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 일기 쓰기부터 소설 쓰기까지 단어에서 문체까지
안정효 지음 / 모멘토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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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제목처럼 글쓰기에 대한 책이다. 글쓰기와 말하기를 어려서부터 강조하는 영미권에선 글쓰는 요령에 대한 좋은 책이 오래전부터 나와 있다. 책은 많고도 많지만 그책들의 요점은 대동소이하다: 간명하게 구체적으로 짧게. 형용사 3개로 요약된다.

글쓰기를 영어작문에서 배웠던 저자의 요점 또한 마찬가지이다. ‘있을 수 있는 것은 모조리없앤다’라는 저자의 원칙을 보자. 진행형의 ‘있다’, 가능성의 ‘수’, 부정대명사 ‘것’의 공통점은 앞에서 말한 3가지 원칙을 모조리 깬다는 것이다. 이 세가지 단어는 말을 늘어지게 한다. 구체적이지 않다. 말이 늘어지고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에 말의 박력이 떨어져 간명하지 않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싸우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있다. 그래서 길이 꽉 막혀 있다. 신경질이 난 운전자들이 경적을 울려대고 있다. 한 청년이 디카로 이 장면을 찍고 있다.”

저자가 이 문장을 어떻게 분석하는지 보자 “이렇게 말끝마다 진행형을 붙여놓는 까닭은, 대부분의 경우, 불안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짧은 단어나 짧은 문장을 구사하여 만든 짧은 표현을 두려워한다. 그런 문장을 쓰면 실력이 짧아 보일까봐 걱정이 되어서이다. 그러나 위 문장에서 ‘있다’라는 단어를 모조리 없애버려도 진행형은 멀쩡하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싸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구경한다. 그래서 길이 꽉 막혔다. 신경질이 난 운전자들이 경적을 울려댄다. 한 청년이 디카로 이 장면을 촬영한다.

이렇게 ‘있다’만 솎아내더라도 오히려 문장이 간결해져서 힘이 생긴다. 같은 단락에 나오는 ‘보고 있다’와 ‘가고 있다’와 ‘하고 있다’와 ‘오고 있다’의 경우, 같은 말이 네 번이나 반복되어 너덜너덜해 보이지만, 모든 표현의 공통 분모인 ‘있다’를 없애버리면 ‘본다’와 ‘간다’와 ‘한다’와 ‘온다’가 되어, 모든 단어가 갑자기 다양한 모습을 저마다 뽐낸다. ‘있다’는 여드름처럼 모조리 짜버려도 손해 볼 일이 별로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문장을 다듬을 만한 자신감과 용기가 없어서, 긴 문장이 유식하다는 착각에 빠져, ‘간다’를 ‘가고 있다’라고만 해서도 안심하지 못하여 ‘가고 있는 것이다’라고까지 한다.

짧은 밑천이 탄로날까봐 다른 사람들이 불안해서 너도나도 ‘있다’와 ‘것’으로 자꾸 문장을 잡아늘일 때는 오히려 혼자서 솎아내고 줄여야 눈에 잘 띈다.”

이외에도 저자는 여러가지 원칙을 말한다. 그러나 나머지 원칙들 역시 simple and clear란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가령 수동태를 쓰지마라는 영어권에서 널리 통용되는 원칙 역시 뜻을 명료하게 한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

접속사를 글더듬이라 부르며 다 쳐내라고 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원칙은 동일하지만 조금 뉘앙스는 다르다. 이 경우에는 “눈에 걸리적거리는 단어들, 특히 긴 단어를 없애버리면 모든 문장이 간결해지고 압축된 문장에서는 폭발력이 생긴다.”고 말한다. 간결하게 말하라는 것이다. 이 경우에도 저자는 글을 너저분하게 늘어트리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라 말한다. 두려움은 자신이 할 말에 대한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할 말을 모르는데 듣는 사람이 알아듣기를 바랄 수는 없다.

그러나 이책은 소설가가 소설가를 위해 쓴 책이다. 책의 상당 부분은 소설을 쓰는 방법에 할애된다. 지면이 상당한 만큼 여러가지 다양한 기법이 소개된다. 그러나 그 기법들을 모두 소개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저자의 입담을 재연할 재주가 없기도 하지만 리뷰에서 그런 것은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의 나머지 부분을 한 마디로 요약할 수는 있다: 소설가에게 영감은 없다.

“사람들은 흔히 작품이 순간적인 영감에서 싹이 튼다고 믿는다. 영감이 씨앗이나 마찬가지여서, 신으로부터 계시가 내리듯, 어떤 깨달음이 열리고, 그러고는 영감의 씨앗에서 뿌리가 힘차게 뻗어 내리면서 싹이 돋아나 나무가 자라고, 잎이 무성하게 피어나고, 꽃과 열매가 맺힌다고 상상한다. 그러나 나의 글쓰기는 결코 그렇게 쉬웠던 적이 없다.”

저자는 쉬웠던 적이 없다고 말하지만 이책의 내용을 보면 저자는 영감을 믿지 않는다. 이책의 내용은 거의 저자 자신이 어떻게 소설을 써나갔는가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책이 재미있게 읽히고 살아 숨쉬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저자가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말하는 것을 보면 그의 소설은 발냄새가 물씬 배어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어디를 가나 소설의 소재거리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다. 소재거리를 만나면 언제든 메모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니 같은 소설가들과 어울릴 시간도 없다. 아니 같은 글쟁이들과 어울려 봐야 맨날 같은 이야기나 맴돌게 되니 소설가에겐 치명적인 시간낭비다.

글쓰기 자체도 고상한 것과는 거리가 먼 막노동이다. 어떤 글쓰기건 어떤 창작활동이건 마찬가지이지만 쉽게 나오는 것은 없다. 땀 흘린 만큼이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의 일과를 ‘비낭만적’이라 말하며 “이른바 영감은 특히 장편소설의 경우 한 순간에 반짝 떠오르는 축복이 아니라 이렇게 오랜 시간이나 세월에 걸쳐 공을 들여 조금씩 쌓아 올리는 무형의 집 한채와 같다.”

사실 이책의 소설작법을 다루는 부분은 구체적인 소설 기법보다는 이렇게 직업인으로서 소설가가 어떤 자세로 태도로 작업에 임해야 하는지 어떤 관점으로 세상과 작품을 보아야 하는지에 더 많은 초점이 가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책은 재미있게 읽힌다. 개인적으로 예술가와는 거리가 먼 사람인데도 이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소설작법으로가 아니라 소설가가 어떻게 사는가를 소설가의 일과를 보면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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