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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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공창제 도입 여부가 논의된 적이 있었다(지금도 성매매합법화 논의는 계속되고 있지만, 활발하지는 않은 것 같다).

"성을 사고 파는 일을 허용하는 것이 옳은가?"

이렇게 도덕적, 윤리적으로 접근한다면, "옳다"고 대답할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성을 사고 파는 일을 허용하는 것이 필요한가?"

라는 실용적, 정책적 측면으로 접근한다면, "필요하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꽤 있는 것 같다. 실제로 허용하고 있는 나라들도 있고.


"필요하다"는 것은 성을 파는 쪽이 아니라 성을 사는 쪽의 입장일 것이다. 그 저변에는 "(남성의)성적 욕구는 해소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해소되지 못한 욕구는 폭력적으로 발현되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다"는 주장이 깔려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성매매합법화를 주장하는 측에서 중요한 논거로 드는 것은 장애인이나 연애, 결혼 등을 통한 욕구 해소가 여건상 어려운 사람(남성)들의 욕구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애인 등을 들먹이는 것은 매우 가식적인 주장이 아닌가? 현재 성을 매수하고 있는 남성들 중 장애인이거나 연애(오로지 성적 목적을 위한 파트너와의 관계를 포함), 결혼 등을 하지 못하여 성매매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남성의) 성적 욕구는 해소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라는 생각은 성적 욕구 해소의 대상이 되는 여성(물론 동성애자의 경우에는 남성을 포함)을 객체화, 사물화 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남성에 대한 비하가 아닌가? 인간을 짐승과 구별해 주는 것이 이성일진대, 욕구를 이성으로써 제약하지 못한다면 짐승과 다를 것이 무언가. 여기에서 (남성의)라는 단서를 단 것은 여성의 성욕이 남성에 비해 약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여러 가지 이유에서 여성이 남성의 성을 매수하는 것은 그 반대에 비해 현저히 적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유부녀들의 호스트바 출입 등이 기사에 실려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이를 보며 어떤 이는 여자들도 똑같아, 서로서로 성매매 허용하는 게 어때?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화제가 된 이유 자체가 애초에 그것이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성매수가 적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세 가지 들어보자면 이렇다.

 1. 임신가능성에 대한 부담- 남성은 여성의 성을 매수하면서 이 부분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성매매 여성이 알아서 처리할 일이니까. 그러나 여성이 남성의 성을 매수할 경우 아무리 조심해도 임신의 가능성은 존재하며, 뒷감당은 여성의 몫이다.

2. 성병의 우려 - 남성에 비해 여성이 성병에 걸릴 경우 타격이 더 크다. 특히 출산을 원할 경우.

3. 공개될 경우의 타격에 대한 우려 - 성매매 사실이 알려졌을 때 여성이 남성보다 큰 타격을 입는다. 가정의 파탄, 주변의 손가락질. 이런 점을 이용해 상대 남성이 협박을 가할 가능성도 있다.   


또한 공창제를 허용한다고 해서 문제(어떤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생각은 근거가 빈약해 보인다. 성관계를 오랫동안 갖지 못한다고 해서 폭력성이 발현되거나 성범죄를 저지르게 될까? 애초에 내재된 폭력성을 가진 사람은 성관계를 많이 가지든 오랫동안 갖지 못하든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성관계를 많이 가지는 사람도 애인에 대한 폭력, 변태적 성행위 요구, 거절당한 변태적 성행위 욕구의 충족을 위한 성매매나 강간시도 등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공창제의 장점으로 꼽히는 것이 성을 파는 쪽(주로 여성)의 복지 향상 - 건강을 관리할 수 있고 포주의 횡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등 - 인데, 분명 그런 장점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의 성매매는 예전과는 그 양상이 다른데, 돈 때문에 포주에게 묶여 열악한 상황에서 성매매로 연명할 수 밖에 없는 경우도 물론 있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치를 위해서 또는 다른 일을 할 수 있음에도 비교적 쉽게 돈을 벌기 위해서 인터넷 등을 통해 (포주 없이) 자발적으로 성을 파는 사람들도 많으며, 이런 사람들의 경우 굳이 자신을 드러내며 공창에 편입되려고 할지 의문이다. 공창이 생기더라도 음성적인 성매매는 근절되지 않을 거라는 얘기다. 공창에서는 성매수자들의 성병 감염 여부를 확인할테고, 피임을 시킬 테고, 변태적 성행위는 금지할 테고, 성매도자들의 나이를 제한할 테고.. 등등의 많은 제약이 따를 텐데 과연 성매수자들이 그걸 원할까? 달리 방법이 없다면 모를까. 

또 성매도자가 공창에 있을 때는 나름의 복지를 누릴 수 있을지 몰라도, 공창이 정년이나 연금을 보장해주지 않는 이상- 정년은 과연 몇 살..? - 그 후의 그들의 삶은 어찌되는가. 다른 일을 할 수 있을까? 가정을 이룰 수 있을까? 결국 음성적 성매매의 세계로 편입되지 않을까?


얘기가 너무 길어졌다... 어쨌든 그 모든 의문을 제쳐놓더라도, 공창제를 포함한 성매매합법화에 반대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공창제를 도입한다는 것은 "(남성의)성적 욕구는 해소되어야 한다"는 명제 뒤에 "이를 위해 국가는 (여성의)성을 도구로 삼을 수 있다"는 결론을 천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현실적으로 완전 근절이 어려운 성매매를 암묵적으로 방치하는 것과 공개적으로 합법을 선언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것이다. 이는 성의 존엄과 가치를 국가가 무시하겠다는 것이고, 일부일처제를 기초로 하여 부부간의 정조의무와 가정의 평화를 꾀하는 국가정책과도 모순된다.


공창제 얘기를 한참 한 이유는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가 유사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제목을 봤을 때는 무슨 판타지소설인 줄 알았다.. 판탈레온이 만들어 낸 특별봉사대를 판탈레온의 이름을 따서 '판타랜드'라고 부르게 되는 대목을 보면, 풍자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작가가 의도한 것 같기도 하다.

소설의 배경이 된 1950년대의 페루는 군부에 의한 독재정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군에서는 아마존에서 복무하는 군인들이 민간에서 성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빈번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판탈레온 대위를 보내 비밀리에 군인들을 위한 '특별봉사대'를 조직하도록 지시한다. 지극히 성실하기만 했던 판탈레온은 처음에는 이 임무에 괴로워하지만 특유의 책임감과 뛰어난 행정능력으로 '특별봉사대'를 훌륭하게 조직해낸다. 그러나 특별봉사대의 봉사를 원하는 자들이 계속 늘어나면서 봉사대의 규모는 점점 커져가고, 비밀은 폭로되는데...

소설의 구성과 서술 방식이 특이하다. 서술과 대화로 이루어진 부분도 있지만, 군 내부 보고서, 라디오방송, 신문기사, 편지 등의 다양한 형식이 동원된다. 서술과 대화로 이루어진 부분도 마치 여러 가지 화면을 동시에 보고 있는 것처럼 장면 전환이 예고 없이 빠르게 일어나서 처음엔 조금 헷갈린다.

판탈레온의 성공에서 몰락까지가 들불처럼 퍼져나가는 이단의 지도자 '프란시스코 형제'의 성공에서 죽음까지의 과정과 궤를 같이 하는 것, 군의 사기를 높이고 범죄를 예방하려는 목적에서 시작된 기획이 군 장병들의 욕망 충족을 위한 도구로 변질되어 가는 것, 군 장성들의 가식과 책임 떠넘기기, 특별봉사대가 성매매 여성들에게 미친 영향까지...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이 많지만 공창제 얘기를 너무 길게 해서 그만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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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5-11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래 전에 처음으로 읽은 요사의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바로 팬이 되어 그의 전작에 도전했었지요.
리뷰 잘 읽고 갑니다.

독서괭 2017-05-11 18:03   좋아요 0 | URL
저도 다른 작품에도 도전해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