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라디오
이토 세이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영림카디널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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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소설은 어느덧 5년이 가까워지는 후쿠시마 대지진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일상의 삶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죽음을 맞게 된 수많은 이들. 이들의 죽음은 과연 누구의 잘못인가? 그리고 이들의 죽음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갑자기 죽음을 맞게 된 그들은 그렇다면 이 세상과는 영원히 단절된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작가 나름의 해석이 이 소설 안에 담겨 있다.

 

너무나도 무거운 주제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 무거운 주제를 무겁지 않게 다룬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내용은 빠뜨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죽은 자가 상상력으로 들을 수 있는 라디오 방송을 한다는 설정이 참신하다. DJ 아크는 도시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그만 그 다음날 후쿠시마 대지진이 일어남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삼나무 꼭대기에 걸리게 된다. 삼나무 꼭대기에서 눈을 뜬 그는 그 때부터 상상력으로 들을 수 있는 라디오 방송을 전송하게 된다. 물론, 이것 역시 상상력으로.

 

그런데 이 방송을 수많은 사람들이 듣게 된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죽은 자들이다. 이 방송은 죽은 자들만이 들을 수 있다. 그렇다. DJ 아크 역시 죽은 자다. 그는 이 방송을 통해, 갑자기 영문 모를 죽음에 처한 수많은 혼백들을 위로한다. 죽은 자와 죽은 자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뿐 아니라, 그는 이 방송을 통해, 그의 사랑하는 아내가 연락을 해 주길 원한다. 하지만, 아내에게서는 연락이 없다. 아크는 아내의 연락을 애타게 기다리지만, 연락이 없음이 곧 기쁜 소식임을 깨닫게 된다. 그건 바로 아내는 살아있다는 증거니 말이다.

 

한편 작가 S씨는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듣길 원한다. 그리고 실제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듣는 자들도 발견한다. 과연 S는 죽은 자와의 소통을 이룰 수 있을까?

 

이 소설은 갑자기 당하는 죽음, 그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질문한다. 혹여 그 뒤편에 신이 있다면 그 신은 너무나도 잔인한 신이다. 그렇기에 작가는 DJ 아크를 통해, 그 신에게 분노한다.

 

“이것은 누군가의 저주인가요? 그렇다면 저는 그놈을 저주해 주고 싶습니다. 상대는 신인가요? 신이라고 해도 저는 네 멋대로 굴지 마, 하고 목을 잡고 코나 입에서 점액이 나올 정도로 흔들어 줄 겁니다. 살려달라고, 살려달라고 몸부림치고 울면서 비명을 지르도록 신을 높이 쳐들어 누구의 눈에서도 존경심이 사라질 정도로 손발을 파닥거리는 그놈을 숨이 끊어지지 않을 만큼 괴롭히며 무릎으로 배를 차면서 산꼭대기로 올라갈 겁니다. 그곳에서 마을을 보여주며 너한테 무슨 권한이 있어서 이런 짓을 했냐고 따질 겁니다.”(106-7쪽)

 

그렇다. 우리는 이처럼 죽음 앞에 분노할 수 있다. 누가 그 분노가 잘못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안에서 섣불리 신의 뜻을 말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누군가의 죄 때문이라는 무책임한 접근은 지양해야만 한다. 또는 그 안에 어떤 교육적 의도가 있다는 생각도 누가 이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무엇보다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은 엄청난 불행에 대한 우리 모두의 공감이다. 함께 슬퍼하고, 함께 슬픔을 딛고 일어서려는 노력이다. 물론, 아무리 그렇다 할지라도 우린 직접 그 슬픔과 재앙을 겪은 자들의 마음을 온전히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아무리 귀를 기울인다 해도 물에 빠져서 가슴을 쥐어뜯다 바닷물을 마시고 세상을 떠난 사람의 괴로움은 절대로, 절대로 살아 있는 우리가 헤아릴 수 없습니다. 들린다고 생각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고집이고, 설령 뭔가가 들린다고 해도 살아갈 희망을 잃은 순간의 진짜 두려운, 슬픔을 우린 절대로 알 수 없어요.”(83쪽)

 

물론, 이 말은 죽은 자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듣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말에 대한 반론으로 자원봉사자 나오 군이 한 말이다. 하지만, 이 안에 우린 어떤 노력을 할지라도 당사자들의 슬픔, 두려움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 죽음은 온전히 직접 체험한 자들의 몫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작가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을 말하고 있다. 실제 이 소설에서는 그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설정임을 잊어선 안 된다. 비록 우리가 죽은 자들의 소리, 그 두려움, 그 절박함, 그 애절함, 그 슬픔을 들을 수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그 비명, 그 아우성에 귀를 기울이는 노력이 필요함을 작가는 말한다. 상상을 동원하여.

 

또한 작가는 이런 귀 기울임과 함께 우리가 너무나도 쉽게 그 슬픔을 잊음을 꾸짖는다. 우린 어떤가? 작년 봄, 전국을 뒤흔들었던 슬픔, 세월호 사건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나? 이미 그 슬픔은 우리에서 온전히 씻겨 나간 것은 아닌가? 여전히 그 슬픔의 한가운데 앉아 있는 유가족들의 슬픔은 외면한 채 말이다. 특히, 이런 망각에 매스컴이 앞장서고 있음을 작가는 고발한다.

 

“텔레비전에서도 라디오에서도 신문에서도 거리에서도. 죽은 사람을 애도하고 멀리하며 그걸 맹렬한 속도로 잊으려 하고 있고, 그 방법이 사회를 전진시키는 유일한 길처럼 되어 있잖아.”(138쪽)

 

물론, 우린 그 슬픔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코 그 슬픔의 사건을 잊어선 안 된다. 오히려 그 슬픔이 나의 것이 되어야 한다. 소설의 줄거리 안에서 DJ 아크는 점차 자신의 에피소드와 타인들의 에피소드 간의 간극이 뭉개지기 시작한다. 아크 자신의 기억이 뭉개지는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을 작가가 의도한 구원의 한 줄기로 이해했다. 타인의 아픈 기억이 나의 것이 되는 것. 이것이 치유할 수 없는 슬픔을 치유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슬픔에서 건져 올릴 구원의 방법이기도 하다. 망각이 아닌, 오히려 그들의 슬픔의 사건이 내 것이 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소통이 아닐까?

 

죽은 자와 죽은 자의 소통, 산자와 죽은 자의 소통, 남겨진 자와 산 자의 소통은 결국 그 기억을 공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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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다크, 일처럼 여행처럼 - KBS 김재원 아나운서가 히말라야에서 만난 삶의 민낯
김재원 지음 / 푸르메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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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다크”하면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우다』가 생각난다. 생태분야의 고전격인 책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고 많은 것을 생각했던 책. 라다크는 척박한 땅이다. 한정된 자원과 닫힌 시스템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 자연스레 자리 잡은 일처다부제, 그리고 자족하는 삶. 풍족하지 않지만, 풍성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언제나 우리 현대인들에게는 마치 고향과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다.

 

바로 그곳으로 떠난 여행기가 이 책, 『라다크, 일처럼 여행처럼』이다. KBS 아나운서 김재원 아나운서가 프로그램 촬영차 참여한 여정을 기록한 책이다. 숨쉬기 용이하지 않은 고지대, 그리고 그곳을 힘겹게 자전거로 달려야 하는 여정을 통해, 저자는 무엇보다 자신의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고 앞으로 걸어갈 인생을 꿈꾼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는 이번 여정의 여행기만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사이사이에 자신의 지나온 인생 가운데 어쩌면 아픔으로 남아 있을 사건들을 되돌아본다. 어린 시절 경험한 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엄마가 없는 아이로서의 상처, 신혼 초에 쓰러진 아버지, 그로 인한 급작스런 귀국과 병간호과정, 아버지의 죽음, 가까운 이로부터의 배신의 상처 등을 언급하며, 그 모든 상처를 힘겨운 여정과 함께 털어놓길 꿈꾸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울러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기에 라다크 여정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아보기도 한다. 그런 내용들 가운데 몇을 생각해본다.

 

“길을 잃고 헤매는 길이 원래 가려던 길보다 더 좋은 길일 수 있다. 가지 않은 길은 환상과 예상으로 높은 점수를 주는 길이고, 내가 들어선 길은 경험과 느낌으로 현실적인 점수를 주는 길이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보다 내가 간 길이 주는 기쁨을 만끽하리라. 인생도 마찬가지다.”(16-7쪽)

 

그렇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내가 가지 못한 길에 대한 환상으로 내가 걷는 길이 주는 기쁨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자의 말처럼, 내가 간 길, 내가 가고 있는 길, 내가 장차 여전히 걷게 될 그 길이 주는 기쁨을 만끽하는 인생이 되면 좋겠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는 가운데 도전을 받은 부분이 있다. 유목민 가정을 방문하여 몇 날 같이 있으면서 그 집안의 젊은 아들, 새신랑인 목자 초겔리에게 저자는 양치는 목자로서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인지 묻는다. 이에 돌아온 대답은,

 

“한 마리, 한 마리 바라보는 거요. 4백 마리가 넘지만 하루에 한 번이라도 꼭 모두에게 눈길을 주려고 해요. 바라봐야 아픈 것도 알고, 젖 짤 때도 알고, 새끼 밴 것도 알고 그렇거든요.”(193쪽)

 

난 과연 내가 돌봐야 할 이들을 이렇게 대하였던가? 과연 하루 한 번이라도 그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평안을 빌었던가? 부끄러움이 앞선다. 라다크 촌부의 고백이야말로 얼마나 멋진 고백인가? 그리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그 모습이 앞으로도 내 삶의 도전이 되길 소망해본다.

 

아울러 소유한 것이 적고, 우리처럼 편리한 삶을 살지 못하는 그네들이 언제나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 모습 역시 도전이 된다.

 

“이들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그 행복은 그러면 나의 행복과 비교가 가능한 것일까? 누가 더 행복하다는 말은 어떤 기준으로 할 수 있는 것일까? ... 머릿속에 행복 전구가 켜지는 순간은 다 다르다는데, ... 이들은 어떤 스위치로 행복 전구를 켤까? (이들의) 표정만큼은 행복 전구가 1백 개쯤 들어온 것 같았다. 나는 지금 겨우 한 개가 들어와 있는데 말이다.”(187쪽)

 

오늘 내가 가진 것으로 행복을 찾는다면, 그 행복은 언제나 내 곁에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소유는 만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복이 초점을 내 곁에 있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둔다면, 내 사랑하는 부모님들, 내 사랑하는 아내, 사랑하는 딸과 아들, 그리고 언제나 날 위해 기도해주는 수많은 사랑하는 이들을 생각한다면, 행복하지 않을 것이 무엇일까? 내 삶 속에 오늘도 행복 전구가 수없이 반짝이길 바란다.

 

아울러 내가 걷은 인생길에 우리 넘어질 순간들이 종종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다시 일어서자.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넘어진 자리에 머물지만 않아도 인생은 앞으로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쓰러진 자리에서 그대로 남아 있거나 아프다고 되돌아간다면 여행의 종착역은 멀어진다.”(300쪽)

 

그렇다. 넘어질 수 있다. 당연하다. 하지만, 그 자리에 머물지 말자. 다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자. 그럴 때, 내가 걷는 이 인생 여행길이 행복한 여행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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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택리지 - 강제윤의 남도 섬 여행기
강제윤 지음 / 호미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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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조시대 지리서인 이중환의 『택리지』에세 제목을 따온 본서 『섬 택리지』는 작가 강제윤의 남도 섬 여행기다. 남도 섬 여행기라고 해서, 남도의 섬들을 두루두루 살폈다기보다는 전남 신안군에 속한 섬들로 그 범위가 한정되어 있다. “천사섬 신안”이라 말하는 곳. 1004개의 섬들이 있다고 해서 천사가 빚은 천사섬, 섬들의 고향이라는 신안. 바로 그곳의 섬들을 작가는 여행하며 그곳에서 만난 풍경, 사람, 삶을 이야기한다.

 

섬은 외롭다. 왜 그럴까? 무엇보다 접근성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요즘은 연륙교가 놓인 곳들도 많아 이젠 더 이상 섬이 아닌 육지가 된 곳도 적지 않다. 이 책에서도 소개하는 증도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연륙교 계획이 없는 섬들도 많다. 그래서 어쩌면 같은 섬사람이면서도 상대적 박탈감에 힘겨울 사람들이 왜 없겠나? 작가는 바로 그런 섬 병풍도의 어르신 말씀을 통해, 이처럼 이야기를 풀어낸다.

 

《“병풍리는 영원히 섬으로 남을 겁니다. 그런데, 언젠가는 할 겁니다. 일자리 만들라고 할 겁니다.” 불쑥 던지는 말씀이지만 노인은 다리 공사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섬들을 내륙과 연결하는 다리 공사가 꼭 섬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란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토목 자본의 이익을 위해 다리 공사가 시행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아는 거다.》(322쪽)

 

이처럼 작가는 섬 여행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세상을 읽어낸다. 작가에게는 섬의 풍경, 섬의 역사, 섬 속에서 발견되는 문화유산, 섬에 구전되는 전설, 섬에서의 고단한 삶의 모습 등 모든 것들이 세상을 읽어내는 재료가 된다. 그렇기에 단순한 섬 여행기라기보다는 섬을 통한 세상 읽기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무엇보다 작가는 섬의 풍경보다는 그 안에서 살아가는 또 하나의 풍경, 인생살이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렇기에 작가에게는 섬사람들의 삶이 곧 인생풍경이 된다.

 

《자신은 깨닫지 못하지만 풍경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 풍경과 분리되지 않고 풍경 속에 녹아들어 풍경의 일부가 되어 버린 사람들. 한운리 갯벌의 풍경은 마침내 스스로 풍경이 된 저 어부로 인해 완성된다.》(24쪽)

 

그러나 어찌 갯벌의 풍경만이 그렇겠나?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은 모두 우리들 각자의 삶의 모습이 곧 풍경을 이루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과연 내 삶의 모습은 어떤 풍경을 연출하고 있을까? 아름답고 따스함이 느껴지는 풍경을 만들고 있을까? 아님 무시무시하고 살벌한 풍경을 만들고 있을까? 전자였으면 좋겠다.

 

이 책을 통해, 작가와 함께 신안의 섬들로 여행을 떠나며 느낀 점은 섬이 늙어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아니 어쩌면 섬과 함께 늙어버린 어르신들이 하나둘 이 땅을 떠나게 되면, 그와 함께 섬의 생기 역시 죽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여겨지기도 한다.

 

이젠 더 이상 섬에서의 외롭고 고단한 삶을 살아갈 인생이 줄어들기에 좋아해야 할까? 아님 섬이 더욱 통상적 삶의 테두리에서 멀어짐을 안타까워해야 할까?

 

왜 이렇게 섬이 늙어가고 있을까? 그건 더 이상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바다의 선물이 풍성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왜, 바다의 선물은 줄어들었을까? 결국 인간의 탐욕이 바다의 씨를 말렸기 때문일 것이다. 발달된 어업기술과 인간의 탐욕이 손을 잡고 어린 치어까지 분별없이 잡아들인 남획의 결과 이제 더 이상 바다는 풍요롭지 못하다. 그렇기에 그 풍요로움을 좇아 몰려들던 사람들이 이제는 바다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만든 거다.

 

이제 우리 모두 더 겸손한 자세로 자연을 대하길 원한다. 그렇게 될 때, 작가가 여행한 다양한 섬들의 이야기는 책속에서만 만나는 이야기가 아닌, 우리 생의 공간에서 계속하여 만나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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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삼키는 교실 바우솔 작은 어린이 20
신정민 지음, 김소영 그림 / 바우솔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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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화책은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내주는 숙제를 발표하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답니다.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에게 특별한 숙제를 내 주는데, 그것은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으로 동화를 한 편씩 써오라는 겁니다. 이에 친구들이 각자 동화 한 편씩 써온 답니다. 물론 이 모두는 작가 선생님의 창작이죠. 하지만, 작가 선생님은 최대한 아이의 입장, 아이의 눈높이에서 동화를 만드네요. 그리고 오히려 그렇게 아이의 입장에서 만든 동화들이 너무나도 재미있답니다.

 

샘이는 「두부의 모험」을 써왔는데, 냉장고 속에 들어 있던 두부를 엄마가 요리하려 하는데, 엄마에게 자꾸 일이 생기네요. 갑자기 오줌이 마렵기도 하고, 전화가 오기도 한답니다. 그 때마다 두부는 무시무시한 칼날을 피해 슬금슬금 도망치고 말이죠. 마치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하지만, 계속 반복되는 이야기에 선생님은 조금 지루해 하시네요.

 

민호가 발표하는 「김」은 더 지독하네요. 김 군이 길을 떠납니다. 그 길에서 김 군은 안 김 군, 구운 김 군, 안 구운 김 군, 구운 안 김 군, 안 구운 안 김군 등을 만나네요. 민호의 말장난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답니다. 이번엔 파래김 군, 안 파래김 군, 구운 파래김 군, 안 구운 파래김 군,,, 등등을 만난답니다. 웃긴 말장난인데, 읽는 가운데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답니다.. 말장난을 좋아하는 남자아이들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 미소 짓게 되고요.

 

수빈이가 발표한 「눈물 만두」는 참 감동적이네요. 엄마의 사랑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동화고요. 어쩌면 우리 모두는 엄마의 눈물만두를 먹고 지금까지 자란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민희가 발표한 「모두 다 섞인 종합 음식 나라」는 왠지 민호가 발표한 「김」을 떠올리면서도, 다문화사회에 대한 돌아봄을 생각게 하고, 용이가 발표한 「음식물 쓰레기 공룡」은 우리가 버린 쓰레기들이 결국에는 우리의 삶을 공격하게 될 것을 경고하는 내용도 담고 있답니다. 웅이가 발표한 동시 「볶음밥과 친구들」 역시 민호의 「김」 못지않게 말장난잔치네요. 역시 유치하지만, 재미나고 말이죠.

 

이처럼, 재미난 이야기들을 우리 아이들이 실제로 만들어간다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동화책을 읽고 상상력을 키우는 데에서 더 나아가 아이들만의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써본다면 어쩌면 어른들의 작품보다 더 멋진 작품들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되네요. 우리 아이들이 상상력이 충만한 아이들로 자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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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 유성룡이 보고 겪은 참혹한 임진왜란
김기택 옮김, 임홍빈 해설, 이부록 그림, 유성룡 원작 / 알마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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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성룡의 징비록이 유행인가보다. 아무래도 tv 드라마가 진행 중인 영향이 없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작년 한해 <명량>이란 영화의 흥행도 한 몫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징비록에서 보여주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의 모습들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이런 유행으로 인해, 나 역시 몇 편의 징비록 책들을 봤다. 소설도 봤고, 유성룡에 대한 역사서도 봤다. 이번에 본 이 책은 유성룡이 쓴 <징비록> 원작을 쉽게 오늘 우리의 말로 번역해 내놓은 책이다. 그러니, 어쩌면 가장 오리지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전시재상(戰時宰相)이라고도 불리는 유성룡, 우리 역사의 가장 부끄러운 시간 동안 조선이란 배를 끌고 갔던 재상, 그가 바라본 임진왜란은 어떨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책을 펼쳐 읽어나간다.

 

『징비록』을 읽는 가운데 느끼는 점은 사실, 여느 임진왜란에 대한 책을 읽으며 느끼는 바와 다르진 않다. 하지만, 유성룡의 <징비록>은 훨씬 더 담담하게 기록되었다는 느낌이다. 본인이 직접 그 역사의 한 가운데서 체휼한 바였기에 어쩌면 가장 감정적으로 접근하기 쉬었으련만, 자신이 직접 경험한 역사이기에 어쩌면 더욱 끓어오르는 감정을 애써 억누르며 기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담담한 느낌을 받게 된다.

 

아울러, 당시 조선호의 선장이었던 이균, 조선의 왕 선조에 대한 평가는 극히 생략되어 있음도 새롭다. 이것은 어쩌면 신하로서의 한계이면서, 또 한 편으로는 군왕을 섬기는 신하의 자세로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임진왜란 당시 가장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준 사람은 어쩌면 선조였다. 하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철저하게 자제하고 있음을 느낀다. 물론, 간혹 간략한 언급은 주어지지만, 선조에 대한 이야기는 최대한 아끼고 있다.

 

이렇게 어쩌면 담담히 기록된 유성룡의 <징비록>, 임진왜란 당시의 그 끔찍한 상황들을 읽어나가는 가운데 무엇보다 당시의 가장 큰 문제는 인사문제에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실력은 없으며 큰소리만 치는 자들이 정책을 만들고 책임을 져야하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도 그랬고, 전쟁이 발발한 이후에도 그랬다. 이런 모습이 유성룡의 <징비록>을 읽어가는 가운데, 가장 눈에 들어온다.

 

전쟁에 대해 모르는 자들이 지휘관의 자리에 앉아 있었고, 오히려 그나마 전쟁을 아는 숙련된 군사들은 그들의 지휘를 받았다. 그리고 지휘관들은 자신의 생각, 자신의 고집, 자신의 감정에 이끌려 전투를 치른다. 상황판단 능력이 없는 자들이 지휘관으로 전투를 지휘하기에 수많은 생명을 사지로 몬다.

 

아울러 조정에 앉아 입으로 전쟁하는 자들은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도 생각지 못한다. 그래서 전쟁이 발발한 상황에서도 위기를 타계하려는 노력은 없고 여전히 책임추궁이 먼저이며 자신의 안위가 우선이다.

 

이처럼 사람을 제대로 쓰지 못함이 조선호가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원인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바로 이런 문제의식 때문에 오늘 이 시점에서 <징비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조심스레 해본다.

 

물론 유성룡이 <징비록>을 기록한 이유는 누군가의 잘잘못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닐 것이다. 그건 바로 이 뼈아프고, 부끄러운 역사를 보며, 후세는 제발 그런 부끄러운 역사를 반복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게다.

 

그럼에도, 유성룡 이후에 우리는 더 부끄럽고 뼈아픈 역사를 반복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다시 이 <징비록>을 읽는 이유는 앞으로는 그 부끄러운 역사가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 아닐까? 그것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바로 세우고, 쓰는 거다. 우리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제대로 운항하기 위해선 사람을 바로 세우는 축복이 있길 소망해본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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