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도서전에서 본 中年 [06/05/07]
몇 년 전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갔을 때,나는 두 가지 큰 충격을 받았다. 하나는 근간(近刊)도 아닌 1∼2년 뒤에 나올 책들의 제목과 표지디자인이 이미 모두 완성되어 두꺼운 책자의 카탈로그로 배포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책 한 권을 만들어가면서 그때그때 제목 및 표지를 만들고,세부 컨셉트를 잡아가는 우리네 방식과 너무 달라,놀랍기도 하면서 한편 저런 미래지향적 업무방식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충격과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 점이 있었으니,그것은 해외 각 출판사 부스에서 계약을 진행하고 열심히 자사의 도서를 소개하는 출판 실무진들 중 거의 절반 정도가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에 주름살 패인 중년들이었다는 점이다. 그 중년들은 출판사의 사장도,아주 고위급의 간부들도 아니었다. 가령 랜덤하우스나 하퍼콜린스 같은 영미권 유수의 출판사를 보면,(사장도 간부도 아닌) 쉰 살 정도 되는 한 편집자가 사무실 내 조그만 공간에서 자기가 담당한 원고를 끼고 세심히 편집업무를 진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 나이에 굳이 경영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지 않아도,혹은 커다란 책상에 앉아 아래 직원들을 관리하는 사람으로서 살지 않아도,자기만의 오랜 노하우를 살려 여전히 젊은 직원들과 함께 똑같은 업무를 해나가는 것이다. 아니,업무 내용은 똑같을지라도 능숙한 편집력과 오랜 세월 쌓아온 풍부한 필자진들을 보유한 장점을 살려,더더욱 귀감이 되는 실무진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출판계의 경우 대학을 졸업하고 20대에 첫 발을 내디뎌,경력이 차츰 쌓이고 그 사이에 도태되지 않고 계속 이 직종에 발을 붙이고 있다면 30대 중반 정도가 되어 편집장이 된다. 하지만 이 역시 수많은 출판업 지망생 중에서 극히 일부일 뿐이다. 그나마 여자들은 육아 등으로 대부분 도중하차하게 되고,아슬아슬한 순간을 겨우 넘어 도중하차하지 않아도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아래로는 힘차게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의 눈초리 속에서,위로는 더 갈 데가 없는 막막함 앞에서,추진력 있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출판 창업이라는 제2의 도전장을 던질 수 있을 뿐이다.

타인의 지식창고를 건드리는 책을 만드는 직업은 몇 년 안에 승부를 낼 수 있는 직종이 아니다. 나이에 따라,경력에 따라 정해진 순서대로 승진하고,마흔 살 앞두고 도태되어 마지막 종을 치는 직업이 아니다. 머리 희끗희끗해진 지천명의 나이에도,후배들이 감히 따라오지 못하는 경륜과 인맥을 아우르며,편집장도 아닌 평범한 편집자라는 타이틀로도 얼마든지 즐겁게 살 수 있는 직업이다.


(강희재 바다출판사 편집장) = 국민일보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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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5-10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편집의 달인인 주간님이 여기저기서 그 사람은 이제 고리타분하고 반짝이지 않아서 안돼 하는 말 들었었는데 그 생각이 나네요

하늘바람 2006-05-10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지만 출판은 정말 보람있고 도전하는 분야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