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완벽한 인생
이동원 지음 / 포이에마 / 2016년 10월
평점 :
어떻게 살면 완벽한 인생을 살았노라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이 올라서고자 하는 자리에 앉으면 될까? 자신이 원하는 위시리스트를 모두 이루면 될까? 갖고 싶은 것들을 모두 갖는다면 될까? 감히 남들이 쳐다볼 수 없을 엄청난 성공, 부와 명예, 권세를 갖게 된다면 완벽한 인생인걸까?
여기 전혀 완벽하지 않지만, 완벽한 인생을 향해 나아가는 세 남자의 이야기가 있다. 이동원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완벽한 인생』이다. 그럼 어떤 인생이기에 완벽한 인생을 말하는 걸까?
세 남자가 등장한다. 먼저, 우태진이란 한 남자가 있다. 한 때, 적수를 찾아볼 수 없던 천하무적의 투수. 선동열 선수와 최동원 선수를 합쳐놓았다는 평가를 받던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투수. 하지만, 거듭된 부상으로 아무런 쓸모도 없는 은퇴를 앞둔 퇴역투수에 불과하다. 그런 퇴물투수가 어쩌다 한국시리즈 7차전의 선발이 되었다. 과연 잘 던질 수 있을까?
그런데, 던져야만 한다. 경기장 십분 거리 은행에 강도가 들어 인질 27명을 붙들고 있는데, 우태진 선수가 시합이 끝날 때까지 마운드를 책임져야만 한단다. 한 회를 버틸 때마다 인질 3명씩을 석방해준다는 것. 하지만, 중간에 마운드를 내려오면 누군가를 죽이겠단다.
이런 젠장! 우태진 선수의 인생이야말로 마지막까지 꼬일 대로 꼬인 인생 아닌가! 하지만, 그런 우태진 선수의 인생이 ‘완벽한 인생’을 꿈꾸게 될뿐더러 그 인생을 맛보게 된다. 어떤 일인지는 소설을 보자.
또 한 남자는 바로 은행 강도다. 27명의 인질을 권총 한 자루로 벌벌 떨게 만들고, 한국시리즈 7차전을 죽음의 경기로 몰아세우고 있는 범인. 과연 그는 누구일까? 그의 인생이야말로 ‘완벽한 인생’과는 너무나도 멀지 않은가. 하지만, 이 남자야말로 ‘완벽한 인생’이 된다. 그는 하늘나라에 입성하며 이렇게 말한다. ‘다 이루었다.’
소설은 바로 이 구절 ‘다 이루었다’로 시작하여 끝을 맺는다. 이는 성경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며 외쳤던 말 가운데 하나. ‘다 이루었다’ 그런데, 은행 강도의 마지막 대사가 ‘다 이루었다’라니, 이는 어찌 된 일일까?
마지막 또 한 남자가 있다. 현직 경찰청장이자 대형교회의 장로. 그의 인생에 있어 가장 큰 불만은 수요예배다. 야구광인 그는 수요예배 때문에 수요일 저녁에 펼쳐지는 야구를 볼 수 없다. 특히, 일 년의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한국시리즈 7차전이 하필이면 수요일 저녁에 열리다니. 그는 하나님께 기도한다. 이 경기를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그리고 기도를 응답받는다. 한국시리즈 7차전이 열리는 경기장 가까운 은행에 강도가 들었다. 그리고 그의 요구 사항은 한국시리즈 경기와 연관되어 있다. 그러니 경기장에 갈 수밖에.
과연 이번 경기는 경찰청장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단순히 하나의 범죄사건에 그치는 걸까? 단순히 그가 좋아하는 야구경기를 보는 행운의 시간에 그치는 걸까?
이렇게 세 남자가 하나의 사건으로 만나게 된다. 그것도 모두 야구를 사랑하는 세 남자가. 그들은 이 사건을 통해 각자는 모두 자신만의 ‘완벽한 인생’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한국시리즈 7차전 게임의 진행과 함께.
소설은 결코 야구소설이 아니다. 오히려 범죄소설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신앙의 메시지가 곳곳에 감춰져 있는 신앙소설이기도 하다(김영사의 기독교 임프린트인 포이에마에서 출간된 것을 보더라도.). 야구를 소재로 한 범죄추리소설이자, 또 한 편으로는 신앙의 내용들이 과하지 않게 적절하게 잘 녹아 있는 소설이다. 소설은 무엇보다 재미나다. 술술 읽힌다. 뿐 아니라, 독자를 울컥하게 하는 파토스의 힘이 담겨있다.
게다가 한국시리즈 최종전에 두산과 한화가 올라가 한화가 우승하게 된다는 설정은 한화 팬의 한 사람으로서 기분 좋은 설정이다. 작가의 예견과는 달리 올해 한화의 실재 성적은 아쉬움이 있지만 말이다.
단지 아쉬운 점은 소설 속에서 우태진이 퍼펙트게임을 향해 경기를 진행해나가게 된다는 설정인데, 여기에 오류가 있다는 점이다. 퍼펙트게임은 이미 4회 말에 깨졌었다. 4회 말 노아웃 선두타자로 등장한 두산의 1번 타자가 안타를 치고 1루 베이스를 밟았기 때문이다. 욕심을 내어 2루로 달려가다 아웃이 되긴 했지만. 부족한 야구 상식으로 생각해도 안타의 기록이 나왔기 때문에 이미 퍼펙트게임은 깨진 것이 아닌가 싶다. 이 부분은 수정을 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오류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재미나다. 아울러 그 안에 다양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특히, 기독교적 메시지가 그 안에 상당히 많이 담겨져 있다. 물론, 굳이 기독교적 메시지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우리 인생을 향한 보편적 메시지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무런 희망이 없는 인생처럼 여겨진다 할지라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아울러서 여전히 내 인생은 가치 있다고, 희망이 있다고, 우린 사랑받고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노라고 외치고 있다.
이젠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바람이 분다. 더 빼앗아 갈 것이 무엇이냐고 소리치는 내게, 너는 잃은 것이 없다고 말한다. 소중한 것은 아직도 네 안에 있다고, 너는 여전히 사랑받는 존재고, 소중한 사람이라고, 수많은 실수와 후회의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너는 아직도 사랑할 수 있다고. 너뿐 아니라 지금 너의 앞에 있는 아들도.(183쪽)
그렇다. 소설은 우리에게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인생이 더 이상 물러날 것 없는 막다른 벼랑위에 내 몰렸다 할지라도. 여태 내가 걸었던 길들의 과오를 없었던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할지라도. 여전히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아울러 이렇게 말하는 소설 속에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는 ‘바람’이다. 이는 퇴물투수 우태진의 야구선수로서의 희망을 마지막 쏘아 올리게 된 너클볼의 핵심이기도 하다. 아울러 소설의 중후반부에서는 이 ‘바람’이 거듭 강조된다. 공을 던지면 ‘바람’에 맡겨야 한다. 뿐 아니라 우리의 인생 역시 이와 같다고. 그럼 이 바람은 무엇일까? 보편적 해석으로 본다면, 이는 인생의 흘러가는 흐름으로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신앙적 관점에서 본다면 뭔가 내 인생을 섭리하는 절대자의 섭리로 볼 수도 있겠다. 아울러 기독교적 관점에서 성령은 ‘바람’으로 상징된다. 그러니, 어쩌면 절대자의 이끄심에 맡기되, 최선을 다하고, 할 수 있는 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하고 있진 않을까? 성령님의 이끄심에 인생을 맡기며 말이다.
이 소설의 큰 힘은 기독교인이라면 기독교적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으며, 비기독교인들 역시 보편적 관점에서 소설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신앙의 주제들이 담겨 있지만, 결코 그 색깔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음이야말로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완벽한 인생을 꿈꾸지만 실상은 완벽한 인생에서 너무나도 먼 삶의 여정 속에서 힘겨워하고 지친 독자들이 소설을 통해 위로 받게 되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