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사 1 - 한국인의 역사적 전개 한국경제사 1
이영훈 지음 / 일조각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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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들은 지적 공백상태에서 서구의 학문이나 마르크스주의를 수입하였다. 지적으로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역사적 경험 자체가 빈약하고 단순하였다... 이같은 현실적 제약에 눌려 남한의 역사학자들은 알게 모르게 인간 사회의 역사를 계급투쟁의 과정으로 그린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이 정립한 한국사상 韓國史像에 공감하거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_ 이영훈, <한국경제사 1>, p24


  이영훈(李榮薰, 1951 ~)의 <한국경제사 1 : 한국인의 역사적 전개>는 저자 자신이 구분한 4개 시대 중 제1시대(기원전 3세기 ~ 기원후 7세기), 제2시대(8~14세기), 제3시대(15~19세기)의 3개 시대를 대상으로 하는데, 이 시기의 변곡점들은 고전 출현, 삼국통일, 조선건국과 일본에 의한 강점(저자에 따르면 일본에 의한 근대문명 이식)이다. 한국경제사지만 이 책의 주된 분석 대상은 조선시대이며, <한국경제사 1>에서의 초점 중 하나는 노비제 국가 조선이다.


 새로운 연구는 14~17세기가 한국사에 있어서 노비제의 전성기임을 명확히 하였다. 그 이전의 삼국, 통일신라, 고려 시대에 노비의 인구 비중은 그리 크지 않으며, 아무래도 10% 미만이었다. 그에 비해 15~17세기의 노비는 전체 인구의 30~40%에 달하였다. 그리고 노비의 일부분은 세계사적으로 노예의 범주에 속하였다. 노비 인구의 팽창은 생산자 대중에 가해진 인격적 예속이 심화되었음을 의미한다. _ 이영훈, <한국경제사 1>, p26


 저자는 15세기의 시대 변화에 주목한다. 앞선 시대인 고려시대 이전 사회의 특성이 공동체 중심 사회라면,  조선시대는 신분제 사회로 변화했고 그 과정에서 높은 조세(역)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많은 이들이 노비로 전락하면서 시대적 단절이 야기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15세기는 커다란 전환기였다. 토지가 개인의 재산으로 바뀜에 따라 사회가 신분관계로 분열하였다. 그 이전의 신라~고려 시대는 농민, 수공업자의 생산활동, 국왕/귀족의 수조 收租활동, 사원을 중심으로 한 종교활동에 이르기까지 공동체에 기반을 둔 사회였다. 왕도에 집결한 귀족, 관료, 중앙군의 공동체가 지방의 군현공동체를 지배하는 체제였다. 그 공동체사회가 15세기에 이르러 각 사람이 양반, 상민, 노비라는 신분으로 구분되고 대립하는 신분제사회로 바뀌었다. 그 과정에서, 앞서 강조한 대로 인구의 13~40%가 노비로 떨어졌다. _ 이영훈, <한국경제사 1>, p47


 그렇다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단절을 가져온 계기는 무엇인가. 저자는 '정호(丁號)'에서 그 차이를 찾는데, 고려시대의 정호 제도가 토지와 인구에 대한 역(役)이 부과되었다면, 조선시대의 역은 오로지 인구에 대한 부과라는 점에서 일종의 퇴행이 일어났다고 파악한다. 


 고려의 정호는 토지와 인구의 구조적 결합이었다. 그에 비해 15세기 초의 호는 토지와 무관한 순수한 인적 구성이었다. 전술한 대로 조선왕조는 양전을 행함에 있어서 토지를 5결의 규격으로 구획하고 거기에 천자문으로 정호 丁號를 달았다. 그 과정에서 8결 또는 17결을 표준적 규모로 했던 고려의 정호가 크게 해체되었다. _ 이영훈, <한국경제사 1>, p348


 1468년, 보법을 시행한 지 4년 만에 세조가 사망하였다. 이후 양반관료들은 세조의 개혁을 하나씩 취소하거나 수정해 갔다 조선왕조의 지배체제는 양반관료의 이해관계를 각인하는 형태로 변질되어 갔다. 1471년 토지 5결을 1정으로 간주하는 보법의 가장 중요한 원리가 취소되었다. 이로써 토지와 인구의 구조적 결합으로서 정호를 기초로 했던 고려왕조의 백성 지배체제가 최종적으로 해체되었다. 조선왕조는 개별 호에 대해 호가 보유한 토지와 무관하게 호의 인정 수를 기준으로 군인을 선발하는 순수 인신지배체제로 전환하였다. _ 이영훈, <한국경제사 1>, p356


 토지와 인구에 대한 역 부과가 아닌 인구에 대한 역 부과가 극심한 신분의 양극화를 가져온 이유는 무엇일까. 토지를 고려하지 않은 역 부과는 대규모 토지, 농장을 소유한 계층에게 상대적으로 세부담을 경감시켜주었던 반면, 토지를 갖지 못한 이들에게는 과도한 부담을 안겨주게 된다. 특히, 역성(易姓)혁명과 계유정난(癸酉靖難, 1453)과 같은 정치사건은 세조 이후 지방의 사림(士林)의 세력이 커지는 계기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양민들의 몰락이 가속화되었다. 


 중앙과 지방의 인적 교류는 왕조의 교체기를 맞아 더욱 활발해졌다. 역성혁명과 뒤이은 정치적 격변은 양반관료로서 실세한 많은 사람들을 농촌으로 내몰았다. 그들은 처변 妻邊 등의 다양한 연고를 좇아 멀리 경상도와 전라도에까지 진출하였다. 그들은 그 지역의 강세한 지방세력을 피해 주로 속현이나 향/부곡에 정착하였다. 그렇게 그 모습을 드러낸 농촌사회의 새로운 지배세력을 가리켜 보통 품관 品官이라 하였다... 세조 연간에 군대 편성에서 진관체제 鎭管體制가 성립함에 따라 중앙군의 위상이 격하되었다. 한성은 더 이상 고려의 개경과 같은 지배세력의 공동체가 아니었다. _ 이영훈, <한국경제사 1>, p367

 

  저자는 이러한 논의를 조선시대 초기로부터 한국사 전반으로 확장시켜 일본 강점 시대 이전 사회를 전근대적 노예사회로 규정한다. 그리고, 이는 우리나라 뉴라이트 사관의 주요 내용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주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까. 다른 실증적 자료에 의한 반론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에 대한 반론은 <한국경제사 1>내에서 찾을 수 있다. 고려시대 이전 '정호제도'를 토지와 인신에 대한 역부과임을 저자가 밝히고, 이것이 조선시대와 앞선 시대의 다른 점이라고 언급했음에도 한국사회에서 토지지배로 가지 않았다는 설명은 무엇인가. 만약 이것이 온전한 토지에 대한 과세만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오늘날에도 토지와 건물에 과세되는 재산세와 인구에 대해 과세되는 주민세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선뜻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이렇게 토지지배와 무관한 인신지배는 이전의 왕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요컨대 한국사에서 지배계급의 생산자 대중에 대한 지배체제가 인신지배에서 토지지배로 이행한 적은 없었다. 마찬가지로 생산자 대중이 노예에서 농노로 진화한 적도 없었다. 오히려 역사의 진행은 14세기 이후 17세기까지 인격적 예속이 강화되는 역의 추세였다. _ 이영훈, <한국경제사 1>, p26


 다른 한편으로 저자는 조선시대를 노예제 사회로 규정하기 어렵다는 논지를 함께 제기한다. 납공노비를 노예로 볼 수 있는가하는 문제와 노예제 생산양식이 과연 지배적 생산양식인가 하는 물음을 통해 저자는 노예제로 단정할 수만은 없다는 점도 함께 제기한다.


 조선시대가 되어 전체 사회구성에 있어서 노예제 범주가 대폭 확장했음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조선시대의 노비 가운데는 주인가와 떨어져 자신의 가족과 토지를 보유한 납공노비의 범주가 있었다. 납공노비의 토지는 법적으로 그들의 소유였다. 납공노비는 그들의 토지에 부과된 조세와 공물을 조선왕조에 납부하였다. 그에 관한 한 납공노비는 일반 양인농민과 마찬가지로 공민이었다. _ 이영훈, <한국경제사 1>, p388


 15~17세기 조선시대 노예제 생산양식인 가작 家作농업이 동시대의 지배적 생산양식이었을까. 이 같은 가설을 논박하기는 어렵지 않다. 동시대의 가장 중요한 생산양식은 조선왕조와 전부 佃夫와의 관계였다. 국가가 전국의 토지를 국전 國田으로 지배하고 일반 백성이 그 토지를 차경하면서 조세와 공물을 납부하는 관계야말로 동시대의 가장 규정적인 생산관계를 이루었다.  _ 이영훈, <한국경제사 1>, p389


 <한국경제사 1>에서는  <수량경제사로 다시 본 조선 후기>에서 제기된 여러 문제들에 대한 논의가 보다 넓고 깊게 이루어진다. 좌파인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 역사철학의 틀을 통해 극우 역사사상인 뉴라이트 역사관이 나오는 상황이 다소 역설적으로 보여지기도 하지만, 역사사료에 충실하고자 한 실증분석은 책이 갖는 장점이라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제한적인 데이터에 대한 좁고 한정적인 해석은 경계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예를 들어, 세조 시대 이후 향촌에 정착한 양반들의 움직임을 단순하게 반(反)도시화, 근대화에 역행되는 움직임으로만 볼 수 있을까. 조카를 죽이고 숙부가 왕이 된 사건이 갖는 정치적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이들 사건은 지방 귀족에 의한 주민 착취의 의미를 결코 넘지 못할 것이다. 그런 부분에 대한 한계는 다른 자료를 통해 보완해 나가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16세기 후반이면 농촌사회에서 이른바 사족 士族으로 불리는 양반신분의 범주가 뚜력하게 대두하였다. 그렇게 양인의 범주로부터 양반신분이 분리되면서 양역을 부담하는 일반 양인을 상민 常民으로 천시하는 신분감각이 발달하였다. 요컨대 조선왕조의 신분제는 초기의 양천제에서 점차 양반-상민의 반상제 班常制로 바뀌어 갔다 - P359

조선왕조는 소규모 가족경영을 지배체제의 기초로 삼은 농노제 내지 공납제 국가였다. 조선왕조의 지배세력으로서 양반관료는 대규모 토지와 노비를 소유하였다. 조선왕조는 양반관료와 대립하면서 결탁하였다. 그 같은 지배연합은 토지에 대해서는 소유자가 누구인지 묻지 않은 몰인격적 지배체제를, 인구에 대해서는 공적 예속의 양인과 사적 예속의 노비를 구분하는 지배체제를 창출하였다. - P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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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연 인천의료원 원장은 ‘재난 자본주의‘라는 표현을 썼다. "코로나19 환자를 보는 동안에는 손실보상금이 나와서 그때는 지방의료원의 재정도 안정적이었다. 시민들 사이에서 존재감도 커졌으니 오랫동안 외면당했던 한국의 공공의료가 성장하겠구나, 기대감을 품었다.
천문학적으로 풀린 정부 예산 대부분이 민간병원으로 가서 우리 의사와 간호사들을 빼가는 데 쓰일 줄은 몰랐다."  - P13

역설적 상황이다. 공공병원에 요구되는 시대적 과제는 점점 무거워지는 데 반해 지방의료원들은 경영난과 의료진 이탈 등 좀처럼 출구를 찾기 어려운 수렁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가뜩이나 취약했던 한국의 공공의료 기반도 나날이 침식되고 있다. - P15

한국 보건의료가 민간병원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는 것, 정말 맞는 얘기다. 농촌, 시골, 지방 소도시에도 다 민간병원이 들어가 있다. 공공병원인 지방의료원은 전국 통틀어 35개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지방 소멸이 심화되면서 지역에서 민간의료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게 돼버렸다. 심폐소생을 해서도 더이상 살아나기 힘든 지경이다.  - P18

우선은 현 정부의 국정 철학이 공공의료 확대와 배치되는 측면이 있다. 보건의료에 대해서는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되고, 기획재정부의 경제 논리에서도 어느 정도 보호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공의료 강화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공공의료기금‘ 신설을 제안하고 싶다. - P19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는 백서에서, 이명박 정부 초기 블랙리스트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인물로 유인촌 문체부 장관 후보자를 지목한다. 총 10권(본책 4권, 부록 6권)에 유 후보자 이름만 총 104회 등장한다. 유후보자는 이명박 정부 초대 문체부 장관이었고, 최장수 장관 기록(3년)을 세우고퇴임했다가 윤석열 정부에서 다시 문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 P22

 김학의 사건 등 검찰의 권한남용에 대한 공수처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이게 지금 사실관계가 다 맞다면, 또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았다면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똑같은 범죄를 저질렀는데 권력기관에 있는 사람은 처벌을 안 받는다, 그것은 법 앞의 평등원칙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법의 지배 원리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헌법 질서 상 허용되지 않는다. 공수처의 의의도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 P25

뉴스 유통 플랫폼인 포털사이트도 본격적으로 도마 위에 올라왔다. 5월12일국민의힘은 정부가 포털의 기사 배열 기준을 들여다보고 개입할 수 있는 법안을 발의했다. 방통위는 9월25일 네이버 사실 조사‘에 들어갔다. 지난 7월5일부터 실시해온 네이버 뉴스 서비스 실태점검 결과 언론사 제휴와 관련해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사항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방송·신문·인터넷 뉴스 그리고 포털사이트까지, 임기 2년 차 윤석열 정부의 ‘언론 장악 의혹‘ 타임라인이 숨 가쁘게 전개되고 있다. - P31

부동산 PF는 한국경제의 핵심뇌관으로 지목받고 있다. 저금리 환경에서 시작된 부동산 PF가 고금리 환경에서 부실화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한국에서 PF를동원한 부동산 개발사업은 크게 3단계자금이 동원된다. 브리지론(1차 대출)을통해 토지를 구입하고, 인허가 후 본PF(2차 대출)로 대출을 갈아탄 뒤, 분양(판매)을 통해 공사비를 충당한다. 시행사가처음부터 자기자본을 대거 투자하는 방식이 아니다. - P40

서울시 역시 2004년 버스 준공영제도입 이후 2019년까지 총 4조320억원에달하는 운송 적자를 지원금 등으로 충당했다. 김형수 팀장은 민간사업자의 이윤보전을 위해 사용되는 비용을 대중교통의 공공성 확보 차원에서 지자체가 직접투자할 때라고 말한다. - P47

지금처럼 극소수 강경파가 판치는 상황을 끝내기 위해서는 우선 차기 의장과 공화당 주류 의원들이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강경파 의원들의요구로 지난 1월 개정된 하원 규칙, 즉 ‘단 한 명의 의원이라도 해임안을 제출하면 의장은 재신임 투표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부터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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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론의 핵심은 우리가 타고난 천부적 재능과 사회적 지위 모두가 도덕적 정당 근거가 없는 우연적인 것인 까닭에 그것들을 공동의 자산으로 간주하고 중립화하는 데서 정의에 대한 생각이 시작된다는 점이다.  - P43

그런데 형식적 기회 균등도 아니고, 실질적 기회 균등도 넘어서서 공정한 기회 균등까지 보장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여기에서 롤스는 우선 절차적 정의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되 그 문제점을 ‘최소 수혜자 최우선 배려의 원칙‘을 통해 보완하는 전략으로 자신이 구상하는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고자 한다. - P43

롤스는 ‘무지의 베일 the veil of ignorance‘을 통해 각자의 운명을 모르는 상태에서 가장 불운한 계층의 일원이 될 각오 아래 선택한 것이 바로 정의의 원칙으로서 정당화된다고 보았다.  - P48

이런 점에서 롤스의 정의론은 절차주의적 측면과 결과주의적 측면의 상호 보완을 통해 구성된다고 할 수 있다.
즉 기회 균등을 중심으로 수행되는 절차주의적 과정의 부족한 측면을 공정 분배라는 결과주의적 조정으로 보완함으로써 롤스의 정의론이 완성되는 것이다. - P60

"모든 사회적 가치들-자유, 기회, 소득, 재산 및 자존감의기반은 이들 가치의 전부 또는 일부의 불평등한 분배가모든 사람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 한 평등하게 분배되어야한다."(《정의론》, 107쪽)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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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기의 제주가 4·3이라는 역사적 소용돌이로 치달아가게 된 원인을 나름대로 탐색하면서 사건을 총체적으로 다뤄보고자 했으나 4·3은 인간의 언어로 그려내기엔 너무나도 압도적인 비참함이라는 것이다. 작가는 북토크 내내 "어두운 방 안에서 코끼리를 더듬은 격"이라는 표현을 반복했다.

그가 찾은 키워드는 제주의 ‘공동체주의’다. 작가는 그때는 분명히 존재했지만 지금은 사라진 제주 공동체를 그리워하면서, 지금의 제주가 대한민국의 일부라 해도 중앙정부와는 거리를 두고 ‘완전한 독립’과 ‘자치권’을 얻기를 소망했다.

『제주도우다』는 항쟁이 일어나기 이전의 제주를 공들여 묘사하고 있다. 해방과 함께 갑자기 인구가 6만이나 늘어난 제주는 들떠 있었다. 주인공 안창세가 조천중학원을 다니던 1946년에는 전도의 소학교 학생 수만 2만에서 4만으로 늘었다. 일본이 물러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나와 조선말을 쓰고 자치조직을 만들면서 새 나라를 세우고자 한 이들은 보통의 제주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무슨 일이든 공동체적으로 대응했으니 4·3은 해방공간에서 자주독립국가를 꿈꾸었던 민중이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공동체로서 봉기한 것이라고 봐야 해요. 사실 처음 원고에는 ‘아나키즘’이라고 썼는데 교정을 보며 ‘무정부주의’라고 고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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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철학 케니의 서양철학사 4
앤서니 케니 지음, 이재훈 옮김 / 서광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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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의 역사를 통하여 용어 표현을 달리하면서 두고두고 되풀이해서 제기된 하나의 형이상학적인 문제가 있다. 이것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이해하려면 일상생활에서 쏜살같이 스치듯 마주치는 개별적인 것들과 완전히 다른 종류의 대상들(entities)이 정신의 외부 세계에 실존해야만 하는지를 묻는 물음이다. 고대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나 형상이 물질이나 물체와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실존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논했다. 중세에는 줄곧 보편자가 실재하는 것인지 기호에 불과한 것인지를 두고 실재론자와 유명론자 사이에 논쟁이 이어졌다. 현대의 수학철학자들은 수를 숫자와 동일시하는 형식주의자, 그리고 수가 정신 세계나 물질 세계가 아닌 제3세계를 구성하는 독립적 실재성을 갖는다고 주장하는 실재론자와 수학적 대상의 본성에 관해 팽행한 논쟁을 벌였다. _ 앤서니 케니, <현대철학>, p254


 앤서니 케니(Anthony Kenny, 1931 ~ )의 <현대철학 A  New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volume 4 : Philosophy In The Modern World>은 시리즈의 마지막이자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부터 1970년대까지 철학을 다룬다. 철학사의 전체적인 흐름을 앞 장에서 정리하고, 뒷부분에서 세부적으로 내용을 정리하는 케니의 서양철학사의 서술은 흔들림없이 시리즈의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현대 철학의 이 이전 시기의 철학과 가장 크게 구분되는 점은 무엇일까. 중세의 유명론(nominalism)과 실재론(realism) 논쟁과 같은 시대에 따라 다른 양상으로 반복되는 주제가 현대 철학에서도 다뤄지기도 하지만,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자연과학의 독립과 수학의 도입이라 생각된다. 


 지칭 대상의 불투명 문제는 이 모든 양상 문맥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난다. 그 문제는 두 종류의 다른 지칭 대상을 구별함으로써 처리될 수 있다. 어떤 용어가 진정한 이름이 되기 위해서는 크립키의 전문 용어로 고정 지시어(rigid designator)라야만 한다. 다시 말해서, 그 용어는 모든 가능 세계에서 지칭 대상이 동일해야만 한다. 그와 달리 뜻에 의해 지칭 대상이 정해지기 때문에 가능 세계에 따라 지칭 대상이 달라지는 표현들도 있다. '9=행성들의 수'에서 '9'는 사실상 어느 가능 세계에서나 계속 그 지칭 대상을 유지하는 고정 지시어이다. 그러나 '행성들의 수'는 다른 세계에서 다른 수를 지칭할 수도 있는 일종의 기술(description)이다. _ 앤서니 케니, <현대철학>, p174


 근대 철학에서 인식과 관련하여 감성(感性), 지성(知性), 이성(理性) 등 인간의 사고 능력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졌고,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희망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찾는다면, 현대 철학에서는 "내가 하는 '무엇'은 무엇인가?"라는 한 단계 더 들어간 질문과 답이 논의된다. '무엇'이라고 지칭되는 대상의 기호와 의미와의 관계 속에서 전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언어(言語)의 문제가 현대철학에서는 본격적으로 다뤄진다. 언어와 대상 사이의 관계, 지각(知覺) 이전의 관계가 새롭게 주목되고, 사회와 언어의 상호작용으로부터 오염을 최소화하기 위한 간결한 수학적 표현 양식의 등장 등이 현대철학과 이전 철학의 큰 차이점으로 생각된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 게임에 정통하는 것이 의심의 전제 조건이라고 주장한다. p라는 것에 대해 의심을 보이기 위해서는, 누구든 p라는 말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해야만 한다. 데카르트의 극단적인 의심은 그 의심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 낱말들의 의미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기 떼문에 자멸하게 된다. (OC 369, 456) _ 앤서니 케니, <현대철학>, p237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철학은 이전 시대의 다른 어떤 철학보다 불명확하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는 이전 시기의 철학들이 권위를 통해 극단적인 경우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여진 데 반해, 반증가능성이라는 과학의 특성과 다원화된 민주주의 체제가 보편화된 현대철학에서는 보다 세분화된 영역에서 간결한 방식으로 다양한 양태로 수많은 사상이 공존하는 것이 아닐까.


 다윈주의는 많은 것이 설명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개체종이 이전의 종으로부터 기원하는 것이 진화론적 압박과 선택의 메커니즘에 의해 설명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메커니즘은 그와 같은 종의 기원을 설명하는 데 사용될 수 없다. 왜냐하면 자연선택에 의한 설명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가 전형적인 번식 집단, 즉 종이 존재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_ 앤서니 케니, <현대철학>, p419


 제임스는 결론에서 우주의 최상의 실재(supreme reality)를 흔쾌히 '신'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신에 대한 그의 적극적인 설명은 지극히 불투명하다. 그것은 매슈 아놀드(Matthew Arnold)가 신을 '모든 사물이 그들 존재의 법칙을 실현하려는 경향성의 흐름' 또는 '의로움을 향한 우리 자신이 아닌 영원한 힘'이라고 정의한 것과 비슷하다. 그렇지만 제임스는 종교를 본질적으로 감정의 문제로 간주했고, 감정을 본질적으로 분명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그의 불분명한 표현은 이미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_ 앤서니 케니, <현대철학>, p435


 근대 이후 과학을 새롭게 떠나보내고, 미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현대철학. 지금도 계속 새로운 이론과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현대철학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하거나 이해하는 것은 분명 불가능한 일이다. 불가능에 대한 미련은 버리고, 큰 흐름을 잡는다는 생각으로 정리를 한다면 케니의 <현대철학>은 좋은 개론서가 되리라 생각하며 리뷰를 갈무리한다...


 크로체의 경우, 예술은 역사와 과학 사이에 위치한다. 역사와 마찬가지로 예술은 일반 법칙이라기보다는 특수 사례를 다루기는 하지만, 예술의 특수 사례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된 것이며, 과학처럼 보편적 진리를 예시한다... 크로체에게 예술의 핵심은 직관(intuition)이다. 직관은 실증주의자들이 뭐라고 말하든 느낌(feeling)과 동일하지 않다. 느낌은 표현을 필요로 하는데, 표현은 인지적 문제이지 감정상의 문제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_ 앤서니 케니, <현대철학>, p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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