 이후 무조건 지켜보고 침묵하기만 한 아버지 스토너는 그레이스 입장에게 들들볶아대는 엄마보다 더 두렵고 원망스러운 존재가 아니었을까?

사람은 누구나 사회적인 얼굴을 가진다. 융이 말한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다,

내면의 그림자를 가려줄 페르소나는 위선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그것을 쓴다는 것은 내가 사회에 잘 적응하고 맞추겠다는 의미일 수도 있는데 스토너는 전혀 그것을 쓰지 않은 인물처럼 보인다,

두가지 얼굴을 가지는 것을 전혀 알지못하는 사람처럼 언제나 같은 표정 같은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상대를 당황하게 만드는 것이다, 자기의 완전한 모습을 알지도 못하고 그걸 감추지도 못하는 것을 보면 그가 성인기를 제대로 살아내지 못했다는 걸 다시 깨닫는다. '

결국 그는 소년에서 그냥 노년으로 뛰어버린  그래서 사람들의 세상에서 서성거리기만 했던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 서성임이 고독했을 것이고 그러다 익숙했을 것이고 그리고 이후 잊혀졌을 것이다,

그는 스토너이고 그리고 내가 아는 누군가이고 그리고 나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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