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한국아동문학상> 수상 작가 박 혜 선 인터뷰


동화읽는가족
  <한국아동문학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첫 동시집 『개구리 동네 게시판』(아동문예, 2001)이 제1회 ‘연필시문학상’을 수상한 데 이어, 두 번째 동시집 『텔레비전은 무죄』(푸른책들, 2004)까지 연달아 권위 있는 아동문학상을 수상하여 그 소감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박혜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선물이 배달되었을 때의 기분이라고 할까요? 남의 집으로 가야할 물건이 잘못 배달된 건 아닐까, 내게 보내온 게 정말 맞을까? 하는 의아함 말이에요. 시를 내보일 때마다 두렵고 불안한 마음이 늘 앞섭니다. 상을 받은 기쁨보다는 그 상이 쥐어 준 책임감을 생각하며 시 쓰기에 열중하겠습니다.

동화읽는가족  텔레비전이 신세한탄을 하듯 자신을 변론하는 독특한 형식의 동시 「텔레비전은 무죄」가 표제작이 되었는데, 이 동시가 이번 동시집을 대표할 만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요? 시인으로서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박혜선  어떤 사물을 보거나 어떤 상황에 부닥쳤을 때 늘 ‘입장 바꿔 보기’를 합니다. 저의 의도된 시작 행위일 수도 있고 습관적 사고일 수도 있지요. 동시 「텔레비전은 무죄」는 ‘가족 소외의 주범이 텔레비전’이라는 뉴스를 보면서 생각해 낸 시입니다. ‘과연 그럴까?’ 이런 의문에서 완성된 시지요. 이 시집에 묶인 대다수의 시가 이런 의문에서 출발했어요.

동화읽는가족  동시집 『텔레비전은 무죄』는 지난 한 해 동안 여러 비평가들과 동료 시인들과 독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그 중에서 아동문학평론가 최명표 씨는 「옆길로 빠졌을 때 본 세상 이야기」(아동문학평론, 2005년 봄호)라는 평론에서 시인의 ‘사회적 상상력’에 대해 비중 있게 다루면서, 시인이 ‘대상을 정면에서 다루지 않고, 이른바 심미적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옆길로 빠진다. 이것을 일러 스스로 호기심이라고 겸사를 달았지만, 시인은 세계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평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정면으로 대응하는 방법이 아니라 옆길로 빠져서 구경하는 방식을 택한 까닭은 무엇인지요?

박혜선  저는 내가 사는 이 시대의 현실을 그대로 담아 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이라는 게 내가 발 딛고 있는 중심에서 늘 흘러갑니다. 중심에 있으면 한쪽으로 치우치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옆길, 귀퉁이, 언저리를 맴돌다보면 중심에서 보지 못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좀 엉뚱한 이야기 같지만 아이들의 마음 또한 그렇지요. 교실에 있으면서도 교문 밖 문방구에 마음이 가 있고, 집을 향해 가면서도 옆길로 빠져 보고 싶은, 저는 그런 ‘옆길로 빠져 보기’를 ‘주변에 관심 갖기’로 이름 붙이고 싶습니다. 그 곳에는 소외된 존재들이 살아가는 또다른 현실이 있으니까요.

동화읽는가족  표제작 「텔레비전은 무죄」를 비롯하여 「뉴스는 엉터리」, 「기억 상실증」, 「장래 희망」 등 사회 현실을 직설적으로 비판하고 야유한 시들이 눈에 띕니다. 이런 방식은 독자들에게 답답한 사회 현실에 대한 심정적인 체증을 단숨에 속시원하게 해소하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하지만, 때로는 공허함을 안겨 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들기도 합니다. 시인으로서 이러한 시들을 내보인 특별한 의도가 있었는지요?

박혜선  앞에서도 말했듯이 ‘입장 바꿔 보기’는 제 시 쓰기의 주된 발상법입니다. 그래서인지 때론 비꼬아 뒤집고, 삐딱한 시선으로 보고, 직설적으로 말하기도 하지요. 맞습니다. 때론 사회 현실을 담아 낸 시들이 목소리만 크고 울림은 공허한 시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저는 앞으로도 늘 사회 현실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을 작정입니다. 아직 서툰 목소리지만 그 목소리가 진실로 통한다면 시 쓰는 보람도 크리라 생각합니다.

동화읽는가족  박혜선 시인은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급식판을 앞에 놓고」, 「하는 김에」, 「전화기는 엄마를 얌전하게 해」와 같은 시들에 나타난 엄마의 적나라한 모습들은 엄마건 아이건 상관 없이 모든 독자들에게 미소를 짓게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짓궂은 질문입니다만, 시인 또한 이 엄마와 많이 닮은 모습을 지니고 있지는 않은지요?

박혜선  물어 보았지요, 여섯 살 제 딸아이에게. 제 딸아이는 재미있는 엄마라고 하더군요. 만날 엄마랑 놀고 싶다고 하는데 엄마가 재미있어서 놀고 싶은지, 놀고 싶어서 엄마가 재미있다고 하는 건지는 모르겠어요. 저 스스로는 시 속에 나오는 ‘엄마’보다는 오히려 시 속의 ‘아이들’ 쪽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합니다. 좀 엉뚱한 아이 있잖아요. 그래서인지 딸아이에게 인기 좋은 엄마, 동네 아이들에겐 재미있는 아줌마로 통하곤 하지요.

동화읽는가족  수 년 전에 『붕어빵 아저씨 결석하다』(푸른책들, 2002)라는 동인시집을 펴내신 적이 있는데, 이번 문학상 수상을 누구보다도 기뻐해 준 분들이 바로 <초록손가락> 동인들일 것 같아요. 함께 동인 활동을 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참 궁금합니다.

박혜선  ‘냉정함’이요. 저는 제 시에 대한 냉정함이 없습니다. 밤새 쓴 시 한 줄이 아까워 버리지 못하고 그것도 못미더워 이 말 저 말 덧붙이곤 하지요. 나의 생각과 의도를 독자들도 나만큼 알고 이해하겠지? 이런 제게 동인들은 냉정한 칼날을 들이대는 역할을 합니다. 그 상처는 깊고 오래 가지만 스스로 치유할 수 있도록 곁에서 힘이 되어 주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치열함으로 이끌어 주는, 무서우면서도 고마운 동지들입니다.

동화읽는가족  새로운 동시를 늘 기다리는 독자의 입장에서, 앞으로 어떤 동시를 쓰고 싶은지 알고 싶어요. 그리고 좋은 동시집을 좀 추천해 주세요.

박혜선  요즘 저는 한 아이의 상처와 성장을 주제로 이야기시를 쓰고 있어요. 독자들에게 어떻게 내보낼지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쓰는 동안 저는 그 아이 때문에 마음이 아플 때가 많습니다. 그 아이 때문에 웃기도 잘 합니다.
제 시보다 새 학기를 맞는 어린이 독자들에게 최윤정 동시집 『우리 반 김민수』(문원, 2004)를 꼭 추천해 주고 싶네요. 이 시를 읽으면서 많은 독자들은 ‘어? 시 속에 내가 있네.’라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아이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느껴지는 이 동시집을 펼치는 순간, 새 학기에 좋은 친구를 만났을 때처럼 신나는 설렘이 다가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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