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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 ㅣ 아우또노미아총서 81
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신지영 외 옮김 / 갈무리 / 2023년 3월
평점 :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다. (16쪽)
주제1. 마녀사냥과 당대의 토지 인클로저 및 토지 사유화의 관계
주제2.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재상산 역능에 대한 국가 통제가 확대되는 것을 통해 여성 신체의 인클로저가 심화된 것과 마녀사냥이 어떤 관계에 있는가.
* 인클로저: 공동으로 사용하던 토지에 울타리 등을 둘러쳐서 사유지로 삼은 일. (네이버 지식백과)
마녀 사냥은 16, 17세기- 그러니까 호랑이가 담배는 안 펴도 사람은 잡아먹던 시절에 일어났던 이야기 아닌가? 그런데 "세계 곳곳에서 마녀 사냥이 재출현"(18쪽)하고 있다니? 에이 설마.. 우리가 흔히 인터넷에서 '마녀 사냥'이라 일컫는 몰아가기 식의 비난.혐오 여론, 그런 걸 말하는 건가? -했는데 웬일, 탄자니아에서만 한 해에 5천 명이 넘는 여성이 마녀라는 이유로 마체테 칼에 죽임당하거나 산 채로 묻히고 불태워진다(19쪽)고??? 헐...
마녀 사냥은 오래전에 일어났다가 사라진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마녀사냥은 근대 자본주의 세계가 부상하는 길을 열어젖힌 다양한 사회적 과정의 교차점에서 일어난 일이다.(35쪽)
마녀사냥이라는 주제는 실비아 페데리치가 <캘리번과 마녀>라는 책에서 자세히 다룬 바 있는데, 이 책에서는 과거의 마녀사냥과 현대의 마녀사냥 사이의 공통점을 밝히고 향후 페미니스트 운동의 방향을 제시한다.
<캘리번과 마녀>는 가지고만 있기를 n년째인데, 8,9월 <백래쉬> 읽고 난 뒤 읽을 예정..
페데리치는 15세에 이르러 스스로 "어느 정도는 혁명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176쪽) - 나 15세에 뭐했지? 한창 순정만화 읽고 있을 땐데..언니 너무 멋지신 거 아닌가요.
내가 이해한 내용을 요약해보면 이렇다.
유럽에서 농업 자본주의가 부상하면서, 토지에 대한 인클로저가 시작되었다. 이와 같은 인클로저- 토지의 사유화 및 자본주의 부상으로 인해 가장 빈곤해진 것은 여성, 특히 나이 든 여성들이었다. 모든 것을 경제 가치-돈으로 환산하는 자본주의는 더 이상 재생산 능력이 없는 여성의 몸을 평가절하했고, 자본을 생산하지 못하는 여성의 가사노동을 폄하했다. 이렇게 빈곤하고 소외된 나이 든 여성들은(그중에는 기존에는 풍부한 약초 지식, 산파 역할 등으로 마을에서 상당한 존중을 받던 사람도 있었는데) 분노하고 반항하면서 그 감정을 주변에 표현하고 선동했다. 자본주의자들은 농경사회의 전통적 공동체주의, 마술적 사고를 타파하고 인간을 기계화 하여 최대의 노동력을 뽑아내야만 했으므로, 기존 질서를 대표하고 자신들을 방해하는 그들(나이 든 여성들)을 제거해야 했다. 또한 급격한 자본주의 부상으로 위기에 처한 젊은이들 역시 그들을 방해꾼으로 여겼다. 공동체주의가 무너지면서 그 분열과 대립을 촉진했다. 그렇게 끔찍한 마녀사냥이 자행되면서, 자본주의/자본가들은 저항을 막고 새로운 여성성의 모델을 확립했다.
[인용문]
마녀에 대한 공격으로 당국은 사유재산에 대한 공격, 사회적 불복종과 반항, 마법의 보급 전파를 동시에 처벌했다. 이 모든 것이 당국이 통제할 수 없는 힘을 전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마녀에 대한 공격은 성행위와 출산을 국가의 지배하에 두는 성 규범으로부터의 일탈을 처벌하는 것이었다. (50쪽)
'마녀들'과 함께, 자본주의가 도래하기 이전의 유럽 농촌 사회를 특징지었던 사회적.문화적 관행, 그리고 신념의 체계가 완전히 삭제되고 말살되었다. (52쪽)
이제 국가와 교회로부터 독립적인 권력의 원천은 그것이 무엇이든 악마와 관련된 것으로, 그리고 지옥이라는 공포, 절대악이라는 공포를 지상에 퍼뜨리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를 여성이 구현한다고 흔히 생각되었다는 점이 마녀사냥에 힘입어 탄생한 자본주의 세계에서 여성이 처하게 될 상황과 조건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여성을 분열시켰다. (55쪽)
마녀사냥은 여성 전체를 상대로 한 테러 체제였다. 마녀사냥으로부터 새로운 여성성의 모델이 출현했다. 여성이 태동 중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인정되고 수용되려면 새로운 모형의 여성성에 순응해야 했다. 그것은 무성적이고sexless, 복종적이며, 고분고분하고, 남성이 지배하는 세상의 종속적 하위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 (70쪽)
마녀사냥은 유럽 여성이 새로 강제된 사회적 책무를 받아들이게 했다. 또한 유럽의 '하층계급'에 엄청난 패배감을 안겼다. 그들은 정부 통치에 반하는 어떠한 저항 행위도 정부의 권력이 개입되어 중지될 것임을 체득하게 되었다. (72,73쪽)
후반부에서는 현대 아프리카, 인도 등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마녀사냥이 과거 유럽의 마녀사냥과 유사하다는 점을 밝히면서, 페미니스트 운동을 촉구한다.
[인용문]
여성은 자급 농업을 포기하고 상품생산에서 남편의 보조자로서 일하도록 강요받았다. 마리아 미즈에 따르면 이 강제된 의존은 농촌 여성이 "개발 과정으로 통합되는" 구체적인 방식 중 하나이며, 이 때 개발 과정 자체도 폭력적으로 진행된다. (...) 특히 아프리카에서 희생자들은 약간의 토지에 의지해 홀로 사는 나이 든 여성이었다. 고발자는 공동체나 심지어 그들 가족 내 젊은 구성원으로, 대개는 실업자인 이 청년들은 자신들이 소유해야 마땅한 것을 나이 든 여성이 강탈했다고 여겼다. (100~102쪽)
나의 분석을 통해서 나는,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의 권리에 대한 이러한 끔찍한 침해들에 대항하며 결집할 때, 그것을 가능하게 한 물질적이고 사회적인 조건들 만들어 온 기관들을 심판해야만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이 기관들은 살인을 막지도 처벌하지도 않는 아프리카 정부들을 비롯하여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과 이러한 기구들의 국제적 지원자인 미국, 캐나다, 유럽연합 등이다. 이 국제기구들은 '외채 위기'와 '경제 회복'을 명목으로 아프리카 국가들에 잔혹한 긴축 체제를 강요하고, 아프리카 정부의 의사 결정 권한의 많은 부분을 박탈함으로써 지역경제를 파괴하고 아프리카 대륙을 재식민화하고 있다. (118,119쪽)
+ '가십'에 관해 한 장을 할애했는데, 이 장은 전체 흐름에서 혼자 튀는 부분이긴 하지만 흥미롭다. '가십'이라는 말이 긍정적인 의미에서 부정적인 의미로 변화한 과정을 담고 있어, <워드 슬럿>이 생각나기도 하고.
'잔소리꾼'을 벌하기 위해 '재갈'이라고도 불리는 '잔소리꾼 굴레'가 도입되었다. 철과 가죽으로 만들어진 이 가학적인 장치는 말하려고 하는 여성의 혀[의 살점]을 뜯어내기 위해 여성의 머리 위에 씌워졌다. (...) 1567년에 처음으로 스코틀랜드의 기록에 등장한 이 고문 기구는 '바가지 긁는', '잔소리하는', 난동을 부리는 하층계급 여성을 벌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 이것은 '가십 굴레'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가십이라는 용어의 의미가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82,83쪽)
리뷰를 쓰기 위해 다시 훑다 보니, <캘리번과 마녀>가 무척 읽고 싶어졌다.
하지만 나에게는 <백래시>가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