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신춘문예]동화 당선작 ‘착한 어린이 이동영’ - 강이경


그림 김유대
선생님이 상장을 들고 들어오셨다.

“지난번 교내 글짓기대회 상이야. 지금부터 부르는 사람은 앞으로 나와. 김병수!”

김병수가 나가고, 그 다음엔 이보람이 나갔다. 나는 열심히 박수를 쳐 주었다. 짝, 보람이가 자리로 돌아오자, 내가 말했다.

“이보람, 너 상 되게 많이 받는다!”



 

“뭐 이 정도쯤이야……. 왜? 너도 상 받고 싶어?”

보람이가 날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튼튼하기만 하면 돼. 엄마가 그렇게 말했어.”

보람이가 뭐라고 말하려고 할 때, 선생님이 목청을 높이셨다.

“모두들 주말 즐겁게 보내라. 참, 월요일에는 그림그리기대회가 있으니까 그림 그릴 준비 해 와.”

“네!” 하고 아이들이 대답했다.

나는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아빠와 함께 병원으로 갔다. 아빠는 먹을 걸 사러 가시고, 나 혼자 엘리베이터를 탔다. “땡!”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병실로 달려갔다.

“그동안 할머니 말씀 잘 들었어?”

엄마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다. 나는 엄마 품에 안긴 채 고개만 끄덕였다. 그때 문이 열리더니 아저씨 한 분과 남자아이 한 명이 들어왔다. 아이는 곧장 아주머니께 달려가 봉투에서 뭔가를 꺼냈다.

“엄마, 이거!”

“어머, 또 상 받았구나! 우리 아들 덕분에 엄마 병이 빨리 낫겠는걸.”

아주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러자 엄마가 끼어드셨다.

“아줌마는 참 좋으시겠어요. 아들이 상장도 받아 오고. 어디 저도 좀 보여 주세요.”

‘치, 튼튼하기만 하면 된다고 해 놓고서…. 순 거짓말쟁이….’

나는 엄마 품에서 빠져나왔다. 아빠가 먹을 걸 잔뜩 사가지고 오셨지만, 하나도 맛이 없었다.

월요일 3교시, 모두들 그림을 그리려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나는 도무지 무얼 그려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보람, 넌 뭐 그릴 거야?”

“난 나무 그릴 거야. 넌?”

“몰라.”

내가 말하자, 보람이가 얼굴을 찡그렸다. 보람이가 나무 두 그루를 그렸을 때, 내가 말했다.

“나도 나무 그릴래.”

“안 돼. 넌 딴 거 그려!”

보람이는 성질을 내며 저쪽으로 휙 가 버렸다.

‘나무가 다 자기 건가 뭐. 가다가 팍 넘어져라!’

보람이는 넘어지기는커녕 어느새 자리를 잡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보람이에게 갔다.

“이보람, 나 좀 도와줘. 도와주면 너 대신 청소당번 할게.”

순간, 보람이 눈이 반짝였다. 나는 보람이가 마음을 바꿀까 봐 겁이 났다.

“그림만 그려 주면 색칠은 내가 할게.”

보람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쓱쓱 하더니 나무들을 멋지게 그려 주었다.

“색칠은 저기 가서 해. 내 옆에서 하지 말고.”

나는 신이 나서 도화지를 들고 멀리 갔다. 색칠을 하고 나니 나무들이 제법 그럴 듯했다. 색칠이 삐죽삐죽 밖으로 나가긴 했지만, 그 정도면 훌륭했다. 그때 그림은 멀리서 보는 거라던 말이 생각났다. 나는 그림을 세워 두고 뒤를 돌아 몇 걸음 걸어갔다.

그림을 보려고 기분 좋게 뒤를 돌았을 때였다. 도화지가 바람에 날려 저만큼 가고 있었다.

“안 돼!”

나는 도화지를 잡으려고 냅다 뛰었다. 도화지를 거의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만 도화지를 밟고 만 것이다. 나는 천천히 발을 들었다. 나무 그림 위에 운동화 자국이 쿡 찍혀 있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저녁에 밥을 먹는데 입맛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푹 뒤집어썼다.

‘난 수학도 못하고, 그림도 못 그리고, 글짓기도 못하고, 달리기도 항상 4등밖에 못 해. 그리고 운도 없어! 죽을 때까지 상장 한 번 못 받을 거야…….’

가슴이 점점 더 답답해졌다. 나는 이불을 휙 젖혔다. 어둠 속에서 모니터 전원 불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나는 벌떡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았다.

다음날, 학교가 끝나자마자 컴퓨터 게임을 하려고 우리 반 민수와 함께 집으로 왔다.

“우리 손자 인자 오나? 친구도 왔네. 어서 온나.”

할머니 목소리가 다른 날하고 달랐다. 할머니가 웃으며 나에게 눈을 흘기셨다.

“아이고, 니도 참, 상장을 탔시마 말을 해야쟤, 그래 처박아 두면 우야노. 상장은 이래 액자에 넣어가 벽에 쫙 걸어 놓는 기라.”

할머니 뒤로 상장이 죽 걸려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아 버렸다.

“전국 어린이 미술대회 우수상, 교내 글짓기대회 최우수상, 달리기 일등상, 착한 어린이상……. 상을 이래 마이 받고도 말을 안 하다이, 니가 속이 보통 깊은 아가 아인 기라…….”

할머니가 말씀하시는 동안, 나는 고개를 돌려 민수를 보았다. 민수 얼굴이 굳어 있었다. 나는 민수를 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민수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저게 상이냐? 가짜로 인쇄한 거지! 하하하하…….”

민수가 겨우 웃음을 그쳤을 때, 내가 말했다.

“너,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나는 민수에게 내가 가장 아끼는 캐릭터 카드를 주었다.

다음날 아침, 교실에 들어서자, 누군가가 큰소리로 말했다.

“왕 천재님 오셨다!”

“와하하하….”

아이들이 책상을 두드리며 웃기 시작했다. 나는 민수를 노려보았다. 민수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고개를 돌렸다. 그때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좀 조용히 하자. 너희가 만날 이렇게 떠드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잖아. 지난 토요일에 교장 선생님이 일기장 걷으라고 하셨는데 까맣게 잊어버렸어. 그러니까 내일 일기장 꼭 가져와. 오늘 일기도 꼭 쓰고.”

그 날 저녁, 일기를 쓰는데 눈물이 뚝 떨어졌다.

토요일날 나는 엄마한테 가지 않았다. 아빠 차가 멀리 사라질 때는 눈물이 나려고 했다. 그 후 일주일 동안 전화로 엄마 목소리만 들었다. 그러니까 엄마가 더 보고 싶었다.

오늘은 엄마한테 가려고 학교가 끝나기만 기다렸다. 드디어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자, 이름 부르는 사람은 앞으로 나와.”

또 상장인가 보았다. 무슨 상장인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선생님이 이름을 부르셨다.

“이도영!”

아이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어리둥절했다. 보람이가 내 어깨를 툭 쳤다. 나는 쭈뼛쭈뼛 앞으로 나갔다. 선생님은 큰소리로 상장을 읽으셨다.

“상장. 최우수상. 2학년 1반 이도영. 위 어린이는 꾸준히 일기를 써서 타의 모범이 되므로 이에 상장을 줌. 양촌초등학교…….”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상장을 다 읽고 나서 일기장을 펼치셨다.

“아이들한테 이 일기 좀 읽어 줄 수 있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엄마는 아프다. 그래서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계신다. 수술도 받으셨다. 내가 일을 하나도 안 도와드려서 엄마 허리가 아픈 거라고 할머니가 그러셨다. 다 나 때문이다. 그런데 엄마 옆에 있는 아주머니는 아들이 상을 받아서 빨리 나을 것 같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도 엄마가 빨리 나으라고 컴퓨터로 상장을 만들었다. 그런데 민수한테 들켰다. 부끄럽고 화도 났다. 그래서 엄마가 보고 싶은데도 안 갔다.

하지만 그까짓 상장이 없어도 이번 토요일에는 엄마한테 갈 거다. 상장을 못 받는 대신 엄마를 많이 도와드리겠다고 약속할 거다. 옷도 아무 데나 벗어 놓지 않고, 가방도 항상 제자리에 놓겠다고 약속할 거다. 그러면 엄마가 기분이 좋아져서 빨리 나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보고 싶다.

엄마, 사랑해요.

나는 고개를 들었다.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보람이가 박수를 쳤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났다. 박수 소리는 점점 커졌다. 나도 모르게 꾸벅 절을 했다.

“수업 끝! 월요일날 만나자.”

선생님이 웃으며 큰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는 상장을 안고 집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자꾸 웃음이 났다. 날개가 달린 것 같았다.

강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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