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스크로 가는 기차 (양장)
프리츠 오르트만 지음, 안병률 옮김, 최규석 그림 / 북인더갭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읽는데, 어? 나 이거 읽었다??
검색해보니 이 책을 산 게 2011년인데, 이때 같이 주문했던 책이 <천국의 열쇠>, <사랑이라니, 선영아>, <내 심장을 쏴라> 였고 이 책들은 확실히 다 읽었다.
그러니 곰스크도 그때 읽었나 보다.. 어쩌면 표제작만 읽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이때는 정말 소설 편향이었군.
표제작만 읽고 일단 뭔가 쓰고 싶어져서 리뷰를 쓴다.

표제작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읽는데, 이거..
이 남자는 N이고, 이 여자는 S다. 틀림없어! 남자는 계속 저 멀리 곰스크를 바라보고 있고, 여자는 안락의자(새우깡)를 구한다. 
- 자꾸 새우깡 얘기를 하게 되는데 모르시는 분은 아래 링크 참고 

아내 역시 우리가 언젠가는 곰스크로 가게 될 것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곳이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녀에게는 어떤 느낌이나 희망, 걱정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 같았다. 마치 젊은 사람이 죽음에 관해 생각하는 것처럼.  - 34쪽
​10년 전에 읽을 때는 어땠는지 모르겠는데, 아마도 이 남자의 마음에 이입해서 안타까워 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여자에게 이입해서 빡친다. 곰스크는 내 꿈이 아니야, 네 꿈이잖아! 왜 자꾸 "우리"라고 하지? "우리가 그렇게 기다리던 시간이 마침내 다가온 거야!"(39쪽)라니, 아내는 결코 그 시간을 기다리지 않은 것 같건만. 심지어 곰스크로 갈 생각에 골몰해 아내가 배가 불러오는 것도 모른다. 아니 언제든 떠날 생각이었으면 그것도 조심했어야지. 이 화상아.. 
"(...)나에게 안락의자 따윈 필요없어! 당신한테 여러번 얘기했잖아! 나는 곰스크로 갈 거라고, 이 빌어먹을 촌구석을 떠나서 곰스크로 갈 거라고 말이야." - 37쪽
"그러면 당신은 여기서 조금도 행복하지 않았다는 말인가요? 당신에게는 내가 있었잖아요! 당신은 오직 곰스크만을, 우리가 함께 살아온 이곳에서 등을 돌리게 될 그날만을 기다리지 않았나요?"  - 40, 41쪽 
곰스크가 어떤 곳인지조차 모르면서, 그는 지금 여기는 '빌어먹을 촌구석'이고 곰스크는 멋진 곳일 거라고 여긴다. 지금 이곳을 언제든 떠나려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주변을 제대로 살피지 않는 그와 달리, 그녀는 완전히 이곳에 정을 붙이고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이라는 결정타가 이들을 이곳에 정착시킨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곰스크에 사로잡혀 있다. 그의 한구석에는 떠나고 싶은 열망이 있고 그 열망이 그를 고독하게 한다. 
이게 참 전형적인 남성 서사 느낌이긴 한데(게다가 번역은 왜 남편은 반말하고 아내는 존대하는지?), 성별을 떠나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고민이다.
'곰스크'로 표상되는 어떤 이상, 꿈, 그런 것들을 남편만 가지고 있고 아내는 가지고 있지 않은 게 아니라, 아내는 자기만의 곰스크를 이곳에서 찾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곳, 현실의 가까운 곳에서 행복과 의미를 찾는 것- 나는 아내 쪽에 가까운 사람이다. 
현재에 대한 불만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냥, 막연하게, 무조건, 지금 이곳, 현실의 가까운 곳에는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뭐, 남편이 어릴 적부터 아버지 얘기를 듣고 꿈꾸어 온 이상을 찾아 떠나는 것은 좋다. 
근데 그럴 거면 똑같은 꿈을 꾸는 사람을 만나든지 일단 곰스크에 가서 배우자를 찾든지 했어야 할 것 아니야? 
마치 아내와 아이가 자기의 꿈을 이루지 못하게 하고 시골에 주저앉게 만든 것처럼 여기며, 기적소리가 들릴 때마다 다락방으로 올라간다는 이 남편의 모습은 내게 하등 가여워 보이지 않는다. 

애들 키우는 아내 입장에 이입하여 화난 리뷰를 쓰긴 했지만 ㅋㅋ 이 소설이 좋지 않은 소설이라는 건 아니다. 이상을 꿈꾸며 현실에 머무르는 인간의 한계와 어리석음을 우화처럼 잘 보여준다. 지금 이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도 이것은 결국 내가 선택한 운명이라는, 선생의 입을 통해 지혜를 들려줘도 여전히 곰스크를 놓지 못하는 미련까지 말이다. 
나머지 단편들은 천천히 읽어봐야겠다.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쟝쟝 2022-06-11 09: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니 여기서도 새우깡 논쟁을 하고 있어요 ㅋㅋㅋ 왜 ㅋㅋㅋ 사실 f 냐 t냐가 논란의 중심인데 ㅋㅋㅋㅋㅋ 새우깡이냐 이상이냐도 ㅋㅋㅋㅋ 인간 실존의 진한 논쟁이 될 것 같아여 ㅋㅋㅋ 저는 n ㅋㅋㅋㅋ 내 친구들은 sㅋㅋㅋㅋㅋ 다행임 ㅋㅋㅋ

그런데 저번부터 남편 ㅋㅋ 진짜 아오 ㅋㅋㅋ 딱밤 좀 ㅋㅋㅋ

독서괭 2022-06-13 12:03   좋아요 1 | URL
아 f냐 t냐가 논란의 중심이예요? t는 머리로 이해가 되어야 공감을 하는 유형이라던데 ㅎㅎ 저는 f입니다. 쟝쟝님 t죠? ㅋㅋ 전 저 갈매기 새우깡 만화에 꽂혀서 S랑 N이 재밌더라구요 ㅋㅋ N끼리만 모여 있으면 밥을 제대로 못 챙겨 먹을 것 같아요 ㅋㅋ S 친구들 잘 두셨습니다!

공쟝쟝 2022-06-14 17:14   좋아요 1 | URL
네 ㅋㅋㅋ T가 공감을 잘 못한다고 사람들이 많이 오해를 하시는 데 말이죠? 제가 말입니다.. 공감을 원한다고 먼저 말해주시면 공감능력 동기화가 되는 그런 훌륭한 티입니다. 근데 버튼 안눌러주시면 계속 팩폭 들어갑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저의 S 친구들은 제가 흥분해서 푸코나 아렌트 따위를 떠들고 있으면, 그 와중에 고기 구워서 입에 넣어주고, 누룽지 시켜주고 그러더라고요.... 제 이야기를 듣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체로 S는 멀티가 되는 종족이 아닌가.... (멀티 안되는 사람 ㅋㅋㅋ)

다락방 2022-06-14 17:27   좋아요 2 | URL
새우깡이 중요하다니까!!

공쟝쟝 2022-06-14 17:32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 먹어 ㅋㅋㅋ먹고 말해 ㅋㅋㅋ 먹어 ㅋㅋ 쟝님 좀 먹어요 ㅋㅋㅋㅋ ㅋㅋㅋ 아 ㅋㅋㅋ 귀에 쟁쟁해 ㅋㅋㅋㅋ ㅠㅡㅠ

다락방 2022-06-14 17:33   좋아요 1 | URL
쟝님은 새우깡보다 저 너머를 궁금해하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2-06-14 17:36   좋아요 1 | URL
저는 떨어진 새우깡 앞에서 쉬운 선택을 하는 갈매기 존재의 생겨먹음이 궁금합니다. 예속과 억압을 끊어내고 자신의 몫의 새우를 스스로 사냥하는 갈매기의 자립적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 그 구조를 가늠하는 언어…(그만해…) 잠이나 자야겟다 쿨쿨

독서괭 2022-06-14 17:36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쟝쟝님 철학하다 먹는 거 까먹어서 굶을 판.. 옆에서 입에 고기 넣어주는 다락방님과 계속 친하게 지내세요, 꼭 ㅋㅋ

독서괭 2022-06-14 17:42   좋아요 1 | URL
쟝쟝님, 제 N인 친구 하나도 새우깡 만화 보고 새우깡 갈매기는 그냥 개그인 줄 알았대요. 어떻게 저럴 수가 있냐고 ㅋㅋㅋㅋ <갈매기의 꿈> 얘기를 하는데, 그 책 저도 10대 때 좋아했거든요? 조나단이 N이라는데,, 맞아, 그렇지, 근데 나 조나단 좋아해 - 지금 깨달았어요. N은 아니지만 N을 좋아할 수는 있다는 것을 ㅋㅋ

공쟝쟝 2022-06-14 17:45   좋아요 0 | URL
저는 주변에 s없었으면 맨발의 소크라테스가 되어서 (참)이슬먹고 살다가 굶어죽었을 거예요. 제게 청약통장도 존엄사 적금도 (그거 아냐;;;;) 현생의 쾌락도 알려주는 모든 s들에게… 이자리를 빌어 감사를….

다락방 2022-06-14 17:47   좋아요 0 | URL
나르치스…

청아 2022-06-11 09:4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재독하면 기존에 못보던 다른것들이 보일때가 있더라구요
그래서 저의 목표는 소장가치있는 100권만 남겨서 재독하기인데 지금 읽는 속도와 사모으는 빛의속도를 봤을때 기약이 없네요ㅋㅋㅋㅋ
갈매기 만화 다시봐도 재밌어요ㅋ

독서괭 2022-06-13 12:04   좋아요 2 | URL
미미님, 소장가치 있는 100권만 남겨서 재독하기- 멋진 목표인걸요?? 하지만 실현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ㅋㅋㅋ 소장가치있는 책이라는 게 또 계속 나오지 않겠어요? ㅠㅠ 그냥 원없이 많이 보자구요 ㅎㅎ
갈매기 만화 저 너무 꽂혀서 계속 새우깡 얘기를..;;

새파랑 2022-06-11 12: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확실히 N이 맞는거 같아요 ㅋ 새우깡 이야기 다시봐도 재미있네요 ^^ 그런데 책 좋아하는 분들은 대부분 N일거 같아요 ㅋ

역시 소설 읽을때는 감정이입이 중요한거 같아요 ^^

독서괭 2022-06-13 12:05   좋아요 2 | URL
새파랑님, 새우깡 글에 댓글 보시면 은근히 S도 많습니다 ㅋㅋ 저는 애 낳아 키우면서 점점더 S가 되어가는 것 같아요;;
나(보코프)교수님은 감정이입 하지 말라셨다던데, 전 역시 감정이입을 하게 되더라구요. 이번에 아내에게 너무 감정이입이 빡 되어 버렸습니다 ㅋㅋ

다락방 2022-06-14 15: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단편집 너무 좋아하는데요, 니가 곰스크에 가고 싶어하지만 지금 여기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너의 선택이다, 너가 선택해서 지금 이 삶을 살고 있는거다, 라고 동네 선생님이 말해주는 그 장면을 정말 좋아합니다. 아무렴요.

독서괭 2022-06-14 15:39   좋아요 0 | URL
제가 다락방님 책에서 이책 쓰신 부분 찾아봐야지 생각했다가 잊고 있었는데, 이 댓글 보고 방금 찾아봤습니다(준비된 독자)! 목차 보고 짚었는데 한번에 맞췄어요 ㅋ ˝그건 나쁜 삶이 아닙니다˝!! 저도 이 책이 주려는 메시지는 좋아요, 좋은데,, 자꾸 읽으며 아내에게 이입을 해버려서 ㅋㅋㅋ 아기 안고 남자 발목 잡아 주저앉히는 고런 느낌 ㅠㅠ 성별이 중요한 게 아니라 메타포라고 생각하려 해도 이미 이입이 돼서 어쩔 수가 없네요 흑흑. 다락방님이 좋다 하셨던 마지막 단편 ‘럼주차‘만 남겨놓은 상태인데, 요거 잘 읽어보겠습니다^^

다락방 2022-06-14 15:54   좋아요 2 | URL
저도 읽은지 벌써 십년이 된 단편이라 지금 읽으면 완전히 다른 감상을 갖게 될지도 모릅니다. ㅎㅎ
저는 <럼주차> 되게 좋아했어요. ㅎㅎ

독서괭 2022-06-14 17:37   좋아요 0 | URL
다시 읽으시면 어떻게 느끼실지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