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박사는 누구인가?
이기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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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저마다 이야기 속에 한가지씩 여백을 두고 그 여백을 채우려 다른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 법인데. 그게 이 세상 모든 이야기들이 태어나는 자리인데 그때의 나는 그것을 미쳐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모부만 해도 그렇다. 내가 고모부에 대해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것은 아마 그 부분이 내겐 여백과도 같은 부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 같은 것.   p 85   밀수록 다시 가까워지는.

 

 

그래서 판결문 속 문장들을 모두 그런 식으로만 채웠던 것일까? 형용사 하나없이 시간대별로 주어와 목적어와 술어로만 나열한 그 문장들은 오로지 입증 가능한 사실들로만, 누군가가 술을 마시게 하고 또 누군가 그 술을 마시고 , 또 누군가 그 술때문에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는 결론들을 향해서만, 무정하게 내달리고 있었다. 나는 그 문장들이 답답했고 또 한편 불편했따. 내가 답답했던 이유는. 그 안에는 p가 그 즈음 겪었던 실연과 그로 인해 한글자도 쓰지 못하고 지낼 수 밖에 없었던 나날들과 치기와 분노와 우울의 기록들이 모두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들은 모두 입증 불가능한 셰계이니까, 법의 이름아래 고려되지 않고 모두 배제된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엄연한 사실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답답했다. 내가 불편했던 이유는 나 역시 그 문장들과 똑같은 태도를 지난 몇개월동안 취했다는 사실을 그제야 똑똑히 정면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입증 불가능한 세꼐를 빤히 알고 있었으면서도 침묵하는 쪽을 택하고 말았다. 누군가 죽었으니까 그 어떤 무게도 그것보다 더 무겁지 않다는 생각을 분명 하긴 했지만 좀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그 누구에게도 비난받고 싶지 않았다. 눈에 부이지 않는 세게로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만큼의 용기가 내겐 없었던 것이었다. 어쨌던 죽은 박수희 역시 내 제자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그것만 입증 가능한 새계였으니까

                    p193  탄원의 문장

 

나는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짐작과 진실 사이엔 그리 큰 강물이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짐작이란 어쩌면 진실을 마주 보기 두려워서 그게 무서워서 바라보는 그림자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또한 갖게 되었다. 그러니 이 이야기의 운명 역시 어쩌면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저 모르는 척 다른 이야기를 하는 마음 들 강의 그림자를 바라보면서 하는 짐작들. 나는 지금 그것을 하려고 하고 있다. 이제야 비로소 중요한 건 두루마리 휴지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p 263   화라지송침

 

 

어쩌면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참아내고 있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지금 참아내고 있는 그 무엇으로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증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독을 참아내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죄의식을 찿ㅁ아내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거절을 참아내는 사람과 망상을 참아내는 사람들 당연한 말이지만 그 사람들 모두가 같을 수는 없다. 거기에 더해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참아내기도 한다. 누가 어떤 괴물 같은 짓을 하더라도 그것을 참아내고 있는가 누가 그것을 견뎌내지 못하는가 그것이 우리의 현재를 말해주는 숨겨진 또 하나의 눈금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나나 아내나 우린 뚤 다 기종씨를 참아내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물론 나의 그것과 아내의 그것이 다를 수도 있ㄷ고 나의 짐작과 아내의 진실이 같을 순 없을지라도, 기종씨를 외면했다는 점에서 아내나 나는 같은 사람이었다. ..........................아내나 나나 우리는 서로가 서로르 ㄹ참아내는 선에서 그렇게 적당히 타혐하면서 지내는 사람들인지도 몰랐다. 그게 조금 쓸쓸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게 또 우리였으니까.    p 323

 

 

고백하자면 살아오면서 조금 비겁하게 눈감고 모른 척 지나온 것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뭐 대단한 정의나 도덕같은 게 아니더라도

내 옆에 있는 가까운 사람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공감하려기 보다 귀찮고 무언가 복잡한 일에 얽매일까 두려워서 그저 건성건성 아는 척 하고 넘아가는 일들이 많았다.

아이에게도 나는 눈맞추며 이야기하기보다 한귀로 흘려들으면서 엄마는 다 알아.... 이해해.. 사랑해... 그렇게 앵무새처럼 되뇌인적도 적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제 몫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고 그 제몫이라는 건 누가 도와주거나 해서 줄어드는 건 아니라는 이기적이고 냉소적인 생각이 속이 또아리를 틀고 있었던거 같기도 하다.

그냥 안듣고 말면 그만이니까

그러다 보니 무언가를 이해하는 것도 그저 겉핡기에 지나지 않은 적도 많았을 것이다.

누군가 아파하면 그래 그랬구나.... 하고 추임새를 넣으면서도 내 한쪽에서는 너만 그런거 아니거든.. 누구나 어려운 일을 겪는 법이거든.... 무게의 무겁고 가벼움이 문제가 아니라 그게 나한테 닥쳐진 상황이라는 건 누구에게도 똑같은 거거든.. 하는 얄미운 소리만 속으로 퍼부었다.

 

어쩌면 내가 그렇게 얄밉게 굴지 않고 이타적이고 누군가를 이해하고 공감하려고 노력하는 아주 천사표인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상대를 모두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타인이 아닌 이상 그의 말을 행동을 고개 끄덕이며 진심으로 그럴 수 밖에 없겠구나 하고 생각했을까.. 설령 그랬다고 하더라도 그건 결국 내 입장에서 문제를 다시 분해하고 재조립해서 이해한 것은 아니었을까...

 

사실 즐거우려고,,, 키득거리려고 소설을 들었는데 한편 한편 읽으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첫이야기 "행정동"은 그래도 나았다.

내가 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보이는 것 표면에 드러나는  이면에 많은 것들이 숨어있다는 것을 고개를 끄덕이면서공감했다.

 

"밀수록 가까워지는" 에서는 마음이 좀 그랬다. 그 삼촌의 마음이 무엇인자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화자인 조카만큼의 먹먹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한 사람을 모두 안다는 건 본인도 불가능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삼촌도 자기를 제데로 알았을까?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감정의 격정에 휘둘리면서 갈등했을 것이고 본문에 있는 문구처럼 삶의 공백은 스스로도 채우지 못한 빈칸으로 남겨질 때가 많은 법이니까.

 

"탄원의  문장" 에서는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알고 있는 누군가는 그 사람이 맞는가? 나는 어쩌면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보고 나의 기호에 따라 상대를 판단하고 오해하고  엉뚱한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나의 정의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기도 한다는 것... 나는 그 단편에서 최의 입장보다도 그 최가 울타리 뒤에서 들었던 노부부의 대화에서 그만 탁.. 무언가가 무너져 버렸다. 삶의 이면이라는 것 쉽게 남에게 보여지지 않는 그 세세한 빈 부분은 누가 감히 판단을 하고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

 

"화라지송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보는 것 내가 견디는 것 내가 참아내는 것들.. 그것이 전부인 건 아니다.

마지막 화자의 상상인지 현실인지 과거의 모습에서 컥... 무언가 떨어져 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책을 다 읽고 드는 생각은 죄책감이었다.

내가 의도를 했던 하지 않았던.. 혹은 내가 그저 제 3자로서의 입장일지라도 같은 인간으로 느끼게 되는 죄책감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미안한것들은 어쩌면 내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맥베드에서 나왔었나? 무지야 말로 가장 큰 죄가 아닐까 하는 것

작중 인물들은 상대를 배려하고 위해주려고 노력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오히려 상대에게 상처가 되거나 또다른 누군가를 소외시키는 일을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그저 어느 순간 눈을 감아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잊어버리면 그만이지만 이 찌질한 인물들은 어쩌지도 못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이다.

 

비겁하고 비굴한 나도 그랬다.

아이에게 혹은 친구에게 이웃에게

이게 아니고 저거라고 뭔가 무모하게 혹은 단호하게 내 주장을 내보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남의 입장을 전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어정쩡하니 맞장구만 치고 그래그래 니가 힘들었겠구나 하고 말하지만

돌아서면 찝찝해지는 기분

아.. 이게 아닌데.. 저 사람이 모든게 옳은 건 아니잖아.

그게 옳은 건 아닌데 왜 난 그 말을 못했을까...

하는 죄책감 혹은 후회로 똘똘 뭉쳐서 나만 괴롭힌다.

그리고 집에 웅크리고 앉아서 다시 그 일을 복기하면서 내가 어떤 지점에서 어떻게 행동했떠라면 어땠을까 하는... 하등 도움이 되지도 않고  무가치한 일에 매달리고 있다.

그렇게 모든 일을 되돌아보면서 느끼는 회한에서 비겁한 사람은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하고

또다른 죄책감을 얻어오는 일을 반복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주인공들이 남같지 않아서... 그래서 괴로웠다.

허허 거리고 웃거나 한숨쉬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니가 바로 이렇잖아.. 하고 확 내질러버릴까

전전긍긍하게 되었다.

 

십수년전 일을 새삼 여기에 다시 꺼내든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내 안에서 아직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해되지 않고 알 수 없는 일들을 잉해하기 위해선 우선 그것들에 대해서 차근차근 이야기 해야한다. 그것이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윤리이다. 

 

윤리라고 믿고 있는 한 나는 계속 후회되는 부분을 죄의식을 느끼는 부분을 복기할 것이다.

(하지만 무언가 결론을 내리거나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 중요한 건 아닐것이다. 중요한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깊이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내겐 소소한 위안이 되기도 하니까..)

 

 

 

참고....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라는 책과 함께 나의 올해의 책에 들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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