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엘 마이어로위츠 Joel Meyerowitz 열화당 사진문고 26
콜린 웨스터벡 지음, 신가현 옮김, 조엘 마이어로위츠 사진 / 열화당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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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사진(street photography)’이란 장르가 있다. 다큐멘터리 사진의 일종인 거리의 사진은 ‘있는 그대로(candid situation)’를 모토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법 상으로 스트레이트 포토의 일종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거리의 사진은 거리, 공원, 해변, 매장, 집회와 같은 공공장소를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장소 자체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거리를 채우는 사람들에 관심이 있고 거리를 거리답게 하는 것들에 관심이 있다. 거리에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주제가 될 수 있다. 그 무엇이든 카메라라는 기계의 시선으로 그것의 순수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다.

우리가 그냥 지나치던 것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기에 거리의 사진은 아이러니한 것이 보통이며 주제와 거리를 두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 책이 다루는 조엘 마이러로위츠의 세계는 다르다. 그는 분명 거리의 사진가이다. 그의 초기작 중 하나인 아이를 찍은 사진을 보자. 울먹이는 표정으로 어쩔줄 모르며 안절부절하는 아이가 카메라를 바라본다. 사진의 중심에 후드에 파묻힌 아이의 주변에는 등뒤에서 어깨를 잡고 있는 남자 손과 아이의 옆에서 또 아이를 잡고 있는 여자의 손이 있으며 우측 의 배경엔 위를 보는 노파가 메우고 있다.

“퍼레이드 사진을 찍던 시절에 나는, 어린아이는 어른과 아주 다른 경험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느 날 카메라에 새 필름을 넣으려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을 때 우연히 군중 틈에 낀 한 남자 아이의 얼굴을 마주보게 되었다. 나는 이렇게 낮은 자세로 있으면서 어른의 세계에 제압당한 어린아이의 느낌이 어떤지 알게 되었다. 그후 몇 주 동안 어린아이의 눈높이에서 사진을 찍었다. 끔찍한 경험이었다. 쇼핑백과 카메라, 부모나 다른 어른들의 펄럭이는 외투자락, 손에 들고 있는 불을 붙인 담배 등, 아이들은 이런 것들로부터 끊임없이 위협을 받고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키가 일 미터가 채 되지 않는 어린아이들을 두렵게 했다.”

그러나 그의 세계는 다른 거리의 사진가들과 다르다. “로버트 프랭크가 미국인의 삶에서 비극적인 면을 보았다면 마이어로위츠는 흥겹고 희극적인 삶을 포착했다. 여러 해 동안 마이어로위츠와 함께 작업했던 게리 위노그랜드가 거칠고 도전적인 시선을 가졌다면 마이어로위츠는 관대하고 애정어린 시선을 보여주었다. 또한 리 프리들랜더가 냉소적인 유머 감각을 소유했다면 마이어로위츠는 천성적으로 낙관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넉넉한 웃음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우리는 삶이 마이어로위츠의 사진이 제시하는 것처럼 흥미롭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거리의 사진은 시선이 냉정하다. 시선이 냉정하기에 컬러보다는 흑백이 적합하다고 생각되어 왔다. “사진에서 흔히 정의하듯이, 흑백사진은 차가운 느낌을 주어 아이러니, 거리감, 예술성을 표현하는 데 적합하다.”

그러나 마이어로위츠의 천성에는 그런 냉정한 시선이 어울리지 않았던 것같다. 그는 거리의 사진 전통에선 처음으로 컬러 사진을 시도한다.

“컬러 사진은 따뜻하고 풍부하며 흥겹고 열정적인 느낌을 잘 전달한다.” 그러나 거리의 사진가들은 흑백사진을 고집했었고 현장사진은 흑백인 것이 공식처럼 되었었다.

“사진은 품격이 떨어지는 통속적인 대중매체라는 통념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예술로서 당당히 자리를 구축했다. 사진이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는 점을 입증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사진 자체에서 예술로서의 사진을 구해내야 했다. 그 어떤 예술 분야보다도 컬러 사진은 이러한 미학적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컬러 사진이 광고와 키치,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매체라는 이유로 예술 사진가들은 오랫동안 이를 기피해왔던 것이다. 우리 주변에 컬러가 온통 흔해지면서 흑백사진이 과거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기가 도래햇는데, 이렇게 흑백사진을 고집하는 것은 사진 매체를 변혁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주류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의미했다. 1970년대 중반 무렵에 이르러서 당시 독립적으로 작업을 하던 소수의 미국 사진가들이 컬러 사진의 문제를 정면으로 비판하기 시작했다.” 마이어로위츠는 그 소수 중의 한 명이엇다.

그가 컬러를 도입한 이유를 보여주는 사진은 1962년 뉴욕의 거리에서 찍은 사진일 것이다. 이 사진은 유리 너머의 장면을 찍은 것이다. “한 상가의 유리창 너머로 붉은 드레스를 입은 처녀가 남자친구의 넘겨 올린 머리를 정성스럽게 다듬어 주고 있다. 그녀의 손길은 어릴 적 인형의 머리를 다듬어 주던 방식과 같을 것이다. 카메라를 들어 이 연인의 은밀한 장면을 찍으려고 했을 때 나는 커다란 용기를 내야 햇다. 그러나 이들과 나 사이에 놓인 유리창이 처녀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동작을 포착할 수 있을 때까지 나를 보호해주었다. 사진을 찍은 후 나는 곧바로 다음 장면을 찾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 사진에서 여인의 빨간 드레스를 빼고 유리창에 비친 저녁 노을의 노란 색조를 빼고 걷어진 블라인드의 연두색을 뺀다면 연인의 관계는 묘사할 길이 없다.

컬러를 시도한 후 그는 1970년대 후반부터 풍경사진과 도시사진 작업을 병행했다. 컬러를 도입하면서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이글스턴의 색채는 자극적인 반면에 쇼어의 색채는 희미하고 창백하며 때로는 아무런 느낌도 주지 않는다. 이들의 작업은 제각기 상업적 사진이 활용하는 색채의 풍요로움에 의도적으로 반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리창 너머에는 목이 드러나는 빨간 원피스를 입은 금발의 여성이 등을 보인 채 자기 남자의 머리를 손질해주고 있다. 마이어로위츠는 이들과 정반대의 입장을 취했다. 그는 컬러 필름에 내재된 색채의 풍부함을 그대로 수용해 특유의 유머 감각으로 색채를 운용함으로써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다.”

그의 이후 작업의 특성은 베르사이유 궁을 찍은 사진에서 잘 나타난다. “마이어로위츠는 컬러 사진의 묘사적 특성에 이끌려 색채 자체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새로운 사진 분야를 개척하게 된다. 이러한 실험은 그가 1966년에 찍은 인적조차 찾을 수 없는 텅 빈 베르사유 궁의 궁정 사진에서 그 윤곽을 드러냈다. 베르사유 궁 전면의 벽돌 하나하나는 식별이 가능할 정도로 선명하다. 이 사진에는 오로지 색채만이 묘사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 사진에 대한 작가 자신의 말이다. “이 사진은 규모와 세부에 관한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인적 하나 없는 궁전은 인형극이나 바그너의 작품을 상연하기 위해 준비된 텅 빈 무대처럼 보인다. 비바람이 몰아친 직후 미약한 햇살이 비치는 궁전은 황량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잇다. 바닥에 깔린 포석과 건축물의 벽돌, 석판과 같은 조그마한 부분들이 보는 이에게 현실감을 일깨워 준다. 이처럼 풍부한 세부를 통해서 우리는 이 거대한 공간이 연극적 환영이 아니라 실재하는 장소라고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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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 일기 쓰기부터 소설 쓰기까지 단어에서 문체까지
안정효 지음 / 모멘토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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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제목처럼 글쓰기에 대한 책이다. 글쓰기와 말하기를 어려서부터 강조하는 영미권에선 글쓰는 요령에 대한 좋은 책이 오래전부터 나와 있다. 책은 많고도 많지만 그책들의 요점은 대동소이하다: 간명하게 구체적으로 짧게. 형용사 3개로 요약된다.

글쓰기를 영어작문에서 배웠던 저자의 요점 또한 마찬가지이다. ‘있을 수 있는 것은 모조리없앤다’라는 저자의 원칙을 보자. 진행형의 ‘있다’, 가능성의 ‘수’, 부정대명사 ‘것’의 공통점은 앞에서 말한 3가지 원칙을 모조리 깬다는 것이다. 이 세가지 단어는 말을 늘어지게 한다. 구체적이지 않다. 말이 늘어지고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에 말의 박력이 떨어져 간명하지 않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싸우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있다. 그래서 길이 꽉 막혀 있다. 신경질이 난 운전자들이 경적을 울려대고 있다. 한 청년이 디카로 이 장면을 찍고 있다.”

저자가 이 문장을 어떻게 분석하는지 보자 “이렇게 말끝마다 진행형을 붙여놓는 까닭은, 대부분의 경우, 불안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짧은 단어나 짧은 문장을 구사하여 만든 짧은 표현을 두려워한다. 그런 문장을 쓰면 실력이 짧아 보일까봐 걱정이 되어서이다. 그러나 위 문장에서 ‘있다’라는 단어를 모조리 없애버려도 진행형은 멀쩡하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싸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구경한다. 그래서 길이 꽉 막혔다. 신경질이 난 운전자들이 경적을 울려댄다. 한 청년이 디카로 이 장면을 촬영한다.

이렇게 ‘있다’만 솎아내더라도 오히려 문장이 간결해져서 힘이 생긴다. 같은 단락에 나오는 ‘보고 있다’와 ‘가고 있다’와 ‘하고 있다’와 ‘오고 있다’의 경우, 같은 말이 네 번이나 반복되어 너덜너덜해 보이지만, 모든 표현의 공통 분모인 ‘있다’를 없애버리면 ‘본다’와 ‘간다’와 ‘한다’와 ‘온다’가 되어, 모든 단어가 갑자기 다양한 모습을 저마다 뽐낸다. ‘있다’는 여드름처럼 모조리 짜버려도 손해 볼 일이 별로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문장을 다듬을 만한 자신감과 용기가 없어서, 긴 문장이 유식하다는 착각에 빠져, ‘간다’를 ‘가고 있다’라고만 해서도 안심하지 못하여 ‘가고 있는 것이다’라고까지 한다.

짧은 밑천이 탄로날까봐 다른 사람들이 불안해서 너도나도 ‘있다’와 ‘것’으로 자꾸 문장을 잡아늘일 때는 오히려 혼자서 솎아내고 줄여야 눈에 잘 띈다.”

이외에도 저자는 여러가지 원칙을 말한다. 그러나 나머지 원칙들 역시 simple and clear란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가령 수동태를 쓰지마라는 영어권에서 널리 통용되는 원칙 역시 뜻을 명료하게 한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

접속사를 글더듬이라 부르며 다 쳐내라고 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원칙은 동일하지만 조금 뉘앙스는 다르다. 이 경우에는 “눈에 걸리적거리는 단어들, 특히 긴 단어를 없애버리면 모든 문장이 간결해지고 압축된 문장에서는 폭발력이 생긴다.”고 말한다. 간결하게 말하라는 것이다. 이 경우에도 저자는 글을 너저분하게 늘어트리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라 말한다. 두려움은 자신이 할 말에 대한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할 말을 모르는데 듣는 사람이 알아듣기를 바랄 수는 없다.

그러나 이책은 소설가가 소설가를 위해 쓴 책이다. 책의 상당 부분은 소설을 쓰는 방법에 할애된다. 지면이 상당한 만큼 여러가지 다양한 기법이 소개된다. 그러나 그 기법들을 모두 소개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저자의 입담을 재연할 재주가 없기도 하지만 리뷰에서 그런 것은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의 나머지 부분을 한 마디로 요약할 수는 있다: 소설가에게 영감은 없다.

“사람들은 흔히 작품이 순간적인 영감에서 싹이 튼다고 믿는다. 영감이 씨앗이나 마찬가지여서, 신으로부터 계시가 내리듯, 어떤 깨달음이 열리고, 그러고는 영감의 씨앗에서 뿌리가 힘차게 뻗어 내리면서 싹이 돋아나 나무가 자라고, 잎이 무성하게 피어나고, 꽃과 열매가 맺힌다고 상상한다. 그러나 나의 글쓰기는 결코 그렇게 쉬웠던 적이 없다.”

저자는 쉬웠던 적이 없다고 말하지만 이책의 내용을 보면 저자는 영감을 믿지 않는다. 이책의 내용은 거의 저자 자신이 어떻게 소설을 써나갔는가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책이 재미있게 읽히고 살아 숨쉬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저자가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말하는 것을 보면 그의 소설은 발냄새가 물씬 배어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어디를 가나 소설의 소재거리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다. 소재거리를 만나면 언제든 메모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니 같은 소설가들과 어울릴 시간도 없다. 아니 같은 글쟁이들과 어울려 봐야 맨날 같은 이야기나 맴돌게 되니 소설가에겐 치명적인 시간낭비다.

글쓰기 자체도 고상한 것과는 거리가 먼 막노동이다. 어떤 글쓰기건 어떤 창작활동이건 마찬가지이지만 쉽게 나오는 것은 없다. 땀 흘린 만큼이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의 일과를 ‘비낭만적’이라 말하며 “이른바 영감은 특히 장편소설의 경우 한 순간에 반짝 떠오르는 축복이 아니라 이렇게 오랜 시간이나 세월에 걸쳐 공을 들여 조금씩 쌓아 올리는 무형의 집 한채와 같다.”

사실 이책의 소설작법을 다루는 부분은 구체적인 소설 기법보다는 이렇게 직업인으로서 소설가가 어떤 자세로 태도로 작업에 임해야 하는지 어떤 관점으로 세상과 작품을 보아야 하는지에 더 많은 초점이 가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책은 재미있게 읽힌다. 개인적으로 예술가와는 거리가 먼 사람인데도 이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소설작법으로가 아니라 소설가가 어떻게 사는가를 소설가의 일과를 보면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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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아트 앤 더 시티 - 예술가들이 미치도록 사랑한 도시
양은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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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책은 뉴욕 가이드북이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여행 가이드북과 달리 이책은 한가지 주제에만 포커스를 맞춘다. 뉴욕의 미술이라는.

이책은 뉴욕의 경제/문화의 중심이랄 수 있는 맨하튼의 거리를 따라 미술과 관계된 흔적들을 따라간다. 그 순서는 뉴욕미술사의 타임라인을 따라 그리니치 빌리지, 소호, 첼시 그리고 그 미술을 후원했던 부호들의 거리인 백만장자 거리, 그리고 뮤지엄 거리를 훑어간다.

뉴욕미술사의 흐름이 그러한 괘적을 따르게 된 이유는 경제 더 구체적으로는 부동산경제학에 따른 것이다.

미술가들은 가난하다. 그들 중에서 성공해 부와 명성을 얻게 되는 사람은 1%도 되지 않는다. 당연히 수입이 별로 없는 그들이 집세를 내기 쉽지가 않다. 돈은 없는데 직업이 미술가이니 넓은 작업공간이 필요하다. 그러니 이들은 집세가 싼 곳을 찾아 모여들게 된다. 그런 거리로 유명했던 곳이 ‘마지막 잎새’의 무대로 유명한 그리니치 빌리지였고 소호였으며 지금은 첼시이다.

“1970년대 이후 소호는 뉴욕 미술계를 대표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그리고 1990년대까지 굳건하게 그 역할을 잘 수행했다.” 그러나 지금은 첼시가 그 역할을 넘겨 받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소호도 그렇고 첼시도 미술가들이 모여들었던 것은 집값이 저렴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술가들이 모여들면서 화랑이 들어서고 동네가 변하고 그러면서 상권이 만들어지고 주거환경이 바뀐다. 그러면 집세가 올라가고 돈이 없는 미술가들은 다른 동네를 찾아 떠나는 것이다. “상권이 들어섰다가 빠져나가 폐허가 된 소호에 다시 상권이 들어서 상업지구로 변모한 것이다.”

그 과정을 저자는 이렇게 묘사한다. “이렇게 된 데에는 싼 값에 얻은 작업실을 공들여 고치고 수도관을 잇고 화장실을 개조하면서 만든 예술가들만의 독특한 동네 분위기가 문제엿다. 겨우 살 만한 곳이 됐다 싶으니까 새로움을 선호하는 젊은이들이 어울리면서 식당과 카페가 하나둘 생겨났다. 그리고 독특한 디자인의 생활용품, 주방제품, 인테리어 가구, 옷을 파는 가게들도 생겼다. 원가 특이한 것을 구하려면 이곳에 가면 된다는 소문도 퍼졌다. 주말이면 화랑에서 열리는 전시를 보려고 몰려드는 사람들은 상권이 좋아하는 짭짤한 손님들이엇다.

유동 인구는 계속 늘어났고 소로는 번잡한 곳으로 변했다. 이렇게 되면서 1990년대 히우 소로는 관광, 쇼핑, 레스토랑 사업이 주를 이루는 뉴욕의 주요 상권으로 빠르게 변모했다. 한때 예술가들이 살던 로프는 고급 주거 공간으로 수백만 달러에 팔렷다.

그러자 건물을 소유하지 못한 화랑들은 올라가는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게 됐다. 작업실을 가진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소호에서 밀려난 화가와 화랑들이 첼시로 모여들었다. 소호가 그랫던 것처럼 이곳도 빈 공장들의 자리엿고 버려진 곳이었다. 당연히 집세가 싸다. “소호에 있던 갤러리들과 화랑들이 이제 이곳에서 뉴욕 화랑과 뉴욕 현대미술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3백 개가 넘는 화랑이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잇는데 이 정도 숫자면 역사상 세계에서 가장 많은 갤러리 집성촌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첼시도 소호의 전철을 밟아가는가 보다. “처음에는 싼 임대료 때문에 이곳으로 이주했는데 5년 전에는 1평방피트에 월 20달러였던 임대료가 벌써 50달러를 넘어 더 오르고 잇다. 그래도 같은 규모에 월 100달러가 넘는 소호에 비하면 아직도 천국이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남지 않은 것같다. 맨하튼을 벗어난 퀸즈, 브루클린 지역까지 저자가 다루고 잇는 이유가 그것이다. 소호를 떠난 미술가들과 화랑들이 여기로도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이책은 뉴욕의 미술사의 괘적을 기본 줄거리로 거리 거리에 있는 유명했던 작가들의 흔적과 현재 뉴욕미술의 현장들을 소개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그러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해도 이책은 어디까지나 가이드북 스타일이다. 뉴욕미술사를 목표로 하는 책도 아니고 뉴욕미술이 어떻다고 말하는 책도 아니다. 단지 뉴욕미술계가 어떤 공간에서 살아왔고 살고 잇는가를 보여주고 그 장소들에 얽힌 에피소드들을들려주는 것이 목적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책 한권을 읽고 뉴욕미술계가 어떻다는 감을 잡을 수는 없는 책이란 말이다.

그러나 다른 책과 함께 본다면 이책은 그 가치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책이다. 개인적으로 권하고 싶은 책은 요 근래 나온 것으로 ‘세계의 크리에티브 공장, 뉴욕’이다. 이책은 미술만을 다룬 책은 아니다. 미술가들은 물론 패션, 디자인, 광고, 문학, 언론, 음악과 같은 분야의 사람들이 어떻게 네트웤을 맺으며 그런 네트웤이 그들의 커리어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분석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사는 공간과 어울리는 공간에 대한 분석이 자세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네트웤 분석에 치중하기 때문에 이책처럼 실제 그들이 살고 어울리는 공간이 어떤 곳이며 어떤 느낌의 공간인가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두권을 같이 읽는다면 왜 뉴욕에 예술가들이 몰려들며 그들이 실제 살아가는 뉴욕이 어떤 공간인가를 아는데 좋은 출발점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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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한반도 묵시록 - The Revelation
한호택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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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살겠다 갈아보자’는 1956년 이승만 정권에 대항하던 민주당이 내세운 표어다. 당시 표어는 민중의 호응을 얻었고 집권당의 제지를 뚫고 수십만 인파가 구름처럼 한강 백사장에 모였다. 그 후 60년도 더 흐른 2019년 그 시절의 모습이 재현되고 있었다.”

“대형 방음기에 막혀 군중이 외치는 소리도 넘어오지 못햇다. 빈부, 남북, 좌우, 내국인과 외국인, 선과 악… 이분법은 컴퓨터 뿐만 아니라 세상을 가르는 기준이다.”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대한민국 영토가 보였다. 하늘에서 보기에도 부자동네와 가난한 동네는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부자동네가 산뜻한 파스텔 톤이라면 달동네는 황사가 덮여 우중충한 똥색으로 갈아앉아 있었다. 부자들은 발달한 보안기술을 이용해 자신들만의 견곻란 성을 쌓았고 그들이 만들어 배부한 표식이 없으면 누구도 그 안으로 들이지 않았다.”

“인공지능이 발달하자 사람이 하던 일이 손쉽게 기계로 대체됐다. 유휴인력이 남아돌아 먼지처럼 떠돌아 다녔지만 그들을 채용하려는 기업이 없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사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학력 인플레가 본격화됐다. 이제 대졸자가 회사에 들어가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려웠다. 박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낙엽만큼 많았다.”

가난뱅이는 언제나 살기 힘들다. 그러나 그 도가 지나친 세상이 되었다. “환경오염과 그로 인해 이어진 물 부족은 세계적인 문제였다. 물 부족으로 식량 부족으로 이어졌고 빈민들은 오염된 물로 키운 유전자식품을 먹었다. 부자들은 위생적으로 처리된 유기농식품을 먹었다. 부자들의 한 끼 식사비용이 가난한 자들의 한 달 식사비용보다 많았다.”

이 소설이 배경으로 하는 얼마 남지 않은 미래의 한국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포보스라는 테러집단이다. 모든 테러집단들이 그렇듯이 이들은 현실을 부정하는 이상을 꿈꾼다. 포보스란 집단이 꾸는 꿈은 ‘사람들이 원하는 국가를 만들어 그 국가를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다.’

부모를 선택할 수 없듯이 자신의 고향을 조국을 선택할 수는 없다. 그저 우연히 거기에 태어날 뿐이다. “이 땅이 싫으면 그 사람이 떠나면 된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 이 땅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에게는 이 땅에 살 권리가 있어. 문제는 땅이 아니라 국민을 만족시키지도 못하면서 다른 선택도 못하게 하는 정치체제야.” 포보스는 그것을 불합리라 부르며 사람들에게 선택할 자유를 주려 한다.

사람이 만든 다른 모든 것처럼 국가 역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제 그 국가가 오히려 사람을 죽이고 있다고 포보스는 말한다.

“작년에 한국에서 생활고를 비관해 자살하거나 굶어 죽은 사람이 몇 명인지 아십니까? 테러로 죽은 사람의 백 배가 넘습니다. 이런 법질서를 지켜야 합니까? 왜요? 전 세계의 11억 인구가 비만인데 이와 비슷한 숫자의 사람들이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왜 잘못된 세계, 잘못된 국가, 잘못된 정책은 바로 잡으려 하지 않고 그런 부조리를 뜯어 고치려는 조직을 없애려 합니까?”

“인터넷의 발달로 직접 선거가 가능한 세상이 됐고 정보의 공유로 권력의 독점도 막을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기업이 만든 물건을 일방적으로 구입하던 소비자들이 지금은 자신에게 맞는 맞춤형 제품을 요구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그런데 왜 국가는 그러면 안되는가? 이들의 질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선택의 자유를 줄 것인가? 세계를 도시국가로 나누면 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앞으로 국민이 국가를 선택할 수 있게 되고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국가로 몰려갈 것입니다. 왜 그 나라에 태어났다는 한 가지 이유로 온갖 부조리를 감수하며 그 나라 국민으로 죽어야 합니까? 포보스연합이 아니더라도 굳이 국가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국가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자유도시가 계속 늘어날 것입니다.”

“지금은 이민이 쉽게 허용되지 않지만 국가가 많아지면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이민도 원활해져. 최종목표는 마을 단위의 국가를 만들어 노자의 소국과민을 실현하는 거야. 백만 개 정도의 국가를 만들면 과거의 국가개념은 사라지게 될거야.”

그러나 지금의 국가제도가 만들어진 것은 다른 국가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한 최저의 규모를 만든 결과이다. 이들의 비전은 신선하면서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실적일까?

이 소설의 설정에 따르면 어느 정도 현실성이 있다. 이들은 다국적기업을 장악해 재력을 갖추고 그 재력을 기반으로 첨단군사기술과 핵으로 무장한다.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있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전략을 짜고 그 전략에 따라 일어나는 사건이 이 소설의 내용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과연 그들의 꿈이 현실적일까? 작가도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같다. 이들의 꿈은 결국 실현되지 않는다.

저자는 그 이유를 사랑으로 제시한다. 사랑 앞에 무력해지면서 그들의 꿈이 무너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란 은유는 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왜 아이를 낳으려 하지? 어차피 그 아이는 지금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될텐데”
“그럼 너는 왜 도시국가를 만들려고 하는 거야?”
“지금 국가체제보다는 나으니까. 도시국가가 세워진다고 인간의 고통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아. 환경은 갈수록 나빠지고 자원도 고갈돼 갈 거야.”

너무 이성적이다. 그들의 이상은 그렇게 차가운 논리의 구축물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이렇게 작가는 암시한다.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만들고 지켜야 할 게 있어.”
“그게 뭔데?”
“가족”

가족을 만들고 지키는 것처럼 국가 역시 손익계산만으로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저자가 이 소설에서 내리지 못하는 결론은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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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드 Pride 12 - 완결
이치조 유카리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불의 전차’라는 오래 된 영화가 있다. 1981년 만들어진 이 고전 스포츠 영화의 주인공은 둘이다. 1924년 파리 올림픽에서 영국의 육상선수로 뛰어던 에릭 리델(이언 찰슨)과 해럴드 에이브러험(벤 크로스). 에릭은 자신을 하느님에게 바친 사람이다. 에릭은 달린다. 달리는 재능을 준 하느님을 위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달린다.

100미터 결승전이 일요일에 열렸다. 하느님의 종인 에릭은 일요일에 달릴 수 없다. 영국 황태자가 부탁하는데도 그는 단호하다. "국왕보단 하느님.." "국가보단 천국.." 신문기사의 제목이다. 그는 자신의 두 다리로 얻은 금메달도 하느님의 영광으로 하느님에게 돌린다. 에릭은 그런 사람이다. 나중에 에릭은 선교사로 중국에 가 거기서 하느님의 곁으로 간다.

그러나 유태인인 해럴드는 사회적 편견에 맞서 싸우는 투사로 일생을 살아간다. 유태인으로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달린다.

둘은 서로의 열정과 신념을 존경한다. 그러나 그런 그들이 다리는 이유는 다를 수 밖에 없다.

이 영화는 그런 그들의 경쟁과 그들이 누린 승리의 기쁨을 보여주면서 그 과정을 아름답게 보여준다.

‘불의 전차’처럼 ‘프라이드’란 제목의 이 만화 역시 주인공 두 사람의 경쟁을 그린다. 그리고 주인공들의 성격 역시 유사하다. 그러나 ‘불의 전차’가 선의의 경쟁이라면 이 만화는 악의의 경쟁이다. 그것도 일방적인.

“시오씨는 정말이지 하느님한테 사랑받고 있나 봐요. 그 사람은 서 있기만 해도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아요.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난 그런 오라는 절대로 못 당해요. 주역이 될 인생을 걸어가는 사람은 처음부터 주역이에요.”

이탈리아 라 스칼라 좌의 프리마돈나였던 어머니, 그 어머니의 딸로서 어울리는 재능, 화려한 이태리 오페라에 어울리는, 동양인으로서는 드문 화려함이 있는 미모.

태어날 때부터 주역인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 모든 것이 처음부터 주어진 사람,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어서 아무 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은 특징은 기품이 있다는 것이다. 기품이 무엇인지 정의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기품이 무엇이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누구나 보면 알 수 있다.

처음으로 기품이란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은 대학에 들어가서였다. 정년을 앞두고 이제 인생을 정리하는 단계에 있는 노교수님들을 보면서 사람의 기품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 교수님들의 기품은 연륜이 만든 것이다. 그 나이가 되었다고 모두 그런 기품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학을 다닐 때 그런 기품을 가진 분은 손 안에 꼽았다. 한국이란 사회에선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지위를 얻었고 학계에서도 인정받는 위치에 오른 분들에게서만 그런 기품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태어나면서부터 그런 기품을 타고 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것이 주어진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이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야하는 사람은 절대 그런 기품을 가질 수 없다. 가질 수 있다면 노년에 이르러 인생을 완성할 때만이 가능하다.

“가능하고 말고요 파롯티(파바로티의 이름을 작가가 꼬은 것)의 추천인걸요. 이 세상은 슬프게도 연줄과 돈이에요. 미래의 퀸 레코드 사장부인이시잖아요. 더군다나 시오 씨에게는 실력과 미모까지 있어요. 무적이죠”

그런 사람과 경쟁해야 하는 사람은 어떤 기분일까? "좋겠네요. 시오 씨는 부자에다 방에 그랜드 피아노가 있고 수업료가 비싼 미카 음대에 다니고 키하라 사와코의 딸이라니 미인에다 빽까지 있다니 짜증나요." 이 만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모에의 말이다.

“의심같은 건 할 줄 모르도록 잘 자란거야 사랑받으면서 귀하게 자랐겠지 항상 당당하고 켕기는 건 전혀 없을 걸? 너한테 소중한 건 인간으로서 긍지를 갖고 살아가는 거지?”

자신이 가지지 못한 모든 것을 가진 시오. 그런 시오는 모에에겐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이다.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는 그녀에겐 없었으면 더 좋았을 사람에 불과하다. 어릴 때부터 그녀가 들어온 말은 너란 짐덩어리 때문에 남자들과 잘되지 않는다는 말 뿐이었다. 딸을 사랑하지 않는 것으로도 모자라 어려운 형편에 학비로 쓸려고 벌어온 돈을 뺐어 호스트들에게 가져다 바치는 어머니. 그녀가 가진 것이라고는 평범한 학교에 평범한 재능 평범한 미모.

시오는 그런 그녀에게 없는 모든 것을 가졌다.
“짜증나 이 여자를 만나면 항상 그래 내가 얼마나 비천한 인간인지를 확인하게 돼 더렵혀주고 싶어”

“언제까지나 처음 만났을 때 맛봤던 비참함이 지워지질 않아 내 비열함이 치사함이 비참해져 이 여자가 더러워지면 좋을 텐데 불행져서 울면 좋을 텐데 이 여자한테 이기지 못하면 이 비참함은 평생 없어지지 않을지도 몰라. 필요없어 난 그런거 필요없어 더럽혀지든 미움을 받든 최후에 승리해서 웃고 말거야.”

이 만화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을 만큼 막다른 곳에 몰려 있는 여자와 자존심이 방해를 해서 고지식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여자”의 경쟁을 그린다.

시오에게 모에 같은 사람은 처음이 아니다.

"나는 시오랑 피아노 배우기 싫어 짜증난단 말야. 시오만 점점 더 잘 치고."
"엄마가 비교해서 싫어 시오를 본받으라고 하잖아.'
'어쩐지 난 들러리 같아서 상처를 받게 돼 나도 나름대로 예쁜데'
'시오는 너무 잘났어. 난 부자다, 라는 듯한 태도라니까'
'부자라서 어머니의 피를 물려 받아서 하느님한테 편애를 받으니까.'
'정론을 무기로 상대에게 상처를 입힌다.'

"당신하고 있으면 왠지 제 자신이 점점 비참하게 느껴져서... 똑같은 인간인데 왜..!" 불공평하다. 그러나 다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이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가진 사람과 자신의 것을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 같은 사람일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은 그런 것을 인정할 수 없다.

그러면 그런 말을 들어 와야 했던 사람은 어떨까? ‘지긋지긋해 이 말을 듣는 게 벌써 몇번 째지?' 그리고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다. "미안해요 그쪽이 짜증난다고 해도 어쩔수가 없네요."

“차갑고 냉정한 태도는 저 가정환경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터특한 성격이야 동성으로부터 끊임없는 질투가 지긋지긋해서 터득한 내 성격 아 그렇구나 자기에게 필요없는 것은 잘라내 온 삶의 방식이 닮은 거야” 그녀가 약혼자의 부모를 만난 느낌이다.

그러나 카이사르라면 어떻게 했을까? 카이사르는 모욕을 당해도 너그럽게 웃어넘기는 사람이었다. “분노나 복수는 상대를 자신과 대등하게 여기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이고 일어날 수 있는 행위다. 카이사르가 평생 이것과 무관했던 것은 분노나 복수가 윤리 도덕에 어긋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우월성에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월한 자신이 왜 열등한 타인의 수 준으로 내려가서 그들과 똑같이 분노에 사로잡히거나 그들과 똑같이 복수심을 불태워야 하 는가.”시오노 나나미가 그리는 카이사르이다. 정적을 가차 없이 제거했던 술라와 정적을 포용하고 관용을 베풀었던 카이사르는 “많은 유사점을 갖고 있었지만, 이 점에서는 양극단이었다. 후세 역사가 들은 이런 카이사르를 '진정한 귀족 정신의 소유자'라고 평한다.”

기품의 본질은 여유이다. 강자의 여유이다. 세상 무엇도 자신을 흔들지 못한다는 자신감이다. 카이사르가 해적에게 잡혔던 이야기는 그 여유의 본질을 보여준다.

“젊은 시절 해적에게 붙잡혔을 때 카이사르는 타고난 천성대로 해적을 마음껏 무시했고 이런 점은 오히려 해적들에게 큰 매력으로 작용했다. 이들은 제발 목숨만 살려달라고 빌며 공포에 빠진 포로는 익숙했지만 카이사르처럼 해적을 자신의 바쁜 일정을 잠시 방해하는 훼방꾼 이상으로 보지 않는 포로는 처음이었다. 카이사르는 자기 몸값이 겨우 20달란트(어마어마한 거액이었다)밖에 되지 않는다는데 모욕감을 느끼고 스스로 몸값을 50달란트(은화 30만냥)까지 올리기도 햇다. 카이사르는 동료 한 명과 노예 두명만 남기고 나머지 일행에게 몸값을 가져오게 햇다. 카이사르는 포로로 지내는 40여일 동안 해적과 어울려 식사를 했고 그들의 체력훈련에 동참하기도 했다. 시를 지어 들려주었다가 해적들이 시를 이해하지 못하면 천박하고 난폭한 야만인이라고 면박을 주기도 햇다. 이런저런 주문을 하기도 했고 잠자리에 들어서는 노예를 시켜 해적들에게 조용히 좀 하라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또 자신이 풀려나면 반드시 다시 돌아와 모두 책형에 처해 죽이고 말겠다고 반복해서 이야기하기도 햇다. 해적들은 이 대담한 젊은이를 무척 좋아햇고 몸값을 실은 배가 도착하자 아쉬움을 드러낼 정도였다. 카이사르는 떠들석하게 웃고 손을 흔들며 해적들과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바로 배와 의용군을 징발해 해적들에게 돌아와 모두 체포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필립 프리먼)

원래 기품은 귀족을 말할 때 쓰는 말이었다. 귀족은 여유를 타고 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어머니의 애정을 한몸에 받으며 자랐다. 평생 동안 그를 특징지은 것은 하나는 아무 리 절망적은 상태에 빠져도 유쾌한 기분을 잃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렇게 낙천적일 수 있었 던 것은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나이에게 최초로 자부심을 심 어주는 것은 어머니의 애정이다. 어릴 때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면, 자연히 자신감에 뒷받침된 균형감각을 얻게 된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바라보는 적극성도 어느새 저절로 몸에 배게 된다.” 시오노 나나미의 말이다. 시오 역시 카이사르와 마찬가지 환경에서 자랐다. 그렇기 때문에 시오를 말할 때 사람들은 기품이란 말을 쓴다.

그러나 그녀의 기품은 불완전하다. 그리고 그 불완전함은 오페라 가수로서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교과서대로의 우등생의 노래따윈 아무런 매력도 없다구 콩쿠르에서는 평가받을지 몰라도 그걸로 끝이야.’

시오를 괴롭힌 것은 질투만이 아니다. 거물의 딸로 태어나 어머니의 이름에 걸맞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은 성격도 목소리도 다른 데 (어머니는 리릭 소프라노이나 시오는 메조 소프라노이다)도 무의식적으로 어머니의 창법을 흉내내도록 만든다.

질투와 압박감은 시오를 방어적으로 만들었고 배우로서의 한계를 만든다.

“인간미란 매력하고 관계가 있구나 나 그렇게 매력이 없었어?”
“그럼 있는 줄 알았어? 시오는 화장실도 안 가는 인형이었어 땀도 안 흘리고 경계가 철저해 보이는데다 매너는 좋지만 타인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는 느낌이었지 오페라엔 속물스러운 성격의 인간들이 수두룩해서 시오에겐 도도한 공주역 밖에 안 어울릴거라고 생각햇어”

그러나 그녀에게 기회가 주어진다. 위기라는 이름의 기회가. 아버지가 파산하면서 세상으로부터 그녀를 지켜주던 울타리가 사라진 것이다.

“난 말야 시오 네 그 공주님 근성이 걱정이야 이젠 부모도 돈도 친척도 없잖아 정론이 토용되지 않는 일이 세상엔 얼마든지 있어. 사람은 말야 자존심만으로는 살아갈 수가 없다구.”

시오는 ‘불의 전차’의 이언 같은 사람이다. “난요 노래는 신이 내려준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노래할 때마다 조금씩 신께 돌려드리는 거라고.” 그렇기에 "나는 노래 공주. 세상에서 가장 노래를 잘 하는 공주님. 자 드레스를 입었으면 하늘의 성에서 열린 무도회에서 노래합시다. 나는 노래 공주 세상에서 가장 노래를 잘 하는 공주님" 노래하는 것 자체가 행복인 시오. 그러나 "이제 공주님은 끝... 날 지켜주던 아빠는 없어 강하다고 생각했던 나도 없어."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지켜주던 것이 사라졌을 때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게 된다.

시오는 자신이 경멸할 수 밖에 없는 모에에게서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자신의 한계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모에가 갖고 있는 비장감은 부모에게 제대로 사랑받지 못한 트라우마에서 온 것이겠지 사랑하고 싶지만 사랑받지 못하는, 세상에 태어난 의미를 알 수 없는 외로운 마음 방황하는 영혼 울부지는 듯한 애절함"

“난 이렇게 살아서 걷고 있어 견디지 못할 것은 아무 것도 없었어”

인형 같은 우등생의 노래와 달리 재능도 미모도 평범한 모에는 배우로서 탁월하다. 그녀의 삶이 준 불행 덕분에 탁월한 표현력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모에의 노래는 슬프다. "넌 향상심보다 투쟁심이 더 강해서 큰일이야 남과 비교해서 행복을 느끼는 타입이잖아 그래서 노력도 하고 근성도 잇지 다만 남과 비교를 해봤자 기분은 좀 좋겠지만 그다지 행복해지진 않아 그보다는 열심히 자신과 싸워 봐 남하고만 싸우다간 무너지고 말아."

이런 사람을 알고 있을 것이다. 시오가 모에를 보면서 자신을 채워가려 하듯이 모에 역시 시오를 보면서 노력한다. "그녀가 노력할 수 있었던 건 네 덕분이지만 그건 힘들고 너무 슬퍼. 행복해지고 싶어서 노력하는 거잖아. 자신을 좋아하지 못하면 절대로 행복할 수는 없는거야"

그러나 시오가 모에를 경멸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녀의 투쟁심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불행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방법론이다. "성공의 비결을 가르쳐 줄까? 아무리 추해 보이더라도 주어진 기회에 달려드는 것. 그 방면 일류의 겉과 속을 아는 것." "꽤 고생을 한 모양이라 남의 마음을 잘 읽긴 하지만 그 놀라운 변신도 그렇고 목적을 위해서라면 정말로 뭐든지 할 것 같아 이런 아이를 곁에 두는 건 위험할지도 몰라" 시오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은 자신을 괴롭히는 모에보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모에가 사는 방식이다.

“그런 일이라고? 나 때문에 엄마가 죽었다는 얘기를 들은 게 그런 일이야? 철면피 그런짓까지 하면서 우승하고 싶었어?”
“괜찮아요 아픈 건 지금 뿐이니까 분이 풀렸나요? 이 정도로는 안되겠죠? 더 때려도 돼요”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넌 자존심도 없어?”
“그런 쓸모없는 건 버렸습니다.”

“울든 싸우든 상처받든 품성만큼은 나빠지면 안돼 알겠지 남을 떨어트리는게 아니라 자기가 올라가는 거야.” 이것이 올바른 것이 아닌가?

두 여자는 서로를 보면서 어른이 되어간다. “고생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나이를 먹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야 어른이란 부자가 된다 해도 유명해진다고 해도 그런 것과는 달라. 어른이 뭔지 알게 될 때가 올까?”

“도저히 가르쳐 줄수 없었던 인간미 있는 감정이나 색이 그녀에게서 풍겨나오고 있잖아 역할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역할이 된다는 감각을 터득하려 하고 있어 우등생일 뿐이었던 이 아이가 거물이 되는건가 손에 꼽을 정도의 가수에게만 주어진다는 재능을 시오가 손에 넣으려 하는건가?”

‘부드럽고 자장가처럼 다정한 음색. 대단해 경직되고 정확한 우등생이 이렇게 요염하고 매력적인 가수로 변하다니’

모에 역시 성장한다. "전보다 깊이가 있네요. 부드럽고 따듯하고 예전의 서늘하고 외로운 이미지가 없어졌어요. 전 이쪽이 좋은데 모에 씨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_라고 생각하지? 그런데 지금의 모에에게는 딱이야. 아이가 생기고 그녀는 정말 많이 달라졌어. 전처럼 독기가 없고 순수하고 따듯해. 무엇보다도 행복해 보여.늘 만족하지 못하던 그녀가 커다란 배를 쓰다듬으면서 자랑스럽다는 듯이 웃는다니까."
“좀 상상이...”

사랑받지 못하고 자랐기에 정에 굶주린 모에. 그런 그녀가 아이를 갖게 되면서 그녀의 음악도 변한 것이다.

'모에 씨가 아이를 위해 노래하고 있다. 사랑스럽다는 듯이 정말로 사랑스럽다는 듯이 아기를 안듯이 그것 뿐인데 처음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대단해요. 늘 갖고만 싶어하던 모에 씨가 주는 기쁨으로 충만해 있닺니 사람이란 이렇게 변할 수 가 있군요. 난 전부터 당신이 싫었어요. 노래만이 우리를 이어준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지금의당신은 멋져요. 당신과 노래하는 것은 나의 긍지에요. 앞으로도 함께 노래하고 싶어요."

'동경하고 동경하고 질투하고 원망하고 상처 입힌 사람에게서 무엇보다도 자신의 긍지를 소중히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서 당신과 노래하는 것은 나의 긍지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얼마나 큰 죄를 저질러 왓는지 처음으로 깨달았다. 하느님 전 다시는 이 사람에게 상처입히고 싶지 않아요.'

이상이 이 만화가 그리는 세계이다.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던 이 만화의 작가는 일본만화에선 원로로 꼽히는 사람이다. 그런 원로가 만화 경력 40년에 만든 이 만화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돋보인다. 보통 사람에겐 낯설 수 밖에 없는 오페라의 세계의 내면과 그 세계를 배경으로 서로 어울릴 것같지 않은 성격의 라이벌을 그리는 이 만화는 삶의 깊이가 배어나온다.

그러나 문제는 10권까지는 긴장감을 가지고 그려지던 스토리가 11권부터는 멜로드라마로 추락한다는 것이다. “당신은 내 우상이에요. 시오 씨처럼 키우고 싶어요. 자기 자신에 대해 긍지를 갖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이책의 결말이다.

작가가 구상했던 것은 두 주인공이 삶의 여유를 갖게 되고 진정한 프라이드를 갖게 되고 둘이 서로를 존중하고 화해하는 것으로 끝내려던 것같다. 그러나 실제 결말은 모에의 죽음으로 그리고 그녀가 시오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끝난다.

시오가 그렇게 느꼈듯이 모에의 비열함과 천박함은 좋아할 수 없는 점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모에는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캐릭터이다. 그녀가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기에 그리고 그런 구덩이에서 기어오르려는 그녀이기에 왠지 공감이 가고 끌리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그런 캐릭터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고 있다. 그녀의 진화는 임신으로 멈출 성격이던가?

엉성한 결말이다. 그러나 10권까지 두 주인공을 그려내는 솜씨는 원로의 원숙미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런 점에서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이 시리즈는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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