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3세 대해부 - 매경 기자들이 현장에서 전하는 주요 그룹 오너 3세 이야기
매일경제 산업부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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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 울면서 들어오니까 애를 달래는게 아니라 더 때리는거야. 왜 지고 들어오냐고” 어느 재벌가에서 과외를 했던 선배가 술자리 잡담으로 한 말이다.

 

현실의 재벌가과 막장 드라마의 재벌가는 다른 세계이다. 누구보다 생존이 문제인 사람들이 그들이다. 아이들 싸움에서조차 이겨야 한다고 가르쳐야 하는 곳이 그런 집안이다. 재벌가 사람이 느끼는 생존의 압력이 얼마나 거대한 가는 삼성가를 예로 들 수 있다.

 

식탁에 이병철씨와 아들 셋이 모여있다. 이병철씨가 눈을 부릅뜨고 상석에 앉아 있으면 첫째 맹희씨는 어버버 미친 시늉을 하고 둘째 창희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자신을 감추려 한다. 셋째 건희씨는 자신이 그자리에 없는 것처럼 존재감을 지우고 자신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묵묵히 식사만 한다.

삼성가와 알고 지내던 선배가 그 집안의 분위기를 이렇게 말했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 사람이란 평을 듣고 살았던 이병철씨에겐 있을 법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그 선배의 이야기는 실제 일어난 일이라기 보다는 삼성일가에서 부자관계를 간단하게 요약한 것이다. 이병철씨에게 아들은 자식이 아니라 후계자였기 때문이다. 후계자라면 권리만큼 의무가 있다. 그리고 의무를 다하려면 그만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병철 씨가 자식에게조차 가혹했던 이유는 그 자신이 기업세계의 치열함을 몸소 겪었기 때문이다. 1965 100대 기업의 현주소는 어떨까? 2009년을 기준으로 보면, 100위권 내에 12개사, 101-200위 내에 6개사, 201~300위 내에 4개사, 301~1000위 내에 1개사가 눈에 띈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세가 크게 위축되어 1000위권 밖으로 밀려난 기업은 2개사, 흡수합변 대상이 된 기업은 4개사, 그리고 나머지 기업들은 도산이나 해체 또는 무명기업이되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창업되어 이제껏 이름을 보전하고 잇는 대기업들은 그것만으로도 장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공병호)

 

이루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 그것은 당대에도 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대를 이어간다면 그것은 더더욱 어려워진다. “창업자는 스스로 기업경영으ㅢ 길을 선택한 사림이다. 그러나 2 3세로 넘어가면 스스로의 선택이라기보다도 불가피하게 선택한 경우가 많다. 다행히 2세와 3세들이 창업자에 비견할 정도로 사업을 즐기고 자질도 있다면 창업자로서는 대단한 행운이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행운을 가질 수는 없다. 사업은 무척 고된 일이다. 자신이 사업하는 일 자체를 좋아해야 하고 자질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공병호) 좋아하면서 자질까지 갖추기가 쉽지 않다.

 

20세기초 미국에선 전문경영인체제가 정착된 이유이다. 챈들러가 경영혁명이라 부르는 체제가 정착된 이유는 여러가지이지만 창업자가 관리하기엔 기업의 경영이 과거보다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전국규모 또는 세계규모로 확대된 시장과 더 치열해진 경쟁은 질적으로 다른 경영능력을 필요로 햇다. “철도회사 오너 혹은 경영자에 관한 조사결과가 수록된 ‘미국기업 인명 백과사전’의 19세기 부분을 보면 제철분야에서 경영자 이상의 지위에 오른 인물 184명이 열거되어 있다. 회사 상속자 127명 중 아버지나 할아버지 수준의 성공을 거둔 이들은 64명이었으며 이들 중 1900년 무렵에 아들이나 손자를 경영에 참여시킨 인물은 단 한명 뿐이었다. 아버지의 기업을 더욱 발전시킨 이들도 없진 않았다. 그러나 그보다 회사가 쇠퇴하는 데 일조한 레밍턴 가의 후손과 같은 이들이 수십 배는 더 많았다. 백과사전에 수록된 거물 기업가 가운데 보다 근대적인 산업에 종사한 16명의 아들이나 손자 중에는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낼만한 위치에 오른 인물이 없었다. 철도회사 오너의 2세 대부분이 경영자 지위에 올랐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나듯, 부유한 기업가 계급의 자녀로 태어난다는 것은 분명 유리한 점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전문가로서 어느 정도의 능력을 지녔는가하는 관점에서 보면 계급 문제는 별개다. 나아가 3대째에 이르면 할아버지의 지위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점은 거의 없다시피 햇다. (래리 슈웨이카드, 린 피어슨 도티)

 

흥미와 재능이 없다면 “2세와 3세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일은 기대보다도 훨씬 빠른 시간 내에 기업을 몰락으로 이끌 수 있다” (공병호) 사업의 어려움을 잘 알고 스스로도 망할 뻔한 일을 수도 없이 겪었고 망하는 것을 수도 보아온 가문의 사람들의 후계자는 우리가 꿈에 그리는 모습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  

 

“때로는 동화 속 왕자처럼 때로는 술과 여자를 끼고 사는 한량처럼 그려지는 재벌 3,4세이잠 이들의 실체는 TV 드라마와는 거리가 있다.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혹독하게 경영수업을 받으며 자신의 사생활이 거의 없는 생활을 하는 재벌 3.4세가 대부분이다.

 

이책은 그런 재벌 3.4세들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고 잇는지를 말하려 한다. 그러면 실제 이책이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월터스: 사람들은 당신이 냉정하고 신비스러운 인물이며 연기하는 주인공과 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정을 드러내는 게 두려우신가요?

 

이스트우드: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연기하는 인물의 이미지는 절제된 것인데 아마도 그렇게 연기하는 게 쉽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는 내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다 말로 나타낼 필요성을 느끼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것을 압니다. 일종의 해방감을 맛보는 것이겟지요. 그래서 정신과 의사들이 돈을 그렇게 많이 버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나는 특별히 누굴 보고 대리만족을 느끼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월터스: 정신과 의사한테 가본 적은 없나요?

 

이스트우드: 강박증 같은 것을 느껴 본 적이 없습니다. 항상 밖으로 나와 이 들판을 거닐며 꽃과 나무를 보면서 나 자신을 내려 놓습니다.

 

월터스: 가깝게 이야기를 나누는 여인이 있습니까?

 

이스트우드: 조금은 이야기를 나누지만 100% 다하지는 않지요. 100%를 기준으로 하면 60% 정도 이야기하는 정도라고 할까. 당신은 알아야 할 것은 100% 다 알고 싶으세요?

 

월터스: 알면 좋지요. 내가 당신한테 홀딱 반하면 아마도 나 때문에 미쳐 버릴걸요? 궁금한 걸 계속 물어 댈 테니까요.

 

그러자 이스트우드는 내 눈을 지그시 쳐다보면서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좋아요 그러면 어떻게 되나 한번 해봅시다.'

 

어느 순간엔가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터뷰하는 도중에 정신을 놓아 버렸다. 당황하고 얼이 빠져 나는 카메라맨에게 테이프를 멈추라고 말했다. 더 고약한 것은 인터뷰가 끝난 다음 이스트우드가 나보고 남아서 저녁을 같이 하겠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이유야 뻔하지 않은가. 나는 크루들과 함께 LA로 돌아가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속으로 나는 인터뷰를 그렇게 끝내는게 아니라 남아서 저녁을 먹고 싶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누가 알아? (바버라 월터스)

 

인터뷰의 여왕이라 불리는 바버라 월터스의 회고록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책의 문제는 월터스의 인터뷰와 같은 긴장감이 없다는 것이다. 긴장감이 없는 이유는 진실이 없기 때문이다. 처음 이책을 받고 읽으면서 그 기업 홍보부 직원이 쓴줄 알았다. 물론 거짓을 쓰고 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을 늘어놓더라도 그 사실을 어떻게 배열하는가에 따라 진실이 되기도 하고 뻔한 거짓이 되기도 한다. 이책은 무미건조한 사실을 무미건조하게 나열한 사실상의 거짓이다. 진실이 주는 긴장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책이 비판하는 드라마만도 못하다.

 

"대담 프로그램이 시청자에게 말해주는 바가 아무 것도 없다면 나 자신에게나 출연한 게스트에게나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무언가 전하는 내용이 있어야 한다. 동시에 재미있지 않고서는 아무 내용도 전할 수 없다. 내용이 전달되기도 전에 시청자들은 리모콘을 잡을 것이니까." (래리 킹)

 

이책은 전하는 내용이 있는가? 있다고 보기 힘들다. 공식적인 이력서에 나올 내용, 밝혀도 아무 문제없을 내용만 나열하고 사실 이면의 진실은 보이지 않으니 전하는 내용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 재미는 있는가? 차라리 드라마가 더 잘한다.

 

이런 책이 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기자들이 그것도 경제지 기자들이 썼다는 것이 아마 유일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책 팔아서 얼마 번다고 취재원을 밥줄을 건드릴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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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6-28 0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