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잡아먹어도 될까요? - 마음 약한 늑대 이야기 베틀북 그림책 24
조프루아 드 페나르 글.그림, 이정주 옮김 / 베틀북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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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는 서양 동화에서 자주 나오는 동물이다. 자주 나온다는 점에서는 한국의 호랑이와 비슷하다. 호랑이는 좋은 역으로도 몇 번 나오는 것 같은데, 늑대는 항상 악역이라는 점이 조금 다른 점인 것 같다. 빨간 모자 소녀를 잡아먹으려고 꾀를 내고, 돼지 삼형제의 집을 차례로 공격하고, 음...또... 거짓말 쟁이 양치기 소년의 양들을 공격한다. 이 동화는- 양치기 소년의 양이 나오지 않는 것이 의외다- 여러 동화 속에서 나온 늑대들이 악역의 이미지를 뒤집으며 반전을 노린다.  

마음이 약한 늑대라는 것은 알겠는데, 결론이 영 미적지근하다. 뭔가 덜 완성된 채로 끝난 듯한 느낌이다. 오히려 구지구지에 등장했던 악어오리의 새로운 삶을 결심하는 내용, 일종의 커밍아웃(?),이 좀 더 결론으로서 적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면 "나는 채식 늑대야!"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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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의학, 따뜻한 의사
로렌스 A. 사벳 지음, 박재영 옮김 / 청년의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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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년 동안에 여기저기서 인문사회의학이니 PDS(Patient-Doctor-Society)니 하면서 주워들은 것이 많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도 도대체 이놈의 학문이 뭘하는 것인지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게 이 분야를 한 번 파보라고 권유한 은사님의 설명을 들어도 여전히 뜬구름 잡는 얘기로만 들렸을 뿐...... 우선 인문, 사회, 의학이라는 이름이 맘에 안든다. 이름만 보면 인문학과 사회학과 의학을 다 섭렵 해보겠다는 얘기 아닌가! 이건 마치 인식론과 윤리학과 미학, 덧붙여 존재론까지 '통섭'하겠다고 나선 괴물 생물학의 의학버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근데 이상한 것은 이 괴상한, 아니 좋게 말하면 거창한 이름의 학문을 교육하는 것이 외국 의과대학들에서는 꽤 일반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통섭을 주장하는 괴물 생물학이나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모조리 섭렵하려는 과욕의 학문은 아닐 것 같다. 설마 '괴물 생물학'과 '과욕의 학문'을 외국 의과대학들이 정식 커리큘럼에 넣어서 가르치겠어?

이름 때문에 생긴 애꿎은 누명은 어느 정도 벗었지만 여전히 정체는 알 수 없는, 의학계의 카이저소제?,  인문사회의학의 이름을 다른 식으로 풀어보면, 의학이라는 학문 안에 존재하는 인문학적인 요소와 사회학적인 요소들에 관한 학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렇게 하면 뭔가 이해가 될 듯도 하다. 내 짧은 지식으로는, 자연과학이란 원리와 법칙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대상을 해석하고 현상을 예측하는 학문이다. 이들이 해석하고 예측하려는 대상이 '자연'이기 때문에 이들이 하는 것은 자연과학이 된다. 자연과학 중에서도 특히 의학은 원리와 법칙을 내세운다는 점에서는 다른 자연과학과 다를 바가 없지만 이들이 해석하고 예측하려는 대상이 '인체'라는 점에서 다른 것들과 다르다. 하지만 '인체'라고만 말하면 뭔가 모자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의학이 다루는 것이 '인체'가 아닌 '인간'이기 때문이다. 사전적인 정의는 아니지만 '인체'가 아닌 '인간'이라고 말하는 순간, 뼈와 근육과 살만으로 이루어진 자연의 일부가 말하고 울고 웃고 화내는 사회적인 존재로 바뀌어지는 듯한 느낌이다. 대부분의 의사들은,그러니까 임상의사들은 이러한 사회적인 존재로서의 '인간', 그러니까 '환자'를 다룬다. 그래서, 인체가 아닌 인간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의학은 자연과학임에도 인문학적, 사회학적인 성격을 갖는다.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의학은 굳이 '인문사회'라는 긴 수식어를 덧붙이지 않아도 이미 인문학적이고 사회학적인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의과대학들은 인문사회학적인 의사보다는 '지식'과 '기술로 무장한 의사들을 만들어내는데 총력을 기울이며, '이것만 해도 시간이 모자르는데 왠 인문?사회?' 라는 반문을 하기 일쑤다. 근데 '살짝'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그놈의 인문사회의학이라는 것이 안 나오는 시간을 억지로 짜내고 없는 시간을 새로 만들어서 억지로 끼워넣어야 할 정도로 복잡하고 철학적이고 심오한 분야일까? 물론 며칠 전 까지는 나 역시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없었다. 책을 읽었으니 저자의 말을 빌어서 얘기한다면, 
   
'인문학으로서의 의학'이라는 주제는 의학이, 비록 방법적으로는 기술적인 측면이 많지만, 근본적으로는 사람을 다루는 사람의 일이라는 것이다. (38쪽)
    
의식을 하든 하지 못하든, 환자들은 질병 앞에서 자신의 인생관을 드러낸다.(89쪽)  

의사는 환자와의 신뢰관계를 깨뜨리지 않으면서도 그들 앞에 놓인 불확실성에 대해 환자와 함께 고민할 수 있다. 의사가 환자의 요구를 잘 이해하고 환자의 지성을 존중하고 충분한 설명을 해 줄때, 환자는 불확실성을 기꺼이 수용한다.(115쪽)

의사에게는 말하자면 다음 세가지 역할이 있다. 나는 전문가이다. 나는 의사이다. 나는 아무개(자신의 이름)이다. 각기 다른 이 역할들은 저마다 특정한 가치관을 갖는다. (261쪽) 
 

저자는 쉽고 단순한 정의로 부터 시작하여 미묘하고 복잡한 문제들을 풀어가는 열쇠들을 제시해 준다. 하지만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결국은 하나의 전제로부터 출발한다. 그것은 인문학으로서의 의학의 출발점은 환자이며,환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부터 모든 의학적 행위가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환자들의 이야기에서 시작한  저자는 의사와 환자 앞에 놓인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법을 제시하고,  '질병'에 걸린 환자가 아닌 나쁜 소식을 접한 '개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라고 충고한다. 저자가 책 속에서 강조해서 얘기하는 내용은 진단과 치료에 관한 지식이 아닌, 질병이라는 은유, 관계, 협력, 의사소통, 가치관, 전문성에 관한 것이다.  

이 책의 뛰어난 점은 이러한 막연하고 추상적인 인문학적 가치들을 다루는 저자의 방식이다. 본문 속에서 저자의 경험은 여러가지 증례로 제시되고, 여기에 자신의 견해가 덧붙여 진다. 저자는 자신의 개별적 경험으로부터 시작해서 이를 일반화 시킨다.  결국 이 책의 핵심은 '일반화'에 있다. 이런 항목을 다루는 책들이 빠지지 쉬운 함정은 너무 일반적인 수준에서 논의가 끝나거나, 너무 심오한 얘기를 해서 독자를 졸게 만들거나, 하나마나 한 견해를 덧붙이는 수준에서 끝나는 것이다. 길고 잦은 증례들과 뻔한 견해, 이 책의 서두 부분을 읽을 때까지는 그러한 위험이 다분히 느껴진다. 하지만 저자는 지루함과 식상함이 곳곳에 설치해 놓은 지뢰밭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나간다. 독자가 초반부분에 매설되어 있는 지뢰밭 속에서 졸거나 자폭하지 않는다면, 저자가 이 책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진짜' 메시지를 읽을 수 있으리라. 그 메시지란 다름 아닌 질병이 아닌 인간에 대한 관심이다.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 천재일 필요는 없다. 정확한 판단력과 선량한 마음만 있으면된다. (399쪽) 

저자가 내린 결론이 너무 비현실적인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 이 책을 읽기 시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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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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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할 일이 없어서 아무 책이라도 한 권 읽으려는 사람, 스무 시간 가까운 비행시간 동안 읽을 무언가가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 '한국 소설들은 다 비슷비슷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사람, 한국시리즈 7차전을 기다리지만 내심 그 경기의 승패보다도 그 이후가 두려운 사람, 한마디로 야구 시즌이 '완전히' 끝나는 것이 두려운 사람, 삼미슈퍼스타즈를 한국프로야구사의 해프닝으로 추억하고 있는 사람, 이들 모두가 이 소설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이 읽어도 전혀 상관없지만.

박민규는 가벼움과 무거움을 버무린 소설을 쓰는 작가이다, 라고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적절한 시간동안 웃기다가 적절한 타이밍에 적당한 량의 감동 덩어리를 사은품처럼, '끝까지 봐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차원에서, 주려는 전통적인 전략을 택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웃기기만 하면 삼류고 양념같은 감동이라도 쬐끔 있어야 이류라도 된다고 생각해서인지 영화든 소설이든 이런 식의 '야시'같은 전략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의 소설들은 독자를 시종일관 황당하게 만들고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망설이게 한다. 그의 소설들 속에서는 함량을 알 수 없는 가벼움과 대량의 황당함들이 적절하게 버무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이거 뭐야!'라는 '느낌표'를 동반한 불만과 함께 '이거 뭘까?'라는 '물음표'를 동반한 궁금함이 공존한다.   

이 소설이 주로 다루고 있는 시간적인 배경은 프로야구가 시작한 1980년대이다. 나를 포함해서 당시에 국민학생(지금의 초등학생)으로 프로야구의 원년을 맞이했던 이들에게 삼미슈퍼스타즈는 일종의 '코미디'였고 그들이 하는 야구는 국가가 기획하고, KBO가 연출한, 야구장을 무대로 펼쳐지는 일종의 '개그콘서트'였다, 야구경기로 치밀하게 위장된!  그건 마치, 뭐라고 할까...... 심형래가 임하룡과 같이 나온 개그 코너에서 주로 써먹었던, 6명중 다섯 명은 멀쩡한데 한 명은 좀 떨어지는 인물을 배치하는, 고전적인 설정과도 비슷했다. 사자, 호랑이, 곰, 청룡, 거인에 끼어있는 슈퍼스타?  굳이 심형래 식의 코미디를 빌어서 말하자면 프로야구 원년의 '영구'나 '펭귄'과 같은 존재였다고 할까.  

어떻게 이런 황당한 일이 생겼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식의 추측이 가능하다. 아마도 당시 광주를 피로 물들였던 대통령각하와 그분의 측근님들의 생각이었겠지만, 프로야구를 시작한 '그분들'의 목표가 이왕 시작한 거 프로야구를 통해서 감동과 환희의 '눈물' 뿐만이 아니라 배꼽잡는 '웃음'도 주겠다는 것이었으리라. 한 도시를 피로 물들이고 국민들을 총칼로 탱크로 공포에 떨게 했으니 이러한 국민적 긴장을 푸는 의미에서 '웃음'을 주겠다는 '그분들'의 전략은 어찌보면 괜찮은 선택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국가적인 음모의 희생자, 아니 수행자가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빨간 팬티, 아니 파란팬틴가?, 를 입고 등장한 슈퍼스타들이었던 것이다. 삼미슈퍼스타즈는 야구라는 스포츠가 줄 수 있는 여러 감동들 중에서 '웃음'을 맡았다. 아니, 독점했다. 혹시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스코트를 기억하시는지? 웃길려고 만들지 않고서야 그렇게 만들 수 있을까. 비슷한 컨셉인데 자이언츠는 뭐 좀 있어 보이는데, 슈퍼스타즈는 왜 이리 없어보였는지......

그분들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다음 단계는 '선수구성'이다.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왜냐하면 우리 삼미슈퍼스타즈의 목표는 '승리'가 아니라 '웃음'이니까. 흐흐흐 (음흉하게). 국민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서는 막강한(?) 실력을 갖춘 이들이어야 한다. 이를 일종의 비밀요원이라고 할 수도 있으리라. 삼미슈퍼스타즈의 목표는 완벽하게 달성되었다. 놀라지 마시라! 승률 1할 2푼 5리! 라는 경이적인 승률을 기록한 것이다. 이 놀라운 승률이 한 때 위협을 받았던 시기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장명부가 2인 로테이션, 이것도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하다, 의 선발로 존재했던 시절이었다. 참고로 얘기하면, 삼미슈퍼스타즈의 2인 로테이션은 한 투수가 1회에 출근해서 운좋으면 8회, 그렇지 않으면 9회에 퇴근하는, 중간계투고 마무리고 뭐고 없는 진정한  2인 로테이션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곧 제거되었다. '웃음'이 목적인 구단에서 왠 에이스투수?  어떤 소식통에 의하면 장명부는 정부조직의 다른 부서로 강제로 옮겨져 다른 임무를 맡게 되었다고 한다. 몇 년후에 그는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에 대한  참회의 뜻으로 이제 막 쿠데타를 일으킨 다른 개도국의 '웃음'을 주는 프로야구단으로 스카우트 되었다고 한다.       

박민규는 이런 음모와 풍문들에 대해서 꽤 설득력 있는 해석을 내놓는다. 이 소설은 그가 삼미슈퍼스타즈라는 비밀요원들의 마지막 팬클럽 회원으로서 밝히는, 이건 마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분위기인데....., 프로야구 시작과 관련된 국가적 음모에 관한 대하(?) 논픽션이다. 이 글을 소설로 위장시킨 이유는 그분들의 음모가 너무 엄청났기 때문이다. 혹시 알아, 박민규도 허위정보 유포로 누구처럼 잡혀갈지. 감사용은 왜 이미 야구 선수를 그만둔 상태였음에도 삼미슈퍼스타즈 투수로 기용 되었으며, 장명부는 왜 일 년만에 '에이스' 투수가 아닌 '에이, 씨' 투수가 되었을까, 도대체 그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왜 슈퍼스타즈의 후속타였던 핀토스를 '그분 사모님'께서 직접 관리하셨던 것일까? 왜 히어로스나 자이언츠와 같은 컨셉이었음에도 슈퍼스타즈는 그토록 우스꽝스러웠을까?, 그것이 단지 그의 팬티 때문만이었을까?   

이 소설은 이러한 의문들과 의문에 얽힌 음모들에 관한 박민규 요원의 꼼꼼한 증언이다, 믿거나 말거나.  

덧붙임: 네이버 최훈 작가의 '영웅의 꿈'을 참조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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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기술로 본 세계사 강의
제임스 E. 매클렐란 3세.해럴드 도른 지음, 전대호 옮김 / 모티브북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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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것은 과학사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지만 사게 된건 순전히 번역자 전대호씨에 대한 호감때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이렇게 해서 산 책은 여태까지 모두 성공적이었다. 물리학도이자 시인이자 교양과학서 번역가, 이게 내가 전대호라는 역자에 대해 알고 있는 개인적인 정보의 골자이다. 역자는 나와 약간은 아는 사이(?)다, 물론 몇다리 건너면 배달민족이 다 '아는 사이'라고는 하지만. 연극반 선배의 친한 친구, 하지만 개인적으로 만나서 얼굴을 본 적은 없다. 근데 이걸 아는 사이라고 해야 하나 모르는 사이라고 해야하나. 이건 아는 사이도 아니고 모르는 사이도 아니여!

622쪽이라는 만만치 않은 분량을 읽으면서 전혀 지루하게 느끼지 않았던 것은 첫번째로는 짜임새 있게 쓰여진 원작의 힘이고 두번째는 번역자의 힘이다. 과학 전반에 걸친 역사를 다룬 책 들중 언뜻 기억나는 것은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이다. '거의......'가 갖고 있는 특성 중 '과학전반'을 다루었다는 점이 이 책과 비슷하긴 하지만 몇가지 점에서 '과학과 .....''가 좀 더 뛰어나다. 첫번째는 '과학과' 는 세계사강의라는 제목에 걸맞게 동양과 서양의 비중을 합리적으로 조정하였다. '합리적 조정'이라는 말이 좀 이상하지만,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서양이 세계과학의 중심에 있을 때는 서양의 이야기를, 동양이 세계과학의 중심에 있을 때는 동양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뤘다는 얘기다. 중국과 이슬람, 심지어 한국의 이야기도 이 책 속에 등장한다. 두번째는 이 책은 단순히 일반적인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특정한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역자가 후기에 밝힌 것처럼, 이 책이 증명하려고 하는 역사적 사실이란 것은 과학과 기술의 관계이다. 

과학과 기술의 관계라고 하면 통상적으로 과학적 이론들이 생기고 난 후에 기술이 이를 따라서 발전하는 형태를 생각하기 쉽지만 세계사가 보여주는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이런 일반론이 적용되는 것은 고작 20세기의 일이고 그것도 이차세계대전 즈음의 일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인다면 실험과 이론적 증명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실험을 하고 이에 이론적 증명을 하는 순서로 과학이론이 성립되었을 것 같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이 책의 저자들의 주장이다. 이론적으로 완벽하게 증명을 해내고 실험은 이를 확인하기 위한, 때로는 이론과 전혀 다른 결과를 내기도 했다, 요식행위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적어도 갈릴레이나 뉴튼의 시대에는.

그러니 결과를 정해놓고 논문을 쓰는 수많은 과학도들을 탓할 일만은 아닌 것이다. 조상들도 그랬으니까!!!

약간 부러운 것 한가지. 이 책은 사실 일반교양과학서를 목적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대학 교재용으로 쓰여진 것이라고 한다. 부럽다. 나도 이런 교과서로 과학사를 공부해봤으면!!! 그런데 미국 원서에는 없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전대호씨가 쓴 역자 후기이다. 내가 읽어본 역자 후기중 가장 멋진 글이면서 가장 감동적인 글이다. 혹 이 책을 읽는 일이 생긴다면 너무 긴 책을 끝냈다는 기쁨에 취해 책을 덮지말고 역자 후기를 꼭 읽어보시기를.   

과학도라는 것을 자랑스러워 해야 한단다. 그리고 즐거워해야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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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조네 사람들 김소진 문학전집 1
김소진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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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은 지는 한 6년 정도가 된 것 같다. 하지만 지금도 그 당시의 감동, 아니 감격이라고 해야 하나?, 이 남아있다. 이 감격은 주로 이 소설가가 쓰는 정체불명의 사투리 문체와 단순한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장정일은 언젠가 독서일기에서 김소진의 문체를 평하기를 어느 지방에도 속하지 않은 '문학어'라고 하였다. 그의 지적이, 또는 그가 사용한 문학어라는 용어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 어쩐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이 문학어라는 의심쩍은 용어로 불리는 문체이다.  

그의 전집 속에는 이 소설외에도 미완성 소설이 포함된 4권의 단편집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작품들을 모두 읽어보면 이야기의 다양함은 좀 떨어지는 편이다. 하나의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어느 곳에서는 주된 이야기라 나왔다가, 다른 곳에서는 풍문으로만 잠시 나왔다가 하면 끊임없이 반복, 변주된다. 그 많은 수의 단편들의 중심에는 이 장편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되고 있는 미아리 달동네가있다.   

하지만 제한된 이야기 소재와 미완성 작품들이 주는 아쉬움에 대해서 독자들이 불만을 갖기는 어려우리라. 알고 있겠지만 그는 이미 고인이 되었다. 그가 살아있었다면 전집 서문에 나온 한국문학사에 길이남을 작품을 남기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국문학의 21세기를 책임질 작가의, 아니 그 이상의 반열에 올랐을 것이다. 서문에 쓰여진 찬사가  전집을 내는 출판사의 약간 허풍섞인 입에 바른 칭찬일 것이라는 예상은 이 소설을 읽는 순간 깨져버린다.  

그래서 즐겁다. 그의 긴 문장과 입에 착착 감기는 단어들과 살아 있는 듯한 인물들을 읽어내는 것이 즐겁고, 동네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소설을 <원미동 사람들>과 <관촌수필>, <우리동네>를 능가할 만한 작품을 쓴 젊은 작가가 존재한다는, 혹은 존재 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서 즐겁다. 하지만 이런 모든 즐거움들이 6권의 책이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 김소진 소설을 읽는이를 우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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