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가을산 > [퍼온글] 높은 분께 결례를 저지르다 + 기사 원문

 

 

 

 

한국 사회는 마무리가 약하다. 일단 터뜨리고 나면 수습은 언제나 국민들 몫이다. 정부나 언론에서 언제 “에...또...지금부터는 만두를 드셔도 됩니다.”라고 가르쳐 준 적이 있는가. 그냥 알아서, 달리 먹을 게 없으니까, 더 중요한 이유로 맛있으니까 만두를 먹었다.


김치파동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생충 뉴스로는 보기 드물게 신문 1면 톱을 장식했던 김치 파동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잊혀졌고, 사람들은 다시 “요즘 기생충이 어디 있냐?”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치를 먹을 때 약간은 꺼림칙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 기생충알이 있다는데 정말 김치를 먹어도 되는가? 난 김치 때문에 불안해하는 사람들에게 “먹어도 된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쓴 게 바로 오늘 한겨레에 실린 ‘김치, 이제 용서해 줍시다’란 글이다.


하지만 난 결정적 실수를 했다. 그 글에서 감히 국회의원도 잘못이 있다는 식으로 얘기해 버린 것. 너무 높은 분이라 차마 존함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김치에서 기생충이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터뜨린 분이 누구인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노릇 아닌가. 물론 난 그 국회의원 나리에게 책임을 묻진 않았다. “국감에서 한 건을 터뜨리는 게 생활화한(된으로 써야 하는데) 국회의원은 그럴 수 있다 치자.”라면서, 진짜 책임은 식약청과 언론, 그리고 아무 일도 안한 우리 학회에게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의원님은 열을 받으셨다. 왜? 척박한 국민건강을 향상시키고자 불철주야 노력한 걸 ‘한건을 터뜨린다.’고 폄훼했기 때문에. 아, 나는 어쩜 그리 경솔하고 무지하며 아무 생각이 없었던가. 어찌하여 나는 정치판 욕하는 게 무슨 지식인의 첩경인 양 높으신 의원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가.


고명하신 그 의원님의 충성스런 보좌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을 때, 난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아, 내가 정말 큰 잘못을 했구나. 그래서 난 “소송을 걸려고 준비 중이니, 알아서 글 고치고 사과해라.”는 그분께 나도 모르게 “싫어요.”라고 해버렸다. “그 글만으로도 명예훼손 거리가 되는 거 아시죠?”란 질문에도 내 마음과 달리 “몰라요.”라고 해버렸으니, 난 정말 제 정신이 아니었나보다. 이제 어떡해야 할까. 천안 명물인 호도껍질을 잔뜩 싸가지고 의원님을 찾아뵈야 할까. 진정으로 반성하는 빛을 보이기 위해 연구실 캐비닛에서 5년간 썩은 반바지를 입고 가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아무튼 이번 일로 큰 교훈을 얻었다. 높은 분들은 자기의 충정을 몰라주는 사람에게는 겁나게 서운해한다는 것. 그게 아니라면, 나랏일로 바쁘신 그분이 전화를 돌리고 돌려 미천한 내 연구실까지 전화를 했겠는가. 반성하고 또 반성해 보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추신: 그 보좌관 나리도 엄청 바쁘긴 한가보다. 10시에 전화를 걸더니 “12시까지 답을 주라”고 하신다. 그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도 좀 바쁘다고 했더니 “그럼 오늘까지”라고 연장을 해준다. 그 관대함에 하마터면 “형님”이라고 할 뻔 했는데, 겨우 참았다. 오늘까지라, 그럼 밤 12시 쯤 전화걸면 되겠지요, 보좌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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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국사회] 김치, 이제 용서해 줍시다 / 서민
야!한국사회
한겨레
▲ 서민 단국대 교수·기생충학
“김치 회사 망한 거 말고 달라진 게 뭐 있어?”

지난해 10월 전국을 뜨겁게 달궜던 ‘김치 파동’을 주제로 한 기생충학회에서 만난 교수의 말이다. 말인즉 옳다. 조류독감 파동 때 죽은 사람이 장사가 안 돼서 비관자살한 닭집 주인뿐인 것처럼, 한국인의 주식인 김치에서 회충알이 몇 개 나왔다고 해서 사라졌던 회충이 다시 제철을 맞은 건 아니다. 회충은 여전히 보기 힘든, 감염률 0.05% 미만의 멸종 위기에 놓인 생물체다. 그러니 김치 파동은 별일도 아닌 게 과대 포장되어 국민들만 혼란스럽게 만든, 지극히 한국적인 해프닝에 불과했다.

김치에서 나온 회충알은 배추를 기르는 과정에서 묻어 있던 것이다. “저는 집에서 담가 먹어요”라는 말이 ‘안전한 김치’를 의미하진 않는다. 깨끗이 씻으면 되지 않느냐고? 충북대 연구팀이 배추에다 회충알을 뿌린 뒤 그게 없어지려면 도대체 얼마나 씻어야 하는지를 연구했다. 결과는 충격적이다. 물로 7번을 씻어도 8%의 회충알은 남아 있으며, 세제를 첨가한 물로 7번을 씻어야만 1% 미만이 된단다. 회충알과 세제 중 어느 것이 해로운지 생각해 볼 일이다.

더 중요한 점은 거기서 나온 기생충의 알이 사람 게 아니라는 거다. 추정이긴 하지만 돼지의 변을 비료로 쓰는 과정에서 돼지회충의 알이 묻었다는 주장이 가장 신빙성이 있다. 돼지회충 알과 사람 건 형태학적으로 동일하고, 사람 변을 비료로 쓰는 곳은 거의 없으니까. 그럼 돼지회충은 전혀 해가 없을까? 없다. 그걸 알아보려고 일본의 형제 기생충학자가 사람회충과 돼지회충의 알 50개씩을 구해서 각각 먹었는데, 사람회충 알을 먹은 형이 메스꺼움을 비롯한 각종 증상에 시달릴 때 동생은 지극히 평온하게 지냈다고 한다. 돼지회충 알은 인체에 들어가면 그냥 대변으로 나와 버린다. 김치파동 때 회충약을 먹은 분들은 그러니까 괜한 일을 한 거다.

그래도 당시 파장이 워낙 셌던 탓에 몇 달이 지난 지금도 김치를 떨떠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고, 내 지인 중 한 명은 김치 대신 꼭 깍두기를 먹는다. 우리 주식인 김치와 국민을 이간질한 주범은 누굴까. 국감에서 한 건을 터뜨리는 게 생활화한 국회의원은 그럴 수 있다 치자. 하지만 제대로 된 검증도 거치지 않고 보도자료를 돌린 식약청이나 그걸 그대로 받아 머릿기사로 실은 우리 언론의 행태는 좀 성급했다. 그 상황에서 기생충학회가 별반 한 일이 없었던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그때 이런 말을 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그건 사람에게 해가 없는 돼지 회충 알입니다. 그리고 회충알의 존재는 그 김치가 화학비료를 덜 쓴 웰빙식품임을 입증하는 것이죠. 단무지로 바꾸신 분들, 어서 돌아오세요.”

그래도 회충알의 존재가 꺼림칙하다면 명망 있는 기생충학자이자 주부 16년차인 정아무개 교수의 말을 실천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배추에 회충알이 있을 곳은 뿌리 근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뿌리를 잘라내고 김치를 담그면 되지요. 근데 우리 시어머니는 절대로 그렇게 못하게 해요. 격조가 없다나요.” 청결과 격조, 선택은 여러분의 몫이다. 아토피나 알레르기성 비염 등 최근 늘어나는 알레르기 질환이 기생충의 급감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있고, 천식에 걸린 쥐에게 기생충을 갈아만든 단백질을 투여했더니 천식 증상이 완화되었다는 연구 결과도 나온 바 있다. 우리 김치에는 회충알 몇 개로 말미암은 피해를 훨씬 능가하는 영양분이 있다. 오늘따라 생김치와 막걸리가 당긴다. 먹으러 가야겠다.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기생충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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