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 협주곡 앨범을 보면 대개 3곡 중 하나가 들어간다. 브루흐(Bruch), 멘델스존, 브람스의 곡 중 하나이다. 예를 들어 EMI에서 발매한 사라 장(장영주)의 앨범은 브루흐와 브람스가 들어가고 그라마폰에서 발매한 안네-소피 무터의 앨범엔 멘델스존과 브람스가 들어가는 식이다. 세곡이 바이올린 협주곡에선 대표곡이란 말이다.

 

클래식을 많이 듣는 사람에게야 브루흐의 곡은 많이 알려졌지만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에겐 그게 누구야? 이런 말이 나올 것이다. 멘델스존이나 브람스야 들어본 이름이지만 브루흐?

 

아무리 매니아라도 바이올린 협주곡 외에는 브루흐의 곡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 사람의 곡이 대가의 곡들과 나란히 대표곡으로 꼽힌다면 그곡이 대단하다는 말이다. 들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브루흐의 곡은 그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J-Pop에서 나쓰카와 리미(夏川りみ)가 클래식에서 브루흐와 비슷하다 할 수 있다. 가창력으로 보면 미소라 히바리 이후 최고라 할만큼 J-Pop에선 손 안에 꼽히는 사람이지만 리미의 곡으로 기억하는 것은 두 곡 뿐이다. (사실상) 데뷔앨범의 1번과 2번곡인 そうそう童神’.

 

そうそう’ (눈물이 주루룩이란 뜻)는 원래 Begin의 곡이고 童神’(오키나와의 전통 자장가)은 리미의 고향인 오키나와 민요이다. 리미만 부른 곡이 아니란 말이다. 특히 童神은 오키나와 민요의 대표곡으로 리미만 부르지도 않았고 부르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워낙 리미의 버전이 강렬하기에 리미의 곡이 되어 버렸다. 그 이유는 리미만큼 두곡이 표현하는 오키나와 음악의 정신을 살려낸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출신지를 들여다보면 오키나와 출신인 J-Pop 가수가 의외로 많다. 일본 전체로 따지면 오키나와 출신이 통계적으로 과대대표된 것을 알 수 있다. J-Pop을 들어봤다면 알만한 이름인 Kiroro, Cocco도 오키나와 출신이다. 일본 전체로 보면 작디 작든 섬이 과다대표된 이유는 음주가무가 일상인 오키나와의 문화 때문일 것이다.

 

찬란한 태양, 에머랄드 빛 바다. 일본의 천국이라 불리는 오키나와의 이미지이다. 오키나와의 축복은 풍경만 아니라 배고플 일이 없는 풍요에도 있다. 천국에서 삶을 즐기는 것은 당연한 일. 술과 음악, 춤이 생활이 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런 축복받은 사람들의 음악의 첫인상은 '슬픔'이다. 그 슬픔은 역사가 만든 슬픔이다.

 

일본과 오키나와의 관계는 한국과 제주도의 관계와 비슷하다. 차이라면 제주도는 한국에 합병된 지 오래되었고 오키나와는 독립국이었던 시절이 그리 오래전이 아니라는 것 뿐, 착취와 차별의 역사는 다르지 않다. 그 역사의 정점은 제주도에선 4.3 사건이었고 오키나와에선 오키나와 전투였다.

 

민간인에게도 옥쇄를 강요한 오키나와 전투에서 10만 이상의 민간인이 죽어야 했다. 추정치에 따라서 민간인 사상자는 섬주민의 1/10에서 1/3까지 다양하다. 이중엔 군대가 강요한 집단자살도 포함된다.

 

희생은 전쟁 후에도 끝나지 않았다. 일본은 미국과 강화를 맺는 조건으로 오키나와를 미국에 넘기면서 오키나와를 버렸다. 이후 오키나와가 반환될 때까지 일본 본토로 가기 위해 오키나와인은 여권을 가지고 가야 했다. 지금까지 오키나와인들이 미군기지에 대한 악감정을 갖는 이유는 미군범죄도 있지만 역사적인 피해의식도 크다고 하겠다.

 

원래 오키나와는 일본의 일부가 아니었다. 류큐왕국이란 독립국이었다. 일본에 강제병합된 후 외카와에 대한 일본의 태도는 20세기보다 더 심한 일방적인 착취였다.

 

천국의 음악이 슬픔을 노래하는 이유이다. 흑인음악인 블루스가 우울한 이유와 마찬가지이다.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어떻게 해볼 수 없는 현실을 노래에 슬픔을 담아 발산하는, 블루스 감성과 다르지 않다. 흑인 특유의 낙천성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의 반영이 아니다. 그들이라고 비참한 현실을 못보지 않는다. 단지 어쩔 수 없기에 내일은 행복할거라고 낙천적이 되야만 했고 우울한 블루스는 슬픔을 이기기 위해 슬픔을 노래했다. “Blues is happy music”이라 말했던 이유이다.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음악은 삶의 비애를 묻고 위안을 채우며 고통을 달관하는 수단이었다. 

 

자신의 곡도 아니고 누구나 부르는 곡이 리미의 곡이 된 이유는 그 감성을 누구나보다 뛰어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미가 처음부터 오키나와의 음악을 들고 나온 것은 아니다. 두곡으로 이름을 알리기 전 그녀는 엔카 가수로 데뷔했었다. 오키나와 음악을 들고 나와봐야 특이한 음악으로 취급받을 뿐이고 매니아의 음악에 그칠 뿐이다. 그녀만 아니라 많은 오키나와 출신들이 그렇게 주류의 음악을 해야 햇다. 제주도 출신이 사투리를 숨기듯 통하지 않을 음악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오키나와 민요를 말할  흔히 아름다운 '꺽기' 언급한다. '꺽기' 단성음악인 동아시아 음악에서 흔히   있는 기법으로 멜로디 라인의 직선운동에 상하진폭을 주어 복잡성을 더하는 장식음을 말한다. 북이나 사미센(三線) 정도의 단출한 반주 또는 무반주로 불리는 판소리, 시조창 민요 등의 단성음악이 다성음악에 뒤지지 않는 깊이를 갖는 것은 바로 멜로디 라인에 더해지는 장식음 때문이다. 오키나와 민요는 거기서 한단계 더 나아간다. 장단에 맞춰  음절에 여러 음을 할당하여 분산화음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오키나와 민요의 장식음 기법은 화려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이러한 기법은 기본 리듬과  변형을 이해해야 하며 멜로디 라인의 움직임에 집중  것을 요구한다. 다시 말해  전통의 작법을 먼저 이해해야 즐길  있다. 

 

모든 문화가 그렇듯 음악 역시 힘의 논리가 관철된다. 강자의 음악이 시장을 지배한다. 미국의 팝이, 미국의 클래식인 재즈가 세계의 음악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미국의 헤게모니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에서도 약자의 음악인 오키나와 민요를 듣기 위해 누가 그 음악의 논리를 이해하고 배우는 수고를 하겠는가?

 

그러나 90년대 월드뮤직이 유행하면서 시장이 바뀌었고 오키나와 붐이 일어난다. 리미가 오키나와 음악을 들고 나온 시점이었다.

 

2000년을 전후한 오키나와 3세대 음악가들은 오키나와 민요의 꺽기 기법을 멜로디 라인을 돋보이게 하는 수단으로 재해석한다. 다른 단성음악 전통의 문화들이 다 그렇듯이 서양음악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시장의 귀가 그 음악에 익숙해졌기에 더더욱 그렇다. 전통의 재해석은 어디까지나 그런 시장의 상황을 전제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오키나와 음악의 전통을 팝에 어떻게 접목할 것인가?

 

그런 시도의 한 예로 하지메 치토세(ちとせ)를 들 수 있다. 하지메의 음악을 처음 듣는 사람들의 반응은 웃음이다. 꺽기 때문이다. 그녀 음악의 수준은 웃음거리는 아니다. 그러나 너무 생소한 꺽기라는 기법 때문에 우선 낯설음을 느끼고 웃음이 나오는 것이다. 오키나와 민요를 들어보면 그녀의 꺽기는 원형에 더 가까운 각도를 갖는다. 단지 그녀는 장식음 기법인 꺽기를 멜로디 라인의 메인 라인에 통합해 움직임을 단순화했다. 그러나 그런 단순화 때문에 낯설음은 더 강해진다. 결국 하지메 치토세는 특이한 음악이란 반응을 넘지 못하고 서서히 잊혀졌다.

 

리미의 오키나와 민요 커버를 보면 민요라는 느낌보다는 팝이란 느낌이 더 강하다. 하지메 치토세가 겪어야 했던 난관 때문이다. 낯설게 들리지 않기 위해서. 대신 리미는 오키나와 음악의 감성을 살리는 방향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으로 오키나와 전통을 살렸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야나와라바(やなわらば)의 음악은 형식성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이 어떤 성과를 낼 수 있는가를잘 보여준다.

 

이들의 데뷔앨범인 의 첫인상은 아름다움이었다. 이 아름다움은 멜로디 라인의 아름다움이다. 이들은 꺽기를 멜로디 라인에 굴곡을 만들어 복잡하면서 아름다운 움직임을 유도하는 것으로 재해석한다. 음악의 포커스는 멜로디라인의 운동이 되어야 하므로 반주는 단순해야 한다. 멜로디 라인의 움직임이 빠르고 복잡하므로 보컬의 운동성이 높아야 하고 보컬의 음역이 높을 수록 효과적이다. 맑고 자연스러운 고음을 구사하는 나쓰카와 리미의 음색은 이런 기법과  어울린다. 그러나 그녀는 내용을 선택하고 형식은 최소한으로 줄였다.

 

야나와라바의 편성은 기타와 사미센(三線)이란 최소한 편성이다. 음악의 초점을 멜로디 라인을 그리는 보컬에 맞추기 위해서이다. 멜로디 라인은 꺽기의 재해석에 맞게 복잡하면서 아름답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과 복잡함은 미성의 소프라노와 알토의 이중창으로 더 강화된다. 두 보컬이 교대로 멜로디 라인의 리드를 맡고 다른 한명은 화음을 넣는다. 단순히 백코러스에 그치지 않는 완벽한 화음이다. 서로를 오랫동안 알기에 서로를 잘 이해하는 팀만이 가능한 화음이다. 소프라노가 알토에 화음을 넣어주면서 이들 같이 자연스러운 경우는 드물다. 리드 보컬이 둘 이상인 경우의 좋은 예는 The Wailin' Jennys이다. 그러나 이들의 경우 곡마다 리드 보컬이 고정되지 한 곡 안에서 리드 보컬이 교대하지 않는다. 서로의 호흡이 완벽하지 않으면 그리고 그런 복잡함을 곡의 형식이 받쳐주지 않으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한 구성의 복잡성은 음악의 형식을 더욱 풍부하게 하면서 멜로디라인의 복잡성을 더 강화해준다.

 

그러나 나쓰카와 리미와 달리 야나와라바의 음악엔 오키나와 민요의 정서가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이들이 부른 そうそう童神을 리미의 버전과 비교해보면 평범하게 들린다. 감성의 무게가 실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의 음악은 슬픔보다는 형식미가 주는 즐거움에 초점이 맞춰지며 정서 역시 그런 아름다움이 주는 밝음에 기운다. 나름대로 좋은 방향이라 할 수 있으며 형식실험의 가능성을 극대화한 예이다.

 

그러나 희한한 일은 리미도 그렇고 야나와라바도 오키나와 음악의 전통을 벗어나면 평범해진다는 것이다. 리미는 오키나와 3세대의 선두주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더 넓은 청중을 위해 오키나와 스타일에서 멀어질수록 그녀 음악의 질은 낮아진다.  앨범 '南風' 이후 그녀의 앨범은 음악적으로는 다양하지만 그녀 재능의 반도 살리지 못하는 어정쩡한 곡들이 많아진다. 

 

야나와라바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고안한 형식실험을 벗어나 주류에 가깝게 갈 때 그들의 음악은 평범하다. 두번째 앨범인 ぐすい이 그러하고 J-Pop곡의 커버앨범인 泣唄 笑唄이 그러하다. 예를 들어 우타다 히카루(宇多田ヒカル)First Love 커버를 원곡과 비교하면 왜 의 정서가 밝음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런 형식에는 감정의 깊이, 떨림을 담기가 어렵지 않은가 생각된다.

 

나쓰카와 리미와 야나와라바의 공통점은 전통의 무게와 깊이를 떠날 때 그들 홀로 해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그리고 전통의 일부만 가져왔을 때 그들이 보여준 한계에서 전통의 재창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예이다. 그러나 그들이 보여준 음악은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국악(또는 민요)의 재해석보다는 진일보한 수준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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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토리 176번째 책이야기>
<이미지로 읽는 일본문화> - 허인순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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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단 모집기간 : 2009년 9월 21일 월요일 ~ 2009년 9월 27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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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작성마감일 : 2009년 10월 16일 (책수령후 평균 2주 이내)




이미지로 읽는 일본문화 (어문학사) / 허인순 외 (저자)
이 책은 독자들이 일본문화라는 광범위한 대상에 대해 한결 가벼우면서도 쉽게 알 수 있도록 하는 의도로 저술되었으며, 이를 위해 군더더기 없는 필치와 빠른 전개로 일본문화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또한 일본의 아사쿠사 신사, 히메지성 등 유명 유적지라든가, 샤미센과 같은 일본의 악기, 노나 가부키, 인형 조루리 등의 공연예술 음악,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작가인 나쓰메 소세키와 히구치 이치요, 전통 마쓰리(축제), 스모, 가라테 등의 스포츠, 미소시루, 스키야키와 같은 냄비요리, 자완무시와 같은 찜, 돼지고기와 감자로 조린 니쿠자가 등을 소개하면서도 그 안에 담겨 있는 뜻이나, 유래, 문화 등으로 일본인들의 생활풍습, 신념, 가치관, 국민성 등을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어 ‘일본문화 개론서’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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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클래식 입문용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이런 류의 책들은 대개 비슷한 형식을 취한다. 저자가 보기에 클래식에 입문하려는 사람들에게 좋을 것이라 생각하는 곡들을 나열하고 그곡들에서 느낄 수 있는 정서적 세계와 작곡가에 대한 설명 그리고 추천 음반(클래식은 동일 곡에 대한 다른 연주가 너무 많으므로 평론가들이나 애호가들 사이에서 명반으로 꼽히는 음반을 소개하는 것이 필수적이다)이 대개 이런 책들의 형식이다.

 

이책은 그런 표준 형식에 한가지를 덧붙인다. 그 곡의 정서적 세계와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그림을 곡을 소개하는 챕터의 앞에 놓고 그림 설명과 함께 곡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을 짧게 캡션으로 다는 것이다. 이런 류의 책을 여러권 본 편이지만 이런 정성을 들인 책은 이책이 처음이다.

 

저자가 음악평론가이니 곡에 대한 설명과 작곡가에 대한 소개 또는 재이있는 일화를 덧붙여 내용을 부드럽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림을 붙인다는 것은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고 평소에 미술에 대한 소양도 쌓아야 하는 것이니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림을 골라 매치시키는 정성은 곡을 설명하는 데도 그대로 나타난다. 대개 이런 책들이 그렇듯이 곡에 대한 설명은 길지 않다. 10페이지 내외이다. 그러나 그 짧은 설명에서 최대한 독자가 곡을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저자 자신의 사적인 경험들을 곡과 매치시키면서 글로는 불가능한 음악에 대한 설명을 해나간다.

 

물론 이책은 이책 자체로서 읽힐 것은 아니다. 이책에 소개되는 곡들을 듣는 것으로 이책의 독서는 완성된다. 그리고 이책을 산다는 것 자체가 어떤 곡을 먼저 듣는 것이 좋을 까하는 소개를 위한 것이니 그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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