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 관심을 가진지 어언10년이 훌쩍 넘어갑니다. 뭐, 누구나 거치는 단계겠지만 처음에는 전시회 보러다니다가, 미술 서적 탐독하고, 다시 전시회 다니고...그런 후에 그림을 소장하게 되고..
뭐, 그림 애호가의 당연한 수순이랄까요. 예외도 있겠습니다. 요즘 MZ세대들은 주식투자하듯이 미술품 투자를 한다니 참으로 용감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애호가들처럼 전시회다니고, 미술서적 탐독하는 걸 가뿐히 뛰어넘어 그림을 구매하는 단계로 이행하니 말이죠.
**에서 주로 그림을 구매하다가 보니 어느 순간 몇몇 작가를 빼놓고는 구매할 그림이 없더군요. 그래서 소장품 경매를 통해 좋은 그림을 꽤 낙찰받았습니다. 정말 걸출한 그림들을 말도 안되는 착한 가격에 소장하게 되어 요즘은 소장품 경매쪽으로 구매 노선을 바꾼 상태입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그림을 감상하는데 만족했지만 어느 순간 소장 욕구로 발전하고 급기야 그림을 그리고픈 욕망이 분출하더라구요~ 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그냥 생각을 텍스트로 많이 표현했습니다. 잡다한 철학 및 심리학 텍스트들을 읽다가 보니 글을 끄적거리게 되고 리뷰도 꽤 쓰게 되었죠.
그러다가 비트겐슈타인과 베르그손 철학을 만나고부터는 생각하는 대로 글을 쓰기가 무척 힘이들더라구요. 생각이 뻗어나가는 속도를 글이 도저히 담을 수 없어 낙담하던 찰나 칸딘스키의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라는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칸딘스키가 이 책에서 설파한 내용 중에 색이 모든 것을 표현한다는 걸 읽게 되는 순간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미술은 진입장벽이 꽤 높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칸딘스키가 설파하는 바를 따라가다보면 그림이란 매체의 다른 한 분야라는 생각으로 귀결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실행에 옮겨 봤는데, 텍스트로 표현하는 것보다 직관적으로 생각을 표현하는데 강점이 있었습니다.
텍스트로는 여러페이지를 할애하여 고민하면서 쓰고 고치기를 반복해야하지만, 그림은 색으로 또는 질감으로 원하는 바를 구현할 수 있어 더없이 좋은 수단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그래서 계속 그리게 됩니다. 그러니 여기저기 그림이 쌓여가고 작은 사이즈 그림들은 지인들에게 선물을 하곤합니다.
헌데 반응이 너무도 좋아서 전시회를 해하하지 않나...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ㅎㅎ 주로 시리즈물을 그리는데 기억의 편린, 인간이 그리는 무늬, 무한한 상상계, 색의 한계 등의 소주제 하에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력은 기억의 편린.
기억의 편린 시리즈를 주로 그리는 이유는 제가 베르그손의 텍스트를 그림으로 구현하고자 열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억은 현재의 기억이 과거의 기억 위에 차곡차곡 쌓입니다. 모든 기억은 나름의 사건들을 가지고 있죠. 나름의 색깔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쌓인 기억들 밑에 과거의 기억이 깔린다고 하더라도 과거의 기억은 언제나 현재와 관련을 맺고 생생하게 현재에 개입합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과거의 기억은 과거에 묻혀 잊혀지는 게 아닙니다. 트라우마처럼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다가 현재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시 언제나 현재로 불쑥 개입하게 되지요.
저는 이런 기억의 작용을 화폭에 담아보고자 시도합니다. 그 결과물이 아래 그림과 같이 나옵니다. 큰 그림은 아니고 작은 사이즈의 그림들입니다. 대체로 2s나 3F 또는 6F 정도의 캔버스에 아크릴 또는 혼합으로 그립니다.
지인들에게 선물로 줄 그림들은 1호 사이즈 종이에 액자를 담아 드리는데, 아래 3작품이 지인들에게 주는 작품들입니다.
[덧]
온라인 전시회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작은 사이즈라도 그린 그림이 많아 온라인 전시회를 여는 건 문제가 없는데 문제는 사진의 질이 현격히 떨어져 사진을 보정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듯합니다.
인터넷 전시 공간에 그림을 등록하는 절차도 좀 시간이 많이 걸릴듯해요. 그림마다 설명을 해야하고 전시회 개요나 팜플렛 등도 만들어야 하기에...
뭐, 저같은 무명 아마추어 작가에게는 온라인 전시회가 딱인듯한데, 의외로 손이 갈게 많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