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걷고 싶은 길 1 : 홋카이도.혼슈 - 도보여행가 김남희가 반한 일본의 걷고 싶은 길 1
김남희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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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자연지리로 시작해 자연지리로 끝난다.

일본의 끝인 홋카이도에서도 끝머리인 곳에서 시작해 오키나와에서 끝나는 이책의 특징은 사진이 중심이라는 것이다.

여행 가이드도 그렇지만 여행 에세이인 경우 사진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곳을 다녀본 사람이 아닌 한 말로 아무리 설명해야 그 장소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때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기행문들을 떠올려 보자. 장소 이름만 바꾸어도 별 차이가 없는 내용인 것이 사실이다.

그런 기행문이 되지 않으려면 사진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책의 구성은 평소 생각하던 기행문의 모범에 가깝다.

이책의 처음은 홋카이도의 끄트머리에서 시작한다. 홋카이도는 일본이면서 일본답지 않은 곳이다. 일본에서 관광지로 유명한 홋카이도도 그렇고 오키나와도 일본이면서 일본이 아닌 곳이라 할 수 있다. 두 곳 다 본격적으로 일본에 편입된 지 몇세기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두 곳 다 일본 본토와는 분위기도 느낌도 다른 곳이다. 홋카이도의 특징은 흔히 '험준하고 웅대한 자연'이란 말로 요약된다.

눈과 곰, 사슴의 땅인 홋카이도. 홋카이도의 풍광은 아시아라기보다는 록키 산맥을 연상케하는 규모와 험준함이 특징이다. 그런 풍광은 말로 하는 것보다 사진으로 보여주는 것이 100배 낫다.

이책의 구성은 사진을 중심에 놓고 그 사진의 배경설명 정도로 저자의 여정과 저자가 그 장소에서 보고 느낀 것에 대한 설명이 곁들여지는 형식으로 구성된다. 이런 장르의 글에서 주인공은 그 장소가 되어야 하고 그런 원칙이 잘 지켜지고 있다.

그러나 저자의 발걸음이 간토와 간사이로 넘어가면 약간 글의 스타일이 달라진다.

교토와 나라, 가카쿠라 등 일본의 고도가 중심이 되는 1권의 후반 역시 홋카이도를 다룬 앞부분과 마찬가지로 사진을 중심으로 글이 서술되고 있다.

홋카이도를 다룰 때와 마찬가지로 저자는 사진을 통해 그 장소의 느낌을 독자 스스로 느끼도록 최대한 노력한다.

그러나 자연이 중심인 홋카이도에서 역사가 중심인 간토와 간사이로 넘어가면 저자가 사진의 문맥을 까는 스타일이 바뀐다.

역사가 중심이기 때문에 일본의 전통문화가 그대로 느껴지는 사진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있고 저자의 설명 역시 그 사진들의 문맥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지만 독자로서 약간 불만인 것은 저자가 일본인 친구들과의 만남에 대한 사설이 좀 길다는 것이다.

물론 과거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일본을 다루는 것이고 그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그 장소의 느낌에 대한 문맥을 제공하는데 중요하다. 그러나 문맥을 제공한다는 목적 이상으로 늘어지는 것이 문제이다.

이상이 이 시리즈의 1권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설명해본 것이다. 이책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홋카이도의 자연과 일본의 전통이 살아있는 혼슈를 시각적으로 느끼기에 충분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그리 깊이가 느껴지지는 않는 책이다. 제목에서 언급한 것처럼 도보여행가인 저자의 발걸음에 스치는 일본을 느낄 수 있는 것이지 스치는 그 일본의 깊이를 느낄 수는 없는 책이다. 그런 문맥을 깔기에는 저자의 일본에 대한 내공이 깊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문제를 갖고 있더라도 쏟아지는 일본 여행서적 들 중에서 이책 정도로 일본에 대한 느낌을 일본에 가지 않고도 느끼게 할 수 있는 책은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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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가 영화를 말하다 - 빛의 도시에서 만나는 시네마 라이프
김량 지음 / 시공아트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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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가 영화를 말할 수 있을까? 궁금해지는 제목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파리가 영화를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실제 이책의 내용은 영화 파리를 말하다가 더 맞을지 모른다.

 

90년대 영화를 배우겠다고 파리로 떠나 지금까지 거기서 살고 있는 저자가 이책에서 말하는 것은 파리와 영화이다.

 

저자는 1부에서 영화에 비춰진 파리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대표적인 영화 몇편에 대한 줄거리와 뒷 이야기를 말하면서 그 영화들이 어떻게 파리를 그렸는지를 보여준다.

 

2부에서 저자는 파리에서 접한 한국영화들을 이야기하면서 한국영화가 파리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그리고 자신이 본 한국영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3부에서 저자는 파리의 영화관이나 영화애호가들의 이야기, 영화관련 시설들(서점, 카페, 도서관 등), 영화교육 등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이렇게 보면 이책의 주제는 영화라는 키워드를 통해 본 파리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내용이 잡다하고 어떤 일관성을 가진 책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이책의 주제목보다는 부제인 '빛의 도시에서 만나는 시네마 라이프'가 이책의 내용을 더 잘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사는 게 줄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러나 이책은 내용이 없는 어정쩡한 책은 아니다. 이책에는 파리에서 10여년이 넘게 살아온 저자의 내공이 녹아있다.

 

예를 들어 저자가 1부에서 파리에 관한 영화들을 소개하면서 말하듯이 영화가 말하는 파리는 사랑을 찾아 예술을 찾아 떠나는 관광지일 뿐이며 핑크빛으로 빛나는 즐거움의 도시일 뿐이다.

 

파리를 다룬 영화에 수없이 등장한 다락방을 저자는 예로 든다. 다락방에서 바라본 에펠탑과 파리 전경은 아름답다. 그런 방에서 산다면 당장 짐싸들고 가고 싶게 만든다.

 

그러나 그런 다락방은 임대료가 천문학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낭만적으로 그려지는 다락방은 양철지붕 아래 좁디 좁은, 원래 하녀들을 위한 공간이었고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열악한 곳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런 다락방이 영화에 나오면 사진발을 받는다.

 

몽마르트 언덕 역시 마찬가지이다. 저자는 파리에 처음 갔을 때 몽마르트 언덕부터 갔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가 본 것은 언덕 아래 사창가와 유흥가였고 3류화가들의 싸구려 그림들이었으며 옆을 지나는 사람은 구걸하는 집시와 소매치기들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관광으로 둘러보는 파리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샹젤리제 거리는 원래 영화관의 거리였다. 그러나 지금은 반 이상이 떠났다.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명품 부티크들이 들어서면서 임대료가 올라 떠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샹젤리제 거리는 이제 파리사람들은 거의 들르지 않는 관광객의 거리가 되었다.

 

저자는 즐겁기만 한 도시도 없고 슬프기만 한 도시도 없으며 파리 역시 마찬가지라 말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파리의 실제 삶을 담은 영화들을 말하면서 실제 파리의 모습과 파리 사람들의 삶을 담은 영화들을 말한다.

저자는 그 외에도 이책에서 여러가지를 보여준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2부에서 한국영화에 대해 말하는 것은 파리가 영화의 도시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도시계획이 잘 되어 있어 사진발이 잘 받는 파리는 영화의 소재로 사랑받기도 하지만 파리 역시 영화를 사랑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파리만큼 여러나라의 영화를 쉽게 접할 수 있는 도시도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영화도 자주 소개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잇는지를 2부에서 다루고 잇다.

 

이상이 이책에서 기대할 수 있는 내용이다. 위에서 알 수 있듯이 이책은 파리와 영화의 만남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저자가 영화일을 하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영화의 수용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를 하는 사람이 아닌 만큼 이책이 깊이있는 내용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이책에는 저자의 오랜 파리 생활에서 나오는 체험이 담겨있지만 본격적인 문화론을 기대할 수 있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파리와 영화가 어떤 공유집합을 만들 수 있는지 알기에는 충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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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100배 즐기기 - 2010년 최신판 100배 즐기기
기경석.정선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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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선택한 것은 도쿄 여행을 위한 것은 아니다. 일본만화를 보다보면, 그리고 일본 관련 서적을 보다보면 도쿄의 지명이 자주 언급된다. 시부야, 긴자, 아키하바라 같은 지명을 워낙 많이 듣고 보다보니 이름 자체는 전혀 낯설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름들이 동대문, 서울역, 시청앞, 압구정과 같은 것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서울의 지명들이야 그곳을 가보았으니 이름과 장소가 연결이 되어 머리 속에 떠오른다. 그러나 바다 건너 남의 나라 도시가 서울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시부야는 어떻게 생겼고 어떤 건물들이 있으며 길은 어떻게 나있으며 그곳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이런 질문에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책을 선택한 것은 그런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해서이다. 일본 관련 서적을 읽다 도쿄도청사가 언급이 되었다면 이책을 사전처럼 활용해 도청사는 어디에 있고 어떤 곳이며 어떻게 생겼는가를 확인하는 용도로 쓰기 위해서이다.

그런 점에서 이책은 대만족이다. 가격에 어울리지 않게 700페이지에 가까운 묵직한 두께에 아트지에 4도로 사진이 빽빽하게 인쇄된 이책은 그런 용도로 사용하기에 충분하다.

물론 서울만 하더라도 이 정도 분량으로 커버할 수 있는 도시가 아니다. 서울과 비슷한 규모인 도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책의 설명은 짧막짧막하게 끊어지는 설명들로 채워질 수 밖에 없고 실린 사진들도 작은 데다 한두컷 정도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한권으로 도쿄에 대한 사전처럼 활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책의 가치는 충분하고 넘친다.

물론 이책은 그런 식으로 활용하라고 만든 책은 아니다. 이책은 여행가이드북으로 만들어진 책이기 때문이다. 여행가이드북으로서 이책은 어떨까? 원래 목적을 생각할 때 이책은 같은 목적으로 나온 다른 책들보다 잘 만들어졌다. 정보량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레퍼런스로 활용하려는 개인적인 목적에는 흠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가방에 부담없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작게 만들어질 수 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책 크기가 작아질 수 밖에 없고 덩달아 사진의 크기도 작아질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책 크기가 크고 사진이 컸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가이드북이란 용도로는 그것이 맞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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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어차피 불편한 것이다 - 티베트에서 만난 가르침
현진 지음 / 클리어마인드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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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첫 페이지는 인상적이었다. 책표지에도 실린 이책의 첫번째 사진은 티벳의 골목길을 찍은 사진이다. 그러나 그 구도가 눈을 사로잡는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찍은 이 사진의 구도를 따라가다보면 사원으로 보이는 건물이 나오고 그 건물의 배경이 되는 푸르디 푸른 쪽빛의 하늘에 시선이 멈추게 된다.

하늘이 저랬었던가? 이책에 실린 첫 사진과 그 뒤의 사진들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우리는 하늘 자체만으로는 하늘을 알지 못한다.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우리는 항상 땅을 배경으로 하늘을 이해할 뿐이다.

고비사막처럼 자갈 사막의 황량한 땅을 딛고 심해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쪽빛으로 물든 하늘.

이책의 사진들이 보여주는 티벳의 풍경이다. 이책의 사진을 보면서 왜 티벳인들이 불교도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 장식이 없는 자연 앞에 내던져 사는 티벳인들에게 삶의 근본을 묻는 불교는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책의 사진이 보여주는 티벳의 풍경은 피안도 차안도 부정하면서 텅빈 삶의 모습(空)을 깨닫도록 몰아세우는 중관철학의 풍경이었다. 그리고 중관철학은 티벳의 대승불교의 중심철학이다.

이책의 사진들이 보여주는 풍경은 일관되게 중관철학의 심상이었다. 직관적으로 티벳을 느끼게(생각하거나 읽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이책은 다른 어떤 티벳에 대한 책들보다 티벳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이책은 완전히 잘못 선택한 경우이다. 이책을 골랐을 때 생각은 스님이 쓴 티벳 여행기였다. 책을 받았을 때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기까지는 5분이 걸리지 않았다.

이책은 티벳 여행기가 아니다. 물론 이책의 주인공은 티벳이지만 그 티벳은 지리적 단위로서의 티벳과 그 지리적 단위에 사는 티벳인들이 아니다. 이책의 주인공인 티벳은 인문지리적 대상으로서의 티벳이 아니라 저자가 티벳을 여행하면서 본 저자의 기억 속의 티벳이며 저자가 티벳 불교를 공부하면서 느끼고 생각했던 저자 머리 속의 티벳이다.

이책의 구성은 2-3페이지 정도의 짫막한 에세이들이 나열되어 있고 에세이마다 1-2컷의 티벳 사진들이 배치된 형식이다.

에세이들의 질은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지만 그 에세이의 성격이 문제이다. 에세이들은 보통 명상 장르라고 불리는 책들과 비슷한, 또는 불교서적의 법어집과 비슷한 성격이라 보면 된다.

물론 티벳과 그 글들이 무관한 것은 아니다. 간간히 저자가 티벳을 여행하면서 본 것들에 대한 짧은 단상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저자가 티벳 불교를 공부하면서 생각했던 것들을 풀어놓은 것이 주종이다.

알기로는 요즘 한국불교에선 남방불교가 유행인 것으로 아는데 저자는 드물게 티벳어를 공부하고 티벳불교를 파고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에세이는 학술적이지도 않고 특정 종교인을 위한 것도 아닌 일반인을 위한 누구나 읽을 수 있게 쓰인 글들이지만 어느 정도 저자가 티벳 불교를 파고든 내공이 느껴진다.

그러나 티벳 여행기를 기대했던 입장에서 이책은 기대했던 책은 분명 아니다. 사진은 기대 이상이었지만 내용을 알았다면 굳이 이책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진은 대만족이다. 사진만이었다면 이책은 5점을 주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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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전용복 - 옻칠로 세계를 감동시킨 예술가의 꿈과 집념의 이야기
전용복 지음 / 시공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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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이다. 저자에 따르면 한일합방이 된 후 일본은 한국의 옻을 전량 일본으로 수탈해갔고 옻과 함께 옻칠장인들도 일본으로 데려갔다. China를 china로 쓰면 도자기가 되고 Japan을 japan으로 쓰면 옻칠이 되듯이 일본은 옻칠로 유명한 나라인 만큼 이상할 것없는 행위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남의 땅에 건너간 장인들은 조선시대 도공들이 그러했듯이 일본문화에 자신들의 발자취를 남겼다. 그리고 저자가 이책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는 것은 그 장인들이 남긴 흔적을 복원하는 작업이다.

이책의 대부분은 저자가 참여한 메구로가조엔의 복원작업에 관한 것이다. 메구로가조엔은 1931년 건립된 도쿄의 호화 연회장으로 연건평 8천여평, 객실 200여로, 바닥길이 2킬로미터의 규모라고 한다. 거대한 연회장이다.

도쿄 한복판의 요지에 이정도 규모의 연회장이라면 그 자체로 유명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메구로가조엔의 의미는 규모가 아니다. 메구로가조엔이 유명한 것은 이 건물이 완성될 당시 아직 활동하고 있던 에도시대 예술가들을 동원해 건물 곳곳을 채운 예술품들 때문이다. 예술품들만 5천여점에 달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중 상당부분은 당시 일본에 건너가 활동하던 조선 장인들이 만든 나전칠기 작품들이다. 옻칠의 검은 바탕에 나전으로 도안을 넣은 작품들 역시 수천점에 달했다고 한다. 저자가 복원작업에 참여한 것은 바로 이 나전칠기 작품들의 복원을 맡으면서였다.

일을 맡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을 맡으려 할 당시 저자가 옻칠을 배운 것은 7년 정도밖에 그것도 유명장인에게 도제식으로 배운 것도 아니고 독학으로 배운 일천한 기술뿐이었고 한국에서도 알아주지 않는 무명의 지명도 뿐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그일을 맡겠다는 일념으로 일어학과에 진학해 일어를 배우고 메구로가조엔을 방학때마다 찾아가 복원계획을 세우고 일본전역을 돌며 일본의 옻칠장인들에게 기술을 구걸하다시피 배운다. 일을 맡을 것이란 가능성도 없이 2년을 그렇게 준비한 집념과 열정이 통해 일을 맡게 된다. 그리고 이책의 나머지는 그렇게 맡은 3년의 복원과정을 다룬다.

사실 이책의 상당부분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옻칠이란 것 자체도 생소한데다 옻칠이 예술적 가치가 있는 작품이 된다는 것도 이책에서 처음 알았다. 그런데 저자가 작업기술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들이 상당한데 이해가 될 리가 없다.

그러나 이책을 읽어가면서 바로 그런 낯섬 자체가 즐거움이 된다. 옻칠이란 것이 그런 세계구나 우리는 우리 것이면서 대우해주기는 커녕 잊어가는 것이 또 하나 있었구나 그리고 우리가 잊어버린 것을 대우해주고 기억하고 소중히 여기고 가치를 알아보는 것은 또 일본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한국에서 이름을 얻지 못하고 일본에서 이름을 얻어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문화는 만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 쓰는 사람의 것이다'고 저자가 말한 것은 한국과 일본을 오간 그의 경험을 요약한 말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는 고리적 일본이 우리에게 배워간 것을 틈만 나면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가르쳐 준것을 우리는 잃어버렸고 일본은 잊지 않고 그것을 발전시켰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옻칠도 우리가 일본에 가르쳐 준 것이다. 이책을 보면서 왜 우리는 가르쳐준 사실만 말하고 일본이 배운 것을 어떻게 발전시켰는지 그리고 배운 것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했는지는 외면하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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