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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드 Pride 12 - 완결
이치조 유카리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불의 전차’라는 오래 된 영화가 있다. 1981년 만들어진 이 고전 스포츠 영화의 주인공은 둘이다. 1924년 파리 올림픽에서 영국의 육상선수로 뛰어던 에릭 리델(이언 찰슨)과 해럴드 에이브러험(벤 크로스). 에릭은 자신을 하느님에게 바친 사람이다. 에릭은 달린다. 달리는 재능을 준 하느님을 위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달린다.
100미터 결승전이 일요일에 열렸다. 하느님의 종인 에릭은 일요일에 달릴 수 없다. 영국 황태자가 부탁하는데도 그는 단호하다. "국왕보단 하느님.." "국가보단 천국.." 신문기사의 제목이다. 그는 자신의 두 다리로 얻은 금메달도 하느님의 영광으로 하느님에게 돌린다. 에릭은 그런 사람이다. 나중에 에릭은 선교사로 중국에 가 거기서 하느님의 곁으로 간다.
그러나 유태인인 해럴드는 사회적 편견에 맞서 싸우는 투사로 일생을 살아간다. 유태인으로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달린다.
둘은 서로의 열정과 신념을 존경한다. 그러나 그런 그들이 다리는 이유는 다를 수 밖에 없다.
이 영화는 그런 그들의 경쟁과 그들이 누린 승리의 기쁨을 보여주면서 그 과정을 아름답게 보여준다.
‘불의 전차’처럼 ‘프라이드’란 제목의 이 만화 역시 주인공 두 사람의 경쟁을 그린다. 그리고 주인공들의 성격 역시 유사하다. 그러나 ‘불의 전차’가 선의의 경쟁이라면 이 만화는 악의의 경쟁이다. 그것도 일방적인.
“시오씨는 정말이지 하느님한테 사랑받고 있나 봐요. 그 사람은 서 있기만 해도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아요.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난 그런 오라는 절대로 못 당해요. 주역이 될 인생을 걸어가는 사람은 처음부터 주역이에요.”
이탈리아 라 스칼라 좌의 프리마돈나였던 어머니, 그 어머니의 딸로서 어울리는 재능, 화려한 이태리 오페라에 어울리는, 동양인으로서는 드문 화려함이 있는 미모.
태어날 때부터 주역인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 모든 것이 처음부터 주어진 사람,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어서 아무 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은 특징은 기품이 있다는 것이다. 기품이 무엇인지 정의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기품이 무엇이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누구나 보면 알 수 있다.
처음으로 기품이란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은 대학에 들어가서였다. 정년을 앞두고 이제 인생을 정리하는 단계에 있는 노교수님들을 보면서 사람의 기품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 교수님들의 기품은 연륜이 만든 것이다. 그 나이가 되었다고 모두 그런 기품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학을 다닐 때 그런 기품을 가진 분은 손 안에 꼽았다. 한국이란 사회에선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지위를 얻었고 학계에서도 인정받는 위치에 오른 분들에게서만 그런 기품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태어나면서부터 그런 기품을 타고 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것이 주어진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이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야하는 사람은 절대 그런 기품을 가질 수 없다. 가질 수 있다면 노년에 이르러 인생을 완성할 때만이 가능하다.
“가능하고 말고요 파롯티(파바로티의 이름을 작가가 꼬은 것)의 추천인걸요. 이 세상은 슬프게도 연줄과 돈이에요. 미래의 퀸 레코드 사장부인이시잖아요. 더군다나 시오 씨에게는 실력과 미모까지 있어요. 무적이죠”
그런 사람과 경쟁해야 하는 사람은 어떤 기분일까? "좋겠네요. 시오 씨는 부자에다 방에 그랜드 피아노가 있고 수업료가 비싼 미카 음대에 다니고 키하라 사와코의 딸이라니 미인에다 빽까지 있다니 짜증나요." 이 만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모에의 말이다.
“의심같은 건 할 줄 모르도록 잘 자란거야 사랑받으면서 귀하게 자랐겠지 항상 당당하고 켕기는 건 전혀 없을 걸? 너한테 소중한 건 인간으로서 긍지를 갖고 살아가는 거지?”
자신이 가지지 못한 모든 것을 가진 시오. 그런 시오는 모에에겐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이다.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는 그녀에겐 없었으면 더 좋았을 사람에 불과하다. 어릴 때부터 그녀가 들어온 말은 너란 짐덩어리 때문에 남자들과 잘되지 않는다는 말 뿐이었다. 딸을 사랑하지 않는 것으로도 모자라 어려운 형편에 학비로 쓸려고 벌어온 돈을 뺐어 호스트들에게 가져다 바치는 어머니. 그녀가 가진 것이라고는 평범한 학교에 평범한 재능 평범한 미모.
시오는 그런 그녀에게 없는 모든 것을 가졌다.
“짜증나 이 여자를 만나면 항상 그래 내가 얼마나 비천한 인간인지를 확인하게 돼 더렵혀주고 싶어”
“언제까지나 처음 만났을 때 맛봤던 비참함이 지워지질 않아 내 비열함이 치사함이 비참해져 이 여자가 더러워지면 좋을 텐데 불행져서 울면 좋을 텐데 이 여자한테 이기지 못하면 이 비참함은 평생 없어지지 않을지도 몰라. 필요없어 난 그런거 필요없어 더럽혀지든 미움을 받든 최후에 승리해서 웃고 말거야.”
이 만화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을 만큼 막다른 곳에 몰려 있는 여자와 자존심이 방해를 해서 고지식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여자”의 경쟁을 그린다.
시오에게 모에 같은 사람은 처음이 아니다.
"나는 시오랑 피아노 배우기 싫어 짜증난단 말야. 시오만 점점 더 잘 치고."
"엄마가 비교해서 싫어 시오를 본받으라고 하잖아.'
'어쩐지 난 들러리 같아서 상처를 받게 돼 나도 나름대로 예쁜데'
'시오는 너무 잘났어. 난 부자다, 라는 듯한 태도라니까'
'부자라서 어머니의 피를 물려 받아서 하느님한테 편애를 받으니까.'
'정론을 무기로 상대에게 상처를 입힌다.'
"당신하고 있으면 왠지 제 자신이 점점 비참하게 느껴져서... 똑같은 인간인데 왜..!" 불공평하다. 그러나 다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이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가진 사람과 자신의 것을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 같은 사람일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은 그런 것을 인정할 수 없다.
그러면 그런 말을 들어 와야 했던 사람은 어떨까? ‘지긋지긋해 이 말을 듣는 게 벌써 몇번 째지?' 그리고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다. "미안해요 그쪽이 짜증난다고 해도 어쩔수가 없네요."
“차갑고 냉정한 태도는 저 가정환경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터특한 성격이야 동성으로부터 끊임없는 질투가 지긋지긋해서 터득한 내 성격 아 그렇구나 자기에게 필요없는 것은 잘라내 온 삶의 방식이 닮은 거야” 그녀가 약혼자의 부모를 만난 느낌이다.
그러나 카이사르라면 어떻게 했을까? 카이사르는 모욕을 당해도 너그럽게 웃어넘기는 사람이었다. “분노나 복수는 상대를 자신과 대등하게 여기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이고 일어날 수 있는 행위다. 카이사르가 평생 이것과 무관했던 것은 분노나 복수가 윤리 도덕에 어긋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우월성에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월한 자신이 왜 열등한 타인의 수 준으로 내려가서 그들과 똑같이 분노에 사로잡히거나 그들과 똑같이 복수심을 불태워야 하 는가.”시오노 나나미가 그리는 카이사르이다. 정적을 가차 없이 제거했던 술라와 정적을 포용하고 관용을 베풀었던 카이사르는 “많은 유사점을 갖고 있었지만, 이 점에서는 양극단이었다. 후세 역사가 들은 이런 카이사르를 '진정한 귀족 정신의 소유자'라고 평한다.”
기품의 본질은 여유이다. 강자의 여유이다. 세상 무엇도 자신을 흔들지 못한다는 자신감이다. 카이사르가 해적에게 잡혔던 이야기는 그 여유의 본질을 보여준다.
“젊은 시절 해적에게 붙잡혔을 때 카이사르는 타고난 천성대로 해적을 마음껏 무시했고 이런 점은 오히려 해적들에게 큰 매력으로 작용했다. 이들은 제발 목숨만 살려달라고 빌며 공포에 빠진 포로는 익숙했지만 카이사르처럼 해적을 자신의 바쁜 일정을 잠시 방해하는 훼방꾼 이상으로 보지 않는 포로는 처음이었다. 카이사르는 자기 몸값이 겨우 20달란트(어마어마한 거액이었다)밖에 되지 않는다는데 모욕감을 느끼고 스스로 몸값을 50달란트(은화 30만냥)까지 올리기도 햇다. 카이사르는 동료 한 명과 노예 두명만 남기고 나머지 일행에게 몸값을 가져오게 햇다. 카이사르는 포로로 지내는 40여일 동안 해적과 어울려 식사를 했고 그들의 체력훈련에 동참하기도 했다. 시를 지어 들려주었다가 해적들이 시를 이해하지 못하면 천박하고 난폭한 야만인이라고 면박을 주기도 햇다. 이런저런 주문을 하기도 했고 잠자리에 들어서는 노예를 시켜 해적들에게 조용히 좀 하라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또 자신이 풀려나면 반드시 다시 돌아와 모두 책형에 처해 죽이고 말겠다고 반복해서 이야기하기도 햇다. 해적들은 이 대담한 젊은이를 무척 좋아햇고 몸값을 실은 배가 도착하자 아쉬움을 드러낼 정도였다. 카이사르는 떠들석하게 웃고 손을 흔들며 해적들과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바로 배와 의용군을 징발해 해적들에게 돌아와 모두 체포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필립 프리먼)
원래 기품은 귀족을 말할 때 쓰는 말이었다. 귀족은 여유를 타고 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어머니의 애정을 한몸에 받으며 자랐다. 평생 동안 그를 특징지은 것은 하나는 아무 리 절망적은 상태에 빠져도 유쾌한 기분을 잃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렇게 낙천적일 수 있었 던 것은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나이에게 최초로 자부심을 심 어주는 것은 어머니의 애정이다. 어릴 때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면, 자연히 자신감에 뒷받침된 균형감각을 얻게 된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바라보는 적극성도 어느새 저절로 몸에 배게 된다.” 시오노 나나미의 말이다. 시오 역시 카이사르와 마찬가지 환경에서 자랐다. 그렇기 때문에 시오를 말할 때 사람들은 기품이란 말을 쓴다.
그러나 그녀의 기품은 불완전하다. 그리고 그 불완전함은 오페라 가수로서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교과서대로의 우등생의 노래따윈 아무런 매력도 없다구 콩쿠르에서는 평가받을지 몰라도 그걸로 끝이야.’
시오를 괴롭힌 것은 질투만이 아니다. 거물의 딸로 태어나 어머니의 이름에 걸맞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은 성격도 목소리도 다른 데 (어머니는 리릭 소프라노이나 시오는 메조 소프라노이다)도 무의식적으로 어머니의 창법을 흉내내도록 만든다.
질투와 압박감은 시오를 방어적으로 만들었고 배우로서의 한계를 만든다.
“인간미란 매력하고 관계가 있구나 나 그렇게 매력이 없었어?”
“그럼 있는 줄 알았어? 시오는 화장실도 안 가는 인형이었어 땀도 안 흘리고 경계가 철저해 보이는데다 매너는 좋지만 타인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는 느낌이었지 오페라엔 속물스러운 성격의 인간들이 수두룩해서 시오에겐 도도한 공주역 밖에 안 어울릴거라고 생각햇어”
그러나 그녀에게 기회가 주어진다. 위기라는 이름의 기회가. 아버지가 파산하면서 세상으로부터 그녀를 지켜주던 울타리가 사라진 것이다.
“난 말야 시오 네 그 공주님 근성이 걱정이야 이젠 부모도 돈도 친척도 없잖아 정론이 토용되지 않는 일이 세상엔 얼마든지 있어. 사람은 말야 자존심만으로는 살아갈 수가 없다구.”
시오는 ‘불의 전차’의 이언 같은 사람이다. “난요 노래는 신이 내려준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노래할 때마다 조금씩 신께 돌려드리는 거라고.” 그렇기에 "나는 노래 공주. 세상에서 가장 노래를 잘 하는 공주님. 자 드레스를 입었으면 하늘의 성에서 열린 무도회에서 노래합시다. 나는 노래 공주 세상에서 가장 노래를 잘 하는 공주님" 노래하는 것 자체가 행복인 시오. 그러나 "이제 공주님은 끝... 날 지켜주던 아빠는 없어 강하다고 생각했던 나도 없어."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지켜주던 것이 사라졌을 때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게 된다.
시오는 자신이 경멸할 수 밖에 없는 모에에게서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자신의 한계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모에가 갖고 있는 비장감은 부모에게 제대로 사랑받지 못한 트라우마에서 온 것이겠지 사랑하고 싶지만 사랑받지 못하는, 세상에 태어난 의미를 알 수 없는 외로운 마음 방황하는 영혼 울부지는 듯한 애절함"
“난 이렇게 살아서 걷고 있어 견디지 못할 것은 아무 것도 없었어”
인형 같은 우등생의 노래와 달리 재능도 미모도 평범한 모에는 배우로서 탁월하다. 그녀의 삶이 준 불행 덕분에 탁월한 표현력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모에의 노래는 슬프다. "넌 향상심보다 투쟁심이 더 강해서 큰일이야 남과 비교해서 행복을 느끼는 타입이잖아 그래서 노력도 하고 근성도 잇지 다만 남과 비교를 해봤자 기분은 좀 좋겠지만 그다지 행복해지진 않아 그보다는 열심히 자신과 싸워 봐 남하고만 싸우다간 무너지고 말아."
이런 사람을 알고 있을 것이다. 시오가 모에를 보면서 자신을 채워가려 하듯이 모에 역시 시오를 보면서 노력한다. "그녀가 노력할 수 있었던 건 네 덕분이지만 그건 힘들고 너무 슬퍼. 행복해지고 싶어서 노력하는 거잖아. 자신을 좋아하지 못하면 절대로 행복할 수는 없는거야"
그러나 시오가 모에를 경멸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녀의 투쟁심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불행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방법론이다. "성공의 비결을 가르쳐 줄까? 아무리 추해 보이더라도 주어진 기회에 달려드는 것. 그 방면 일류의 겉과 속을 아는 것." "꽤 고생을 한 모양이라 남의 마음을 잘 읽긴 하지만 그 놀라운 변신도 그렇고 목적을 위해서라면 정말로 뭐든지 할 것 같아 이런 아이를 곁에 두는 건 위험할지도 몰라" 시오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은 자신을 괴롭히는 모에보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모에가 사는 방식이다.
“그런 일이라고? 나 때문에 엄마가 죽었다는 얘기를 들은 게 그런 일이야? 철면피 그런짓까지 하면서 우승하고 싶었어?”
“괜찮아요 아픈 건 지금 뿐이니까 분이 풀렸나요? 이 정도로는 안되겠죠? 더 때려도 돼요”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넌 자존심도 없어?”
“그런 쓸모없는 건 버렸습니다.”
“울든 싸우든 상처받든 품성만큼은 나빠지면 안돼 알겠지 남을 떨어트리는게 아니라 자기가 올라가는 거야.” 이것이 올바른 것이 아닌가?
두 여자는 서로를 보면서 어른이 되어간다. “고생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나이를 먹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야 어른이란 부자가 된다 해도 유명해진다고 해도 그런 것과는 달라. 어른이 뭔지 알게 될 때가 올까?”
“도저히 가르쳐 줄수 없었던 인간미 있는 감정이나 색이 그녀에게서 풍겨나오고 있잖아 역할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역할이 된다는 감각을 터득하려 하고 있어 우등생일 뿐이었던 이 아이가 거물이 되는건가 손에 꼽을 정도의 가수에게만 주어진다는 재능을 시오가 손에 넣으려 하는건가?”
‘부드럽고 자장가처럼 다정한 음색. 대단해 경직되고 정확한 우등생이 이렇게 요염하고 매력적인 가수로 변하다니’
모에 역시 성장한다. "전보다 깊이가 있네요. 부드럽고 따듯하고 예전의 서늘하고 외로운 이미지가 없어졌어요. 전 이쪽이 좋은데 모에 씨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_라고 생각하지? 그런데 지금의 모에에게는 딱이야. 아이가 생기고 그녀는 정말 많이 달라졌어. 전처럼 독기가 없고 순수하고 따듯해. 무엇보다도 행복해 보여.늘 만족하지 못하던 그녀가 커다란 배를 쓰다듬으면서 자랑스럽다는 듯이 웃는다니까."
“좀 상상이...”
사랑받지 못하고 자랐기에 정에 굶주린 모에. 그런 그녀가 아이를 갖게 되면서 그녀의 음악도 변한 것이다.
'모에 씨가 아이를 위해 노래하고 있다. 사랑스럽다는 듯이 정말로 사랑스럽다는 듯이 아기를 안듯이 그것 뿐인데 처음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대단해요. 늘 갖고만 싶어하던 모에 씨가 주는 기쁨으로 충만해 있닺니 사람이란 이렇게 변할 수 가 있군요. 난 전부터 당신이 싫었어요. 노래만이 우리를 이어준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지금의당신은 멋져요. 당신과 노래하는 것은 나의 긍지에요. 앞으로도 함께 노래하고 싶어요."
'동경하고 동경하고 질투하고 원망하고 상처 입힌 사람에게서 무엇보다도 자신의 긍지를 소중히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서 당신과 노래하는 것은 나의 긍지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얼마나 큰 죄를 저질러 왓는지 처음으로 깨달았다. 하느님 전 다시는 이 사람에게 상처입히고 싶지 않아요.'
이상이 이 만화가 그리는 세계이다.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던 이 만화의 작가는 일본만화에선 원로로 꼽히는 사람이다. 그런 원로가 만화 경력 40년에 만든 이 만화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돋보인다. 보통 사람에겐 낯설 수 밖에 없는 오페라의 세계의 내면과 그 세계를 배경으로 서로 어울릴 것같지 않은 성격의 라이벌을 그리는 이 만화는 삶의 깊이가 배어나온다.
그러나 문제는 10권까지는 긴장감을 가지고 그려지던 스토리가 11권부터는 멜로드라마로 추락한다는 것이다. “당신은 내 우상이에요. 시오 씨처럼 키우고 싶어요. 자기 자신에 대해 긍지를 갖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이책의 결말이다.
작가가 구상했던 것은 두 주인공이 삶의 여유를 갖게 되고 진정한 프라이드를 갖게 되고 둘이 서로를 존중하고 화해하는 것으로 끝내려던 것같다. 그러나 실제 결말은 모에의 죽음으로 그리고 그녀가 시오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끝난다.
시오가 그렇게 느꼈듯이 모에의 비열함과 천박함은 좋아할 수 없는 점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모에는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캐릭터이다. 그녀가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기에 그리고 그런 구덩이에서 기어오르려는 그녀이기에 왠지 공감이 가고 끌리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그런 캐릭터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고 있다. 그녀의 진화는 임신으로 멈출 성격이던가?
엉성한 결말이다. 그러나 10권까지 두 주인공을 그려내는 솜씨는 원로의 원숙미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런 점에서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이 시리즈는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