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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너무 할 일이 없어서 아무 책이라도 한 권 읽으려는 사람, 스무 시간 가까운 비행시간 동안 읽을 무언가가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 '한국 소설들은 다 비슷비슷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사람, 한국시리즈 7차전을 기다리지만 내심 그 경기의 승패보다도 그 이후가 두려운 사람, 한마디로 야구 시즌이 '완전히' 끝나는 것이 두려운 사람, 삼미슈퍼스타즈를 한국프로야구사의 해프닝으로 추억하고 있는 사람, 이들 모두가 이 소설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이 읽어도 전혀 상관없지만.
박민규는 가벼움과 무거움을 버무린 소설을 쓰는 작가이다, 라고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적절한 시간동안 웃기다가 적절한 타이밍에 적당한 량의 감동 덩어리를 사은품처럼, '끝까지 봐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차원에서, 주려는 전통적인 전략을 택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웃기기만 하면 삼류고 양념같은 감동이라도 쬐끔 있어야 이류라도 된다고 생각해서인지 영화든 소설이든 이런 식의 '야시'같은 전략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의 소설들은 독자를 시종일관 황당하게 만들고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망설이게 한다. 그의 소설들 속에서는 함량을 알 수 없는 가벼움과 대량의 황당함들이 적절하게 버무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이거 뭐야!'라는 '느낌표'를 동반한 불만과 함께 '이거 뭘까?'라는 '물음표'를 동반한 궁금함이 공존한다.
이 소설이 주로 다루고 있는 시간적인 배경은 프로야구가 시작한 1980년대이다. 나를 포함해서 당시에 국민학생(지금의 초등학생)으로 프로야구의 원년을 맞이했던 이들에게 삼미슈퍼스타즈는 일종의 '코미디'였고 그들이 하는 야구는 국가가 기획하고, KBO가 연출한, 야구장을 무대로 펼쳐지는 일종의 '개그콘서트'였다, 야구경기로 치밀하게 위장된! 그건 마치, 뭐라고 할까...... 심형래가 임하룡과 같이 나온 개그 코너에서 주로 써먹었던, 6명중 다섯 명은 멀쩡한데 한 명은 좀 떨어지는 인물을 배치하는, 고전적인 설정과도 비슷했다. 사자, 호랑이, 곰, 청룡, 거인에 끼어있는 슈퍼스타? 굳이 심형래 식의 코미디를 빌어서 말하자면 프로야구 원년의 '영구'나 '펭귄'과 같은 존재였다고 할까.
어떻게 이런 황당한 일이 생겼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식의 추측이 가능하다. 아마도 당시 광주를 피로 물들였던 대통령각하와 그분의 측근님들의 생각이었겠지만, 프로야구를 시작한 '그분들'의 목표가 이왕 시작한 거 프로야구를 통해서 감동과 환희의 '눈물' 뿐만이 아니라 배꼽잡는 '웃음'도 주겠다는 것이었으리라. 한 도시를 피로 물들이고 국민들을 총칼로 탱크로 공포에 떨게 했으니 이러한 국민적 긴장을 푸는 의미에서 '웃음'을 주겠다는 '그분들'의 전략은 어찌보면 괜찮은 선택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국가적인 음모의 희생자, 아니 수행자가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빨간 팬티, 아니 파란팬틴가?, 를 입고 등장한 슈퍼스타들이었던 것이다. 삼미슈퍼스타즈는 야구라는 스포츠가 줄 수 있는 여러 감동들 중에서 '웃음'을 맡았다. 아니, 독점했다. 혹시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스코트를 기억하시는지? 웃길려고 만들지 않고서야 그렇게 만들 수 있을까. 비슷한 컨셉인데 자이언츠는 뭐 좀 있어 보이는데, 슈퍼스타즈는 왜 이리 없어보였는지......
그분들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다음 단계는 '선수구성'이다.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왜냐하면 우리 삼미슈퍼스타즈의 목표는 '승리'가 아니라 '웃음'이니까. 흐흐흐 (음흉하게). 국민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서는 막강한(?) 실력을 갖춘 이들이어야 한다. 이를 일종의 비밀요원이라고 할 수도 있으리라. 삼미슈퍼스타즈의 목표는 완벽하게 달성되었다. 놀라지 마시라! 승률 1할 2푼 5리! 라는 경이적인 승률을 기록한 것이다. 이 놀라운 승률이 한 때 위협을 받았던 시기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장명부가 2인 로테이션, 이것도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하다, 의 선발로 존재했던 시절이었다. 참고로 얘기하면, 삼미슈퍼스타즈의 2인 로테이션은 한 투수가 1회에 출근해서 운좋으면 8회, 그렇지 않으면 9회에 퇴근하는, 중간계투고 마무리고 뭐고 없는 진정한 2인 로테이션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곧 제거되었다. '웃음'이 목적인 구단에서 왠 에이스투수? 어떤 소식통에 의하면 장명부는 정부조직의 다른 부서로 강제로 옮겨져 다른 임무를 맡게 되었다고 한다. 몇 년후에 그는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에 대한 참회의 뜻으로 이제 막 쿠데타를 일으킨 다른 개도국의 '웃음'을 주는 프로야구단으로 스카우트 되었다고 한다.
박민규는 이런 음모와 풍문들에 대해서 꽤 설득력 있는 해석을 내놓는다. 이 소설은 그가 삼미슈퍼스타즈라는 비밀요원들의 마지막 팬클럽 회원으로서 밝히는, 이건 마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분위기인데....., 프로야구 시작과 관련된 국가적 음모에 관한 대하(?) 논픽션이다. 이 글을 소설로 위장시킨 이유는 그분들의 음모가 너무 엄청났기 때문이다. 혹시 알아, 박민규도 허위정보 유포로 누구처럼 잡혀갈지. 감사용은 왜 이미 야구 선수를 그만둔 상태였음에도 삼미슈퍼스타즈 투수로 기용 되었으며, 장명부는 왜 일 년만에 '에이스' 투수가 아닌 '에이, 씨' 투수가 되었을까, 도대체 그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왜 슈퍼스타즈의 후속타였던 핀토스를 '그분 사모님'께서 직접 관리하셨던 것일까? 왜 히어로스나 자이언츠와 같은 컨셉이었음에도 슈퍼스타즈는 그토록 우스꽝스러웠을까?, 그것이 단지 그의 팬티 때문만이었을까?
이 소설은 이러한 의문들과 의문에 얽힌 음모들에 관한 박민규 요원의 꼼꼼한 증언이다, 믿거나 말거나.
덧붙임: 네이버 최훈 작가의 '영웅의 꿈'을 참조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