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만에 친한 이 셋이 모이기로 했다.

스무살에 만나 아직까지 모임을 갖는 친루라기보다 언니들이고 친구같은 언니들이다.

 늘 함께 모이려고하고 늘 서로 생각한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그렇게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게

타인의 삶이겠지. 나는 모임에 나갈 수 없었다. 나는 나름대로 절박했고 그 이유도 이야기했다.

나는 울고 싶었고 지푸라기같았다.

그냥 엄마 아빠 처럼 누구보다 나를생각해주는 이들이라 믿었다. 그러나 아니었나 보다

그들은 화를 냈다 내가 모임에 나가지 않은게 화가 나서 며칠재 전화를 하지 않는다.

내가 전화하면 말할 것이다. 왜 그렇게 사냐고.

내가 걱정되서가 아니라 모임에 안나오는게 화가 나서 내 걱정도 내 안부도 어느 하나 들을 필요없고

궁금도 안한 게다.

나는 그들의 전화목소리에 반가워 눈물짓던 내 모습이 생각나 쓰린 웃음을 흘렸다.

이제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서고 먼저 마무리 짓고 포장하는것에 신물이 난다.

친구란 그런 사이가 아니겠지만 서로 공유하는게 적어지면 이해도 준다

만나는 횟수가 적어지면 이해받는 횟수는 반으로 준다 정말 만나고 싶은데 차마 그럴 수 없는 상황도 만나지 못해 이해 받지 못한다.

그리고 그렇게 그렇게 멀어져 간다.

그렇게 그렇게 모두들 자신의 상황이 최악이라고 생각한다.

돈이 없지만 나왔을 테고 아기가 둘이라 힘든데도 나왔을 테고 몸이 안좋아도 보고 싶어 나왔을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왔는데 나오지 못한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건 당연한건가?

살아보지 않은 한 타인의 삶은 이해 할 수없고 서로가 영원이 타인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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