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 영의 악의 기원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박지리 작가의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이란 제목의 장편소설은 손에 드는 순간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와~ 엄청 두껍다. 두께만큼 오랜 시간의 행복한 책읽기가 되겠구나.’ 물론, 반대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와~ 엄청 두껍다. 이것 언제 다 읽나?’ 책을 읽은 후에 느낀 감정은 당연히 전자에 속한다. 856페이지에 이르는 두툼한 분량이지만, 지겨워할 새 없이 읽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소설이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것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분명 소설의 전개는 느리다. 소설의 중반부에 이르기 이전에 이미 독자는 범인이 누구인지 눈치 채게 된다. 여전히 소설 속에서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런데도 왜 이리 범인을 밝히는 것이 더딜까 싶은 생각이 들만큼 더디게 진행된다. 그럼에도 지루한 느낌이 없는 독서라니. 상당히 특별한 느낌이다.

 

앞에서 살짝 비췄지만, 이 소설은 추리소설이다. 30년 전에 일어났던 살인사건의 범인을 밝혀내게 되는 추리소설. 하지만,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혀내려는 의도보다는 왜 그런 범행을 저질러야만 했는지를 밝혀내게 되는 일명 ‘사회파 추리소설’이라고 볼 수 있겠다.

 

소설의 배경은 미래인지 과거 내지 현재인지 불명확한 시대다(그냥 현재로 보는 것이 좋을 듯.). 나라 역시 어느 나라인지 불분명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나라는 사회적 계급이 확연하게 구분지어진 곳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그들이 살아가는 공간마저 나눠져 있다. 1지구에서 9지구까지. 각각의 지구는 생활환경이 확연히 차이가 나며, 아래 지구에서 상위지구로 신분상승하는 것이 가능하긴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사회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계급구조가 유지되는 여러 도구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교육이다. 특히, 1지구에서도 소수만이 들어갈 수 있는 학교(1지구 열세 살 소년 오만여명 가운데 200명만 입학 가능) 프라임스쿨이 이런 권력구조를 장악하게 되는 학교다(남학생만의 학교다.).

 

소설의 화자는 챕터마다 다르다.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사건의 진실을 향해 접근해 나간다. 이들 가운데 누구보다 다윈 영이 있다. 다윈 영은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다. 1지구 사회 속에서도 가장 상류층 소년. 문교부차관인 아빠 니스 영(이 사회에서는 문교부 차관이 장관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것이 하나의 공식처럼 되어 있다.), 은퇴 후 상류 노인들이 사는 동네에 거주하는 할아버지. 무엇보다 가족이 화목하고, 다윈 영 개인은 우수한 성적의 학생이며,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며 정이 가는 이미지의 무엇하다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소년이다.

 

이런 다윈 영은 아빠의 학창시절 친구, 30년 전에 의문의 살인사건을 당한 소년의 추도식에 해마다 아빠와 함께 참석하게 된다. 다윈 영은 이 추도식에 해마다 참석하는 또 다른 소녀 루미를 마음에 두고 있다. 루미는 평범하고 야망이 없는 부모에게 실망하여 더욱 야망을 품고 살아가는 소녀인데, 죽은 삼촌과 가장 닮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런 루미는 삼촌의 앨범 속에서 비어 있는 공간을 발견하게 되고, 그 사라진 사진이 무엇일지를 추적함으로 범인을 추리해나가게 된다. 이 일에 다윈 영이 함께 하게 되고,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앞에서 말한 것처럼 범인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범인이 왜 그런 일을 벌여야만 했는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바로 계급화 되어 있는 사회구조가 문제의 근원이기도 하다.

 

이 책,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박지리란 작가를 알게 해 준 고마운 책이다. 작가의 필력이 만만치 않다. 소설은 끈질기게 살인의 범인을 추적하며, 왜 살인을 범해야만 했는지를 묻는다. 아울러 그런 살인으로 몰아세우는 사회구조의 폭력을 은근하게 고발하고 있다. 아울러 살인까지 해가며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이야기한다. 하지만, 결말이 조금 황당하기도 하다. 물론, 그 결과가 결국 살인까지 해가며 지켜야 할 그것을 여전히 붙잡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이런 모습은 결국 반쪽 사랑이요, 반쪽 인간성임을 생각할 때, 착잡하기도 하다.

 

소설의 시작부분에 이런 구절이 있다.

 

“다윈 넌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고 생각해?”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모두가 가지고 있진 않을 거야.”

“어떤 사람들만 가지고 있는데?”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만.”“사랑?”“응.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들에겐 영혼 같은 건 아무 쓸모도 없잖아. 쓸모없는 건 퇴화하는 게 진화의 법칙이겠지.”(47쪽)

 

그럼, 이 대화로 판단했을 때, 주인공 다윈에게는 영혼이 있을까? 대답은 글쎄다. 있다하더라도 그 영혼은 반쪽이다. 마지막 결말 때문에 말이다. 그렇기에 더욱 마지막 결말이 아쉽다. 하지만, 어쩌면 그렇기에 제목이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이 아닐까 싶다. 아버지의 죄를 아들이 그대로 답습하게 되는. 물론, 선택의 여지는 각자에게 있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선택하게 되는 또 다른 악.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내기 위해, 영혼을 소유하기 위해, 영혼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악의 기원을. 어쩌면 때론 악을 행한다 할지라도 사랑하는 가족을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것, 영혼을 가진 인간됨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아무튼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무엇보다 좋았던 것, 그것은 이 소설 읽는 시간이 행복했다는 점이다. 특히, 앞으로도 기억하고 싶은 작가를 만났다는 점에서 너무나도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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