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요리
하시모토 쓰무구 지음, 권남희 외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건 싫어하는 사람과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상대가 끔찍하고 재미없고 아무런 연고가 없는데 함께 마주하고 무언가를 먹어야 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속이 울렁거리고 꽉 막힌 느낌이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요리를 하고 음식을 맛봤던 기억은 설령 그 사람과 나주에 좋지 않는 기억으로 헤어졌더라도 따뜻하게 남아있다.

물론 그 사이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긴 하다.

 

내가 주부가 되고 아이가 생기면서 가지게 된 작은 소망하나가 그렇다.

나중에 내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어.. 날 기억할때 어떤 맛으로 기억되면 좋겠다.

비오는 날 먹었던 부침개나 질리도로 반찬으로 올라왔던 콩나물 무침

간혹 해줬던 호떡이나 달고나 같은 달큰한 것들도 좋다.

명절에 함께 부쳐낸 동그랑땡이나 생선전 동짓날 뻑뻑하게 끓여낸 목이 매이는 팥죽도 좋고

대보름날  물어 덜 우려내서 씁쓸한 맛이 한참이나 남은 나물들도 상관없다.

그냥 어떤 음식을 먹으면서 나를 기억하면 좋겠다는 것...

어쩌면 나도 내 엄마를 기억하는 게 다른 감각보다 미각에 많이 남아있는 거 같다.

튀김기도 없이 즉석에서 쉽게 해줬던 타래과는 지금 보면 은근히 할일이 많이 가는 음식이었고

급식이라는게 없던 그 시절 점심 저녁 도시락을 반찬을 바꿔가며 넣어준것도 지금 보면 대단한 일이다,. 도시락 반찬이 달랐고 아침 반찬이 다르다는게 대단한 일이라는 걸 그땐 몰랐다.

그렇게 어떤 음식이나 맛 앞에서 기억되는 누군가는 그래도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도 그런 행복한 사람이고 싶다.

 

이책에는 스물세편의 기억이 있고 맛이 있다.

작가가 남자라서인지 정성이 가득한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은 아니다.

대충 만들고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것. 간혹 편의점에서 산 도시락이나 자판기 커피도 나온다.

하지만 어떤 음식이든 그 걸 먹었을때 함께한 사람이나 그때의 상황 날씨같은 것들이 맛과 함께 떠오른다.

힘들때 끓여먹던 죽이나 따끈한 국같은거

지금은 헤어진 그가 가르쳐준 간단하고 맛있는 레시피

어려서 몰랐던 엄마의 고단함이 어느순간 몸살을 앓으면서 온몸으로 느껴질때 등줄기를 훓고 지나가는 서늘한 깨달음 같은것

울면서 먹었고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집어넣었던 그 음식들이 이제는 따뜻한 기억으로 스멀스멀 올라올때 그래도 그런 기억이 있어 난 참 행복했구나.. 내가 참 열심히 살았구나.. 그래도 후회없이 사랑했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다.

조금 쓸쓸하고 남몰래 눈물을 흘리게 되더라도 맛과 함께 떠오르는 기억은 참 좋은 거같다.

이야기가 단순하고 일상적이지만 그래서 좋았다.

특히 얼렁뚱땅 까르보나라편은 어딘가 모르게 신경숙의 작품을 닮아보였고

이런 아침 나이먹은 아들이 차려내는 떡국이야기는 따뜻하고 정겹다.

자판기의 달기만 한 커피가 어떨땐 위로가 되고 용기를 주기도 한건 일상을 살아보면 누구나 한번씩 경험했을 것이다. 달큰하고 따뜻한 컵을 감싸쥐고 있으면 그래.. 별거 아니잖아.. 살아보지 뭐.. 대책없는 용기도 생기는 법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해주는 정성이 들어간 소박한 음식들 그것을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은 무조건 고맙고 좋은 사람이라는 경험도 누구나 있을 것이다.

나는 나중에 내 아이들에게 혹은 내가 아는 사람에게 어떤 맛으로 기억될까

나랑 먹었던 어떤 음식이 기억에 남고 나를 기억하게 할 맛은 무엇일까 몹시 궁금하다.

설령 시큰하고 떫은 맛이라고 아... 하고 나를 기억할 맛이 있으면 좋겠다.

시간이 흐르면 그 맛도 추억이고 행복일 수 있으면 더 좋겠다.

 

더불어 이 책은 레서피가 무지 간단하다는 것.. 과정이 쉽다는 점에서도 매우 훌륭한 책이다.

쉬우면서도 따뜻한 음식... 괜찮다.

(의외로 일본음식들이 레서피가 쉬운게 많았다. 양념도 비슷해서 대충 갖춰놓으면 꽤 근사한 요리가 되기도 한다는 걸.. 또다시 알게 된다..)

요리책으로 하나 소장할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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