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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기술로 본 세계사 강의
제임스 E. 매클렐란 3세.해럴드 도른 지음, 전대호 옮김 / 모티브북 / 2006년 2월
평점 :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과학사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지만 사게 된건 순전히 번역자 전대호씨에 대한 호감때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이렇게 해서 산 책은 여태까지 모두 성공적이었다. 물리학도이자 시인이자 교양과학서 번역가, 이게 내가 전대호라는 역자에 대해 알고 있는 개인적인 정보의 골자이다. 역자는 나와 약간은 아는 사이(?)다, 물론 몇다리 건너면 배달민족이 다 '아는 사이'라고는 하지만. 연극반 선배의 친한 친구, 하지만 개인적으로 만나서 얼굴을 본 적은 없다. 근데 이걸 아는 사이라고 해야 하나 모르는 사이라고 해야하나. 이건 아는 사이도 아니고 모르는 사이도 아니여!
622쪽이라는 만만치 않은 분량을 읽으면서 전혀 지루하게 느끼지 않았던 것은 첫번째로는 짜임새 있게 쓰여진 원작의 힘이고 두번째는 번역자의 힘이다. 과학 전반에 걸친 역사를 다룬 책 들중 언뜻 기억나는 것은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이다. '거의......'가 갖고 있는 특성 중 '과학전반'을 다루었다는 점이 이 책과 비슷하긴 하지만 몇가지 점에서 '과학과 .....''가 좀 더 뛰어나다. 첫번째는 '과학과' 는 세계사강의라는 제목에 걸맞게 동양과 서양의 비중을 합리적으로 조정하였다. '합리적 조정'이라는 말이 좀 이상하지만,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서양이 세계과학의 중심에 있을 때는 서양의 이야기를, 동양이 세계과학의 중심에 있을 때는 동양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뤘다는 얘기다. 중국과 이슬람, 심지어 한국의 이야기도 이 책 속에 등장한다. 두번째는 이 책은 단순히 일반적인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특정한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역자가 후기에 밝힌 것처럼, 이 책이 증명하려고 하는 역사적 사실이란 것은 과학과 기술의 관계이다.
과학과 기술의 관계라고 하면 통상적으로 과학적 이론들이 생기고 난 후에 기술이 이를 따라서 발전하는 형태를 생각하기 쉽지만 세계사가 보여주는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이런 일반론이 적용되는 것은 고작 20세기의 일이고 그것도 이차세계대전 즈음의 일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인다면 실험과 이론적 증명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실험을 하고 이에 이론적 증명을 하는 순서로 과학이론이 성립되었을 것 같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이 책의 저자들의 주장이다. 이론적으로 완벽하게 증명을 해내고 실험은 이를 확인하기 위한, 때로는 이론과 전혀 다른 결과를 내기도 했다, 요식행위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적어도 갈릴레이나 뉴튼의 시대에는.
그러니 결과를 정해놓고 논문을 쓰는 수많은 과학도들을 탓할 일만은 아닌 것이다. 조상들도 그랬으니까!!!
약간 부러운 것 한가지. 이 책은 사실 일반교양과학서를 목적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대학 교재용으로 쓰여진 것이라고 한다. 부럽다. 나도 이런 교과서로 과학사를 공부해봤으면!!! 그런데 미국 원서에는 없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전대호씨가 쓴 역자 후기이다. 내가 읽어본 역자 후기중 가장 멋진 글이면서 가장 감동적인 글이다. 혹 이 책을 읽는 일이 생긴다면 너무 긴 책을 끝냈다는 기쁨에 취해 책을 덮지말고 역자 후기를 꼭 읽어보시기를.
과학도라는 것을 자랑스러워 해야 한단다. 그리고 즐거워해야 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