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랑 집을 바꿨어요 모퉁이책방 (곰곰어린이) 37
이솔 글.그림, 김영주 옮김 / 책속물고기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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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리오는 텔레비전을 좋아한답니다. 벌써 여섯 시간째 보고 있답니다. 그런데, 그 때 눈을 번쩍 뜨게 할 광고가 나오는 겁니다. 집을 바꿔준다는 겁니다. 일주일간 외국인 친구와 집을 바꿔 생활해 보는 그런 프로그램 광고를 보고, 훌리오는 당장 방송국에 편지를 보냈답니다.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은 아프리카라며 말입니다.

일주일 후 훌리오 앞에 커다란 상자 하나가 도착했답니다. 그 안에는 바로 코끼리 봄보가 들어 있었답니다. 이제 코끼리가 훌리오의 tv 앞을 차지하게 되고, 훌리오는 코끼리 봄보의 가정을 향해 아프리카로 가게 된답니다.

그곳에서 훌리오는 tv는 한 번도 보지 않고, 자연 속에서 신나는 일들을 벌이고, 멋진 자연 풍경도 감상하게 됩니다. 수영도 신나게 하고요. 어느새 일주일이 훌쩍 지나 훌리오가 집에 도착해 보니, 코끼리 봄보는 여태껏 tv 앞에 있네요. 그런데 봄보의 눈을 한 번 유심히 보세요. 눈이 핑글핑글 돌아가고 있답니다.

아프리카에서 신나게 놀고 온 훌리오는 이제는 tv를 그렇게 오래 보지 않는답니다. tv에 나오는 멋진 풍경들은 훌리오가 직접 가서 보고 느낀 곳이거든요. 그런데 아프리카의 집으로 돌아간 봄보는 어떨까요? 왠지 봄보의 눈은 아직도 핑글핑글 돌고 있네요.

이 책은 tv를 보지 않아도 신나는 일들을 많이 경험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답니다. 그리고 자연에 노출된 삶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도 말하고 있고요. 그런데, 오늘 우리는 tv나 컴퓨터, 스마트폰에 얽매여 눈이 핑글핑글, 머리도 핑글핑글 돌고 있는 건 아닐까요? 특히, 요즘은 tv보다는 스마트폰이 더 문제인 것 같네요.

 

어쩌면, 이제 곧 시작될 설 명절에 친척들이 만나서도 각자 스마트폰을 하고 있는 우스운 풍경이 우리들의 풍경이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네요. 눈이 핑글핑글, 머리도 핑글핑글 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오랜 만에 친척들과 많은 이야기도 나누고, 시골 자연에서 신나게 뛰놀아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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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아름다울 때 내 곁엔 사랑하는 이가 없었다
김경주 지음 / 열림원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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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시극[詩劇]”이다. 마치 연극 무대를 감상하는 것과 분위기이지만, 산문보다는 대체로 운문으로 대화를 하게 되는 그런 시극. 처음 접하는 장르의 책이기에 약간 어색했다. 하지만, 읽어가는 가운데, 그 안에 빠져들게 된다. 금세 읽을 분량이기에 한번 읽은 후에는 다시 한 번 훑어보며 그 여운을 즐겨본다.

 

무대는 폐기된 해수욕장의 작은 파출소. 한 사내가 파출소 직원에 의해 업혀 들어온다. 업혀온 사내는 김씨다. 김씨는 고무인간이다. 반은 인간, 반은 고무인 고무인간. 그의 다리는 기껏 15센티미터 가량. 그 다리를 기다란 고무 튜브로 감싸고, 길바닥을 기어 다니며 구걸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바다를 향해 기어가다, 파출소 직원에 의해 업혀 온 거다. 이렇게 파출소에서 둘은 대화를 나눈다. 주로 이 둘의 대화가 시극의 주를 이루고 있다.

 

김씨는 땅바닥을 기다가 사람들에게 손을 밟히면 하늘을 올려본다 말한다. 그렇게 올려다본 하늘엔 물고기들이 날아다닌다고. 김씨는 물고기가 되길 꿈꾼다. 왜냐하면, 물고기는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항 안의 물고기 지느러미 냄새를 맡아본 적이 있단다. 그곳 물고기의 지느러미에서는 무슨 냄새가 날까? 김씨는 꿈 냄새가 난다고 한다.

 

그렇다. 그에게는 물고기가 되어 자유롭게 물속을 헤엄치는 꿈이 있다. 언제나 바닥이 익숙한 그는 다시 태어나면 물고기가 되고 싶어 한다.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인생보다는 물고기가 되어 물속을 자유롭게 헤엄침이 더 낫다 여겼을 터. 어쩌면, 그 꿈을 찾아 바다로 기어갔던 건 아닐까? 어쩌면, 김씨는 자신의 몸 절반을 뒤덮고 있는 고무 튜브가 마치 물고기의 지느러미가 되길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씨는 땅을 기어 다닐 때, 선글라스를 낀다고 말한다. 그런데, 선글라스를 끼는 이유는 자신의 창피함을 감추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람들의 눈을 보지 않기 위함이 아니라는 말이다. 도리어 사람들이 김씨의 눈을 보면 불편해할까 봐 선글라스는 낀단다. 사람들은 김씨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한다. 왜? 작은 동정을 지불하기도 부담스러워서일까? 부끄럽고 안타까운 마음이 내 안에 자리한다.

 

그는 또한 나비의 연한 발목을 바라보곤 했다고 말한다. 실처럼 가늘고 긴 나비의 발목, 하지만, 그에게는 그나마 가는 발목조차 없다. 나에게 없는 것이기에 어쩜 더욱 아름답게 여겨졌을지도.

 

이런 김씨와 대화를 나누는 파출소 직원은 이제 은퇴가 몇 날 남지 않은 늙은 경찰이다. 이제 곧 폐쇄될 해수욕장, 그리고 그 안의 파출소와 운명을 같이하게 될. 그런 그에게도 상처가 있다. 자폐를 앓던 아들이 집을 나가고, 그 아들의 죽음과 함께 아내 역시 죽음을 선택했던 것. 그는 다리가 있지만, 그 역시 파출소와 그 관할 구역을 제외하곤 어느 곳도 향할 수 없는 다리 없는 인생이다. 그리고 가슴 속에 견딜 수 없는 슬픔을 품고 있으면서도 술로 위장하며 살아가는 인생이다.

 

어쩜, 우리네 인생은 이처럼 아픔이 가득할까? 우린 누군가의 다리가 되어주기보다는 왜 누군가의 남은 다리나마 밟고 살아가는가? 왜 우리는 남에게 밝힐 수 없는 아픔 하나씩 감추고 살아가야만 하는가? 안타깝다.

 

그렇다. 인생이란 누구나 아픔 하나쯤 감추고 살아가는 게다. 그렇기에 극 중에서 김씨는 말한다. 자신은 언제나 땅바닥에 있기 때문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고. 그것은 바로 ‘몰래 떨어진 눈물’이라고. 이처럼 누구나 남이 알까 두려워 남 몰래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리는 인생이다. 그런데, 그 눈물은 언제나 따뜻하다고 김씨는 말한다. 그래, 오늘 우리가 남 몰래 흘리는 눈물, 아픔의 눈물, 고통의 눈물도 따뜻하다는 것. 우린 이것을 잊지 말자.

 

슬픔이 있고, 눈물이 있지만, 그럼에도 살아 있음은 따뜻한 것이다. 우리 안에 아픔 하나씩 감추고 있다 하지라도 이 세상은 여전히 살만한 곳이다. 작가는 김씨를 통해 말한다. 사랑은 이불 속에서 지느러미를 부비며 노는 것이라고. 그렇다. 우리에 삶 속에 다리가 찢기고 그저 지느러미 하나 불쑥 튀어나와 있다 할지라도, 그 상처 난 지느러미를 서로 부비며 노는 행복이 우리에겐 여전히 존재한다. 오늘도 삶의 지느러미를 내 곁의 사랑하는 이들에게 맞대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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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소원 - 천 개의 마음이 모이면 꿈이 이루어진대 북멘토 가치동화 11
전용호 지음, 가아루 그림 / 북멘토(도서출판)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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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동화는 전남 화순에 있는 운주사에 얽힌 설화랍니다. 이곳 운주사에는 지금도 수많은 불상들과 석탑이 있답니다. 지금은 실제 그 정도 숫자는 아니지만, 원래는 “천불천탑”, 천개의 불상과 천개의 석탑이 있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한국의 앙코르와트라고 말하기도 한답니다.

 

바로 그러한 천불천탑이 어떻게 새겨지고, 세워지게 되었는지를 이 동화는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답니다. 물론, 사실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 안에 진실은 담겨 있죠. 그 진실은 바로 모든 이들이 사람대접 받는 세상을 꿈꾸던 그 소망이 진실이랍니다. 돌들이 실제 동화 속에서처럼 움직이진 않았겠죠. 하지만, 돌들조차도 꿈꾸는 바가 있었다는 것. 그러니 오늘 우리도 꿈꾸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이야기 안에 담겨진 진실이겠죠.

 

그럼, 동화 속으로 잠깐 들어가 볼까요?

 

“세상 모든 것이 말하던 때의 일이야”라며 작가 선생님은 동화를 시작한답니다. 모든 것이 말할 때니, 돌들 역시 말을 합니다. 그런데, 그런 돌들이 불만을 이야기하네요. 왜 자신들은 움직일 수 없냐는 거죠. 결국 이 소리를 하늘이 듣고 소원수리를 해줍니다. 바위들도 움직일 수 있게 해 준겁니다.

 

단, 2가지 단서조항이 있네요. 첫째, 해가 진 밤에만 움직여야 한다는 것. 둘째, 바위가 움직이는 모습을 사람이 보게 된다면, 그 바위는 그곳에서 영원히 생명을 잃고 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

 

이제 이런 단서조항을 안고 수많은 바위들이 움직인답니다. 밤이면 한 곳에 모여 이곳저곳 소식들을 서로 전해 듣는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바닷가에서 온 바위가 부처에 대한 이야기를 하네요. 보름달이 뜨기 전까지 미륵사에 가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너무 커서 잘 움직이지 못하는 못난이 바위와 돌기둥은 함께 운주사를 향한답니다. 과연 그곳에서 이들은 부처가 될 수 있을까요?

 

또한 삶이 너무 힘겨워서 못 살겠다고 탄식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이런 소문이 퍼집니다. 미륵사에 가서 보름달이 뜬 밤새 천개의 부처와 탑을 쌓는다면, 모두가 인간답게 살아가는 세상이 도래한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역시 미륵사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답니다.

 

이렇게 서로의 필요에 의해 미륵사에 모인 돌들과 사람들이 깎고, 쌓은 것이 바로 천불천탑이란 겁니다. 안타깝게도 못난이 바위를 세우기 전에 닭이 울어버렸답니다. 그래서 여전히 세워지지 못하고 누워있는 불상, 즉 ‘와불’이 지금 운주사에는 있다는 겁니다.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우리는 ‘어찌 이런 황당한 일이’라는 반응을 보이기보다는 이 이야기가 품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를 봐야 한답니다. 모든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 모두가 함께 사람대접 받는 세상을 꿈꾸는 그 마음을 읽어내야 한답니다. 바위들마저 말을 하고, 꿈을 꿀 수 있는 세상이라니, 참 멋진 세상 아닌가요? 이런 꿈을 우리가 함께 꾼다는 것, 아름다운 일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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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의 소보로빵 바다로 간 달팽이 14
홍명진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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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가족 중 하나가 기억을 잃게 된다면 어떨까? 기억을 잃음으로 함께 했던 소중한 추억들마저 잊어버림으로 그 아름다운 추억을 이젠 공유할 수 없다면? 이제 아름다운 추억은 ‘우리’의 것이 아닌, ‘나’만의 것이기에 아름답던 추억을 떠올림이 고통의 순간이 된다면? 게다가 기억을 잃은 것에 머물지 않고, 자신만의 세상에서 살아가며, 자신만의 언어로 이야기를 하기에 함께 함에도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앨리스의 소보로빵』은 바로 그런 상황 가운데 갑자기 놓이게 된 한 가정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성장소설이다. 젊은 나이에 갑자기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엄마, 그로 인해 겪어가는 가족들의 눈물어린 사연을 전하고 있다.

두희는 이제 14살 소녀다. 그런 그녀의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영문도 모르게 사라진 엄마가 다시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바란 두희네 가족 앞에 다시 나타난 엄마는 과연 저 사람이 우리 엄마인가 의심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태였다. 잠시 외출을 하였던 엄마는 흔히 치매라고 부르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집을 찾지 못해 10개월 동안을 떠나 있었던 것이다.

 

다시 돌아온 엄마는 일곱 살 아이처럼 변해 버렸다. 엄마의 머릿속 사진은 마치 ‘먹다 버린 사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이제 엄마는 가족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질서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래서 엄마는 소보로빵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자식들을 몰라보기도 한다. 식탐도 늘었다. 그런 엄마로 인해 가족들은 모두 힘겨워한다.

 

“우리 식구에게 엄마는 함부로 떼어 낼 수 없는 커다란 혹과 같다. 엄마이기 때문에 떼어 내어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무 데나 달고 다닐 수도 없을 만큼 무거운 혹.”(21쪽)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이의 가족들이 겪어나갈 그 마음의 짐을 그대로 잘 느낄 수 있는 표현이다.

 

한창 뒹구는 낙엽만 보고도 깔깔거릴 나이의 두희는 벌써 삶의 무게를 알아버렸다. 게다가 두희가 마음에 두고 있는 같은 골목에 사는 도운 역시 그렇다. 도운의 부모는 광신적인 종교에 빠져 공동체 생활을 한다. 그런 그들을 찾아간 도운과 할머니. 그런데 그날 밤 도운의 부모는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고, 이 일로 도운은 말문을 닫아버린다.

 

두희는 자신이 겪는 이 모든 일들이 거짓말이길 소망한다. 견디기 힘겨운 고통과 슬픔, 그 충격으로 인해 말문을 닫아버린 도운의 모습도, 그리고 일곱 살 아이처럼 변해 버린 엄마의 모습도 거짓말이길 소망한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은 거짓말이 아니다. 그렇기에 두희는 자신이 겪는 이 모든 말도 안 되는 시간들, 고통의 순간들이 마치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에서 헤매는 것과 같은 일이길 소망한다. 비록 이 일이 거짓이 아닐지라도, 이 이상한 나라를 벗어나기만 하면 모든 일이 정상을 회복될 테니 말이다.

 

왜 이토록 우리네 삶은 고단한 걸까?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결코 녹녹치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쓴 맛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아이들의 모습이 안타깝다. 과연 소설 속에서만 그렇겠나. 현실의 세상 속에서도 소설 속에서처럼, 아니 어쩌면 더욱 커다란 아픔의 사연 하나씩 숨겨두고 살아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바라기는 우리 모두 이 힘겨운 세상이라 할지라도 견뎌낼 수 있길 원한다. 그리고 언젠가 먼 훗날 우리 각자의 시간이 끝났을 때, 참 이상한 세상, 힘겨운 소풍을 다녀왔노라 웃으며 말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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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구를 타고 5주간 쥘 베른 걸작선 (쥘 베른 컬렉션) 12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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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구를 타고 5주간』은 쥘 베른의 첫 장편소설이다. 쥘 베른은 『해저 2만리』, 『80일간의 세계일주』, 『15소년 표류기』등으로 유명한 19세기 작가다. SF의 거장이며, 모험소설, 과학소설의 거장인 쥘 베른의 첫 번째 장편소설을 설레는 마음으로 펼쳐본다.

 

역시 쥘 베른 작품의 느낌을 고스란히 느끼게 되는 책이며, 쥘 베른의 문학적 특징 내지 그의 철학을 잘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다. 쥘 베른의 특징은 몇 가지 있는데, 그 가운데 이 책에서 두드러지게 발견되는 특징을 몇 들어본다.

 

먼저, 용기다. 아마도 이 용기라는 부분은 쥘 베른의 모든 소설을 관통하는 덕목일 것이다. 여기에서는 지리학적 발견을 위한 모험이 그것이다. 뛰어난 모험가이자 지리학자인 새뮤얼 퍼거슨 박사, 그리고 그의 친구이자 위대한 행동가이며 사냥꾼인 딕 케네디, 마지막으로 언제나 유쾌하며 섬기기를 즐거워하는 조(퍼거슨 박사의 하인이자 친구). 이들 세 사람은 기구를 타고 아프리카 대륙을 동에서 서로 횡단하는 모험을 떠난다. 물론 그 이유는 학문적 업적과 함께 그런 성과를 통해 자신의 조국에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다.

 

당시로서는 너무나도 위험한, 아니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이들은 이 도전을 감행하고, 결국엔 이루어낸다. 물론 그 가운데 여러 차례의 위기가 그들을 괴롭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좌절하지 않고 나아간다.

 

퍼거슨 박사의 친구인 딕 케네디를 통해,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절망을 모르는 남자야. 나만큼 이 계획의 위험을 알고 있었던 사람은 없었어. 하지만, 자네가 용감하게 그 위험과 맞서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나는 그 위험을 보고 싶지 않았지. ... 현재 상황에서는 그저 참고 견뎌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야. 끝까지 해내는 거야. 돌아가려 해도 위험이 큰 건 마찬가지야. 전진이야.”(249쪽)

 

그렇다. 위험에 맞서 싸우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쥘 베른이 그의 작품을 통해, 오늘 우리 독자들에게 전하는 강력한 메시지가 아닐까? 이처럼, 기구를 타고 떠난 그 여정 가운데 보이는 인간의 용기, 도전, 모험 등이 이 책의 첫 번째 큰 줄기라 할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을 인간적 측면에서의 부분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줄기는 신의 섭리다. 쥘 베른 소설은 인간의 용기, 지혜, 노력이 강조되며, 아울러 신의 섭리가 함께 강조된다. 특히, 이 소설은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들이 타는 기구는 방향조절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오직 높낮이를 조절함으로 바람을 타는 선택만이 그들에게 있을 뿐이다. 나머지 여행의 여정은 신의 섭리에 맡긴다. 인간적 노력과 용기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노력과 함께 신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처럼 신의 도움에 대한 부분, 신의 섭리에 대한 부분은 쥘 베른 작품의 큰 축이며, 이 책에서는 더욱 강조되는 부분이다.

 

또 하나의 줄기는 돈보다 사람이다. 생명이 먼저다. 퍼거슨 박사와 딕, 그리고 조는 아프리카 부족에 의해 붙잡혀 죽어가는 선교사를 구출해준다. 하지만, 너무 몸이 약해진 선교사는 결국 죽고 마는데, 그 선교사를 묻어주기 위해 착륙한 곳은 온통 금 원석이 가득한 곳이다. 이에 조는 욕심껏 금덩이를 기구 안에 담게 되지만, 많은 무게로 인해 결국 상당 부분은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머지 역시 하나도 갖지 못한다. 왜냐하면 점차 기구의 무게를 줄여야할 상황에 놓이기 때문. 금을 버리지 않으면 그들의 생명이 위험해 진다. 결국 금덩이를 조금씩 버리게 된다. 아무리 금이 좋다할지도 그것이 생명보다 귀한 것은 아니다. 이것 역시 쥘 베른이 강조하는 내용 가운데 하나다.

 

여기에 더하여 도전정신 역시 큰 축이다. 물론, 용기와 비슷한 부분이긴 하지만 말이다. 삶의 위기 앞에 움츠러들기보다는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는 진취적 자세, 그리고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도전함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그런 도전정신이야말로 쥘 베른의 정신이 아닐까?

 

쥘 베른의 소설, 물론, 요즘 시대로 볼 때, 조금 잔잔한 느낌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놓칠 수 없는 고전임에는 분명하다. 쥘 베른이 선사하는 또 다른 모험을 떠날 시간을 기대하며, 이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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