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여 안녕 범우문고 87
F.사강 지음, 이정림 옮김 / 범우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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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실과 아버지가 속한 즉흥적이고 자유분방한 세계와 안느가 속한 계획적이고 질서정연한 세계의 충돌. 쎄실은 안느의 세계를 파괴하는 데 성공하지만, 쎄실의 세계에도 균열이 생긴다.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슬픔이라는 감정의 틈입으로 인해..
옛날 번역을 그대로 계속 찍어내는 모양. 아쉽다.

분발해서 아버지와 예전의 우리의 생활을 반드시 되찾아야만 한다. 나로서는 방금 끝난 그 즐겁고도 일관성이 없던 그 2년이 갑자기 얼마나 매력적인 것으로 장식되었었는지 모른다. 언젠가 그렇게도 빨리 외면해버린 그 2년이...... 생각하는 자유, 부당한 것을 생각하는 자유, 도를 지나쳐 생각하는 자유, 나 자신이 내 인생을 선택하는 자유 그리고 나 자신을 스스로 선택하는 자유.
나는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다‘ 라는 말은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형상을 만들 수 있는 반죽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형(鑄型)을 거부하는 반죽이었다. -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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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건 새끼고양이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이제 아니라는 걸 알겠다.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건 내새끼(왠지 붙여 써야 할 것 같다)다.
귀여운 건 귀여운 거고.. 잠도 못 자고 책도 못 읽으니 아쉬운대로 틈틈이 모바일서점을 들락거리며 엄청 재미난 소설 읽고 싶어! 하던 차. 사은품인 셰익스피어노트와 깃펜에 꽂혀 네권이나 주문하고 말았다.
<토니와 수잔>은 엄청 재미난 소설 읽고 싶어!라는 욕구에 부응할 것 같아 선택. <마법사들>은 로맹가리라기에 얼른 선택. <왜 그들은 우리를 파괴하는가>는 빨책에서 듣고 재미있을 것 같아 선택. <슬픔이여 안녕>은 가격을 맞추기 위해 찍어둔 책들을 둘러보다가 선택.
막상 사은품으로 온 한여름밤의 꿈 노트는 생각보다 표지가 예쁘지 않아 실망했으나, 쌓인 책들을 보니 일단 좋구나.
이제 진짜 안 사야지 했는데 오늘 신간알리미가 와서 보니 김애란의 소설집이 나왔단다..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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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읽을까 딱 요거다 싶은 게 없어서 책장에서 이것저것 꺼내 봤다. 행복한 고민이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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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시, 헌법
차병직.윤재왕.윤지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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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올해만큼 헌법과 헌법재판소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때가 또 있을까? 재판관 한 사람 한 사람의 경력과 성향을 알아보고, 헌법재판소장의 임기 만료일을 알고, 재판 과정을 낱낱이 지켜보고... 많은 국민들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가운데, 결국 헌법재판소는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을 파면하는 결정을 선고했다. 임명 주체와 정치적 성향이 서로 다름에도 만장 일치의 결론이었다.

관심이 높아진 만큼 대화나 글의 주제로도 헌법이나 헌법재판소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는데, 아래 두 가지 만큼은 헷갈리지 말아야 한다.

- 헌법재판소재판관은 판사가 아니다. 판사는 법원에 소속되어 있고, 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완전히 별개의 기관이다.

- 헌법재판소는 "결정"을 선고하지 "판결"을 선고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헌법재판소 판결"이라고 하면 틀린 말이다.


<지금 다시, 헌법>은 헌법의 전 조문을 순서대로 살펴보는 방식으로 기술된 책이다. 법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이미 다 공부한 내용으로, 심도 있는 논의나 많은 사례 제시를 기대한다면 실망하겠다. 다만 외우기만 했던 조문들에 대해 그 역사적, 현실적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기회로 삼는다면 나름의 의미를 가질 것이다. 한편 법을 전혀 공부한 적이 없는 사람이 헌법에 관심을 가졌다면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다. 한번에 쭉 읽는 것은 - 생각보다 교과서적으로 쓰여 있어 재미는 별로 없으므로 - 어려워도, 궁금한 부분이 생길 때마다 해당 조문을 찾아보면 좋을 듯 하다.

책이 겨냥한 독자층이 불분명해 보이는 것이 아쉽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전공자에게는 너무 쉽고, 비전공자에게는 지루해 보인다. 교양서적 목적이라면 사례를 좀더 재미있게 풀어 쓰면 좋았을 것이다.


오류 또는 오해할 만한 부분이 보여 지적한다.


안마사 자격을 시각장애인에게만 인정한 규칙은 일반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부당하게 제한한다는 문제가 제기된 적이 있다. 헌법재판소는 안마사 자격을 시각장애인에게만 허용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고 결정하여 사회적 논란을 야기했다. -124쪽


이 부분을 읽으면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을 허용하는 제도가 없어졌으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위 위헌결정에서 제도 자체가 직업 선택의 자유 등을 침해하여 위헌이라는 의견을 낸 재판관은 5명이고, 2명은 단지 법률 체계 상의 문제로 위헌이라는 의견을 냈을 뿐이었으며, 그 후 법률 체계에 맞게 의료법을 개정하여 위 제도를 도입한 후에는 합헌결정이 내려졌다.


대부분의 국가가 18세기 말 19세기 초에 남성들에게 보통선거권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19세기 초,중반에 여성들에게 보통선거권을 부여했다.  -172쪽


1차 세계대전 이후인데 19세기? 잉? 오타인 것 같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남성들에게 보통선거권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20세기 초,중반에 여성들에게 보통선거권을 부여했다"가 맞겠다.


현행 헌법대로라면, 전임 대통령의 임기가 만료되고 새 대통령이 취임할 경우 임기가 시작하는 시간은 헌법 부칙 제2조 2항과 헌법 제159조 등에 의해 그해 2월 25일 0시가 된다.  -331쪽


헌법은 130조까지 있고 159조는 없는데.. "대통령의 임기는 전임대통령의 임기만료일의 다음날 0시부터 개시된다"고 규정한 공직선거법 제14조 1항이 들어가는 게 맞지 않나 싶다.


또 이 책의 저자들은 헌법 조문에 대한 주장이나 의견도 밝히고 있어서,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독자들이 판단해가며 읽어야 할 것 같다. 예컨대 구속 피의자 뿐만 아니라 불구속 피의자에 대해서도 국가의 보상책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아래 주장.


강압적인 검찰 수사는 불구속 피의자를 거의 매일 소환하여 오랜 시간 동안 대기시켰다가 심야까지 괴롭히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엔 물론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지만, 무고함이 드러난 불구속 피의자에게도 국가가 스스로 사과하고 보상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옳을 것이다.  -190쪽

 일견 합당한 말이기는 하지만, 나중에 무고함이 드러났다고 하여 그것만으로 국가에게 보상책임을 지운다면 수사가 지나치게 위축될 우려가 있다(물론 법적으로 허용되기 어려운 수준의 강압적인 수사가 있었다거나, 무고가 명백함에도 무용한 수사를 계속했다면 배상해야겠지만).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름의 증거를 제출하며 고소한다면 수사를 해야하고, 피의자가 거짓말을 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오히려 무고로 밝혀졌을 경우 무고죄의 처벌 수위를 높이고, 무고죄를 저지른 사람이 배상할 액수를 높이는 것이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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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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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공창제 도입 여부가 논의된 적이 있었다(지금도 성매매합법화 논의는 계속되고 있지만, 활발하지는 않은 것 같다).

"성을 사고 파는 일을 허용하는 것이 옳은가?"

이렇게 도덕적, 윤리적으로 접근한다면, "옳다"고 대답할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성을 사고 파는 일을 허용하는 것이 필요한가?"

라는 실용적, 정책적 측면으로 접근한다면, "필요하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꽤 있는 것 같다. 실제로 허용하고 있는 나라들도 있고.


"필요하다"는 것은 성을 파는 쪽이 아니라 성을 사는 쪽의 입장일 것이다. 그 저변에는 "(남성의)성적 욕구는 해소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해소되지 못한 욕구는 폭력적으로 발현되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다"는 주장이 깔려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성매매합법화를 주장하는 측에서 중요한 논거로 드는 것은 장애인이나 연애, 결혼 등을 통한 욕구 해소가 여건상 어려운 사람(남성)들의 욕구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애인 등을 들먹이는 것은 매우 가식적인 주장이 아닌가? 현재 성을 매수하고 있는 남성들 중 장애인이거나 연애(오로지 성적 목적을 위한 파트너와의 관계를 포함), 결혼 등을 하지 못하여 성매매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남성의) 성적 욕구는 해소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라는 생각은 성적 욕구 해소의 대상이 되는 여성(물론 동성애자의 경우에는 남성을 포함)을 객체화, 사물화 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남성에 대한 비하가 아닌가? 인간을 짐승과 구별해 주는 것이 이성일진대, 욕구를 이성으로써 제약하지 못한다면 짐승과 다를 것이 무언가. 여기에서 (남성의)라는 단서를 단 것은 여성의 성욕이 남성에 비해 약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여러 가지 이유에서 여성이 남성의 성을 매수하는 것은 그 반대에 비해 현저히 적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유부녀들의 호스트바 출입 등이 기사에 실려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이를 보며 어떤 이는 여자들도 똑같아, 서로서로 성매매 허용하는 게 어때?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화제가 된 이유 자체가 애초에 그것이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성매수가 적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세 가지 들어보자면 이렇다.

 1. 임신가능성에 대한 부담- 남성은 여성의 성을 매수하면서 이 부분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성매매 여성이 알아서 처리할 일이니까. 그러나 여성이 남성의 성을 매수할 경우 아무리 조심해도 임신의 가능성은 존재하며, 뒷감당은 여성의 몫이다.

2. 성병의 우려 - 남성에 비해 여성이 성병에 걸릴 경우 타격이 더 크다. 특히 출산을 원할 경우.

3. 공개될 경우의 타격에 대한 우려 - 성매매 사실이 알려졌을 때 여성이 남성보다 큰 타격을 입는다. 가정의 파탄, 주변의 손가락질. 이런 점을 이용해 상대 남성이 협박을 가할 가능성도 있다.   


또한 공창제를 허용한다고 해서 문제(어떤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생각은 근거가 빈약해 보인다. 성관계를 오랫동안 갖지 못한다고 해서 폭력성이 발현되거나 성범죄를 저지르게 될까? 애초에 내재된 폭력성을 가진 사람은 성관계를 많이 가지든 오랫동안 갖지 못하든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성관계를 많이 가지는 사람도 애인에 대한 폭력, 변태적 성행위 요구, 거절당한 변태적 성행위 욕구의 충족을 위한 성매매나 강간시도 등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공창제의 장점으로 꼽히는 것이 성을 파는 쪽(주로 여성)의 복지 향상 - 건강을 관리할 수 있고 포주의 횡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등 - 인데, 분명 그런 장점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의 성매매는 예전과는 그 양상이 다른데, 돈 때문에 포주에게 묶여 열악한 상황에서 성매매로 연명할 수 밖에 없는 경우도 물론 있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치를 위해서 또는 다른 일을 할 수 있음에도 비교적 쉽게 돈을 벌기 위해서 인터넷 등을 통해 (포주 없이) 자발적으로 성을 파는 사람들도 많으며, 이런 사람들의 경우 굳이 자신을 드러내며 공창에 편입되려고 할지 의문이다. 공창이 생기더라도 음성적인 성매매는 근절되지 않을 거라는 얘기다. 공창에서는 성매수자들의 성병 감염 여부를 확인할테고, 피임을 시킬 테고, 변태적 성행위는 금지할 테고, 성매도자들의 나이를 제한할 테고.. 등등의 많은 제약이 따를 텐데 과연 성매수자들이 그걸 원할까? 달리 방법이 없다면 모를까. 

또 성매도자가 공창에 있을 때는 나름의 복지를 누릴 수 있을지 몰라도, 공창이 정년이나 연금을 보장해주지 않는 이상- 정년은 과연 몇 살..? - 그 후의 그들의 삶은 어찌되는가. 다른 일을 할 수 있을까? 가정을 이룰 수 있을까? 결국 음성적 성매매의 세계로 편입되지 않을까?


얘기가 너무 길어졌다... 어쨌든 그 모든 의문을 제쳐놓더라도, 공창제를 포함한 성매매합법화에 반대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공창제를 도입한다는 것은 "(남성의)성적 욕구는 해소되어야 한다"는 명제 뒤에 "이를 위해 국가는 (여성의)성을 도구로 삼을 수 있다"는 결론을 천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현실적으로 완전 근절이 어려운 성매매를 암묵적으로 방치하는 것과 공개적으로 합법을 선언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것이다. 이는 성의 존엄과 가치를 국가가 무시하겠다는 것이고, 일부일처제를 기초로 하여 부부간의 정조의무와 가정의 평화를 꾀하는 국가정책과도 모순된다.


공창제 얘기를 한참 한 이유는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가 유사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제목을 봤을 때는 무슨 판타지소설인 줄 알았다.. 판탈레온이 만들어 낸 특별봉사대를 판탈레온의 이름을 따서 '판타랜드'라고 부르게 되는 대목을 보면, 풍자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작가가 의도한 것 같기도 하다.

소설의 배경이 된 1950년대의 페루는 군부에 의한 독재정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군에서는 아마존에서 복무하는 군인들이 민간에서 성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빈번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판탈레온 대위를 보내 비밀리에 군인들을 위한 '특별봉사대'를 조직하도록 지시한다. 지극히 성실하기만 했던 판탈레온은 처음에는 이 임무에 괴로워하지만 특유의 책임감과 뛰어난 행정능력으로 '특별봉사대'를 훌륭하게 조직해낸다. 그러나 특별봉사대의 봉사를 원하는 자들이 계속 늘어나면서 봉사대의 규모는 점점 커져가고, 비밀은 폭로되는데...

소설의 구성과 서술 방식이 특이하다. 서술과 대화로 이루어진 부분도 있지만, 군 내부 보고서, 라디오방송, 신문기사, 편지 등의 다양한 형식이 동원된다. 서술과 대화로 이루어진 부분도 마치 여러 가지 화면을 동시에 보고 있는 것처럼 장면 전환이 예고 없이 빠르게 일어나서 처음엔 조금 헷갈린다.

판탈레온의 성공에서 몰락까지가 들불처럼 퍼져나가는 이단의 지도자 '프란시스코 형제'의 성공에서 죽음까지의 과정과 궤를 같이 하는 것, 군의 사기를 높이고 범죄를 예방하려는 목적에서 시작된 기획이 군 장병들의 욕망 충족을 위한 도구로 변질되어 가는 것, 군 장성들의 가식과 책임 떠넘기기, 특별봉사대가 성매매 여성들에게 미친 영향까지...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이 많지만 공창제 얘기를 너무 길게 해서 그만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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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5-11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래 전에 처음으로 읽은 요사의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바로 팬이 되어 그의 전작에 도전했었지요.
리뷰 잘 읽고 갑니다.

독서괭 2017-05-11 18:03   좋아요 0 | URL
저도 다른 작품에도 도전해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