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도령 유랑단
임현정 지음 / 리오북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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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로설은 꽃도령이 제격이다. 제목부터 『꽃도령 유랑단』이라니, 관심이 급 커진다. 과연 어떤 꽃도령들이 등장하는 걸까? 궁금한 마음에 책장을 열어본다.

 

그런데, 어째 산만하다. 조금 많이 과장한다면, 기승전결 가운데, 기와 결만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이게 뭐지 싶다. 솔직히 뭐, 이래! 싶었다. 하지만, 소설을 끝까지 읽은 뒤에는 소설에 대해 쉽게 판단내리기가 어렵다.

 

왠지 이 로맨스 소설 『꽃도령 유랑단』에 대한 평가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란 시를 떠올리게 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 로설 『꽃도령 유랑단』이 그렇다. 로설이 어째 이렇지? 싶다. 하지만, 끝까지 보아야 진가를 알 수 있다. 오래 볼 필요는 없지만 끝까지 보아야 꽃도령들의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끝까지 보아야 은별과 꽃도령들 간의 관계가 사랑스럽다.

 

줄거리를 살짝 살펴보면 저잣거리를 뒤흔들 미남 꽃도령 여섯이 등장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양반집 자제들은 아니다. 도리어 천하디 천한 유랑단 단원들. 하지만, 이들은 하나같이 여인네의 가슴을 뒤흔들만한 미남들이다. 이런 그들 모두가 점찍은 미남자가 있다. 바로 은별이란 이름의 사내. 그는 입으로 못 내는 소리가 없는 조선 최고의 구기꾼이다. 하지만, 은별은 사내가 아니다. 남장을 한 여인. 그런 은별이 여섯 남자들의 천거로 꽃도령 유랑단의 일원이 된다. 과연 꽃도령들의 정체는 무엇이고, 이들과 은별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여기에 또 하나의 비밀을 말하면, 꽃도령들은 조선의 왕의 밀명을 받고 누군가를 지키는 자들이다. 그 누군가는 바로 폐위된 왕비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공주. 과연 꽃도령들은 공주를 지키는 일을 끝까지 완수할 수 있을까? 꽃도령들은 진정 왕의 사람들일까, 아님 또 다른 누군가의 사람들일까?

 

이처럼 소설 속엔 꽃도령들이 등장하고, 남장 여자가 등장하며, 뿐 아니라 여장 남자가 등장하고, 공주가 등장한다. 꽃도령들과 공주라는 조합만으로도 왠지 정통 역사로맨스소설의 느낌을 갖게 한다. 그런데, 조금 다르다. 하지만, 실망하지 말 것.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끝까지 보아야 예쁘다. 끝까지 보아야 소설의 진가를 알 수 있다. 『꽃도령 유랑단』과 함께 추워지는 가을을 달달하게 물들여 보는 것은 어떨까?

 

참, 『꽃도령 유랑단』은 제2회 이답스토리공모전 최종 당선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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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아시아 제42호 2016.가을 - 도시와 작가들
아시아 편집부 엮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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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계간지 『ASIA』는 언제나 <종합선물세트> 같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불량식품이 엉성하게 들어 있는 말뿐인 <종합선물세트>가 아닌, 고급스러운 먹거리가 꽉 차 있는 그런 <종합선물세트>다.

 

<종합선물세트>에는 다양한 과자가 들어 있다. 이 가운데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것을 골라먹으면 된다. 순서가 정해져 있지 않다. 자신의 관심을 끄는 것을 고르면 된다. 문학계간지 『ASIA』 역시 마찬가지다. 이 안엔 양질의 문학 작품들이 담겨 있다. 자신의 관심을 끄는 글을 골라 읽으면 된다. 물론, 처음부터 정독을 하는 것도 좋겠고.

 

문학을 통해 아시아의 평화와 연대를 꿈꾸며 국경을 뛰어넘는 소통을 지향하는 문학계간지 『ASIA』. 이번 가을 호에는 기획특집으로 아시아 9개 국가 9명의 작가들의 도시에 대한 에세이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들 도시에 대한 에세이들은 작가의 문학에 있어 이런저런 모습으로 못자리 역할을 한 공간적 배경을 살펴볼 수 있어 좋았다.

 

2016년 봄호에 이어서 고은시인과의 대담이 실려 있고, 제3회 심훈문학대상 수상자인 베트남 소설가 바오 닌의 수상소감도 실려 있다. 요즘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장강명 작가가 이번 호의 ASIA의 작가로 소개되며 그의 창작 노트를 엿볼 수 있다. ‘건축공학적 창작론’이 무엇인지, 물론 살짝 맛보는 것에 불과하지만 엿볼 수 있어 좋다. 이 외에도 단편소설, 시, 서평, 짧은 아티클 등 다양한 글들이 실려 있어 독자들의 입맛에 맞게 골라 먹을 수 있는 문학 <종합선물세트>다.

 

이 가운데 중국 작가 비페이위의 단편소설 「퍼붓는 듯한 비」와 미얀마 작가 민 루의 단편소설 「유로 투 타운-신」을 특히 재미나게 읽었다. 우리와 많은 부분 비슷한 부분이 있어 놀랐고, 이렇게 같은 듯싶으면서도 다른 부분들이 많아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싶지만 같은 부분들을 만나고 찾는 재미가 쏠쏠했다.

 

「퍼붓는 듯한 비」에서는 중국 역시 우리와 같은 교육열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자녀를 위해서라면 부모의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모습. 어쩌면 자녀가 하나밖에 허락되지 않았기에 이런 마음은 우리보다 더 할 수 있겠다. 특히, 영어교육에 매다리는 모습은 우리와 다르지 않음을 발견하며 씁쓸하기도. 반면 자녀의 독립심 내지 투지를 잃지 않도록 가난하지만 돈이 많은 상황(개발로 인한 보상을 많이 받아 돈이 많지만, 겉모습은 여전히 가난한 상황)을 딸에게도 밝히지 않는 모습은 우리네 모습을 비춰볼 때 색다름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소설의 말미 부모와 딸이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함으로 불통하게 됨은 이런 교육열이 갖는 부작용을 고발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유로 투 타운-신」은 미얀마 시골 마을에 불어 닥친 축구 열풍을 풍자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왠지 우리의 옛 풍경을 보는 것 같은 느낌도 갖게 한다. 축구에 대해, 그리고 유럽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도 각자 자신들의 생각, 주장을 자신 있게 말하는 모습은 웃음을 자아내게 할뿐더러, 어쩌면 오늘 우리의 말과 주장 역시 이런 모습은 아닌지 돌아보게도 한다.

 

우리와 같은 듯 다른 정서, 하지만 그럼에도 전쟁의 아픔과 상처가 있다는 공감대를 가진 아시아 국가들의 문학을 이렇게 한 자리에서 만나게 됨은 언제나 커다란 행복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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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인생
이동원 지음 / 포이에마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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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면 완벽한 인생을 살았노라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이 올라서고자 하는 자리에 앉으면 될까? 자신이 원하는 위시리스트를 모두 이루면 될까? 갖고 싶은 것들을 모두 갖는다면 될까? 감히 남들이 쳐다볼 수 없을 엄청난 성공, 부와 명예, 권세를 갖게 된다면 완벽한 인생인걸까?

 

여기 전혀 완벽하지 않지만, 완벽한 인생을 향해 나아가는 세 남자의 이야기가 있다. 이동원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완벽한 인생』이다. 그럼 어떤 인생이기에 완벽한 인생을 말하는 걸까?

 

세 남자가 등장한다. 먼저, 우태진이란 한 남자가 있다. 한 때, 적수를 찾아볼 수 없던 천하무적의 투수. 선동열 선수와 최동원 선수를 합쳐놓았다는 평가를 받던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투수. 하지만, 거듭된 부상으로 아무런 쓸모도 없는 은퇴를 앞둔 퇴역투수에 불과하다. 그런 퇴물투수가 어쩌다 한국시리즈 7차전의 선발이 되었다. 과연 잘 던질 수 있을까?

 

그런데, 던져야만 한다. 경기장 십분 거리 은행에 강도가 들어 인질 27명을 붙들고 있는데, 우태진 선수가 시합이 끝날 때까지 마운드를 책임져야만 한단다. 한 회를 버틸 때마다 인질 3명씩을 석방해준다는 것. 하지만, 중간에 마운드를 내려오면 누군가를 죽이겠단다.

 

이런 젠장! 우태진 선수의 인생이야말로 마지막까지 꼬일 대로 꼬인 인생 아닌가! 하지만, 그런 우태진 선수의 인생이 ‘완벽한 인생’을 꿈꾸게 될뿐더러 그 인생을 맛보게 된다. 어떤 일인지는 소설을 보자.

 

또 한 남자는 바로 은행 강도다. 27명의 인질을 권총 한 자루로 벌벌 떨게 만들고, 한국시리즈 7차전을 죽음의 경기로 몰아세우고 있는 범인. 과연 그는 누구일까? 그의 인생이야말로 ‘완벽한 인생’과는 너무나도 멀지 않은가. 하지만, 이 남자야말로 ‘완벽한 인생’이 된다. 그는 하늘나라에 입성하며 이렇게 말한다. ‘다 이루었다.’

 

소설은 바로 이 구절 ‘다 이루었다’로 시작하여 끝을 맺는다. 이는 성경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며 외쳤던 말 가운데 하나. ‘다 이루었다’ 그런데, 은행 강도의 마지막 대사가 ‘다 이루었다’라니, 이는 어찌 된 일일까?

 

마지막 또 한 남자가 있다. 현직 경찰청장이자 대형교회의 장로. 그의 인생에 있어 가장 큰 불만은 수요예배다. 야구광인 그는 수요예배 때문에 수요일 저녁에 펼쳐지는 야구를 볼 수 없다. 특히, 일 년의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한국시리즈 7차전이 하필이면 수요일 저녁에 열리다니. 그는 하나님께 기도한다. 이 경기를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그리고 기도를 응답받는다. 한국시리즈 7차전이 열리는 경기장 가까운 은행에 강도가 들었다. 그리고 그의 요구 사항은 한국시리즈 경기와 연관되어 있다. 그러니 경기장에 갈 수밖에.

 

과연 이번 경기는 경찰청장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단순히 하나의 범죄사건에 그치는 걸까? 단순히 그가 좋아하는 야구경기를 보는 행운의 시간에 그치는 걸까?

 

이렇게 세 남자가 하나의 사건으로 만나게 된다. 그것도 모두 야구를 사랑하는 세 남자가. 그들은 이 사건을 통해 각자는 모두 자신만의 ‘완벽한 인생’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한국시리즈 7차전 게임의 진행과 함께.

 

소설은 결코 야구소설이 아니다. 오히려 범죄소설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신앙의 메시지가 곳곳에 감춰져 있는 신앙소설이기도 하다(김영사의 기독교 임프린트인 포이에마에서 출간된 것을 보더라도.). 야구를 소재로 한 범죄추리소설이자, 또 한 편으로는 신앙의 내용들이 과하지 않게 적절하게 잘 녹아 있는 소설이다. 소설은 무엇보다 재미나다. 술술 읽힌다. 뿐 아니라, 독자를 울컥하게 하는 파토스의 힘이 담겨있다.

 

게다가 한국시리즈 최종전에 두산과 한화가 올라가 한화가 우승하게 된다는 설정은 한화 팬의 한 사람으로서 기분 좋은 설정이다. 작가의 예견과는 달리 올해 한화의 실재 성적은 아쉬움이 있지만 말이다.

 

단지 아쉬운 점은 소설 속에서 우태진이 퍼펙트게임을 향해 경기를 진행해나가게 된다는 설정인데, 여기에 오류가 있다는 점이다. 퍼펙트게임은 이미 4회 말에 깨졌었다. 4회 말 노아웃 선두타자로 등장한 두산의 1번 타자가 안타를 치고 1루 베이스를 밟았기 때문이다. 욕심을 내어 2루로 달려가다 아웃이 되긴 했지만. 부족한 야구 상식으로 생각해도 안타의 기록이 나왔기 때문에 이미 퍼펙트게임은 깨진 것이 아닌가 싶다. 이 부분은 수정을 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오류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재미나다. 아울러 그 안에 다양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특히, 기독교적 메시지가 그 안에 상당히 많이 담겨져 있다. 물론, 굳이 기독교적 메시지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우리 인생을 향한 보편적 메시지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무런 희망이 없는 인생처럼 여겨진다 할지라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아울러서 여전히 내 인생은 가치 있다고, 희망이 있다고, 우린 사랑받고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노라고 외치고 있다.

 

이젠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바람이 분다. 더 빼앗아 갈 것이 무엇이냐고 소리치는 내게, 너는 잃은 것이 없다고 말한다. 소중한 것은 아직도 네 안에 있다고, 너는 여전히 사랑받는 존재고, 소중한 사람이라고, 수많은 실수와 후회의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너는 아직도 사랑할 수 있다고. 너뿐 아니라 지금 너의 앞에 있는 아들도.(183쪽)

 

그렇다. 소설은 우리에게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인생이 더 이상 물러날 것 없는 막다른 벼랑위에 내 몰렸다 할지라도. 여태 내가 걸었던 길들의 과오를 없었던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할지라도. 여전히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아울러 이렇게 말하는 소설 속에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는 ‘바람’이다. 이는 퇴물투수 우태진의 야구선수로서의 희망을 마지막 쏘아 올리게 된 너클볼의 핵심이기도 하다. 아울러 소설의 중후반부에서는 이 ‘바람’이 거듭 강조된다. 공을 던지면 ‘바람’에 맡겨야 한다. 뿐 아니라 우리의 인생 역시 이와 같다고. 그럼 이 바람은 무엇일까? 보편적 해석으로 본다면, 이는 인생의 흘러가는 흐름으로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신앙적 관점에서 본다면 뭔가 내 인생을 섭리하는 절대자의 섭리로 볼 수도 있겠다. 아울러 기독교적 관점에서 성령은 ‘바람’으로 상징된다. 그러니, 어쩌면 절대자의 이끄심에 맡기되, 최선을 다하고, 할 수 있는 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하고 있진 않을까? 성령님의 이끄심에 인생을 맡기며 말이다.

 

이 소설의 큰 힘은 기독교인이라면 기독교적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으며, 비기독교인들 역시 보편적 관점에서 소설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신앙의 주제들이 담겨 있지만, 결코 그 색깔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음이야말로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완벽한 인생을 꿈꾸지만 실상은 완벽한 인생에서 너무나도 먼 삶의 여정 속에서 힘겨워하고 지친 독자들이 소설을 통해 위로 받게 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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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삼킨 소년 - 제37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수상작
야쿠마루 가쿠 지음, 이영미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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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내가 사랑하는 자녀가 심각한 범행의 범인이라고 한다면 어떨까? 그것도 사회적 관심을 끄는 엄청난 범죄를 행했다면? 그런데, 정작 아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다면?

 

야쿠마루 가쿠의 『침묵을 삼킨 소년』은 바로 이런 질문을 던져주는 소설이다. 작가 등단 10년을 맞아 2015년에 발표한 이 작품은 2016년 제37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제법 부피감이 있는 소설(467페이지)이지만 금세 읽힌다. 물론, 힘겨운 감정을 이겨내며 읽어야 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지만 말이다.

 

요시나가는 한창 회사에서 승승장구하며 성공을 이뤄가는 직장인이다.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리고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요시나가의 삶은 산산조각 나고 만다. 이혼한 아내와 살고 있던 중학생 아들 쓰바사가 살인용의자로 체포되었기 때문이다. 오갈 데 없는 길고양이를 기르던 마음 착한 아들 쓰바사가 다른 것도 아닌 살인이라니. 게다가 자신의 절친을 죽여 시체를 유기한 혐의란다. 이렇게 거짓말 같은 사건소식에 아들을 찾아 간 아버지 요시나가 앞에 나타난 살인용의자 아들은 침묵하기만 한다. 어떤 반론도, 시인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만 있는 아들. 모든 정황이 아들이 범인임을 가리킨다. 하지만, 쓰바사는 입을 다물고 있다. 단지 아버지를 향해 뭔가 호소하는 듯 눈빛을 보내기만 할뿐. 과연 쓰바사는 왜 그런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걸까? 쓰바사의 침묵 이면에는 어떤 진실이 도사리고 있는 걸까?

 

청소년 범죄를 소재로 하고 있는 『침묵을 삼킨 소년』은 마음을 울리는 힘이 있는 범죄소설이다. 무엇보다 독자들은 아들의 범죄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심정을 따라가게 된다. 아니 아버지의 그 심정이 독자들의 감정에 이입되어 함께 절망하기도 하고, 함께 힘겨워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아들이 살인자라니. 과연 용서할 수 있을까? 착하기만 하던 아들이 괴물이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버지는 아들을 포기할 수 없다. 어떻게든 아들이 무죄이기만을 빌며 입증하고 싶다. 하지만, 아들은 살인자다. 여전히 아들을 사랑하고 포기할 수 없지만, 죄마저 부정할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갈등하고, 고민할뿐더러 견딜 수 없이 힘겨워하는 그 아버지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기에 먹먹하다.

 

끔찍한 범죄를 통해, 아버지는 힘겨운 시간들을 갖게 된다. 외면하고 부인하고 싶은 현실이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그 끔찍한 죄를 직면하며 당당히 서는 아버지의 용기가 느껴진다. 아울러 아들의 범죄를 통해 아버지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전의 평화로운 삶이 산산조각 나지만, 반면 그 힘겹던 순간을 통해 단절됐던 부자관계가 회복되기도 한다. 물론, 그 회복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전히 범죄의 상처는 남게 된다. 아니 남아야만 한다. 그럼에도 회복을 꿈꾸고 회복을 향해 나아간다.

 

소설은 일어난 범죄와 그 판결과정에 대해서도 관심하지만, 무엇보다 왜 이런 끔직한 일이 벌어져야만 했는지 그 배경을 끈질기게 추적한다. 이를 통해, 살인이라는 끔찍한 범죄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또 하나의 끔찍한 어둠, 그 죄악상을 서서히 벗겨낸다. 이를 통해 오늘 청소년 사회의 뿌리 깊은 죄악에 대해 고발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소설은 범죄 이후 피해자 가족과의 관계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끔찍한 범죄를 대하며 아들의 입장에서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도 사죄와 용서, 그리고 회복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생명을 잃은 사건, 그 회복이 결코 쉽지 않음을 소설은 보여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회복을 향해 나아가야 함을 이야기한다. 이처럼 소설 『침묵을 삼킨 소년』은 끔찍한 사건을 통해 삶이 깨져나가는 과정, 그리고 다시 회복되어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야쿠마루 가쿠란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했다. 하지만, 이 작품 『침묵을 삼킨 소년』은 나에게 깊이 각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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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영의 악의 기원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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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리 작가의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이란 제목의 장편소설은 손에 드는 순간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와~ 엄청 두껍다. 두께만큼 오랜 시간의 행복한 책읽기가 되겠구나.’ 물론, 반대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와~ 엄청 두껍다. 이것 언제 다 읽나?’ 책을 읽은 후에 느낀 감정은 당연히 전자에 속한다. 856페이지에 이르는 두툼한 분량이지만, 지겨워할 새 없이 읽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소설이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것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분명 소설의 전개는 느리다. 소설의 중반부에 이르기 이전에 이미 독자는 범인이 누구인지 눈치 채게 된다. 여전히 소설 속에서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런데도 왜 이리 범인을 밝히는 것이 더딜까 싶은 생각이 들만큼 더디게 진행된다. 그럼에도 지루한 느낌이 없는 독서라니. 상당히 특별한 느낌이다.

 

앞에서 살짝 비췄지만, 이 소설은 추리소설이다. 30년 전에 일어났던 살인사건의 범인을 밝혀내게 되는 추리소설. 하지만,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혀내려는 의도보다는 왜 그런 범행을 저질러야만 했는지를 밝혀내게 되는 일명 ‘사회파 추리소설’이라고 볼 수 있겠다.

 

소설의 배경은 미래인지 과거 내지 현재인지 불명확한 시대다(그냥 현재로 보는 것이 좋을 듯.). 나라 역시 어느 나라인지 불분명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나라는 사회적 계급이 확연하게 구분지어진 곳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그들이 살아가는 공간마저 나눠져 있다. 1지구에서 9지구까지. 각각의 지구는 생활환경이 확연히 차이가 나며, 아래 지구에서 상위지구로 신분상승하는 것이 가능하긴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사회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계급구조가 유지되는 여러 도구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교육이다. 특히, 1지구에서도 소수만이 들어갈 수 있는 학교(1지구 열세 살 소년 오만여명 가운데 200명만 입학 가능) 프라임스쿨이 이런 권력구조를 장악하게 되는 학교다(남학생만의 학교다.).

 

소설의 화자는 챕터마다 다르다.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사건의 진실을 향해 접근해 나간다. 이들 가운데 누구보다 다윈 영이 있다. 다윈 영은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다. 1지구 사회 속에서도 가장 상류층 소년. 문교부차관인 아빠 니스 영(이 사회에서는 문교부 차관이 장관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것이 하나의 공식처럼 되어 있다.), 은퇴 후 상류 노인들이 사는 동네에 거주하는 할아버지. 무엇보다 가족이 화목하고, 다윈 영 개인은 우수한 성적의 학생이며,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며 정이 가는 이미지의 무엇하다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소년이다.

 

이런 다윈 영은 아빠의 학창시절 친구, 30년 전에 의문의 살인사건을 당한 소년의 추도식에 해마다 아빠와 함께 참석하게 된다. 다윈 영은 이 추도식에 해마다 참석하는 또 다른 소녀 루미를 마음에 두고 있다. 루미는 평범하고 야망이 없는 부모에게 실망하여 더욱 야망을 품고 살아가는 소녀인데, 죽은 삼촌과 가장 닮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런 루미는 삼촌의 앨범 속에서 비어 있는 공간을 발견하게 되고, 그 사라진 사진이 무엇일지를 추적함으로 범인을 추리해나가게 된다. 이 일에 다윈 영이 함께 하게 되고,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앞에서 말한 것처럼 범인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범인이 왜 그런 일을 벌여야만 했는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바로 계급화 되어 있는 사회구조가 문제의 근원이기도 하다.

 

이 책,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박지리란 작가를 알게 해 준 고마운 책이다. 작가의 필력이 만만치 않다. 소설은 끈질기게 살인의 범인을 추적하며, 왜 살인을 범해야만 했는지를 묻는다. 아울러 그런 살인으로 몰아세우는 사회구조의 폭력을 은근하게 고발하고 있다. 아울러 살인까지 해가며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이야기한다. 하지만, 결말이 조금 황당하기도 하다. 물론, 그 결과가 결국 살인까지 해가며 지켜야 할 그것을 여전히 붙잡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이런 모습은 결국 반쪽 사랑이요, 반쪽 인간성임을 생각할 때, 착잡하기도 하다.

 

소설의 시작부분에 이런 구절이 있다.

 

“다윈 넌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고 생각해?”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모두가 가지고 있진 않을 거야.”

“어떤 사람들만 가지고 있는데?”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만.”“사랑?”“응.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들에겐 영혼 같은 건 아무 쓸모도 없잖아. 쓸모없는 건 퇴화하는 게 진화의 법칙이겠지.”(47쪽)

 

그럼, 이 대화로 판단했을 때, 주인공 다윈에게는 영혼이 있을까? 대답은 글쎄다. 있다하더라도 그 영혼은 반쪽이다. 마지막 결말 때문에 말이다. 그렇기에 더욱 마지막 결말이 아쉽다. 하지만, 어쩌면 그렇기에 제목이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이 아닐까 싶다. 아버지의 죄를 아들이 그대로 답습하게 되는. 물론, 선택의 여지는 각자에게 있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선택하게 되는 또 다른 악.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내기 위해, 영혼을 소유하기 위해, 영혼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악의 기원을. 어쩌면 때론 악을 행한다 할지라도 사랑하는 가족을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것, 영혼을 가진 인간됨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아무튼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무엇보다 좋았던 것, 그것은 이 소설 읽는 시간이 행복했다는 점이다. 특히, 앞으로도 기억하고 싶은 작가를 만났다는 점에서 너무나도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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