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 개정4판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 지음, 박이소 옮김 / 현실문화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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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도직입적인 물음으로 시작해 보자. 다음 그림은 미술작품인가?

 


이 물음에 의아함을 가진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걸 문제시한다고? 당연히 예술품이지. 역사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그림인데!' 맞다. 위 그림은 서구방이 그린 고려시대(1323년 작)의 불화인 양류관음도. 지금 이게 미술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교양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할 것이다. 고려시대의 걸출한 불화(佛畫), 고려시대 불화는 대부분 국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그 정도로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미술품이다.

 

헌데 이 작품은 원래 미술이 아니었다. 불교적 이상 세계를 염원하면서 그린 종교화(宗敎畵). 쉽게 말해서 우리가 지금 보고 감상하는 회화작품이 아니란 것. 종교적인 목적으로 제작된 그림이다. 이는 11세기 인도에서 제작된 나타라자 조각상이나 림브르 형제의 <베리 공작의 귀중한 성무일과>와 같은 목적을 갖고 제작된 종교적 성물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근대가 되자 시스티나 성당의 프레스코화는 미술품이 되었다. 위 양류관음도 역시 미술이 되었다. 우리가 현재 일상에서 쓰는 미술이라는 개념은 근대 세계가 만들어낸 일종의 발명품이라 할 수 있다. 과거에는 미술이 아니었던 많은 종교적 성물들은 현재 미술의 세계로 포섭되었고 대부분 그 나라의 박물관에 보존되어 국가유산급 미술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매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의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현실문화, 2013)에 소개된 핵심 내용을 요약한 것인데, 이 책에는 미술이 아닌 것과 미술인 것을 나누고, 언제부터 미술이 태동되었고, 현대 미술은 어쩌다가 미술이 아닌 것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는지 설명해 주고 있다. 책의 핵심은 후반부(현대 미술)에 가 있지만 초반부 사진과 함께 소개된 이것은 미술이 아니었다는 명제와 도판은 독자의 호기심과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내용이다.

 

이 책은 존 버거의 <보는 방법>과 더불어 미술을 보고 이해하게 해 주는 가장 유명한 회화 분야 입문서 중 하나임은 틀림없다. 작은 책임에도 약 300여 개의 사진과 도판이 수록된 책이지만 가격이 착하다. 그래서 그런지 한계도 뚜렷한데, 도판이 모두 흑백이라 정확한 감상을 방해할 정도로 퀄러티가 떨어진다. 가격에 비해 어쩔 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아쉬운 감이 많이 든다.

 

책은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다시피 책의 전반부는 미술인 것과 미술이 아닌 것(이전에는 미술이 아니었다가 근대에 들어 미술이 된 것들)을 구분하는데 할애하고 있고, 후반부는 아카데미, 박물관, 미술사 등 근대미술의 태동과 더불어 아방가르드와 대중문화, 사진 등 현대 미술 분야를 스케치하듯 서술하고 있다.

 

도판 위주로 체계성이 없는 듯 보이지만, 이 책의 최고 장점은 명확한 그 메시지에 있다. 미술인 것과 미술이 아닌 것의 구분. 그리고 그것이 시대성의 산물이라는 것. 책 초반부에 소개된 미술이 아니었던 많은 것이 근대에 들어 미술로 포섭되었다. 우리가 아는 많은 예술품들이 이에 속한다. 이 많은 작품이 왜 미술로 포섭되었는지 그 본질을 이해하면, 후반부 현대 미술이 왜 그렇게 난해하게 됐는지 이해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마르셀 뒤샹의 <자전거 바퀴>를 생각해 보자.(<>은 너무도 유명해서 생략) “뒤샹은 우리가 문장을 만들기 위해 단어 두 개멋진 그림이군(nice picture)’를 합친 것처럼 의자와 자전거 바퀴를 결합시킨 것이다.” 자전거 바퀴와 의자는 기성품이다. 이들의 조합은 미술품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뒤샹은 무엇인가를 창작하는 것은 자신 외부에 존재하는 것들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방식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래서 이런 멋진 작품이 탄생한 것. 이는 모든 재현의 형태가 문화적 언어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p218-219)

 

근대와 르네상스 미술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부분이다. 뒤샹 이전에는 이런 오브제는 결코 미술이 될 수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현재에는 엄청난 작품으로 평가받는 것일까? 이 대답은 책 초반부에 미술이 아니었던 것들이 근대에 들어와 미술로 포섭되는 과정과 일맥상통하다. 알타미라 동굴벽화가 현재 미술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지점과 비슷하다. 시대정신이 현대의 미술을 만드는 것이다. 이게 이 책의 핵심이다.

 

미술이 근대의 발명품이었던 것처럼 현대 미술은 시대정신의 발명품이다. 그래서 에이드리언 파이퍼의 설치미술(p291), 퍼블릭 애너미의 랩음악(p286), 신디 셔면의 <무제영화 스틸>(p281), 왬의 <접근금지> 비디오(p274), 안토니 문타다스의 <기자회견장>(p250) 등의 작품이 핫한 현대 미술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우리가 보는 난해한 현대 미술은 모두 미술이 아닌 것 같지만 문화적 맥락 속에서 그 언어가 미술로 통용되고 있다는 점.

 

도판이 많고 스케치하듯 대상을 설명하고 있는 책이라 밀도가 떨어지는 듯하지만, 책을 읽고 나면 현대 미술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문제의식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지점이 생긴다. 그것은 바로 이것은 왜 미술이 아니고, 이것은 왜 미술인지구분할 수 있다는 거. 거창한 듯하지만 매우 실용적이고 어떻게 보면 단순할 정도이다. 책이 유명한 이유가 다 있는 거라는 걸 실감한다.



* 덧

내가 읽은 판본은 2013년 판(분홍색 표지)으로 22년판과는 쪽수에서 차이가 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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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5-17 0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 저도 탱화는 당연히 미술 작품이라고 생각했는데 글을 읽어보니 당시에는 글을 모르는 민중들을 위해 종교적인 내용을 쉽게 풀이한 도상화가 맞단 생각이 듭니다.
말씀하신대로 미술이나 예술은 시대에 따라서 그 정의가 변화되는 것 같은데 임란당시 국사발 간장종지등으로 조선에서 쓰였던 백자 그릇이 현재는 일본에서 국보 취급을 받는 것을 보면 잘 알수 있지요^^

yamoo 2025-05-17 09:52   좋아요 0 | URL
이 책은 메시지가 분명합니다. ‘미술‘이란 건 근대의 발명품이고, 현대 미술은 현대의 시대정신이 발명한 거라는 거. 알타미라 동굴벽화가 언제 미술로 포섭됐는지 그 지점을 이해하면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단초가 될 것이고, 이 책은 이 메시지를 잘 전달하는 책인듯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