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10
서유미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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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노벨라 시리즈 10번째 책, 서유미 작가의 『틈』이란 소설은 삶의 틈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 여인이 등장한다.

 

먼저 ‘여자’(윤주)는 자신의 삶에는 특별한 ‘틈’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자신의 삶이 별 문제없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믿는 거다. 그런데, 어느 날 그런 그녀의 삶에 ‘틈’이 벌어졌다. 바로 남편의 외도를 목격한 것. 이렇게 갑자기 벌어진 삶의 ‘틈’을 ‘여자’는 애써 외면하려 한다.

 

몇 년 전만 해도 그녀는 진실을 모르고 지나치는 것보다 고통스러워도 아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뛰어들어 바꿀 수 없다면 모르는 편이 낫다.(13쪽)

 

과연 ‘여자’는 자신의 삶에 갑자기 벌어진 ‘틈’을 모른 척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과연 ‘여자’의 삶에 벌어진 ‘틈’은 바꿀 수 없는 것일까?

 

또 한 여자 민규 엄마(정희)는 자신의 삶 속에 작은 ‘틈’을 허용하며 살아간다. 그건 바로 흡연. 흡연은 민규 엄마의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유일한 돌파구이다. 그렇기에 가족들에게 들키지 않게 몰래 그 돌파구를 들락거린다. 이렇게 작은 틈이 있는 것이 도리어 인간적이라는 자위와 함께.

 

그러나 예전처럼 많이 피우는 게 아니라면, 인생의 이런 작은 틈 정도는 있어도 괜찮지 않나, 그게 인간적인 거라고 합리화했다.(66쪽)

 

또 한 여자 윤서 엄마(승진)는 학창시절 수많은 ‘틈’을 만들며 살았다. 흔히 말하는 ‘좀 놀았던 여자’였던 것. 그런 윤서 엄마는 역시 ‘틈’이 많은 남편과 살아간다. 이 남자랑 결혼하면 바람피우지 않을 것이란 점쟁이의 엉터리 점을 믿고 말이다. 윤서 엄마는 남편과 함께 맞바람을 피우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것들을 모두 부질없이 여기며,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려 한다. 물론 이런 배움이 뭔가를 이루기 위함이라기보다는 ‘그냥’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 새로운 배움 역시 윤서 엄마에게는 새로운 ‘틈’이 된다.

 

그는 목적이 뚜렷한 사람이라 ‘그냥’이 통하지 않는 세계에서 살았다. 그러나 승진은 어떤 소용을 위해서가 아니라 즐거움 자체를 위해 뭔가를 배울 수 있다는 걸 뒤늦게 개달았다. 앞으로의 인생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흘러가길 바랐다.(105쪽)

 

이렇게 각자의 ‘틈’으로 인해 고민하고, 갈등하는 여인들이 동네 목욕탕에서 만나 서로의 상처를 드러내고, 그 상처가 자연스레 치유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 『틈』이다.

 

책 제목만큼이나 짧은 소설, 『틈』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해본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도 원치 않는 ‘틈’들이 생길 것이다. 그런 ‘틈’으로 인해 인생이 끝날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고, 엄청나게 큰일이 벌어질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삶 속에 작은 ‘틈’들이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우린 연약한 존재들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벌어지고 상처 나는 서로의 ‘틈’을 향해 가십거리로서의 접근이 아닌, 공감하는 마음을 가지고 서로의 ‘틈’을 어루만져 줄 때, 그 틈은 삶의 커다란 문제가 아니라, 도리어 단조로운 삶에 활력이 될 수도 있음을 생각해 본다. 오늘 내 삶의 틈이 재앙이 아닌 삶의 또 다른 활력이 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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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리랜드 1 - 셉템버와 마녀의 스푼
캐서린 M. 밸런트 지음, 공보경 옮김, 아나 후안 그림 / 작가정신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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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리랜드(fairyland)가 정말 있다면 어떨까요? 요정의 나라, 동화의 나라, 상상의 나라인 그곳에 가게 된다면 그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바로 그 답을 알려주는 동화가 있답니다. 제목도 『페어리랜드』네요. 『페어리랜드』의 첫 번째 이야기인 <셉템버와 마녀의 스푼>, 그 이야기 속으로 먼저 들어가 봐요.

 

주인공 셉템버는 이름과는 다르게 5월에 태어났답니다. 그런데도 이름은 ‘9월’이란 뜻의 ‘셉템버’네요. 이 셉템버는 특별한 게 없는 평범한 소녀랍니다. 하루하루 별난 일이 없이 심심하게 지내는 소녀죠. 그런 셉템버에게 초록바람이 찾아와 ‘페어리랜드’에 데려다 줄까 물어본답니다. 셉템버는 흔쾌히 승낙하게 되고, 이로 인해 초록바람이 타고 다니는 ‘작은 산들바람의 표범’을 타고 ‘페어리랜드’에 가게 된답니다.

 

그곳에서 금으로 가득한 해변도 만나게 됩니다(나중에는 은으로 가득한 해변도 만나죠). 물론 ‘페어리랜드’이니 요정들도 만나고, 마녀들도 만나게 된답니다. 마녀들을 만나면서, 셉템버의 본격적인 모험이 시작된답니다. 마녀들은 ‘페어리랜드’를 다스리는 여왕인 후작에게 빼앗긴 스푼을 찾아줄 것을 제의하게 되고, 셉템버는 이 제의를 받아들여 모험을 떠나네요.

 

이 과정에서 친구들도 만나게 된답니다. 빨간색 비룡인 ‘에이부터 엘까지(줄여서 엘)’을 만나 동행이 되고, 또한 바다 요정인 ‘새터데이’와도 친구가 되어 동행하게 된답니다. 과연 이들의 모험 앞에는 어떤 신나는 일, 신기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이 소설은 판타지 소설입니다. 그리고 그 무대인 페어리랜드는 대단히 환상적인 일들로 가득한 공간입니다. 요정들을 만나기도 하고, 사물들이 살아 있기도 하네요. 자전거가 마치 야생마처럼 살아 돌아다니기도 합니다. 자전거를 야생 짐승이라 말하네요. 비누 인형도 살아 대화를 하기도 하고요. 심지어 주인공 셉템버는 나무로 변해가기도 하네요. 이처럼 환상적 요소가 가득한 소설입니다.

 

뿐 아니라, 그 안에 뭔가 메시지들이 가득하다고 느껴지네요. 여러 가지를 들을 수 있겠지만, 그 가운데 몇 가지만 들게요.

 

먼저, 페어리랜드를 다스리는 후작은 자신이 정하는 것들을 강요하네요. 그래서 많은 이들이 고통을 당하고요. 예를 든다면, 후작은 이런 새로운 법을 만들었답니다. ‘하늘을 날아서 이동하려면 표범 혹은 면허증을 소지한 금불초 줄기를 타야 한다.’라는 법이랍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 경우가 아니면 하늘을 날아다닐 수 없데요. 셉템버와 친구가 되는 엘은 비룡이랍니다. 비룡(飛龍), 말 그대로 날아다니는 용이죠. 그런데도 엘은 표범도 아니고, 금불초로 만들어지지도 않았으니 날아다닐 수 없답니다. 심지어 커다란 날개를 사슬로 묶어 자물쇠로 잠겨있답니다. 후작에게서 왠지, 독재자의 냄새가 풍기죠? 뭔가 자꾸 새로운 법을 만들어 바꾸려 하는데, 그게 왜 필요한지 잘 모르겠네요. 자꾸 바꾸려 하지만, 그것이 실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보다는 더 힘겹게 하고 혼란스럽게만 하는 것 같네요. 후작을 보면 누가 생각난다고요? 여러분들 곁에도 누군가 그런 독재자가 있다고요? 참 안타깝네요.

 

또 다른 의미 있던 내용은 비누 인형 라이를 통해, 제공받게 되는 목욕이랍니다. 셉템버는 세 가지 목욕을 제공받는답니다. 그건 용기를 씻어주는 목욕, 소원을 씻어주는 목욕, 행운을 씻어주는 목욕이랍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용기에 때가 껴서 용기를 잃게 되죠. 그리고 바른 소원이 아닌, 허망한 소원의 때가 끼기도 하고요. 아울러 작가가 말하는 것처럼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내거나 또는 지나친 자만으로 인해 행운을 잃게 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런 때를 벗겨내는 목욕을 하게 된답니다.

 

왠지 오늘 나에게도 이런 목욕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세상을 살아가며, 실패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데, 그러다보니 자꾸 나도 모르게 용기를 잃어갈 때가 많거든요. 그럴 때, 비누 인형 라이가 제공하는 목욕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울러 우리가 소원을 품는 것은 참 좋은데, 그 소원이 도리어 세상을 어지럽히는 소원들도 많죠. 그럴 때, 그 사람을 ‘소원을 씻어주는 목욕’탕에 풍덩 씻기면 좋을 텐데요. 아울러, 행운을 씻어주는 목욕을 받음으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멍하니 흘려보내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사용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좋겠네요. 그럼으로 나에게 돌아올 행운을 잡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처럼 이 소설은 흥미로움 뿐 아니라, 많은 메시지도 담고 있답니다. 물론, 각자 들려지는 메시지는 다를 수 있겠죠. 재미있게 읽으며, 아울러 이런 메시지에도 귀를 기울여보기에 좋은 그런 소설이네요. 2편이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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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개 탐정 1 - 세인트 메리의 리본
다니구치 지로 지음, 정은서 옮김, 이나미 이츠라 원작 / 애니북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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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몬이란 사내는 탐정이다. 그것도 독특한 분야의 탐정이다. 바로 사냥개를 찾아주는 탐정, 이른바 ‘사냥개 탐정’이다. 잃어버린 사냥개의 생사여부를 알아내고, 행방을 알아내어 의뢰인에게 알려주는 일을 하는 탐정이다. 혹 도둑맞았다면, 그래서 의뢰인이 사냥개를 되찾길 원한다면 그 일도 해주는 탐정인 류몬은 꽤나 외골수적인 부분이 있는 사내다.

 

무엇보다 자신의 원칙을 고수하는 고집이 있는 사내다. 그런 원칙 가운데는 첫째, 사냥개만을 그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둘째, 어떤 외압에 의해 사건을 의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 규모 있는 야쿠자의 중간보스가 잃어버린 애완견을 찾아달라는 의뢰에도 사냥개만을 대상으로 삼는다며 거절한다. 그것도 야쿠자들의 보이지 않는 압력에도 꿈적하지 않고 말이다.

 

하지만, 또 하나의 원칙이 있다 하겠다. 그것은 상황에 따라 원칙은 깨어질 수 있다는 원칙 말이다. 물론, 이렇게 원칙을 깨는 경우에 있어 당연히 외압에는 꿈적하지 않는다. 하지만, 앞 못 보는 소녀가 맹도견을 잃어버리고 슬픔 가운데 빠져 있다는 내용 앞에서는 맹도견을 찾는 일을 수락하기도 한다. 뿐 아니라, 이렇게 하여 맹도견을 훔쳐간 범인을 밝혀내고 맹도견을 다시 돌려주지만, 정작 맹도견을 훔쳐간 사람 역시 안타까운 사연이 있음을 알고는 이 사람을 위해 맹도견을 연결해주기도 한다. 무뚝뚝한 남성이지만, 실상 그 안은 따스한 정으로 가득한 사내였던 것이다.

 

일본만화인 『사냥개 탐정』 첫 번째 책인 <세인트 메리의 리본>은 추리라는 장르를 갖고 있기에 흥미롭고 재미있다. 뿐 아니라, 의뢰받는 사건에 의해 단락이 마무리되기에 한 권 한 권 따로 봐도 무방하다는 장점이 있다.

 

아울러 잃어버린 사냥개만을 찾아주는 탐정이라는 대단히 독특한 소재의 내용인데, 그러한 ‘사냥개’를 찾는 일을 가지고도 이처럼 흥미롭고 재미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만화다. 또한 거친 사내들의 충돌이라는 흥미로운 요소도 있으며, 아울러 뭉클한 감동마저 보유한 멋진 만화다. 이 만화를 읽고 나서는 원작 소설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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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괴담 명작집 - 클래식 서스펜스 걸작선
지식여행 편집부 엮음 / 지식여행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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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친구집에 친구들이 함께 모여 잠을 잘 때면, 빠지지 않는 이야깃거리가 있다. 바로 귀신 이야기나, 초자연적인 현상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마치 자신이 직접 경험한 양 신나게 이야기를 하면, 듣는 친구들 역시 몰입하여 듣다간 호들갑스럽게 놀라곤 하던 일들이 생각난다.

 

세계 괴담 명작집은 마치 그런 느낌을 되살리게 되는 책이다. 도합 8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저자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너새니얼 호손, 아서 코난 도일,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 에른스트 테오도어 아마데우스 호프만, 조지 맥도널드, 앰브로즈 그위넷 비어스, 찰스 디킨스, 기 드 모파상, 이름만 들어도 감탄이 나올 명 작가들(물론, 그 가운데는 이름이 낯선 분들도 있지만, 그분들의 작품을 알면, ~~ 고개가 끄덕여지게 된다). 어마무시한 작가들, 그들이 들려주는 괴담, 다소 엉뚱한 이야기들을 접한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흥분되는 일이며 행복한 순간이 될 것이다.

 

이성과 상식이 최선이라 여겨지던 시대에 이성으로 해석될 수 없는 현상들에 대한 이야기들에 관심을 기울인 작가들의 엉뚱함에 살며시 미소를 짓게 된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여성이지만, 알고 보면 온 몸에 독이 가득 차 접촉하는 모든 생명체를 죽일 수 있는 독인(毒人)의 등장은 왠지 무협지를 보는 느낌도 들게 한다. 아무도 없는 폐가에서 젊은 여인의 손이 나타나기도 하고, 유령을 본 남성의 회상도 있다. 거울 속에서 나타난 미녀와 사랑에 빠져 그 미녀를 거울의 저주에서 해방시켜주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선원들을 홀리는 유령 내지 여인이 등장하기도 하며, 죽은 영혼이 자신을 죽인 사내에게 나타나 노름의 절대공식을 알려주기도 한다. 터널에서 본 환영으로 인해 선로에서 사고가 일어나며 결국 같은 모습으로 본인이 죽게 되는 신호원의 이야기도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모두 결코 상식적이지 않다. 하지만, 작가들은 이런 상식적이지 않은 이야기들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 과연 세상의 모든 일들이 상식과 이성으로 설명될 수 있는가? 이성 이면의 초현실적 현상들이 없다 말할 수 있는가? 우리의 일상 속에서 거듭하여 일어나는 우연의 일치, 이를 상식적으로 접근하는 자들은 그저 아무런 의미 없는 것이라 치부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 안에 어떤 초현실적 힘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작가들은 공통되게 질문한다.

 

'괴담'이니 괴기스럽고 무서운 이야기들, 오싹한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솔직히 그리 오싹하진 않다. 괴기스럽긴 하지만, 오히려 귀엽다는 느낌이 드는 이야기들도 있고, 사랑스러운 이야기, 유머러스한 이야기도 있다. 괴기스러우면서도 그리 자극적이지 않은 이 느낌은 어쩌면 자극에 길들여진 현대인에게는 낯선 경험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얕보면 큰코다친다. 잔잔한 문체이지만, 몰입하여 읽는 가운데, 등이 오싹해지는 순간들이 있게 될 것이다. 그 순간이 작가가 오랜 세월을 초월하여 오늘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그 선물을 한여름 밤에 누려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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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 브라더
케네스 오펠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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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13살 청소년이 된 벤은 아빠의 결정에 기분이 언짢다. 행동심리학자인 아빠 리처드 톰린 박사께서는 동물도 언어를 익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실험을 계획한다. 새끼 침팬지를 가정에서 마치 가족의 일원으로 키우며 함께 생활하는 가운데, 수화를 통한 의사소통을 시도하는 것. 이런 말도 안 되는 실험에 의해 벤은 캐나다를 횡단하여 빅토리아 섬으로 유배 아닌 유배를 왔다(지금이야 빅토리아는 캐나다의 대표 관광명소이지만,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973년이다. 아마 그 당시 빅토리아는 아무 것도 볼 것 없는 섬에 불과했나 보다).

 

이렇게 벤은 잔(새끼 침팬지)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잔과 함께 하는 가운데, 벤에게 잔은 동생과 같은 존재가 되어 함께 마음을 나누게 된다. 이처럼, 이 소설은 사람과 동물간의 우정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러한 동물과의 교감 내지 우정이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소설이다.

 

하지만, 그런 감동만 남겨놓는 소설만은 아닌 듯싶다. 동물과의 교감 과정에서 과연 무엇이 바람직한 선택인가 하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소설이기도 하다. 인간의 유익을 위해, 동물들을 통한 연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과연 동물권을 인정하는 것만이 옳은가? 아님, 인간에게 돌아올 과학의 혜택을 위해 동물권을 무시해야 옳은가? 동물을 가족이라 말할 때, 그 한계는 어디인가? 진정한 가족으로서 교감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저 허울뿐인 가족인가? 아니면, 동물 그 본능, 창조질서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옳은가? 사실 쉽게 말할 수만은 없는 질문들일게다.

 

그럼에도 이 소설을 통해, 작가가 대답하는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먼저, 동물권을 인정해 줘야 한다는 것. 그렇기에 아무리 인류의 발전과 유익을 가져오는 실험이라 할지라도, 생체실험은 바람직하다 말할 수 없다.

 

아울러 동물과의 교감이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동물을 가족으로 인정하려면, 진짜 가족처럼 생각하고 대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을 이야기한다.

 

잔은 누가 나한테 줬다 뺏었다 하는 물건이 아니다. 잔은 가족의 일원이다. 내 점수가 형편없다고 해서 아빠가 내게서 잔을 떼어 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165쪽)

우리는 잔에게 우리 옷을 입히고 우리 음식을 먹이고 우리 침대에서 잠을 재웠다. 우리를 엄마, 아빠, 형이라고 부르게 했다. 잔은 우리와 함께 살았고 우리를 믿었지만, 우린 매일 잔에게 거짓말을 했다. 우릴 그의 진짜 가족으로 생각하도록 만들었고, 언제까지나 사랑하고 돌봐줄 거라고 속였다. 잔이 우릴 위해 재주를 부리게 하려고 그렇게 했다. 그런데 잔의 재주가 더 이상 쓸모없게 되니 우리는 잔을 우리에 집어넣고 치워버렸다.(331쪽)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과 동물이라는 괴리, 그 한계가 있기에 쉽지마는 않다는 것. 더 나아가 결국 인간이 될 수 없기에, 침팬지는 침팬지의 삶을 살게 해줘야 한다는 것. 침팬지에게 인간의 옷을 입히려는 행동은 결국엔 침팬지를 불행하게 만드는 행위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사실, 쉽게 어느 것이 옳다 말하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며 진리는 사랑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침팬지에게 어떤 대접을 한다 할지라도, 그 행위 안에 사랑이 담겨 있는가 이것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리라 여겨진다. 아무리 인간의 옷을 입히고, 좋은 대접을 한다 할지라도, 참 사랑이 아니라면 가짜다. 아울러, 비록 우리에서 자라게 한다 할지라도,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대하지 않고, 사랑의 마음으로 침팬지로서 살게 한다면 이것 역시 진짜다.

 

그러니, 사랑이 답이지 않을까? 아울러 소설 속에서 잔이 처음으로 행한 말(수화)이 다름 아닌 ‘포옹’이었음도 의미 있다. 진심어린 안아줌은 종을 뛰어넘어 우정을 가능케 한다. 『하프 브라더』, 그 두툼한 무게감만큼 진한 감동을 주는 좋은 소설이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가족과 함께 떠난 휴가지에서 두 딸과 함께 읽었다는데, 휴가 기간에 읽기에 딱인 감동을 전해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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