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讀書의 목적 [06/04/25]
우리 선조들의 독서 목적은 과거(科擧)를 위한 것과 성현(聖賢)이 되기 위한 두 가지였는데, 과거 공부는 그리 높이 쳐주지 않았다. 성호(星湖) 이익(李瀷)이 ‘성호사설(星湖僿說)’ 인사문(人事門) ‘독서에서 구하는 것’조에서 “거자업(擧子業·과거 공부)을 하는 자는 입술이 썩고 치아가 문드러질 지경으로 책을 읽어도, 읽기를 멈추면 캄캄한 것이 소경이 희고 검은 것을 말하지만 그 차이를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비판한 것이 이를 말해 준다. 조선시대에도 과거용 참고서이자 예상문제집인 ‘초집(抄集)’이 비싼 값에 팔렸는데, 이런 행태가 혼자 있을 때도 삼가는 신독(愼獨)의 수행 자세를 지닌 선비들 눈에 마뜩찮았던 것이다.

선비들에게 독서는 성현들과 통하는 길이었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중 “고인(古人)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 못 뵈어/고인을 못 뵈어도 가던 길 앞에 있네/가던 길 앞에 있거든/아니 가고 어떨꼬”라는 시는 책 속에 성현의 길이 있다는 뜻이다. 백호(白湖) 윤휴(尹?)가 ‘독서기 서문(讀書記序)’에서 “산속 좁은 길이 잠깐 사용할 때는 길을 이루다가, 또 잠깐 사용하지 않으면 띠풀이 가득 차게 된다. 어찌 산속의 좁은 길만 그러하겠는가”라면서 “독서하지 않는 인간은 짐승과 같다”고 말한 것처럼, 독서는 인간이 되는 길이었다. 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 유배지에서 학문을 등한시하는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폐족(廢族)은 과거에 나가는 길이 기피될 뿐이지 성인(聖人)이 되는 길은 기피되지 않는다”라고 쓴 것처럼, 독서는 또한 성현이 되는 길이었다.

4월 23일은 유네스코에서 정한 ‘세계 책의 날’이다. 이달 22일부터 6월 30일까지 강원도 춘천 남이섬에서는 동화나라 개념인 ‘나미나라공화국’이 수립되고, 국제아동도서협회(IBBY) 한국위원회가 마련한 ‘제2회 세계책나라 축제’가 열린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강촌독서(江村讀書)’라는 시에 “어쩐 일로 소라 등잔 깜박이는 불빛 밑에/고기잡이 노래보다 글 읽는 소리가 많구나(底事枯蚌燈火底/漁歌也小讀聲多)”라는 모습이 강촌에서 재현되는 것이 보고 싶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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