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일구는 사람들] 6. 출판사 사장 45명 모임 ‘책을 만드는 사람들’

책만드는 사람들은 생각을 많이 한다. 출판사 사장이 새 책을 만들면서 “어떻게 하면 잘 팔릴까”란 고민은 너무나 당연하다. 또 있다. 다른 제조업체 사장과 달리 그들은 “이 책 출판이 가치가 있나, 없나”, “독자에 좇아가야 하나, 이끌어 가야 하나” 등 가치와 의미까지 따진다. 책이 그저 이쑤시개 같은 ‘상품’만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지난 4일 오후 5시, 서울 서교동 한국출판인회의 회관 지하 회의실. 출판사 사장 20여명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사장스럽지 않은’ 허름한 복장으로 서로 덕담을 나누며 분주한 이들은 ‘책을 만드는 사람들’(책만사)의 회원들. 책만사는 우리 출판계의 핵심을 이루는 출판사 사장 45명의 모임이다. 30~40대 출판인으로서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매월 모임을 가져온 지 12년째. 이날 모임은 144번째로 12년 동안 한번도 거르지 않고 지속돼온 만남이다.

책만사는 ‘출판이 곧 운동’이던 80년대를 지나면서 시대변화에 따라 자연스레 만들어졌다. 창립회원인 한철희 사장(돌베개)은 “사회과학출판사들을 중심으로 전문성 높은 출판인이 되기 위한 연구모임을 시작한 게 책만사의 뿌리”라며 “이제는 다양한 분야의 능력있는 출판사들이 골고루 모여 연구·토론해 무척 뿌듯하다”고 밝혔다.

책만사는 매월 모임을 통해 스스로의 힘과 능력, 나아가 한국 출판의 역량을 키워오고 있다. 전문가를 초빙해 교양강의를 듣는가 하면, 출판기획 사례나 회계관리, 저작권이나 마케팅, 국내외 출판시장 트렌드 등을 토론한다. 조미숙 총무간사(창조문화 사장)는 “전문분야의 필자나 시장전망 등의 정보획득이라는 현실적 장점 외에 서로 모여 콘텐츠를 공유하고 시대성을 고민하다 보면 긍정적인 자극과 힘을 주고받게 된다”고 책만사의 장점을 강조한다. 대표간사인 장인용 사장(지호)은 “정관 등 엄격한 규율에 따라 회원들의 자발적 봉사정신으로 굴러가는 모임”이라며 “책만사라는 이름을 내세운 대외활동은 자제하지만 한국 출판문화를 위해 회원 각자는 개별적으로 곳곳에서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책만사는 매년 하는 ‘올해의 책’ 선정 외에 지난해는 ‘책만사 문고’ 만들기에 나섰다. 지난해 9월 백령도 초·중·고교와 군부대에 2,000권의 책을 기증한 것. 이젠 1년에 단 한 곳이더라도 문화소외 지역에 대한 책만사 차원의 활동이 추진될 예정이다. 그러나 책만사는 그 역량에 비해 대외활동을 많이 자제해왔다. 기존 출판 단체들이 있는 상황에서 정치적 역할을 축소하는 것은 책만사의 장점이자 단점. 근래에는 안팎에서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한성봉 기획간사(동아시아 사장), 양상호 총무간사(해바라기 사장)는 “사실 한국출판의 흐름을 만드는데 책만사는 큰 역할을 할 수 있고, 일부 회원은 개인적으로 그런 역할을 한다”며 “이제 연륜도 있는 만큼 책만사 이름으로 출판문화나 사회 발전을 위한 대외적 역할을 찾자는 분위기도 있다”고 입을 모은다.

건전한 역량을 펼쳐보이자는 분위기 속에 책만사 모임에서는 새해 전망, 각오 등 출판계 전반에 대한 풍성한 이야기를 꽃피웠다. 회원들은 올해도 출판시장이 부익부빈익빈의 양극화 심화 등 만만치 않을 것으로 내다본다. 이주현 기획간사(예문 사장)는 “불황에 대한 출판계의 자성과 노력도 중요하다”며 “독자들에게 더 다가가기 위한 전문화, 세분화, 다양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곽미순 기획간사(한울림 사장)는 “중복출판 등 제살 깎아 먹기식의 출판계 문제점들도 고쳐나가야 한다”며 “올해는 교육전문 출판사로서 기획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전한다.

결코 밝지 않은 시장상황이지만 책만사 회원들은 헤어지면서 하나같이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면서도 책은 사치품이 아니라 생필품이고, 책 읽기가 주는 엄청난 효과를 거듭 강조하며 올해는 “제발, 책 좀 더 많이 읽자”고 외친다.


(경향신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