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란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은 일을 경험했습니다.
뭐, 위 말은 오래 살아가다보면 버라이어티 한 일을 많이 겪는 다는 의미일 텐데, 어제 제가 그런 일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올 1월을 전후하여 정말 후덜덜하게 살고 있습니다. 혼자 뭔가를 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정말 후덜덜한 일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고 있습니다. '제길!', '빌어먹을 대한민국'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그건 뭐 지금도 매한가지..
뭔가 기반이 없는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에서의 삶은 팍팍함 그 자체인듯 합니다. 이런 생활 와중에 홍대 주변에서 흔치 않은 경험을 하게 됐습니다.
뭔, 일 때문인지 저는 어제 저녁에 홍대 근처에서 배회하고 있었습니다. 배가 약간 출출해서 홍대역 9번 출구에서 가까운 떡볶이 포장마차에서 튀김과 오뎅을 먹고 있었습니다. 역 바로 나오면 4개의 포장 마차가 있는데, 여기 튀김과 떡볶이 그리고 오뎅의 맞은 일품입니다. 2000원 어치만 먹어도 배가 부릅니다~ㅎ
먹고 나니 갑자기 약속이 잡혀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홍대 주변에서 배회한 이유가 아마도 약속 때문이었던 거 같다는 생각이 퍼뜩 스쳤습니다. 배가 출출하여 오뎅과 튀김 생각이 홍대역 근처로 저를 인도했나 봅니다..ㅎㅎ
시간 여유가 좀 있어서 천천히 역으로 가는 가는 찰나에, 어떤 아방한 옷차림의 엄청 큰 청년이 저를 막아 섭니다. " 저..시간좀 내 주실 수 있으세요?" 전, 직감했지요. 흠~ 도를 아십니까를 묻는 사람들이군. 째려보면서 없다고 하고 그냥 갈려고 했습니다.
근데, 갑자기 하는 말이 "옷을 너무 얘쁘게 입으셔서요"라는 말이 그 청년 입에서 튀어나옵니다. 갑자기 '도를 아십니까'가 아니라 '이 친구 게이 아닌가?'란 생각이 쓰치면서 얼른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다시 아방한 옷차림의 여자분이 제 발걸음을 멈추게 하며 말합니다. "저희 이상한 사람들 아니에요!" 하지만 저는 생각했지요. 이상한 사람들 같습니다. 아방한 옷차림부터가 수상해서 잔뜩 경계하고 있었지요.
여자분이 또다시 말합니다. 저희는 크래커라는 잡지사 기자인데 옷을 너무 잘 입으셔서 스트릿 사진에 담을까하고 부탁드리는 거라고 합니다.
엉?! 그 크래커 잡지?? 저는 크래서 잡지를 안다고 말하고 크래커 잡지에서 추구하는 스트릿 패션 사진과 지금의 내 스타일은 많이 다른 것 같다면서 제의는 고맙지만 그냥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다시 저를 잡으며 제발 몇 컷만 찍자고 합니다. 자기들이 보기에 정말 잘입어서 꼭 카메라에 담고 싶은 룩이랍니다.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연신 90도 각도로 부탁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러자고 했지요.
그랬더니 다시 90도 각도로 인사하며 감사하다고 합니다. 홍대역 9번 출구로 바로 나오면 첫번째 건물인 휴대폰 매장 앞에서 사진을 몇 컷 찍고 그 다름 건물 앞에서 몇 컷 찍었습니다. 찍기 전에는 입은 아이템이 뭔지 써달라고해서 생각나는 것만 써 줬습니다.
특히 키큰 남자분은 제가 입은 베스트에 많은 집착을 보이셨다능~ㅎㅎ
뭐, 몇 분 안됐지만 생각해 보니 참 기분 좋은 경험 이었습니다. 예전에 명동에서 한 여자분이 패션 블로거를 운영한다며 사진을 찍을 수 있냐고 물어본 경험이 있었는데, 그때는 그냥 무시했었거든요.
이후 패션 잡지를 보다보니, 그런 제안을 받는 건 옷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유쾌한 상찬이란 걸 알았습니다. 얼굴이 팔리는 게 좀 꺼려지긴 했습니다만, 패션 잡지에서 부탁을 받기는 흔치 않은 일인 거 같아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패션 잡지에 나오는 유명 메이커 옷을 살 정도로 풍족하지도 않고, 또 그런 데에 돈을 들이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인지라 패션계 종사자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네들은 아이템이 어떤 브랜드에 얼마...라고 말하길 좋아하거든요. 어디에서 샀는지도 무척 따집니다. 하지만 전 싸고 질 좋고 디자인 좋은 옷을 추구하는지라 그네들과 맞지 않는 것 같은데, 이렇게 스트릿 사진을 찍히게 되니 좀 아이러니 합니다.
어제 입고 나간 룩입니다. 이게 크래커 기자들에게 그렇게 사진에 담고 싶은 룩인지는 아직도 의문이 들긴 하지만...홍대역 주변의 그 많은 인파들 속에서 저를 찝었으니 제가 모르는 그들만에 눈에 띤 뭔가가 있겠지요. 기념할 겸 사진으로 남겨봅니다. (그들은 뒷모습의 가방도 찍었습니다..ㅎ)
청록색 블레이저: 일본 빈티지
안에 브이 넥 니트: 유니클로
사진에는 안 보이지만 블레이저 안에 입은 카디건: 유니클로 울 카디건
바지: 유니클로
베스트: 지이크 패런하이트
체크 남방 셔츠: 유니클로
니트타이: 유니클로
보라색 양말: 길거리표
윙팁 구두: 일본 수제화
시계: 아놀드 바시니
머플러: 이탈리아제(브랜드 이름 까먹음 --;;)
아이템 모두를 구입하는 데 쓴 비용 17만원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