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발도르프 교육에서 이야기 들려주기 2006-09-13 오후 12:37:00 조회수 : 302
제게는 그리운 외할머니가 있습니다.
중 3때 돌아가셨으니까, 세월이 꽤 흘렀지요.
 
우리들의 많은 할머니들이 그러셨던 것처럼, 할머니의 학력은 무학(無學), 겨우 한글을 읽으시는 정도셨지요. 불경을 즐겨 읽으셨고, 밤이면 저희 형제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들었던 이야기를 또 듣고, 또 들어도 즐겁기만 했던 그 밤들...   참으로 아련하지만 아름다운 추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할머니는 매주 배달되는 불교신문에 실린 동화와 붓다에 관한 이야기들을 읽어주셨는데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어도 천천히 읽는 할머니의 목소리와 따스하게 다가오는 그 이야기들이 늘 좋았고 그 시간이 편안했습니다.
 
발도르프 교육에 대해 공부하면서, 그리고 이야기 듣기를 너무너무 좋아하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수십 년 세월이 흐른 뒤에, 그 시간이 나에게 이렇게 아름답게, 그리고 따스하게 남아 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할 때, 잘 관찰해보면 사람들은 입으로만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얼굴표정, 손, 몸짓 등 몸 전체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모든 행위는 내용을 전달하려는 그의 의지와 느낌, 내면의 상태와 관계가 있지요. 그런데 이러한 과정이 듣는 사람에게서도 그대로 같이 나타난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1970년대 미국학자 콘돈은 1초에 50번이 찍히는 카메라로 사람이 이야기하는 순간을 촬영했는데, 그때 그는 이야기기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움직임이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해 냈습니다.
또 갓난아기의 성대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엄마의 성대를 모방하는 것으로부터 만들어진다 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내가 말을 하면 나의 성대가 떨리는데, 이때 듣는 사람의 성대도 떨린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슈타이너는 “언어감각은 몸 전체이다”라고 했습니다.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들으면서 단순히 이야기의 내용만도 소리만도 아닌 할머니의 모든 것을 받았음을 저는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된 것입니다.
요즘은 사회적으로 노인의 존재를 좀 다르게 보는 것 같지만 예전에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 지혜의 전수자는 대부분 할머니거나 할아버지였고, 그래서인지 저부터도 할머니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것은 특별했고 무지무지 좋았습니다.  
 
그런데 예전의 삶의 지혜와 육아방식이 전수되지 않은 요즘, 젊은 엄마들이 이렇게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큰아이를 발도르프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잠자리에서 동화나 옛이야기, 시를 들려주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저는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거의 매일 새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준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저는  잠자리에서 이야기대신 주로 옛이야기를 읽어주었습니다.
이야기로 들려줄 때와, 책을 읽어줄 때의 아이들의 반응은 차이가 많았습니다. 가끔 이야기로 들려주거나 직접 만든 이야기를 해줄 때는 아이들이 머리보다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느낍니다. 마찬가지로 저 역시 그때는 마음에 담긴 것을 더 많이 전하는 느낌이지요.
 
그래도 꾸준히 책을 읽어 준 것은 지적인 학습이나 책을 좋아하게 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이야기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이 아이들의 성장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책을 읽어줄 때 알게 된 것은 아이들이 발달정도에 따라 좋아하는 이야기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때에 맞는 옷을 입고 때에 맞는 음식을 먹어야하는 것처럼 이야기도 때에 맞는 것이 있었습니다. 
 
초기의 아이들의 언어는 매우 음악적입니다.
아이와 어른이 처음으로 시작되는 언어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뜻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음악적인 소리와 리듬으로 이야기합니다. 혀를 굴려 말하고,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고... 
그러다 아이들이 조금만 크면 아이마다 더 좋아하는 이야기가 생기고, 그것을 반복해서 듣기를 원하게 되지요. 특히 하나의 소리나 동작이 반복되는 이야기들, 예를 들면
방귀가 뿡 뿡 뿡, 지붕이 들썩들썩,......
파리가 한 마리, 한 마리, 들어왔다, 나갔다,......
장갑 속에 생쥐가 한 마리, 다음에는 토끼가 한 마리, 다음에는 여우가 한 마리, 한 마리......   등의 이야기들은 거의 모든 어린아이들을 사로잡습니다. 그것은 아이들 안에 그러한 욕구가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여섯 살이 지나면서 아이들은 옛이야기에 매료되어 그 상징의 세계를 받아들이고 상상의 나래를 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이야기꾼이 되지요. 바로 아이들의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놀이가 시작될 때입니다.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 반쪽이, 호랑이와 곶감, 혹부리 영감, 도깨비 방망이.......   그리고 그림형제의 동화 중에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지요.
 
옛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은 이유는 그 안에 삶의 지혜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권선징악’의 이야기만큼 아이들에게 도덕성을 갖게 하기에 적합한 것은 드뭅니다. 어른들은 많은 주인공들이 시련을 거쳐 궁극적인 행복을 얻는 것을 유치하다고,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앞으로 자신의 삶에서 닥칠 시련을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을 얻을 것입니다. 생활습관을 좋게 하기 위한 생활동화와는 다른 근본적인 인류의 지혜가 숨겨져 있다고 저는 느끼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어른들은 이해가 안 되는 상징적인 이야기들을 아이들은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발도르프 교육에서는 이러한 이야기 들려주기를 매우 중요한 교육수단이자 교육내용으로 삼습니다. 그래서 유치원에서부터 학교까지 교육 안에는 아이들의 발달과정에 맞는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이미 옛이야기나 동화를 어른의 목소리를 통해 이야기로 직접 들으며 자라는 아이들이 줄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들려줘도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이들 자체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로부터 배웁니다. 아이들이 제대로 듣는 경험을 못하고 있고, 듣는 일을 잘 못한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어른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접하는 문화의 문제겠지요.
 
‘아름다운 이야기, 다음에 또 들려주세요.’ ♪♪♫ 작은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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