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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만에 조조 영화를 한 편 봤다. 알라딘 영화 티켓을 활용해서. 영화 할인 티켓을 준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조조 영화에는 적용되지 않는 줄 알아 여지껏 한번도 사용해 볼 의도가 없었다.
하지만, 혹시나 하고 문득 시도해 보았다. 맥스무비에 가입하는 게 짜증났지만, 조조 영화 4000원 할인이면 2000원에 볼 수 있다는 건데, 이건 너무도 달콤한 유혹이었다.
오~, 다른 할인 티켓과는 달리 알라딘 맥스무비 영화할인 티켓은 조조 영화에도 적용이 되었다! 그래서 내침김에 바로 예매를 해 버렸다. 가장 압도적인 예매율을 보이고 있는 명량으로 낙찰~
사실, 이 영화를 봐야 하나 망설이긴 했다. 약 10년 전 KBS 대하사극 <불멸의 이순신>을 너무도 감명 깊게 봤기에, '이순신=김명민'이라는 각인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사실 드라마를 보았던 내내 김명민의연기는, 가히 압도적이었다. 오죽 하면 '이순신의 재림'이라는 말까지 떠돌았겠는가.
그래서 이후 이순신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는 김명민이 구축한 '이순신 아우라'를 어떻게 넘어서느냐가 그 성공의 시금석이 될 터였다. 배역을 누가 맡든 비교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을 거다. <불멸의 이순신>을 즐겨 봤던 사람들은 분명히 김명민의 캐릭터를 저 기억속에서 끌어낼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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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영화 보는 내내 최민식의 이순신에 몰입하기 힘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물론 최민식의 연기가 나뻤던건 아니다. 나름대로 무게감 있는 연기를 펼쳤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유승룡의 연기가 더 괜찮았던 거 같다. 최민식은 이순신이라는 캐릭터의 무게감에 갖힌 듯 보였다.
무엇보다 아주 거슬리는 지점이 발성이었다. 최민식의 약간 씹어 내뱉는 허스키 목소리는 울리는 김명민의 목소리를 따라갈 수 없었다. 이는 "죽고자 하는 이는 살 것이요, 살고자 할 이는 죽는다"는 대사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유투브에 올려져 있는 <불멸의 이순신> 94-96화를 보면, 대번 비교해 볼 수 있다.
사실, 최민식은 나름대로 '이순신'을 창출하려 노력했다. 김명민에 비해 좀더 비장미 넘치고 고뇌에 찬 이순신의 모습은 최민식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거북선이 불탔을 때, 도망치다 붙잡힌 병사를 한 칼에 벨 때 특히 그랬다. 하지만 뭔가가 매우 아쉬웠다. 나는 이 실체를 배우의 목소리 톤에 있지 않나 하는 결론을 내렸다.
최민식에 대한 약간의 실망감은 유승룡에 의해서 어느 정도 상쇄될 수 있었다. 하지만 조선군 캐릭터들을 보는 것은 내게 많은 인내력을 요했다. 그만큼 어정쩡했다. 이순신을 받쳐주는 핵심 장수들과 병졸들의 연기력 차이가 간과할 수 없는 불협화음으로 작용했다. 전투신을 제외한 신들은 무척이나 어수선했다.
약 1시간에 육박하는 전투 장면들로 인해 볼거리는 있었는지는 몰라도, 전체적인 감상이 실망감을 상쇄시키지 못했다. 뻔한 내용이기에 이 영화에서 볼거리라고는 캐릭터들과 전투 장면 그리고 연출력이었는데, 전투 장면을 제외하고는 그리 성공적이지 않아 보인다. 뭐, 최대 하이라이트라는 해상 전투신도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과 별반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이 영화의 평이 왜이렇게 높은지 모르겠다. 감독은 대체 최민식과 유승룡이라는 스타를 내세워 <명량>에서 뭘 보여주려 했던 걸까. <불멸의 이순신> 94~96화와 비교해서 그 어떤 차이점도 느낄 수 없었다.
맥스무비 티켓으로 할인을 받지 않았다면 매우 돈이 아까웠을 거다. 그런데 이 영화의 평점이 어의를 상실할 정도로 높은 이유를 이제야 어렴풋이 알것 같다. 영화에 높은 평점을 부여한 사람들은 아마도 김명민 주연의 <불멸의 이순신>을 보지 못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충분히 높은 평점을 줄 수 있었을 듯.
[덧]
임진왜란을 소재로 한 영화가 몇 년만인지 모르겠다. 임진왜란에 관한 영화를 보니, 이 전쟁과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 몇 자 부가해 보기로 한다.
우리나라 사람치고 임진왜란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초등학교 학생도 임진왜란을 설명해 보라면 자신있게 몇 마디 한다. 이순신 장군, 거북선, 행주대첩 등등. 학년이 올라가면 여기에다가 다음과 같은 사항들이 덧붙여진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국 통일. 일본 내부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조선을 침략. 당시 조선은 평화에 젖어 전쟁 준비 부족으로 일본군에 연전연패. 선조의 몽진 등등. 그리고 대학생 정도 되면 여기에 광해군의 분조 활동과 정유재란 그리고 한중일 삼국이 연루되어 싸운 전쟁 등이 더해진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모른다. 아니, 학교에서 가르쳐주지도 않는다. 바로 이 전쟁에 대한 명칭 문제다. 임진왜란을 갖고 한중일 세 나라 학생이 모여 토론하면 전혀 토론이 진행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각 나라마다 이 전쟁을 보는 명칭과 시각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이 전쟁을 임진왜란이라고 부른다. 임진년에 일어난 전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명칭에는 이 전쟁을 보는 우리의 역사적 시각이 투영되어 있다. 방점은 뒤에 있다. '亂'이라는 명칭이 이를 대변한다. 왜구가 임진년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일으킨 난동이라는 거.
그래서 우리나라는 주로 이 전쟁의 승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과거의 관련 논문과 저서들을 살펴보면 주로 이에 집중되어 있다. 이에 대한 집약적 결과물이 고교 교과서다. 주로 전투에 승리한 대첩 위주로 설명되어 있다. 의병과 그 전투를 암기해야 하는 것이 이 시대 역사 공부의 전부다.
그러니 이순신의 해전 순서를 암기하고 첫승이 어느 해전인지 알아야 한다. 교과서의 설명대로라면 이순신은 전장의 신이다. 무패의 신화는 교육에서도 여과없이 전달된다. 이순신이 승리할 수밖에 없는 철저한 준비정신은 상대적으로 저 평가된다. 이 전쟁에 대한 초점을 승패에 맞추다 보면 당연한 귀결이 될 수밖에 없다. (요즘 보니 '7년 조일전쟁'이라는 명칭이 지지 받는 듯)
이런 시각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중국과 일본이 이 전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아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일본은 이 전쟁을 일컬어 '문록경장의 역'이라고 부른다. 방점은 뒤의 '역(役)'에 있다. 쉽게 말해서 우리나라가 너희 나라를 손봐준 것이라는 역사 의식이 투영되어 있다. 이는 일본의 한국병합 시까지 지속적으로 견지된다.
중국은 어떤 명칭을 쓸까? 이 전쟁에서 중국(명)은 우리나가 원군을 요청 하지 않았어도 자발적으로 참여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조선이 일본에 떨어지면 압록강을 두고 일본과 국경을 맞대는 것보다 조선이 버티고 있는 것이 중국에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이 요청해서 조선을 도왔다는 것을 매우 강조한다. 그래서 중국측은 이 전쟁을 일컬어 '항왜원조'라 표현한다. 왜구에 대항해서 조선을 도왔다는 거다. 역시 방점은 '도왔다'는 거에 찍힌다. 그러니 전후에 중국은 항상 뭔가를 요구하게 된다. 이 전쟁 중에 명군의 민폐는 일본군보다 더했다니, 명은 조선의 안위보다 자국의 이익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전쟁에 대한 중국의 역사적 시각은 일본처럼 바뀌지 않고 지속되다가, 20세기에 재등장하게 된다. 놀라운 것은 중국이 한국전쟁에 참여하면서 이를 '항미원조'라는 명칭을 쓴다는 사실이다. 미 제국주의에 대항해서 북조선을 도왔다는 시각은 중국이 임진왜란 이후 한국을 보는 기본적 시각이 변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그렇기 때문에 임진년에 일어난 이 전쟁에 대한 명칭은 반드시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알아야 하는 역사적 사실이다. 명칭에서 각 나라의 기본적 역사의식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아는 것이 교과서의 어디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사실을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과거의 역사적 교훈을 되새기며 역사의 가치를 피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끝>
혹시 영화를 아직 감상하지 않은 분들이라면 원작인 <명량>보다는 한명기 교수의 책 두 권을 권해드린다. 역사학계 최고의 입담이라 회자되는 한 교수의 저서들은 <명량>보다 훨씬 알차고 유익할 것이다. 시간이 부족한 분이라면 <칼의 노래>가 <명량>보다 좋은 선택일듯하다. 영화를 보고나니 소설 <명량>은 읽고 싶은 생각이 샥 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