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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문화사
이원희 지음 / 말글빛냄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재즈평론가도 그렇다고 음대를 나오지도 않은 사람이, 일개 감상자일 뿐이라고 자신을 말하는 사람이 쓴 재즈책을 보게 된 이유는 그런 저자가 썼음에도 문화관광부 추천도서’씩’이나 되었다는 의외의 결과때문이다.
재즈는 어렵다. 적당히 멜로디라인만 따라갈 수 있으면 즐길 수 있는 팝과 다르기 때문이다. 클래식만 하더라도 듣는 것만으로 무슨 코드인지 알아듣고 복잡하게 변주된 모티브를 알아 볼 수 있어야 하며 조바꿈이라든지 변박자등을 알아챌 수 있어야 즐길 수 있다. 그런데 클래식보다 후에 성장한 재즈는 그보다 훠~~얼씬 복잡하다. 하다못해 기타라도 칠줄 알아야, 악기를 연주하고 악기의 음을 이해할 수 있는 귀가 있어야 들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배경과는 동떨어진 저자가 쓴 이책이 정부의 추천씩이나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책이 자신의 소개대로 감상자로서의 의문에 답하는 저자 자신의 탐색에 스스로 답하는 과정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록에 익숙해서인지 군데군데 대책없이 비워놓은 듯한 사운드에 당혹했다. 동양화도 아니면서 여백의 미를 강조하는 듯했다. 그랬던 재즈가 조선시대 색시처럼 내게 다가왔다. 얼굴조차 드러내지 않고 수줍게 웃어보였다. 조용히 흐르던 음이 부드럽게 내 마음을 녹였다.” 그러나 재즈는 다가가면 갈수록 얼굴을 바꿔댔다. “이해하기 어려운 음으로 가득 찬 채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재즈의 속도에 두 손을 들었다. 나는 나는 말 많고 독똑한 여자의 또렷한 대응에 쉽게 토라져버리는 속 좁은 조선시대 남자였다. 재즈는 현학적 취향을 지닌 학구파 여성이었다.”
결국 저자는 오기로 버틴다. 열번찍으면 넘어간다. 그렇게 버틴 저자는 또 얼굴을 바꿔댄 재즈를 만난다. “이 음악에 과연 여성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까? 아무리 양보해도 선이 굵고 거침없었다. 그건 남성의 소리였다. 당시까지 내게 재즈는 록과 달랐다. 그것은 한없이 부드럽고 조곤조곤한 여성일 뿐이었는데 학구파 신여성으로 돌변하더니 이내 굵은 목소리의 남자로 등장하는 것이 아닌가.”
어느 얼굴이 진짜일까? 결론은 그 모두이다. 어떤 이름이 그렇지 않겠냐마는 재즈는 정의하려 덤비면 그 정의를 하는 순간 바뀌어 버리는 살아있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스윙을 예로 들어보자. 보통 재즈 입문서를 보면 스윙을 느낄 수 없으면 재즈가 아니라 한다. 스윙의 정의는 복잡하다. 들으면 안다, 보다 더 정확한 정의는 불가능하다. 좀더 구체적으로 하자면 들으면 손을 까딱이고 몸을 흔들고 싶은 느낌이 있다면 스윙이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생각나는 예는 Emily-Claire Barlow의 Tribute 앨범 1번 트랙이다 스윙 외에도 고전적인 재즈의 특징이 잘 살아있는 좋은 보컬 재즈곡이다)
그러나 스윙을 느낌으로가 아니라 말로 정의하자면 난감해진다. 권위있는 책인 “재즈북’에서조차 스윙의 정의를 내리기보다는 “음악가와 비평가 혹은 음악학자들이 정의한 스윙의 개념을 소개하면서 그 정의의 부족한 면을 지적할 뿐이다. 이처럼 너무도 당연해 보이는 스윙에 대해서조차 일관되게 규정해내지 못하고 있다.” 사정은 블루노트, 엇박자와 같은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장르의 정의조차 애매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볼 때마다 재즈의 얼굴이 달라진 이유이기도 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블루노트로 연주되지 않은 재즈는 재즈라 말할 수 없다. 이토록 중요한 블루노트는 유럽음악의 기준으로 반음화된 3도와 7도를 말한다.” 문제는 이 반음이 반 정도이지 딱 반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럽음악에서 보자면 음정도 맞지 않는 음악이 된다. 그러나 “그렇게 연주해야만 블루노트는 제대로 연주했다 할 것이다. 이러한 모호함이 재즈의 본질이다.”
그러면 왜 이런 모호함이 생겼는가? 다양한 설명이 가능하지만 저자는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접근한다.
“이러한 현상은 흑인음악을 서양음악체계에 적용하면서 발생했다.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의 후손은 가해자의 음계를 바탕에 두고 자신들의 음악을 표현해야 햇다. 흑인노예들이 그들의 5음계를 서양의 7음계에 적용해야 했을 때 발생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반음 내려야 했다,”
맞지 않는 틀에 억지로 맞춰졌기에 블루노트는 엄밀할 수 없었다. 그 부정확은 미학의 지위로 올려진다. 악보로 표현할 수 없기에 “연주자들은 저마다 그들만의 블루노트 감각을 익혀야 한다. 그 감각을 체득하지 못한 연주자는 자신의 재즈를 표현할 수 없다. 이런 미묘함을 재즈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훌륭한 재즈 연주가는 블루노트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내가면 약간씩 빗나가는 아슬아슬한 연출을 통해 음악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재즈에서 그것은 나름대로 까다로우며 훌륭한 연주다. 이를 유럽음악의 관점에서 표현하자면 ‘가급적 정확함을 지향하며 끊임없이 부정확해질 뿐이다.’”
블루노트의 특징처럼 저자는 재즈를 모순의 미학이란 말로 정리한다. 블루노트가 태어난 이유처럼 재즈는 흑인노예와 백인이 만났을 때의 긴장감에서 태어났다.
주인의 음악에 억지로 끼워 맞춰 만들어진 재즈는 서양음악도 아프리카 음악도 아닌 미국의, 흑인의 음악이었다. 그리고 그 긴장의 미학은 음악의 형식뿐 아니라 내용도 정의했다.
노예에서 해방된 후에도 흑인은 자신이 사는 사회에 끼어들어가지 못하고 주변인으로 살아야 햇다. 빌리 홀리데이는 ‘44년의 짧은 생애동안 굶주림, 노동, 성폭행, 매춘, 인종차별, 수감생활, 이혼 등 한 사람이 겪기에 너무 많은 고통을 받았다. 블루스 여제 베시 스미스가 교통사고를 당한 후 흑인이라는 이유로 앰불런스를 얻어타지 못해 죽어야만 했던 것만큼이나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
극단적인 경우이지만 노예의 후손이 사는 법은 간단하지 않았다. 맞지 않는 사회에 억지로 자신을 끼워맞춰가야 했던 그들은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 언제 어디서 죽어나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흑인들에게 이상적인 미래는 멀기만 했고 “당장 살아야 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백인의 견고한 사회에서 버텨야 햇다. 타협이 미덕일 수 밖에 없었다.
블루노트란 말은 블루스의 음계란 뜻이었다. 블루스를 정의하는 것은 형식보다 내용이 우선이다. ‘블루스는 흑인노예들과 그 후손들의 한을 잘 담아낸 음악으로 그들의 아리랑이었다. 지금도 블루스의 음인 블루노트는 재즈의 핵심음적이며 블루스 정서는 재즈인들이 체득해야 할 중요한 감성이다. 재즈 3대 디바인 빌리 홀리데이, 엘라 피츠제럴드 그리고 사라 본 중 빌리 홀리데이느,ㄴ 기술적인 면에서 자신을 강렬히 드러낼 장점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스캣의 현란함을 자랑하는 엘라 피츠제럴드나 폭넓은 음역의 사라 본보다 높은 위상을 지닌다. 그것은 독보적이라 할 블루스 감성 때문이다. 그녀는 블루스 특유의 끈덕지고 미묘한 느낌을 곡 전면에 갈면서 재즈의 묘미를 연출한다. 마치 자신의 슬픔을 조곤조곤 이야기하듯 노래했다. 그 노래는 묘한 흥과 한이 있는 마성을 띠었다. 빨려든다고 해야 할까. 블루스 감성은 빌리에게나 다른 미국흑인들에게나 자연스럽게 체득된 삶 자체였다.” (블루스 감성의 요즘 예로는 Otis Taylor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아야도 치에가 추천할만 하다)
그러나 노예의 음악은 주인의 음악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재즈의 긴장감은 아프리카적인 감성이 유럽적 이성을 만나면서 발생했고 이로 인해 재즈에는 두 문화가 충돌할 때 발생하는 묘한 긴장과 생동감이 살아 있다.”
제대로 된 일을 가질 수 없었던 흑인들에게 음악가는 ‘성공’이었다. 1급 운동선수에 흑인이 많은 이유와 마찬가지이다. 흑인이 특별히 운동에 재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나마 실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분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주변인일 뿐이었던 흑인에게 음악가는 출세였다.
그러나 흑인인 재즈인들도 사회의 주변인어야 했다. 흑인이 예술을 한다는 자체가 저항일 수 밖에 없었다. 초기재즈인들은 주로 백인전용 술집에서 연주를 했지만 늘 뒷문으로 출입해야 했다. 백인이 사용하는 술잔에 손을 댈 수도 없었다. 빌리 홀리데이도 인기에 걸맞지 않은 부당한 대우에 동료와 고용주에게 항의하기도 했다. 카운트 베시 악단과 같은 거물급 집단조차 12장의 음반에 대해 그들이 받은 돈은 선불금 750달러가 전부였으며 그돈조차 밴드 멤버 26명이 나누어 가져야 했다. 백인악단을 이처럼 부당하게 대우하는게 가능했을까. 재즈의 씨앗은 인종 간의 긴장을 에너지로 삼아 발아했다.”
차별은 음악인 뿐 아니라 음악 자체에도 더해졌다. “원래 재즈는 흑인 빈민층을 대변하는 가난한 음악이었다. 뉴올리언스의 초기재즈는 길거리 음악으로 대중과 함께 진흙탕을 뒹굴었다. 비록 흥행을 위해 춤곡으로 치장되어 화려한 모양새를 띠게 되었고 이론과 지성까지 버무러져 고급화되었지만 재즈의 본질은 그 ‘삼류성’에 있다.”
사창가의 음악이었던 재즈가 시카고와 뉴욕으로 흘러갔을 때 재즈는 술집의 배경음악이 되었고 댄스음악이 되었다. 20년대 금주법의 시대에 ‘재즈는 손님들의 여흥을 돋우는 춤곡에 불과했다ㅓ. 또한 불법인 주류업의 호객 수단이었다는 점에서 범죄에 이용된 오락거리였다. 술집에서는 경쟁적으로 대편성 악단을 고용했고 재즈 음악가들에게는 보다 많은 기회가 생겼다. 시대는 재즈에 여흥의 역할을 주엇고 재즈 음악가들은 그 역할에 충실하며 사회적인 성공을 꿈꾸었다.” 그러나 그 3류성이 재즈의 긴장을 만든다.
“스윙재즈가 대성공을 하면서 대편성이 재즈가 갈 방향인 것처럼 보였다. 너나할 것없이 현란하고 커다란 음을 내기 위해 단원을 늘렸다. 큰 것이 아름다운 시대였다. 스윙에는 빅밴드가 제격이었다. 해일처럼 몰려드는 음의 물결을 타며 사람들은 춤의 서핑을 즐겼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하고 강렬한 춤곡이었다.”
그러나 음악가에겐 불편했다. 주류백인사회에선 3류 딴따라일 뿐이지만 흑인들에게 허용된 몇안되는 성공의 자리에 오른 이들에게 그런 3류성은 참을 수 없었다. 음악가로서 자부심을 가진 이들에게 “이런 분위기는 개성적이고 복잡한 연주를 하고 싶은 바람과 상치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음악을 갈망하는 음악가에게 그것은 족쇄와도 같은 작용을 했다. 사실 젊은 스윙재즈 음악가들 중ㅇ 일부는 관객의 춤에 반주를 넣는다는 자체에 불만을 품엇다.”
2차대전의 전시상황은 유흥가의 쇠퇴를 불렀고 스윙재즈도 쇠퇴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비밥이 탄생한다. “비밥음악가들은 단순히 사람들이 춤추지 못하는 음악을 연주하려 했을 뿐이다. 그런 의도였다면 완벽히 성공했다. 그들은 스윙재즈 악단에서 연주하면서 당시의 음악유행을 좇을 수 밖에 없었다. 젊은 음악도들 중 일부가 당대음악의 문제점에 통감했다. 그리고 이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비밥이 탄생했다.
비밥재즈는 ‘까다로운 사람이 신경질을 부리는’ 음악처럼 들린다. :당시의 비밥은 마치 요즘 스래시메탈이나 데스메탈 같은 과격한 음악이 받아야 할 평가를 받았다. 물론 비밥의 소리는 메탈의 금속성 굉음과는 다르다. 그것은 무수히 제시되는 현란한 비트와 즉흥선율의 음표들을 잘게 부순 후 관객의 귀를 향해 ‘밥풀 묻은 이쑤시개’를 날리듯 ‘음표’를 소아댔다. 게다가 비밥은 주제에 새로운 옷을 입힌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파격적인 즉흥연주를 선보인 최초의 장르였다. 심한 경우 원곡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이는 대중에게 폭력이었다. ‘삐리리’ 사운드로 들리는 비밥의 불친절한 선율은 사람들의 귀를 고문했다.”
이때부터 재즈는 딴따라가 아닌 ‘예술’의 길을 간다. “소수의 음악이 될지언정 소비되지 않겠다는 비밥 혁신가들의 열망이 비밥을 전위음악으로 이끌었다. 비밥은 자의식 과잉의 음악이었다. 비밥의 혁신가들은 연예인이 아니라 예술가가 되려고 그에 걸맞은 표현양식을 고민했다. 예술가로 대접받고 싶던 피 끊는 젊은 혁신가들을 만족하는데 스윙재즈는 부족햇다. 비밥을 연주하는 연주하는 흑인이라면 누구나 천대받는 자신들의 처지를 극복하고 위상을 높이려는 욕구를 지녔다.”
재즈 자체가 모순의 음악이지만 특히 비밥은 재즈의 중요한 미학이 확립되어 모순이 극대화되엇다. 또한 그것은 모순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지 못했다. 오히려 모순 자체를 품어냈기에 비밥은 위대해질 수 있었다. 오히려 모순 자체를 온전히 품어냈기에 비밥은 위대해질 수 있었다. 우선 음악외적으로 그것은 흑인으로서 백인과 동화되기를 바라는 타협적인 자세와 흑인이고자 하는 열망이 상존하는 장르이며 음악내적으로 유럽고전음악에 크게 빚을 지면서도 흑인감각을 극대화한 음악이다.”
연주가들은 예술가가 되기 위해 경박하게 인식되는 춤곡을 지양하면서 아무나 쉽게 따라할 수없는 연주를 구사했다. 그 연주는 분명 흑인적이엇다ㅓ. 그들은 흑인감각을 극대화하면서도 유럽적인 의미의 예술가를 꿈구었다.”
음악내적으로도 비밥은 모순의 음악이다. 화성적인 면을 살필 때 비밥은 분명 흑인의 음악이 아니다. 비밥의 화성은 유럽고전음악의 유산을 거의 그대로 가져다 썼다. 비밥 음악가들은 유럽고전음악의 유산인 화성에 깊이 천착했다. 찰리 파커 등은 늘 유럽음악의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화성을 세밀히 발전시키는 단계 후 그것에서 탈피하는 순으로 재즈화성학은 변화했다. 그리고 재즈화성의 무게중심이 화음에서 선법(모드)과 자유조성으로 얾겨가면서 재즈화성학은 더욱 발전했다. 재즈음악가들은 단 한 세기 동안 수세기에 걸쳐 화성개념을 발전시킨 유럽음악의 성과를 흡수했다. 그들이 당대음악의 패권을 쥐고 있던 유럽음악을 철저히 고민하지 않았다면 재즈는 그저 흑인만의 음악이 되었을 것이다.”
이후 저자는 비밥이 쿨, 하드밥, 소울재즈로 발전하고 그 논리적 한계에 도달했을 때 돌파구를 찾는 노력으로 프리재즈와 모달재즈가 발전하고 프리재즈가 다시 극한에 도달해 자멸한 다음 고전주의와 신고전주의가 등장하는 과정을 나머지에서 다룬다. 그러나 그 내용은 일반적인 입문서에 나오는 내용과 그리 다르지 않으니 더 이상 다루지는 않겠다.
이책의 특징은 위에서 본 것처럼 재즈의 발전사를 음악내적논리에서 파악하면서 그 논리를 자극한 사회사적 맥락을 중심에 놓는다는 점에서 다른 재즈책들과는 구분된다. 이책에서 스윙이 무엇이고 블루노트가 무엇이고 등 기초적인 입문내용을 기대한다면 잘못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재즈가 왜 그렇게 발전했는가, 살아있는 재즈로서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제대로 선택한 것이다. 정부에서 추천할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