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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별 - 타임패트롤 시리즈 2 ㅣ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15
폴 앤더슨 지음, 이정인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8년 11월
평점 :
타임 패트롤 시리즈의 2권인 이책은 로마제국 시절 게르만족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당시의 게르만족에 대한 저자의 관점은 다음 구절로 요약된다.
“게르만 족이 로마를 이길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게르만 족은 결코 로마를 무너뜨리지 못했어. 고트 족, 반달 족, 부르군드 족, 롬바드드 족, 색슨 족 등과 같은 이들의 후손들이 로마를 정복한 건, 제국이 내부에서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에 거저 먹은 거나 다름없는 일이었지. 게다가, 제국은 그 이전에 이미 게르만 족을 기독교로 개종시킴으로써 그들을 정신적으로 정복했어. 그래서 고대문명이 그랬듯이 라인 강이나 창백한 북해 바다가 아닌 지중해 연안에서 새로운 서구문명이 태어난 거야.”
게르만 족을 논평하는 이 구절은 강대한 게르만 부족의 왕을 묘사한 다음에 따라오는 논평이다. 게르만 족의 왕은 부족의 회의와 대제사를 주재하고 전쟁의 지휘관이었다. 그러나 왕의 일상은 땅을 가진 지주였고 소작인, 노예, 일꾼 들과 같이 농사일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왕은 지고한 존재가 아니라 부족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법과 전통을 따라야 하는 존재였고 폭동이 습관인 부족민들은 기분 내키는 대로 왕을 끌어내렸다. 왕실의 자손은 누구라도 그 자리를 요구할 권리를 갖고 있었고 왕위는 자신을 지지할 전사를 얼마나 모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었다.
그 시절 문명과 야만을 나누는 것은 정치제도의 문제였다고 저자는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책에 실린 ‘바다의 별’이란 중편에는 여주인공이 로마상인들에 의해 윤간을 당하는 장면이 있다.
당시 자신들을 문명인이라 생각하던 로마인과 그리스인들은 노예를 부렸다. 그러면 그 노예들은 어디서 나왔는가? 역사서에선 주로 전쟁포로들이었다고 말한다. 그리스와 로마가 끊임없이 전쟁을 한 것은 전리품과 노예를 획득하기 위해서였다고 본다.
그러나 노예는 대항해시대에 유럽인이나 바이킹들이 그렇게 했듯이 상인들이 변방을 돌아다니며 사기도 하고 지나가다 우연히 만난 사람을 습격해 사로잡아 얻기도 했다.
이책에서 여주인공은 연인과 함께 해변을 거닐다 그들을 본 로마교역선의 눈에 띄었고 윤간을 당한 다음 살해되거나 노예로 팔려갈 운명이었다. 타임 패트롤이 그녀를 구해주지 않았다면 그런 운명대로 흘러갔을 것이다.
당시 게르만족을 저자는 아이같이 솔직하고 순진하다고 평한다. 당시 로마인들의 평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순진함의 이면에는 아이 같은 잔인성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잔인성은 당시를 살던 자칭 문명인이라는 사람들도 다를 것이 하나 없었다.
저자는 문명과 야만을 나눈 것은 정치제도의 문제였다고 보는 것같다. 왕이라고 하지만 어떤 구심점도 될 수 없는 이름에 불과한 왕. 언제든 갈아치울 수 있고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불안정한 왕의 지위.
더 큰 문제는 게르만족, 켈트족이라 칭해지지만 그것은 학문적인 총칭에 가까울 뿐 어떤 실체가 될 수 없는 그들의 분열성이다. 부족으로 나뉘고 그 부족도 넓은 지역에 흩어진 상태로는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로마제국이 그들을 압도한 것은 힘을 집중할 수 있었던 정치 시스템의 강점이엇다.
1권에서 저자는 2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가 져 로마 대신 켈트족이 패권을 차지한 세계를 그린다. 그 세계는 조각 조각 나뉜 분열된 세계엿다. 지금의 프랑스가 그렇듯이 켈트족은 하나로 뭉치는 재주에선 잼병이다. 천성적으로 분열하기 좋아하는 켈트족의 성향은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 정치의 아수라장을 설명한다.
로마가 자멸한 후 유럽의 패권을 잡은 게르만족은 저자가 말하듯이 이미 로마에 의해 정신적으로 정복당한 사람들이었다.
게르만족의 문화가 이후 역사에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영어, 독어와 같은 언어를 물려주었고 부족의 민회와 같은 제도는 의회로 발전했으며 그들의 전사적 전통은 봉건제의 기사로 바뀌었으며 그들의 호전적이며 뒤떨어진 문화는 중세를 암흑기라 불리게 하는데 충분했다.
그러나 그들은 로마를 정복하기 전부터 이미 로마에 의해 정신적으로 압도된 상태였고 그들은 로마라는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로마인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그들이 노예상인과 세금징수인과 잔인한 놀이 말고 다른 것들도 가져온 건 사실이지. 평화, 번영, 넓어진 세계. 그러나 그것들은 오래 가지 않았어. 썰물이 빠져나가자 여기저기 잔해들이 남게 되었지. 책과 기술, 신앙, 사상, 예전에 존재했던 것에 대한 기억, 뒤의 세대들이 간직했다가 다시 건설할 재료들, 그 기억들 사이에 잠시 생존 그 자체에만 전적으로 목을 매지 않은 한 시기가 존재했었다는 것도 포함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