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엘 마이어로위츠 Joel Meyerowitz 열화당 사진문고 26
콜린 웨스터벡 지음, 신가현 옮김, 조엘 마이어로위츠 사진 / 열화당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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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사진(street photography)’이란 장르가 있다. 다큐멘터리 사진의 일종인 거리의 사진은 ‘있는 그대로(candid situation)’를 모토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법 상으로 스트레이트 포토의 일종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거리의 사진은 거리, 공원, 해변, 매장, 집회와 같은 공공장소를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장소 자체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거리를 채우는 사람들에 관심이 있고 거리를 거리답게 하는 것들에 관심이 있다. 거리에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주제가 될 수 있다. 그 무엇이든 카메라라는 기계의 시선으로 그것의 순수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다.

우리가 그냥 지나치던 것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기에 거리의 사진은 아이러니한 것이 보통이며 주제와 거리를 두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 책이 다루는 조엘 마이러로위츠의 세계는 다르다. 그는 분명 거리의 사진가이다. 그의 초기작 중 하나인 아이를 찍은 사진을 보자. 울먹이는 표정으로 어쩔줄 모르며 안절부절하는 아이가 카메라를 바라본다. 사진의 중심에 후드에 파묻힌 아이의 주변에는 등뒤에서 어깨를 잡고 있는 남자 손과 아이의 옆에서 또 아이를 잡고 있는 여자의 손이 있으며 우측 의 배경엔 위를 보는 노파가 메우고 있다.

“퍼레이드 사진을 찍던 시절에 나는, 어린아이는 어른과 아주 다른 경험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느 날 카메라에 새 필름을 넣으려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을 때 우연히 군중 틈에 낀 한 남자 아이의 얼굴을 마주보게 되었다. 나는 이렇게 낮은 자세로 있으면서 어른의 세계에 제압당한 어린아이의 느낌이 어떤지 알게 되었다. 그후 몇 주 동안 어린아이의 눈높이에서 사진을 찍었다. 끔찍한 경험이었다. 쇼핑백과 카메라, 부모나 다른 어른들의 펄럭이는 외투자락, 손에 들고 있는 불을 붙인 담배 등, 아이들은 이런 것들로부터 끊임없이 위협을 받고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키가 일 미터가 채 되지 않는 어린아이들을 두렵게 했다.”

그러나 그의 세계는 다른 거리의 사진가들과 다르다. “로버트 프랭크가 미국인의 삶에서 비극적인 면을 보았다면 마이어로위츠는 흥겹고 희극적인 삶을 포착했다. 여러 해 동안 마이어로위츠와 함께 작업했던 게리 위노그랜드가 거칠고 도전적인 시선을 가졌다면 마이어로위츠는 관대하고 애정어린 시선을 보여주었다. 또한 리 프리들랜더가 냉소적인 유머 감각을 소유했다면 마이어로위츠는 천성적으로 낙관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넉넉한 웃음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우리는 삶이 마이어로위츠의 사진이 제시하는 것처럼 흥미롭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거리의 사진은 시선이 냉정하다. 시선이 냉정하기에 컬러보다는 흑백이 적합하다고 생각되어 왔다. “사진에서 흔히 정의하듯이, 흑백사진은 차가운 느낌을 주어 아이러니, 거리감, 예술성을 표현하는 데 적합하다.”

그러나 마이어로위츠의 천성에는 그런 냉정한 시선이 어울리지 않았던 것같다. 그는 거리의 사진 전통에선 처음으로 컬러 사진을 시도한다.

“컬러 사진은 따뜻하고 풍부하며 흥겹고 열정적인 느낌을 잘 전달한다.” 그러나 거리의 사진가들은 흑백사진을 고집했었고 현장사진은 흑백인 것이 공식처럼 되었었다.

“사진은 품격이 떨어지는 통속적인 대중매체라는 통념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예술로서 당당히 자리를 구축했다. 사진이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는 점을 입증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사진 자체에서 예술로서의 사진을 구해내야 했다. 그 어떤 예술 분야보다도 컬러 사진은 이러한 미학적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컬러 사진이 광고와 키치,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매체라는 이유로 예술 사진가들은 오랫동안 이를 기피해왔던 것이다. 우리 주변에 컬러가 온통 흔해지면서 흑백사진이 과거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기가 도래햇는데, 이렇게 흑백사진을 고집하는 것은 사진 매체를 변혁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주류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의미했다. 1970년대 중반 무렵에 이르러서 당시 독립적으로 작업을 하던 소수의 미국 사진가들이 컬러 사진의 문제를 정면으로 비판하기 시작했다.” 마이어로위츠는 그 소수 중의 한 명이엇다.

그가 컬러를 도입한 이유를 보여주는 사진은 1962년 뉴욕의 거리에서 찍은 사진일 것이다. 이 사진은 유리 너머의 장면을 찍은 것이다. “한 상가의 유리창 너머로 붉은 드레스를 입은 처녀가 남자친구의 넘겨 올린 머리를 정성스럽게 다듬어 주고 있다. 그녀의 손길은 어릴 적 인형의 머리를 다듬어 주던 방식과 같을 것이다. 카메라를 들어 이 연인의 은밀한 장면을 찍으려고 했을 때 나는 커다란 용기를 내야 햇다. 그러나 이들과 나 사이에 놓인 유리창이 처녀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동작을 포착할 수 있을 때까지 나를 보호해주었다. 사진을 찍은 후 나는 곧바로 다음 장면을 찾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 사진에서 여인의 빨간 드레스를 빼고 유리창에 비친 저녁 노을의 노란 색조를 빼고 걷어진 블라인드의 연두색을 뺀다면 연인의 관계는 묘사할 길이 없다.

컬러를 시도한 후 그는 1970년대 후반부터 풍경사진과 도시사진 작업을 병행했다. 컬러를 도입하면서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이글스턴의 색채는 자극적인 반면에 쇼어의 색채는 희미하고 창백하며 때로는 아무런 느낌도 주지 않는다. 이들의 작업은 제각기 상업적 사진이 활용하는 색채의 풍요로움에 의도적으로 반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리창 너머에는 목이 드러나는 빨간 원피스를 입은 금발의 여성이 등을 보인 채 자기 남자의 머리를 손질해주고 있다. 마이어로위츠는 이들과 정반대의 입장을 취했다. 그는 컬러 필름에 내재된 색채의 풍부함을 그대로 수용해 특유의 유머 감각으로 색채를 운용함으로써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다.”

그의 이후 작업의 특성은 베르사이유 궁을 찍은 사진에서 잘 나타난다. “마이어로위츠는 컬러 사진의 묘사적 특성에 이끌려 색채 자체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새로운 사진 분야를 개척하게 된다. 이러한 실험은 그가 1966년에 찍은 인적조차 찾을 수 없는 텅 빈 베르사유 궁의 궁정 사진에서 그 윤곽을 드러냈다. 베르사유 궁 전면의 벽돌 하나하나는 식별이 가능할 정도로 선명하다. 이 사진에는 오로지 색채만이 묘사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 사진에 대한 작가 자신의 말이다. “이 사진은 규모와 세부에 관한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인적 하나 없는 궁전은 인형극이나 바그너의 작품을 상연하기 위해 준비된 텅 빈 무대처럼 보인다. 비바람이 몰아친 직후 미약한 햇살이 비치는 궁전은 황량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잇다. 바닥에 깔린 포석과 건축물의 벽돌, 석판과 같은 조그마한 부분들이 보는 이에게 현실감을 일깨워 준다. 이처럼 풍부한 세부를 통해서 우리는 이 거대한 공간이 연극적 환영이 아니라 실재하는 장소라고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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