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내용은 알차지고 종류는 많아지고 [06/01/11]
시장 주춤해도 출판 종 수 늘어... '대박' 없어도 장수 서적 수두룩

"운세와 관련한 서적의 판매는 꾸준합니다. 크게 줄지도 늘지도 않았습니다." 인터넷 서점 예스24의 한 관계자는 운세 관련 출판 시장은 '조용'하다고 말했다. 연초에 판매량이 다소 증가하기는 하지만 1년 전체로 보면 판매량의 변화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이다.

교보문고의 판매 데이터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2003년 5만9,551권에서 2004년 5만7,238권으로 감소했다가 지난해 5만8,870권으로 소폭 증가했지만 2003년에 비하면 오히려 줄어든 수치다. 이와 관련, 출판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역학 관련 서적은 IMF 외환위기를 고비로 크게 위축됐다"며 인터넷 역학 사이트의 영향 등으로 인해 갈수록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출간되는 책의 조수는 매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2003년 164종에서 2004년 185종으로 12.8% 불어났고 지난해에는 193종이 출간돼 2003년에 비해 17.7% 증가했다. 시장은 정체돼 있지만 상품의 수는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순적인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뭘까. 우선 운세를 보는 방법이 전에 비해 다양해졌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과거엔 운세서적이라고 하면 사주, 토정비결, 풍수지리 등 전통적인 방법이 전부였다. 더욱이 장묘문화의 변화로 풍수지리 관련 서적의 인기도 시들해졌다. 하지만 5~6년 전부터 서양의 타로점, 점성학 등이 도입되면서 관련 서적의 스펙트럼이 크게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타로점은 한문이 많아 한글세대에게 낯선 전통 운세풀이에 비해 현대적인 느낌이 강한데다 다양한 그림 등 대중적인 요소가 강하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타로점 관련 서적을 많이 낸 출판사인 물병자리의 류희남 사장은 "2000년 무렵 뉴에이지와 관련한 서적을 내면서 자연스럽게 타로점 서적을 출판하기 시작했다"며 "호기심 많고 서양의 판타지 문화에 관심이 높은 젊은층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제품의 수명이 긴 것도 운세 서적의 매력이다. 10년 이상 팔리는 책이 적지 않을 정도로 오랫동안 팔리기 때문에 베스트셀러를 내긴 어려워도 장기적으로 수지를 맞출 수 있다. 교보문고의 이 분야 베스트셀러 목록에서도 95년 출간된 동학사의 <왕초보 사주학>, 2001년 나온 물병자리의 <타로 카드 길잡이> 등이 당당히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운세 서적의 수명이 길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독자들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얼렁뚱땅 만든 책들은 철저하게 외면 받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비용과 품이 더 들더라도 제대로 된 책을 만들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자리잡고 있다. 동학사의 유재영 사장은 "독자들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선 검증 받은 저자의 발굴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며 "명문대 출신의 고학력 저자나 소설가, 한의사 등 전문직에 종사하는 저자들을 발굴해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을 시도해 젊은층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출판가의 고민은 여전히 깊다. 우선 수요층이 한정돼 있다. 처음 호기심으로 책을 구매한 독자라도 내용이 쉽지 않기 때문에 진지하게 '공부'하려는 독자를 제외하면 반복구매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더욱이 인터넷이나 모바일 컨텐츠 등 새로운 매체의 등장으로 시장이 커질 가능성도 줄어들었다.

독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져 지면을 컬러로 제작하거나 수작업 요소를 첨가하는 등 초기 투자비용이 상승한 것도 부담이다. 대부분 규모가 영세한 출판계의 현실을 감안하면 어려움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한두 권을 내곤 포기한 신규 출판사가 한둘이 아니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대형 출판사도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적극적이지 않은 형편이다. 하지만 희망이 없지 않다. 한글 세대에 속하는 젊고 재능 있는 저자와 역자가 많이 나오면 다시 한 번 대중 속으로 깊이 파고 들 수 있다고 관계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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