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퀴어이론이다. 공유하고 싶은 내용이 있어 올려본다.
6장에서 다루는 "퀴어 정동 이론"이 대체 뭔지 몰랐는데, '정동'이라는 개념에 대해 의견이 갈리는 듯하나 대충 감정 비슷한 것이라고 이해하자.
퀴어 정동 이론의 여러 갈래 중 <정치적 우울: 앤 츠비예트코비치> 부분의 인용이다.
정치적 우울이란 "직접행동과 비판적 분석을 포함한 정치적 반응의 관습적 형식들이 더 이상은 세상을 변화시키지도 못하고 우리를 더 기분 좋게 만들어주지도 못한다는 감각이다.
(...) 이런 우울은 마음을 달리 먹거나 항우울제를 처방받는다고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유전이나 호르몬 문제 같은 의학적이고 생화학적인 질병이 아니라 사회·문화 · 정치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 P507
이처럼 우울을 개인의 결함이나 병리적 문제가 아니라 당대의 차별적 권력구조를 개인이 체현한 결과로 이해한다면, 정치적 우울에 관한 논의는 의료적 모델과는 다른 방식의 해결책을 찾아 나서게 된다. 한편으로, 츠비예트코비치는 우울에 대한 설명을 의료 담론이 지배하는 상황은 우울을 권력구조에 대응하는 합리적이고 집단적인 반응으로 이해할 수 없게 만들고 우울을 생산하는 권력구조의 유지에 일조하며 의학에 한정되지 않는 다양한 대안을 탐색하지 못하게 막는다고 강력히 비판한다. 우울과 체계적 폭력 간에 긴밀한 연관성이 있음에도 이 연결이 부정당할 때, 그리고 그런 연결이 있다고 폭로하는 발언조차 공적담론에서 어떤 정동을 어떤 식으로 누구만 적절하게 표출할 수 있다고 정하는 규범에 의해 제어될 때, 우울은 사회적인 문제가 아니라 생물학적이나 심리적인 유병요인을 갖고 있는 개인의 문제로 축소되는 것이다. - P508,509
특히 퀴어 이론에서 '우울'을 비롯한 부정적인 정동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1980년대 에이즈 위기를 겪으면서 퀴어들이 엄청난 상실과 슬픔을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울을 개인적 문제로 치부하고 그것을 극복의 대상으로 삼아 '떨치고 일어나자'라는 구호로 눌러 버릴 것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에 의해 일어나는 집단적 우울을 인정하고 '윤리적 연대'를 모색하자는 것이다.
관련이 깊은 건 아니지만 이 부분을 읽으니 여성에게 유독 '심인성' 질병이라는 진단을 많이 내린다는 이야기가 떠오르면서, 집단적으로 겪는 부정적 정동의 문제를 왜 중요하게 다뤄야 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게다가 병명을 찾지 못할 때 의사가 흔히 내리는 ‘심인성’이라는 진단은 또 어떤가? 자신의 증세가 의학적 병명을 부여받지 못할 때, 환자는 스스로 감각과 경험을 의심하게 된다. 이 정도 통증은 다들 견디며 사는데, 자신이 너무 나약하고 까다로운 건 아닌지 자책한다. 자기 몸의 통증이 ‘정당’한 것인지 자문하기도 한다. 사실 통증이란 감각이므로 옳고 그름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통증을 느끼는 자신이 정당한지에 대한 검열을 반복하고, 자기 몸의 소리와 감각이 부적절하다고 느낀다. 이는 자기 부정의 경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 전자책 92~93/507p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실린 단편 중에는 '감정의 물성'이 있다.
'감정의 물성'은 이모셔널 솔리드라는 회사에서 만든 물건인데, "감정 자체를 조형화한 제품"으로, 예를 들어 '침착의 비누'를 사용하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설렘 초콜릿'을 먹으면 설렘을 느낀다는 것이다. 인터넷 미디어를 통해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는 이 제품에 대해, 화자인 정하는 그 효능을 전혀 믿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날, 부모와의 불화로 힘들어하던 연인 보현의 집에 갔다가 그녀가 감정의 물성 중 부정적 감정 라인의 하나인 '우울체'를 사들이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정하는 긍정적 감정에 대해서는 플라시보 효과라고 여기며 그걸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수긍하지만, 부정적 감정인 '분노'나 '우울', '증오'를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한다. 그런 그에게 후배 유진은 "물성이라는 건 생각보다 쉽게 사람을 사로잡아요."(전자책 216/367p)라고 말한다.
대체 '우울체'가 어떻게 보현의 마음을 위로해줄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정하에게, 보현은 말한다.
"물론 모르겠지, 정하야. 너는 이 속에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내 우울을 쓰다듬고 손 위에 두기를 원해. 그게 찍어 맛볼 수 있고 단단히 만져지는 것이었으면 좋겠어." (전자책 228/367p)
감정의 물성화라, 참 재미있는 생각이다. 나도 정하처럼 대체 왜 부정의 감정을 돈 주고 사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며 이 책을 듣다가(오디오북), 마지막에 이르니 역시 정하처럼, 어렴풋이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퀴어이론으로 돌아가서,
츠비예트코비치가 우울을 "일상생활의 회복 작업"으로 바꾸는 "매일의 습관의 유토피아"라고 부른 이 창조적 실천에는 글쓰기, 요가, HIV 치료제 꼬박꼬박 투여하기 같은 일상적인 실천이 포함된다. - P512
매일의 습관의 유토피아라는 이 표현, 마음에 든다. 그래서 얼른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달리기도 열심히 해야지..! 갑자기 자기계발 같은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