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글샘 > 텔레비전 맞춤법 프로그램 유감...

요즘 텔레비전을 거의 보지 않는데, 어젠 우연히 맞춤법 프로그램을 보았다.

연예인들을 대상으로 맞춤법을 맞추라고 하면서 상당히 까다로운 문제들을 출제하던데...

과연, 이들은 맞춤법이 무엇인지나 알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런 희한한 맞춤법(꾀죄죄하다 같은)을 왜 묻는 것일까... 일상 생활에서 많이 쓰면서도 혼동되는 것들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밤을 새워, 희한하다. 헷갈린다. 금세, 오랜만에, 이따 보자, 백분율, 비율, 출석률, 초점... 이렇게 많이 쓰는 단어들 말이다.

세계 여러 나라(약 200개국) 중 맞춤법이란 특이한 <법>이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 그럼 그 나라들은 어떻게 문자 언어를 통일 시키고 있을까? 그들에게는 계속 다듬어져 나오는 <사전>이 전부다. 영어 맞춤법을 들어본 적 있는가? 그건 맞춤법이 아니라, 문법과 사전에 나오는 말로 충분하지 않았던가.

맞춤법이란 음성 언어의 <표준말>을 소리나는 대로 적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어법에 맞도록 표기하게 하고 있다.

영어에도 color 도 색깔이고, colour도 색깔이다. 미국에서 쓰기도 하고 영국에서 쓰기도 한다지만 엄격히 틀렸다고 볼 수는 없는 거다. 그런 걸 <지역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그야말로 맞춤법은 <그때 그때 다를> 수 있는 것이다. 시대와 공간에 따라... 절대적으로 옳다고 우길 수는 없는 그런 것. 세종대왕도 전혀 몰랐던 것. 실수 투성이인 인간이 만든 것 말이다.

표준어를 적는다는 것도 문제다. 표준어와 사투리의 사이에는 <교양있는 사람>이란 계층의 기준과, <두루 쓰는>이란 사회성의 기준과, <현대>라는 시대적 기준과, <서울말>이라는 지역의 기준이 엄밀히 적용되는 것 같다. 그러나 교양있는, 두루 쓰는, 현대, 서울의 기준이 엄밀한지 아닌지는 누구도 대답할 수 없다. 서울에 근무하는 삼성물산 성대리는 교양이 있다고 볼 수 있나? 서울은 어디까지인가. 종로만 서울이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사당동까지 서울이다. 그럼, 과천은 마냥 경기도인가? 경기도 넘버 붙인 자동차들이 아침이면 까마득하게 남태령을 넘어오는데...

한글 맞춤법은 <받침>이 있는 특이한 문자구조인 우리 언어에 독특하게 필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글 맞춤법이 <가진 자>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공공의 적 2에서 멋지게 쓰인 말이 있지 않은가. <법은 최소한이어야 한다>고...

한글 맞춤법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의미를 정확히 드러낼 수 있도록 규정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가 전자 세상에서 <안냐세염. 오랜마니네염.. 그럼... 20000 ㅃㅃ2...~~~휘리릭~~~>한다고 해서 비난할 수 없다는 거다. 그리고 구두 수선공 아저씨가 <열락처 010-$$$-****)라고 적었다고 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글 맞춤법에 맞게 적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교양>과 <지식>의 폭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교양있게 보이려는 글에서는 최대한 맞게 적어야 할 것이다. 특히 지적 재산이 될 저서에서는 엄격하게 지키는 것이 좋다. 알라딘에 오르는 글들에서도 한글 맞춤법에 틀리는 경우들이 제법 있다. 내 눈에는 그런 게 보인다. 국어 선생이 갖는 직업병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 중에 특히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분들의 글에서 맞춤법에 틀린 글자가 있으면 괜히 <알려 드리고> 싶다. 그들은 공식적으로 아이들 앞에서 교양과 지식을 가르치는 분들이니까...

정말 많은 분들이 틀리는 몇 가지만 생각나는대로 적어 보겠다.

1. '며칠, 몇 일'을 어떻게 구분할까? 정답은 무조건 <며칠>만 맞다. <몇 일>도 맞을 것 같지만, <몇 년 몇 월 며칠>이 맞다. 정 못믿으시겠다면 초등학교 2학년 수학 교과서의 달력 가르치는 부분을 참고하시길...

2. '할께요. 할께'는 틀린 표현이다. '할게요, 할게'가 맞다. 도와 줄께요, 도와 줄께. 기다릴께... 모두 틀렸다. 도와 줄게요, 도와 줄게, 기다릴게... 가 맞다.

3. 사전에 찾아보면, <삼가하다>는 말은 없다. <삼가다>만 맞다. 삼가해 주십시오는 틀렸다. 삼가 주십시오가 맞다.

4. 다르다와 틀리다는 뜻이 다르다. 서로 다른 것을 보고 <쌍둥인데도 둘은 참 틀리게 생겼죠?> 이런 말을 우린 잘 쓴다. 다른 것은 인정하는 범위이고, 틀린 것은 인정할 수 없는 범위다. 서울말과 경상도 말은 참 다르다. 그러나 둘 다 아름다운 말이다. 서울말과 경상도 말이 틀리다면, 경상도 말이나 서울말 중 하나는 죽어야 되지 않겠나?

5. <위험이 있습니다.>와 <위험이 있슴>, <위험이 있읍니다.>와 <위험이 있음>은 어떤가. '-습니다'의 소리가 나는 종결 어미는 무조건 '-습니다'로 통일. '있습니다. 먹습니다. 죽습니다...' <있읍니다>는 벌써 십육년전에 죽어버린 말이다. 하긴 이십 년 전 책에 보면 그렇게 적혀 <있읍니다.> <있습니다>로 통일되다보니, <있슴>도 이런 꼴로 통일되었다는 '유추 해석'을 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이 경우는 명사형 어미<-음>이 붙은 것이므로 <-슴>이라고 적으면 안 된다.

그 외에도 밤을 새워도 강의할 수 있지만...

그럼, 한글 맞춤법이 헷갈리면 어떻게 할까? 내 제자들은 휴대폰으로 바로 문자를 날린다. 가증스런 것들. 사전 찾아보면 될 것을... 사전을 열심히 찾아 보시라... 한글 맞춤법을 공부할 수는 없을까? 하시는 분들이 있겠지만, 참아 주시라. 고등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상)의 부록으로 한글 맞춤법이 수록되어 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시면 열어 보시라. 곧 잠이 쏟아질 테고, 눈이 초점을 잃을테니깐... 사전은 반드시 89년 이후에 편찬된 것이어야 한다. 컴퓨터를 사용하시려면, <국립국어연구소>에서 물어보시든지, <국립국어연구소> 국어사전에서 검색하시면 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맞춤법에 틀려도 사실, 공식적이지 않은 문서 또는 메일에서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맞춤법에 맞지 않더라도 뻔뻔스럽게 자꾸 적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헷갈릴 때는 빨리 사전을 찾아볼 수 있는 위치에 국어사전 한 권 쯤 준비하면 좋겠다. 국어 교사인 나로서는 <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에 힘을 써야 겠지만, 일반인들은 <작은 관심과 국어 사전>으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게 되는 분들께 꼭 권한다.

<작은 관심과 국어 사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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