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박사는 누구인가?
이기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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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저마다 이야기 속에 한가지씩 여백을 두고 그 여백을 채우려 다른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 법인데. 그게 이 세상 모든 이야기들이 태어나는 자리인데 그때의 나는 그것을 미쳐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모부만 해도 그렇다. 내가 고모부에 대해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것은 아마 그 부분이 내겐 여백과도 같은 부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 같은 것.   p 85   밀수록 다시 가까워지는.

 

 

그래서 판결문 속 문장들을 모두 그런 식으로만 채웠던 것일까? 형용사 하나없이 시간대별로 주어와 목적어와 술어로만 나열한 그 문장들은 오로지 입증 가능한 사실들로만, 누군가가 술을 마시게 하고 또 누군가 그 술을 마시고 , 또 누군가 그 술때문에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는 결론들을 향해서만, 무정하게 내달리고 있었다. 나는 그 문장들이 답답했고 또 한편 불편했따. 내가 답답했던 이유는. 그 안에는 p가 그 즈음 겪었던 실연과 그로 인해 한글자도 쓰지 못하고 지낼 수 밖에 없었던 나날들과 치기와 분노와 우울의 기록들이 모두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들은 모두 입증 불가능한 셰계이니까, 법의 이름아래 고려되지 않고 모두 배제된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엄연한 사실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답답했다. 내가 불편했던 이유는 나 역시 그 문장들과 똑같은 태도를 지난 몇개월동안 취했다는 사실을 그제야 똑똑히 정면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입증 불가능한 세꼐를 빤히 알고 있었으면서도 침묵하는 쪽을 택하고 말았다. 누군가 죽었으니까 그 어떤 무게도 그것보다 더 무겁지 않다는 생각을 분명 하긴 했지만 좀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그 누구에게도 비난받고 싶지 않았다. 눈에 부이지 않는 세게로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만큼의 용기가 내겐 없었던 것이었다. 어쨌던 죽은 박수희 역시 내 제자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그것만 입증 가능한 새계였으니까

                    p193  탄원의 문장

 

나는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짐작과 진실 사이엔 그리 큰 강물이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짐작이란 어쩌면 진실을 마주 보기 두려워서 그게 무서워서 바라보는 그림자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또한 갖게 되었다. 그러니 이 이야기의 운명 역시 어쩌면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저 모르는 척 다른 이야기를 하는 마음 들 강의 그림자를 바라보면서 하는 짐작들. 나는 지금 그것을 하려고 하고 있다. 이제야 비로소 중요한 건 두루마리 휴지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p 263   화라지송침

 

 

어쩌면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참아내고 있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지금 참아내고 있는 그 무엇으로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증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독을 참아내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죄의식을 찿ㅁ아내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거절을 참아내는 사람과 망상을 참아내는 사람들 당연한 말이지만 그 사람들 모두가 같을 수는 없다. 거기에 더해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참아내기도 한다. 누가 어떤 괴물 같은 짓을 하더라도 그것을 참아내고 있는가 누가 그것을 견뎌내지 못하는가 그것이 우리의 현재를 말해주는 숨겨진 또 하나의 눈금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나나 아내나 우린 뚤 다 기종씨를 참아내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물론 나의 그것과 아내의 그것이 다를 수도 있ㄷ고 나의 짐작과 아내의 진실이 같을 순 없을지라도, 기종씨를 외면했다는 점에서 아내나 나는 같은 사람이었다. ..........................아내나 나나 우리는 서로가 서로르 ㄹ참아내는 선에서 그렇게 적당히 타혐하면서 지내는 사람들인지도 몰랐다. 그게 조금 쓸쓸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게 또 우리였으니까.    p 323

 

 

고백하자면 살아오면서 조금 비겁하게 눈감고 모른 척 지나온 것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뭐 대단한 정의나 도덕같은 게 아니더라도

내 옆에 있는 가까운 사람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공감하려기 보다 귀찮고 무언가 복잡한 일에 얽매일까 두려워서 그저 건성건성 아는 척 하고 넘아가는 일들이 많았다.

아이에게도 나는 눈맞추며 이야기하기보다 한귀로 흘려들으면서 엄마는 다 알아.... 이해해.. 사랑해... 그렇게 앵무새처럼 되뇌인적도 적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제 몫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고 그 제몫이라는 건 누가 도와주거나 해서 줄어드는 건 아니라는 이기적이고 냉소적인 생각이 속이 또아리를 틀고 있었던거 같기도 하다.

그냥 안듣고 말면 그만이니까

그러다 보니 무언가를 이해하는 것도 그저 겉핡기에 지나지 않은 적도 많았을 것이다.

누군가 아파하면 그래 그랬구나.... 하고 추임새를 넣으면서도 내 한쪽에서는 너만 그런거 아니거든.. 누구나 어려운 일을 겪는 법이거든.... 무게의 무겁고 가벼움이 문제가 아니라 그게 나한테 닥쳐진 상황이라는 건 누구에게도 똑같은 거거든.. 하는 얄미운 소리만 속으로 퍼부었다.

 

어쩌면 내가 그렇게 얄밉게 굴지 않고 이타적이고 누군가를 이해하고 공감하려고 노력하는 아주 천사표인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상대를 모두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타인이 아닌 이상 그의 말을 행동을 고개 끄덕이며 진심으로 그럴 수 밖에 없겠구나 하고 생각했을까.. 설령 그랬다고 하더라도 그건 결국 내 입장에서 문제를 다시 분해하고 재조립해서 이해한 것은 아니었을까...

 

사실 즐거우려고,,, 키득거리려고 소설을 들었는데 한편 한편 읽으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첫이야기 "행정동"은 그래도 나았다.

내가 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보이는 것 표면에 드러나는  이면에 많은 것들이 숨어있다는 것을 고개를 끄덕이면서공감했다.

 

"밀수록 가까워지는" 에서는 마음이 좀 그랬다. 그 삼촌의 마음이 무엇인자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화자인 조카만큼의 먹먹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한 사람을 모두 안다는 건 본인도 불가능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삼촌도 자기를 제데로 알았을까?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감정의 격정에 휘둘리면서 갈등했을 것이고 본문에 있는 문구처럼 삶의 공백은 스스로도 채우지 못한 빈칸으로 남겨질 때가 많은 법이니까.

 

"탄원의  문장" 에서는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알고 있는 누군가는 그 사람이 맞는가? 나는 어쩌면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보고 나의 기호에 따라 상대를 판단하고 오해하고  엉뚱한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나의 정의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기도 한다는 것... 나는 그 단편에서 최의 입장보다도 그 최가 울타리 뒤에서 들었던 노부부의 대화에서 그만 탁.. 무언가가 무너져 버렸다. 삶의 이면이라는 것 쉽게 남에게 보여지지 않는 그 세세한 빈 부분은 누가 감히 판단을 하고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

 

"화라지송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보는 것 내가 견디는 것 내가 참아내는 것들.. 그것이 전부인 건 아니다.

마지막 화자의 상상인지 현실인지 과거의 모습에서 컥... 무언가 떨어져 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책을 다 읽고 드는 생각은 죄책감이었다.

내가 의도를 했던 하지 않았던.. 혹은 내가 그저 제 3자로서의 입장일지라도 같은 인간으로 느끼게 되는 죄책감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미안한것들은 어쩌면 내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맥베드에서 나왔었나? 무지야 말로 가장 큰 죄가 아닐까 하는 것

작중 인물들은 상대를 배려하고 위해주려고 노력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오히려 상대에게 상처가 되거나 또다른 누군가를 소외시키는 일을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그저 어느 순간 눈을 감아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잊어버리면 그만이지만 이 찌질한 인물들은 어쩌지도 못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이다.

 

비겁하고 비굴한 나도 그랬다.

아이에게 혹은 친구에게 이웃에게

이게 아니고 저거라고 뭔가 무모하게 혹은 단호하게 내 주장을 내보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남의 입장을 전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어정쩡하니 맞장구만 치고 그래그래 니가 힘들었겠구나 하고 말하지만

돌아서면 찝찝해지는 기분

아.. 이게 아닌데.. 저 사람이 모든게 옳은 건 아니잖아.

그게 옳은 건 아닌데 왜 난 그 말을 못했을까...

하는 죄책감 혹은 후회로 똘똘 뭉쳐서 나만 괴롭힌다.

그리고 집에 웅크리고 앉아서 다시 그 일을 복기하면서 내가 어떤 지점에서 어떻게 행동했떠라면 어땠을까 하는... 하등 도움이 되지도 않고  무가치한 일에 매달리고 있다.

그렇게 모든 일을 되돌아보면서 느끼는 회한에서 비겁한 사람은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하고

또다른 죄책감을 얻어오는 일을 반복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주인공들이 남같지 않아서... 그래서 괴로웠다.

허허 거리고 웃거나 한숨쉬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니가 바로 이렇잖아.. 하고 확 내질러버릴까

전전긍긍하게 되었다.

 

십수년전 일을 새삼 여기에 다시 꺼내든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내 안에서 아직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해되지 않고 알 수 없는 일들을 잉해하기 위해선 우선 그것들에 대해서 차근차근 이야기 해야한다. 그것이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윤리이다. 

 

윤리라고 믿고 있는 한 나는 계속 후회되는 부분을 죄의식을 느끼는 부분을 복기할 것이다.

(하지만 무언가 결론을 내리거나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 중요한 건 아닐것이다. 중요한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깊이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내겐 소소한 위안이 되기도 하니까..)

 

 

 

참고....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라는 책과 함께 나의 올해의 책에 들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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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내 모든 것 안녕, 내 모든 것
정이현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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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은 지독히도 더웠다는 기억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그때 나는 백수였다. 다니더 직장도 그만두고 글을 쓰겠다고 혼자 서울에서 동동거리던 시절이었다. 그나마 여유있는 부모님덕에 조금은 덜 찌질한 백수신세로 서울에서 버티고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 해 김일성이 죽었고 무지하게 더웠다.

뭔가 앞길은 보이지 않고 누군가 다른 이들은 다들 잘 사는 것 처럼 보였고 나는 그냥 덥기만 했다.

도서관에 있어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시 공부를 해서 취직을 해야할지 계속 글이라는 걸 써봐야하는 건지  차라리 여유가 있으니 뭔가 결정을 할 수 없는 게 아닐까하는 미친 생각까지 했던거 같다.

이렇게 더운 날씨라면 한번 미련하게 버텨볼까 하고.. 집에 있는 동안 선풍기도 켜지 않고 버텼던 시간들이었다. 등에서 땀이 흘러도 에어컨은 아예 없으니 말고 선풍기조차 켜지 않은 채 버틴 그 시간이 지금 내게 무엇을 가져다 주었을까

남들이 보기엔 잘난 부모덕에 여유있는 룸펜생활을 하는 팔자좋은 여자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지금 내가 돌아봐도 딱히 틀린 건 아니라고 인정하지만 그때 나는 참 막막하고 답답하고 그저 견디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시간이었다.

 

정이현의 소설을 보면서 그때가 생각났다.

소설속의 세미도 지혜도 준모도 그랬다. 뭐가 불만이니? 뭐가 모자르다는 거냐?

물론 그들 나름 가진 고통이 있고 무게가 있다.

보는 것마다 잊지못하고 기억해버리는 지혜는 머리가 터질 지경이고

뚜렛증후군의 준모는 스스로 소통을 차단해야했고

자의와 상관없이 할머니댁에 얹혀 살아야 하는 세미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처지를 털어놓지 못한다.

그렇게 세 사람은 스스로의 상처를 속으로 숨기고 세상과 소통을 하지 못하고 안으로  고름처럼 외로움이 차올라 가고 있었다. 누구보다 단짝이고 친한 사이였지만 그들의 대화는 그저 말장나이거나 농담이거나 혹은 남의 이야기이지 자신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세미가 가장 그러했던 거 처럼 보이지만 지혜나 준모도 마찬가지다.

함께 어울리고 서로의 상처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자기의 상처를 드러내는데는 셋 다 서툴렀다.

그건 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누구나 자기 상처를 드러내는 일이 서툴다.

약해보이지 말아야 하고 남에게 부담을 주지 말아야하고 당당하게 보이고 싶어서 어쩌면 배려에서 나온 행동일지라도 그건 자기에게 가장 아프다.

꽁꽁 싸매놓은 상처는 덧나는게 당연하니까.

결국 그들은 마지막 순간 단 하나의 비밀을 공유하지만 그것 조차 발설할 수 없는 그들만의 비밀이었을 뿐이다.

결국 그들은 헤어진다.

각각 길을 가면서 서로를 가끔 떠올리면서 그들은 각자의 상처를 들여다 볼 기회가 생겼을 것이다. 혼자만의 시간속에서 들여다 보는 상처들 이제 딱지가 않고 희미한 흉터가 되면 그땐 서로가 그리울 것이다. 그리고 연락을 하고 물을 것이다.

그동안 잘 지냈느냐고...

 

작가가 말했었다.

꺄르르 웃는 여학생들의 하얀 종아리가 그렇게 슬프게 보였다고..

작가의 마음을 완전하게 알지는 못하겠지마 나도 소녀들의 웃음이 슬퍼질때가 있다.

내 아이가 그 나이가 되어서 친구들이랑 무언가를 공유하고 수군거리고 꺄르르거리는 걸 보면 왠지 슬프다. 이 슬픔은 어쩌면 김애란의 소설들과도 닮은 곳이 있다.

결국은 자라서 이렇게 될것을..

정이현의 소년들도 소녀들도 결국은 자라서 그렇게 된다.

강남에 산다고 유복하다고  더 특이할 것들도 없다.

어쩌면 그 곳에서 더 치열하고 드러내지 못하고 서성였던 결론일 수도 있다.

 

소설속 세미의 할머니와 고모의 이야기도 좋았다.

어쩌면 풍족해 보이는 속에서 느끼는 결핍.. 난 이런 걸 원해... 라고 솔직할 수도 없고 드러낼 수도 없는 사람들이 가지는 결핍과 불안이 느껴지면서 많이 슬펐다.

절대적인 가난이라던가  불행이라던가 하는 것들이 살짝 비켜나간. 그래서 행복하고 모든 것이 충족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겪어내는 혼란은.. 어쩌면 예방접종없이 바로 덜컥 걸려버린 몹쓸 병처럼 더 아프고 혼란스럽다. (어쩌면 나 자신에 대한 구차한 변명인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매맞는 고모의 질기게 이어지는 결혼생활이나 덜컥 쓰러져 버린 할머니의 절망이 결코 가볍다고 할 수도 없다.

 

 

덧붙여...

한때 나는 소설가중에서  하성란이 가장 이쁘다고 생각했다.

이쁜 사람이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쓰고,, 게다가 언젠가 라디오에서 들었던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나서 혹은 재우고 나서야 비로소 글을 쓴다는 말에 참 질투가 났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비슷하게 살아가면서 글도 쓰는구나 하는 ...

그랬는데 정이현도 참 이쁘다.

깍쟁이같고 눈이 높아 결혼은 하지 않았을거 같은 얼굴에 이미 아이 엄마란다.

(난 왜 작가의 사생활에 더 관심을 가질까...)

요새는 이쁜 사람들이 글도 잘 쓰는구나..

어떤 어려움도 없이 살아온 사람처럼 보이는 얼굴로 비슷한 사람들이 가지는 결핍을 이야기하는 작가라... 어쪄면 공감을 많이 받기는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약간의 편견섞인 평가도 해보지만

그래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편의 하나인"삼풍'을 썼고 가장 현실적인 연애담이라고 할 수 있는 "연애의 기초를 썼다는데 점수를 주고 싶다.

이 작품은 그 둘에 비해선 내게서 순위가 많이 떨어지긴 한다.

 

어쩌면 이렇게 자란 소녀들이 삼풍과같은 경험을 하고 연애의 기초같은 연애실패를 겪으면서 성장하지 않을까...

다음 이야기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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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봤어 - 김려령 장편소설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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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령의 책을 읽고 드는 느낌은 그랬다.

종이에 쓰윽 베인 느낌..

앗 따끔해서 쳐다보면 눈에 보이지도 않는 가느다란 선으로 피가 베어나온다.

순식간이라 어... 하며 무심하게 들여다보면 조금씩 통증이 느껴진다.

강하게 실감할 수 없게 조금씩...

너무 가는 선이라 잊고 있다가 내버려두면 그 가는 선이 벌어지면서 아리고 쓰리다.

무심하다가 순간 느끼는 통증처럼  그녀의 작품들은 그냥 무심하게 책장을 훌훌 넘기게 한다.

키득거리고 아하 하고 한숨을 쉬면서 책장을 다 넘기고 나면 뭔가 아릿하게 통증이 남는다.

종이에 베인 상처처럼...

 

사실 그녀의 작품을 몇번 읽으면서 많이 아리까리 했다.

재미있다. 감동적이가 그리고 끝이 개운하게 끝난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그래서 어쩌라고... 세상이 이렇게 동화처럼 잘 마무리되는 건 아니잖아... 하는 반발심이 들기도 했다.  청소년 소설이니까 동화니까 뭔가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게 아닐까하는 의심이 들었다.

다문화 가정의 빈곤한 소년이야기나 (완득이) 왕따와 자살문제 (우아한 거짓말) 나름의 상처를 지닌 청소년들의 이야기 (가시고백) 그리고 공개입양된 소녀의 딜레마들(내마음에 해마가 산다) 쉬운 문제는 아니다.  콕 집어서 정말 문제시 될 소재를 흥미있게 긴장감을 늦추기 않고 풀어내는 능력은 정말 높이 사지만.. 그 결말이 이렇게 항상 무난할 수 있을까 하는 심통이 들었다.

심통 맞다. 안그러면 어쩌란 말이냐고 묻는다면 할말은 없으니까,...

암튼 그간 작품들이 콕 집어낼만한 단점은 없었고 나름 너무나 집중해서 읽었다지만 뭔가 자꾸 아쉬웠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청소년 문학이 아니라고 했다.

그녀의 또다른 모습을 보게 될거라고 했고 그녀의 문학의 새로운 집대성이 될거라고 광고를 했다.

어쨌든 믿는 작가니까 사서 본다.

몰입도는 여전하다. 치고 탁구게임처럼 지치지도 않고 치고 빠지는 대사도 여전하다.

다만 성인용답게 폭력이나 섹스표현의 수위가 높다보니 조금 이질감도 든다.

꽤 호감을 가진 연기력도 좋은 아역배우가 성인연기를 하는 걸 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모두가 좋다고 하니까. 좋을거라도 믿으며 책장을 덮는다.

뭔가 내가 모르는 좋은 점이 있을 거라고... 주인공에 깊이 파고 들어가서 썼고 이제 40대가 되면 사랑의 낭만이나 환상이 없을 만큼 이처럼 칙칙하고 무미건조하면서도 블랙홀에 빨려들듯 미친듯이 빠져드는 사랑이 있다는 것도 안다.

육체적인 문제가 저급하고 손가락질 받을 것도 아니고 가장 자신에게 충실하고 솔직한 표현일 수 있다는 것.. 간혹 그런 행위들이 위로가 되고 평안을 준다는 것도 안다.

 

몰라. 그냥 좋아 처음으로 내것이었으면 하는 사람을 만났다. 내가 가졌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 또 그렇게 나를 가졌으면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기까지 사십육년이 걸렸다.   P124

 

출판사와 작가들의 이야기를 엿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그런데... 이것도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하는 느낌이 떨쳐지지 않는다.

정수현이 죽고 나서 그가 죽은 저수지로 영재와 도하가 와서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부터는 너무 지루하고 불필요했다. 상여위에 거꾸로 앉아서 지휘할만큼 영특하고 기가 센 영재지만 모든 걸 알았다고 할때는 맥이 탁 풀렸다.'이건 아니잖아.

그냥 정수현의 행동에 당위성을 붙이지 않으면 그만 나쁜놈이 될까봐 전전긍긍하는 것 처럼 괜치 뭔가를 붙여서 더 도드라지고 문제처럼 보이게 하는 거였다.

이책을 다시 한번 더 읽으면 나도 또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을까

수현이나 영재

지금의 나는 그들이 전혀 공감이 되질 않는다.

도하정도는 매력적인 인물이고 어쩌면 수현의 아내를 주인공으로 또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도 가능하겠다 싶게 매력이 있긴 하지만 주인공은 조금 아니었다.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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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요리
하시모토 쓰무구 지음, 권남희 외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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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건 싫어하는 사람과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상대가 끔찍하고 재미없고 아무런 연고가 없는데 함께 마주하고 무언가를 먹어야 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속이 울렁거리고 꽉 막힌 느낌이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요리를 하고 음식을 맛봤던 기억은 설령 그 사람과 나주에 좋지 않는 기억으로 헤어졌더라도 따뜻하게 남아있다.

물론 그 사이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긴 하다.

 

내가 주부가 되고 아이가 생기면서 가지게 된 작은 소망하나가 그렇다.

나중에 내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어.. 날 기억할때 어떤 맛으로 기억되면 좋겠다.

비오는 날 먹었던 부침개나 질리도로 반찬으로 올라왔던 콩나물 무침

간혹 해줬던 호떡이나 달고나 같은 달큰한 것들도 좋다.

명절에 함께 부쳐낸 동그랑땡이나 생선전 동짓날 뻑뻑하게 끓여낸 목이 매이는 팥죽도 좋고

대보름날  물어 덜 우려내서 씁쓸한 맛이 한참이나 남은 나물들도 상관없다.

그냥 어떤 음식을 먹으면서 나를 기억하면 좋겠다는 것...

어쩌면 나도 내 엄마를 기억하는 게 다른 감각보다 미각에 많이 남아있는 거 같다.

튀김기도 없이 즉석에서 쉽게 해줬던 타래과는 지금 보면 은근히 할일이 많이 가는 음식이었고

급식이라는게 없던 그 시절 점심 저녁 도시락을 반찬을 바꿔가며 넣어준것도 지금 보면 대단한 일이다,. 도시락 반찬이 달랐고 아침 반찬이 다르다는게 대단한 일이라는 걸 그땐 몰랐다.

그렇게 어떤 음식이나 맛 앞에서 기억되는 누군가는 그래도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도 그런 행복한 사람이고 싶다.

 

이책에는 스물세편의 기억이 있고 맛이 있다.

작가가 남자라서인지 정성이 가득한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은 아니다.

대충 만들고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것. 간혹 편의점에서 산 도시락이나 자판기 커피도 나온다.

하지만 어떤 음식이든 그 걸 먹었을때 함께한 사람이나 그때의 상황 날씨같은 것들이 맛과 함께 떠오른다.

힘들때 끓여먹던 죽이나 따끈한 국같은거

지금은 헤어진 그가 가르쳐준 간단하고 맛있는 레시피

어려서 몰랐던 엄마의 고단함이 어느순간 몸살을 앓으면서 온몸으로 느껴질때 등줄기를 훓고 지나가는 서늘한 깨달음 같은것

울면서 먹었고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집어넣었던 그 음식들이 이제는 따뜻한 기억으로 스멀스멀 올라올때 그래도 그런 기억이 있어 난 참 행복했구나.. 내가 참 열심히 살았구나.. 그래도 후회없이 사랑했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다.

조금 쓸쓸하고 남몰래 눈물을 흘리게 되더라도 맛과 함께 떠오르는 기억은 참 좋은 거같다.

이야기가 단순하고 일상적이지만 그래서 좋았다.

특히 얼렁뚱땅 까르보나라편은 어딘가 모르게 신경숙의 작품을 닮아보였고

이런 아침 나이먹은 아들이 차려내는 떡국이야기는 따뜻하고 정겹다.

자판기의 달기만 한 커피가 어떨땐 위로가 되고 용기를 주기도 한건 일상을 살아보면 누구나 한번씩 경험했을 것이다. 달큰하고 따뜻한 컵을 감싸쥐고 있으면 그래.. 별거 아니잖아.. 살아보지 뭐.. 대책없는 용기도 생기는 법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해주는 정성이 들어간 소박한 음식들 그것을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은 무조건 고맙고 좋은 사람이라는 경험도 누구나 있을 것이다.

나는 나중에 내 아이들에게 혹은 내가 아는 사람에게 어떤 맛으로 기억될까

나랑 먹었던 어떤 음식이 기억에 남고 나를 기억하게 할 맛은 무엇일까 몹시 궁금하다.

설령 시큰하고 떫은 맛이라고 아... 하고 나를 기억할 맛이 있으면 좋겠다.

시간이 흐르면 그 맛도 추억이고 행복일 수 있으면 더 좋겠다.

 

더불어 이 책은 레서피가 무지 간단하다는 것.. 과정이 쉽다는 점에서도 매우 훌륭한 책이다.

쉬우면서도 따뜻한 음식... 괜찮다.

(의외로 일본음식들이 레서피가 쉬운게 많았다. 양념도 비슷해서 대충 갖춰놓으면 꽤 근사한 요리가 되기도 한다는 걸.. 또다시 알게 된다..)

요리책으로 하나 소장할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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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다는 건 나이만 먹는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어른일까 아닐까

 

밤하늘에 저렇게  많은 별이 있는데도 밤이 어두운 이유는 이 우주가 아직도 젊기때문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별빛은 아주 오래전에 그 별에서 출발한 빛이고

지금 품어져 나오는 빛은 아직 우리에게 닿지 않았다.

그래서 젊은 우주는 아직도 캄캄하다.

 

긴 터널을 지나면 밝은 빛이 나온다.

긴 터널은 그저 견디며 통과하기만 하는 곳이 아니다.

그곳에도 의미가 있고 성장이 있다.

내가 왜 긴 터널을 지나가야하는가. 어떻게 지나가야하는가

그리고 이 터널이 끝나는 곳에서 나는 무엇을 만나게 되는가

 

정훈이의 성장이라고만 보기엔 이야기가 너무 아름답다.

그 시절을 겪으면서 온몸으로 생각하고 부딪친 사람이 가지는 깊은 생각이 보여진다.

나의 슬픔은 너의 슬픔과 만나서 서로 위로가 되고 가족이 된다.

남의 마음을 읽어내고 내 감정을 전달할 줄 아는 능력은 그래서 아름답다.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위로를 받는다는 것이 살아가는 큰 의미가 된다.

 

사실 소심한 마음에 마지막에 희선씨가 잘못될까봐 마음을 졸였다.

죄책감과 상실감으로 다른 생각을 할까봐...

그러나 다행이다.

 

이 우주가 어두운 이유를 알게되었다.

그리고 내가 아직 젊은 우주속에 살고 있다는게 감사하다.

 

 

김연수 문장이 정말 아름답다.

사실... 별 기대 안했는데...

뭐랄까 감정에 빠지지 않으면서 감정을 건드리는 섬세함이 있다.

작가가 맞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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