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라이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3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읽기가 힘들다. 물으나마나 게으름 탓이다. 책 말고도 숱한 재미난 것들에 시선이 뺏기고 -친구들과의 수다, 낮잠, 밤잠, 각종 행사, 텔레비전 보기 등 - 난 뒤에야 책을 찾으니 언제나 사들이는 속도에 책 읽는 속도가 따라가질 못한다. 한정된 책꽂이(전면에다 이중 책장이라 책이 많이 들어가긴 한다. 꽂는 게 목적이라면 몰라도 읽는 게 목적인 나 같은 이에겐 이중 책장은 그리 권할 게 못된다.)를 차지하지 못한 채 방안 이곳저곳에 널브러진 새 책들을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책 모으는 데 취미가 없으니 새로 사면 안 되는데 도서관 가는 게 귀찮아서 이 지경이 됐다. 알라딘 같은 인터넷 서점의 폐해이기도 하다. 편리한 인터넷 서점이 아니었다면 누군들 읽는 속도보다 사는 속도가 빨랐을 것인가.

 

 

  어쨌거나 진작 구매한『디어 라이프』를 게으름 탓에 이제야 완독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올리브 키터리지』와 비슷한데 솔직히 그미 작품에는못 미친다. 같은 북미권 단편이라 설정이나 분위기가 꼭 닮아 있는데, 구성이나 문체뿐만 아니라 서사 구조 및 서늘한 느낌이나 강렬한 울림 등은 올리브 키터리지가 낫다. 그래도 이렇게 리뷰를 남기게 하는 앨리스 먼로의 힘은 ‘여성적 시각에서 나오는 공감’ 때문이다. 14작품 중 공감가지 않는 것은 두어 개 뿐, 나머지 모두는 내 이야기였고, 내 마음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제발이지 소설은 도덕 교과서가 아니다. 인간의 마음을 섬세하게 읽고 짚어내는 소산물이 소설이다. 앨리스 먼로의 담담한 이 전언들은 꼰대들의 가르침에 길들여진 영혼들에게는 그닥 공감이 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 삶이 어딘지 불온해, 내 몸에서 언제나 라일락 향기만 나길 바라는 사람이 아니라면 당신은 이 책을 잘 선택한 경우이다. 소설이 도덕 교과서나 좋은 생각 등의 잡지와 같기를 바란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누군가에게 이 책을 권했을 때 전혀 공감 되지 않아 쩔쩔 매거나 당황스러워한다면 당신은 독서력이 짧거나 길들여진 일상인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사랑은 때론 불온하지만 정직하지.(일본에 가닿기를) 불온하지만 정직한 그 감정의 기로에서 갈등해보지 않은 사람은 사랑의 참맛을 제대로 모르는 거지. 사랑은 달콤하거나 쓴 맛이 나는 그 무엇이 아니라,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불온하기 짝이 없는 그 무엇이지. 끝내 돌이킬 수 없는 절망이 내게 오더라도 한 번쯤은 피하지 않고 마구 부딪쳐야만 하는 그 무엇일 수밖에 없지.

 

 

  사랑에 관한 한 변하는 게 없지.(아문센) 우리가 첫사랑을 잊었다거나,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건 사랑이 변해서가 아니지. 그 변하지 않은 사랑을 현실 속에서 마주치거나 감내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회피하는 것이지. 시간이 지나 우연히 번화한 거리에서 청춘 한 때 사랑했던 당신을 만난다면 아, 사랑에 관한 한 변한 게 없다는 걸, 진정되지 않는 심장 박동 소리와 부자연스런 손동작이 먼저 말해주는 것이지.

 

 

  한 사랑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다른 사랑이 사랑이 아닌 것은 아니잖아. (메이벌리를 떠나며) 사랑과 별개로 결핍은 언제나 나의 주인님이고, 그 누군가가 상실의 고통으로 힘겨워 한다면 한 사랑 떠난 계단에 그의 이름을 새길 수는 있잖아. 그렇게 안도하면 사는 게 인생이지 뭘 그래. 사랑은 나눠지는 피자 조각이 아니라 흐르는 물 같은 것이거든.

 

 

  사람마다 죽을 때까지 넘을 수 없는 어릴 적 트라우마가 있지. (자갈) 심리상담가를 찾아가도, 누군가를 만나도 해결되지 않는 근원적 슬픔이자 고통인 그것. 누가 대신 그 옹벽을 넘어줄 순 없지만 넘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는 있지. 너와 나라는 밥상과 함께 시간이란 치료제가 더해질 때 어느 정도 넘을 수 있는 그 산. 하지만 모든 걸 받아들이려는 노력에도 목에 가시처럼 걸려 있는 그 실체 없는 헛것의 실체가 트라우마지.

 

 

  고정된 관습이 사람을 바꾸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지.(안식처) 습관은 관습을 낳고, 관습은 사람마다 고정된 관념을 심어주지. 내가 앨리스 먼로를 격하게 공감하는 것처럼 극동의 어느 독자는 그녀 이야기가 웬 횡설수설이냐고 반문을 할 수도 있지. 그런 게 고정 관념이야. 나는 옳고 너는 그른 게 아닌데도 내 신념대로 내 방식대로 삶은 그렇게 진행되는 거지. 상충하는 두 신념 속에서 공정을 기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지만, 사회적 동물인 우리는 그럭저럭 잘 헤쳐 나가고 있지. 그 헤쳐 나가는 태도조차 우리의 고정 관념이 되어버린 지 오래거든. 삶은 그렇게 지속되고 있어.

 

 

  사소한 것에서 우리는 따스함을 맛보지.(자존심) 그가 나를 사랑하는지, 내가 그를 사랑하는지 그런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이지는 않았지만 그게 사랑이 아니라고는 말 못해. 우리의 하루란 때론 스컹크가 지나는 앞마당 풍광 앞에서도 감동하고 한없이 즐거울 수 있는 거거든. 그 합일된 시간, 비록 짧고 아쉽지만 그 선명한 시간만큼은 자존심 대신 서로의 자긍심을 확인하게 되는 거지. 그 감정을 서로 망칠 것까진 없잖아.

 

 

  읽다 보면 단편의 묘미 같은 걸 제대로 느낄 때가 있지.(코리) 누군가에게는 진심이 누군가에게는 배신의 아이콘이 되기도 하는 것이 사랑이지. 특지 돈 앞의 사랑은 완전히 믿을 게 못 되지. 가진 자는 돈으로 사랑을 살 있다고 믿고, 돈이 필요한 자는 그 사랑을 악용하기도 하는 게 현실이지. 솔직해질 수 없는 서로의 사랑에 파국이 찾아오더라도 그 사랑은 진실했노라고 어느 한 쪽이 믿고 싶어 할 그 몹쓸 사랑.

 

 

  사랑은 변하지 않는 것이지. 아니 사랑은 변하는 것이지.(기차) 기차가 내달리듯 누군가의 사랑은 달리는 기차와도 같지. 사랑을 위해 기차를 잡고, 사랑을 위해 기차를 타고, 사랑을 위해 기차를 곁에 두고 눈물짓지만 결국은 사랑은 떠나기 위한 발판의 행보일 뿐. 이 세상에 영원한 사랑 따윈 없지. 기차가 머무는 한, 기차를 떠나 새로운 사랑을 찾는 한 그 사랑에 충실할 뿐. 설령 옛사랑을 만났다 해도 그 사랑은 옛날의 그 사랑이 될 수 없는 것. 다시 우리는 기차를 타고 새로운 세계로 떠나게 되지. 세상은 넓고 사랑은 널렸으니.

 

 

  산다는 건 꿈이지. 그저 일장춘몽일 뿐이지. (호수가 보이는 풍경) 어느날 호흡이 가빠지고 병상에 눕게 되었을 때, 저마다 가고 싶은 곳으로 가 누군가를 만나지. 결국 막다른 골목 앞에서 나를 맞는 건 아무도 없고, 오직 나라는 실존만이 나를 맞이하지. 그래도 행복한 건 그때 그 시절 내겐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그 가족과 함께 보낸 호숫가도 꿈 꿀 수 있다는 거지. 그렇게 행복했던 한 시절이 무의식 속에서 지워지는 거지.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는 거야.

 

 

  노년의 질투가 이토록 사랑스러울 수 있다니!(돌리) 늘그막에 찾아오는 이런 식의 질투라면 맘껏 해주겠어. 질투할 거리조차 되지 않는 일상의 한 조각을 부여잡고 우리는 황혼의 시간을 소비하겠지. 싸울 여력조차 없는, 질투가 될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질투할 필요조차 없는 이 사랑스런 에피소드 앞에서 독자는 빙그레 웃게 되겠지. 싸울 여력조차 없다는 걸 잊은 채 잠시나마 생의 활력을 환기시켜주는 이 사랑스런 장면이라니.

 

 

  작가의 자전적 에세이를 담은 나머지 네 작품은 앨리스 먼로를 이해하는 주요 키워드가 되어 주지. 권위적이고 다소 허영심 있는 엄마(시선), 채찍으로 훈육할 만큼 보수적인 생활 태도를 지녔지만 아빠의 무거운 어깨를 이해하게 된 진심(밤), 처음으로 에로틱한 성적 감흥을 공감하게 되는 사춘기의 한 장면(목소리들), 한 가계의 흥망성쇠를 서로 다른 기억이 변주해내는 묘사 (디어 라이프)등으로 갈무리하지.

 

 

  아직 읽지 않은 독자들이여,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착실하게 살아왔고, 착실하게 살 것을 주문하는 당신이라면 이 책은 큰 감흥을 주지 못한다. 이 책을 통해 내 삶은 어땠고, 앞으로 내 삶이 어떻게 진행될지 그저 지켜보기를 원하는 당신이에게 이 책은  맞춤하다. 

 

* 키워드 - 전쟁(1,2차 세계대전), 엄마, 종교, 타운, 성, 사랑, 트라우마, 기차, 여자와 남자, 쓸쓸함 등

 

 

 

 

<1. 일본에 가닿기를>

  밴쿠버에 사는 시인 그레타는 딸 케이티와 함께 토론토행 기차를 탔다. 유럽 여행으로 빈 집을 써도 좋다는 지인의 연락을 받고 남편은 두고 떠나는 중이다. 벤쿠버에서 어떤 편집자의 주선으로 문인 파티에 간 적이 있다. 홀대를 받았지만 거기에서 파티 주선자의 사위이자 기자인 해리스를 알게 된다. 이번 여행을 계기로 해리스에게 시적인 편지를 쓴다. ‘이 편지를 쓰는 것은 유리병 속에 편지를 넣는 것과 같아요. 그리고 바라죠. 편지가 일본에 가 닿기를.’ 아픈 그의 아내가 퇴원해서 그 편지를 보더라도 오해의 여지가 없도록.

 

 

  기차 안에서 촌극 배우인 그레그와 로리를 알게 된다. 그들은 케이티를 즐겁게 해준다. 로리가 애인을 만나기 위해 목적지에서 내린다. 그레그와 불이 붙은 그레타는 객실 안에서 쾌락의 충격을 맛본다. 순간 케이티가 없어진 것을 알고 당황한다. 객차 사이 금속판에 앉아 있던 케이티를 보고 안심한다. 그레그는 목적지인 새스커툰에서 내린다. 케이티는 뾰로통해진다.

밤기차 안에서 그레타는 피터에게 편지를 쓴다. 아이를 잃어버릴 뻔한 얘기는 물론 한마디도 쓰지 않는다. 잡념을 몰아내고 온통 시를 구상했던 시간을 떠올리고 아이와 남편에 대한 배반을 반성하기도 한다. 소모적인 토론토 남자도 떠올려본다. 다른 것에 관심을 기울인 자체가 죄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날 오전 기차가 역에 닿았다. 누군가 여행 가방을 들어주며 그녀에게 키스를 한다. 해리스다. 심장이 쿵 떨어지는 느낌이다. 케이티 손을 놓치 않으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아이는 그녀에게 멀어지며 손을 놓는다. 그녀는 피하지 않고 다가올 일을 기다린다.

 

 

 

34그레타는 미칠 것만 같았다. 케이티만한 아이가 베개로 몸을 가릴 수 있기라도 하듯 베개를 홱 들어올렸다. 케이티가 담요 속에 숨어 있기라도 하듯 손으로 담요를 툭툭 쳤다.

40처음에는 놀랐고, 그다음엔 그레타의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고, 이어서 한없이 마음이 놓였다. 그녀는 케이티의 손을 놓지 않으려 했지만 바로 그 순간 아이는 그녀에게서 떨어지며 손을 놓았다. 그녀는 피하려 들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서서 다음에 다가올 일을 기다렸다.

 

 

 

 

<2. 아문센>

  결핵 요양원 교사 일자리를 찾아 나는 토론토에서 기차를 탄다. 기차역에서 메리라는 수다쟁이 여자애를 만나고 그 아이가 요양원에서 일을 돕는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교육적 가치보다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지리멸렬한 그곳에서 요양원 외과의사를 만나 결혼까지 약속한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의사는 결혼 의사를 번복하고 나는 아문센을 떠나게 된다. 기차 안에서 메리를 만난 게 지금 와서는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의사에게 매달리지 않은 수치심을 막는 계기는 되었으니. 오랜 세월 뒤 토론토 길에서 그와 재회한다. 별일 없는 것처럼 얘기하지만 아문센을 떠나올 때와 똑 같은 감정을 느낀다. 사랑에 관한한 정말로 변하는 것은 없다는 걸.

 

 

71 ...대신 그 자리에 어마어마한 기쁨이 아니라 팽팽하고 신경을 건드리는 기쁨을 채울 것이다. 나는 춥지 않아도 몸의 떨림을 멈추지 못할 것이고, 과연 단어 하나라도 제대로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80내가 절대 인정하지는 않겠지만, 그가 외과의사라는 사실이 나를 흥분시킨다. 그가 섹스를 요구한다면 당장에라도 그를 위해 습지나 지저분한 구덩이에 드러누울 수도 있다. 내 척추가 길가 돌멩이에 으스러질 듯 눌려도 괜찮을 것 같다. 이 느낌을 혼자 간직해야 한다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85아마도 언젠가 당신은 이날이 당신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의 날이었다고 생각하게 될 거요.

85발목에 쇠사슬을 감은 것처럼 기차에 올라탄다.

88내가 기억하는 것처럼 왼쪽 눈이었다. 언제나 그 왼쪽 눈. 그 눈빛은 늘 오묘하고 경계하는 듯하고 놀라는 듯했다. 전혀 불가능한 어떤 일이.

그때 나는 아문센을 떠나올 때와 똑 같은 감정을 느꼈다. 도저히 믿기지 않아 여전히 멍한 상태의 나를 기차가 태우고 떠나올 때와 같은 감정을.

사랑에 관한 한 정말로 변하는 것은 없다.

 

 

 

<3. 메이벌리를 떠나며>

  모건이 고용한 리아는 영화관의 매표인이고, 경찰관 레이는 모건의 부탁으로 그녀를 토요일 밤마다 집에 안전하게 데려다 준다. 레이에게는 사랑해서 이혼까지 한 아픈 부인 이저벨이 있다. 크리스마스 무렵 리아가 실종되었다. 며칠 뒤 리아에게서 편지가 왔다. 다림질을 도와주던 목사네가 수신인이었는데 그집 아들과 결혼을 한단다. 외지에 있던 색소폰 주자인 목사 아들과 딱 한 번만에 눈이 맞아 떠난 리아에게 레이는 서운한 감정이 생긴다.

 

 

  결혼 후 리아는 아이가 둘이고 목사관에서 시부모와 살게 된다. 어느날 우체국 앞에서 레이는 리아를 만난다. 이저벨에게 리아 얘기를 자주 했는데 들려줄 수 있어서 좋겠다고 생각한다. 새로온 신임목사와 리아는 바람이 났다. 리아는 아이들도 시댁에 뺏기고 쫓겨났다. 이저벨은 병세가 심해지고, 간호를 위해 레이는 새 일을 찾았다. 레이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한 번씩 그녀를 찾아가다 나중에는 점점 횟수가 줄어들었다.

 

 

  병원의 암환자들에게 레크리에이션 지도를 하는 리아를 레이가 우연히 만났다. 전남편은 알콜 중독자가 되었고, 바람났던 목사는 여자 목사와 재혼했단다. 리아는 결국 떠났다. 그에게 남은 것은 결핍뿐이었다. 한 때 알았던 아가씨 리아 역시 상실 전문가였다. 주변인들을 다 잃었으니. 레이가 집에 와 계단을 올라가는데 그녀 이름이 떠올랐다. 그녀 이름은 리아. 이루말할 수 없는 안도감이 그를 감쌌다.

 

 

 

118 그가 지닌 것은 오직 결핍뿐이었다. 산소 결핍이나 심폐 기능의 결핍 같은 그런 것. 그 증상은 영원히 지속될 것 같았다. 예전에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아가씨, 한때 그가 알았던 그 여자 - 그녀가 그녀의 아이들에 대해 말했었다. 아이들을 상실한 것에 대해. 그 사실에 익숙해지는 것에 대해. 저녁때가 되면 겪는 괴로움에 대해.

상실 전문가, 그녀를 그렇게 불러도 좋으리라. 그녀와 비교하면 그는 초보였다. 지금 그는그녀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예전에 그렇게 잘 알고 있었던 그녀의 이름을 상실했다. 상실한다. 상실되었다. 그를 놀리고 싶다면, 놀려라.

리아. 그녀의 이름을 기억해내는 순간, 이루 말할 수 없는 안도감이 그를 감쌌다.

 

 

 

 

<4. 자갈>

  바람난 엄마가 임신을 한 채 따로 살림을 차렸다. 일곱 살인 나와 아홉 살 언니 카로는 아빠가 아닌 엄마를 따라 트레일러에서 산다. 키우던 개 블리치와 함께 자갈 채석장에서 카로는 익사한다. 트레일러 문 앞에 다다라도 즉각적으로 이 사실을 말하지 못한다. (카로는 블리치가 물에 빠졌다고 집에 가서 말하라고 나에게 시켰다.) 엄마는 물에 뛰어들지 않았고, 닐은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일주일 뒤 쯤에 동생 브렌트가 태어났다. 브렌트는 닐이 아니라 아버지를 더 닮았다.

 

 

  성인이 된 뒤 닐을 만났다. 취해 있고 수영을 못했다고 변명했다. 언니의 익사 건은 나를 평생 괴롭힌다. 심리상담가가 말한다. 카로도 자기가 뭘 원하는지 모를 수 있고, 관심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고. 어쩌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엄마를 움직여 아빠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걸 알려주려고 그랬을 수도. 얼른 알리지 못한 나를 자책하지 말라고 닐은 말한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그것에 붙들려 있다.

 

 

 

142 중요한 건 행복해지는 거야. 뭐가 어떻든 간에 그냥 그러려고 해봐. 주변 상황과는 아무 상관 없어. 그게 얼마나 좋은 건지 넌 모를 거야. 모든 걸 받아들이면 비극은 사라져. 혹은 가벼워지지.

그가 어떤 의미로 그 말을 했는지 나는 안다. 그러는 것이 정말로 옳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서 카로는 여전히 물을 향해 달려가 의기양양하게 자기 몸을 던지고, 나는 여전히 그것에 붙들려 있다. 그녀가 무슨 말이라도 해주기를 바라면서. 첨벙 소리가 들리기를 기다리면서.

 

 

 

 

<5. 안식처>

  아프리카로 간떠난 부모를 대신해 이모네가 나를 돌봐준다. 의사 이모부에겐 자라온 환경이 다른 누나가 있었다. 이모부는 누나 이야기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모는 이웃집을 초대할 때 트리오로 활동하는 누나팀도 이모부 몰래 초대했다. 이모는 자신이 주도한 이 일에 기분이 업되어 있었다. 학회에 갔던 이모부가 돌아오면서 분위기는 엉망이 된다. 이모부는 이런 짓거리가 고상한 척 하는 거라 경멸했다. 얼마 뒤 이모부의 누나인 모나가 죽었다. 사람들은 음악 자체와 음악에 헌신하는 모나 같은 사람을 괴짜로 취급했다. 여자들은 무엇에 헌신하든 그것 때문에 바보 취급을 받는다. 이모부는 서로 다른 방식의 종교로 진행되는 장례식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고인을 추모하려다가 낭패하기도 한다. 나는 부모(자유)와 이모네(보수) 사이에서 균형적 시각을 견지한다.

 

 

 

162-163 남자들은 싫어하는 것이 아주 많았다. 그 말은 정확히 사실이었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쓸모없었고, 그래서 그들은 그들은 그런 것을 싫어했다. 아마도 대수학에 대해 내가 느끼는 감정과 같을 것이다.

 

 

 

 

 

<6. 자존심>

  백화점 부기원인 나는 길거리에서 이웃인 오나이다를 만난다. 은행원 출신 아버지가 물려준 집을 팔기 위한 조언을 얻기 위해 오나이다가 말을 건넨 것을 계기로 친하게 된다. 그녀와 텔레비전을 함께 보고 내가 아플 때 간호도 해준다. 나도 그녀처럼 집을 판다. 마지막 짐을 정리하면서 스컹크가 있는 마당을 보고 오나이다는 도심지에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에 감동한다. 그 순간이 한없이 즐겁다.

 

 

200 맙소사, 오나이다가 말했다. 도심지에서. 그녀의 표정이 황홀해진다. 이런 광경 본 적 있어요? 나는 없다고 했다. 단 한 번도. 나는 그녀가 또다른 말을 해서 그 순간을 망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우리 둘 다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그 순간이 한없이 즐거웠다.

 

 

 

 

<7. 코리>

  구두공장을 하는 아버지를 둔 덕에 코리는 부유했다. 소아마비를 앓는 것 빼고. 유부남 하워드와 사귀는 것을 가정부 릴리언이 알고 돈을 뜯어낸다. 도서관에 취직한 그녀는 여전히 하워드와 밀애를 즐긴다. 릴리언은 죽었고, 하워드는 여느 때처럼 가족 여행을 떠났다. 문득 그녀는 깨닫는다. 사서함을 열었다는 릴리언에게 돈이 전해진 게 아니라, 돈은 곧장 은행계좌나 지갑으로 들어갔을 거란 확신. 릴리언이 죽었다고 편지를 보내자 하워드의 답이 온다. 다 잘돼서 기쁘다고. 곧 만나자고.

 

 

 

226-227 릴리언은 중요하지 않고, 중요했던 적도 없으니까. 사서함도 없다. 돈은 곧장 은행계좌로 들어갔거나 어쩌면 지갑으로 들어갔을 테니까. ---스페인 여행, 가족, 여름 산장, 교육시킬 자식들, 지불할 청구서가 수북한 사람들 -그들은 그만한 액수의 돈을 어디에 쓸 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녀는 집에 있는 모든 방을 돌아다니며 이 새로운 사실을 벽과 가구들에게 전한다. 어디에나 구멍이 있다. 특히 그녀의 가슴에. 그녀는 커피를 내리지만 마시지는 않는다. 그녀는 결국 또다시 침실로 돌아오고, 다시 처음부터 지금의 현실을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8. 기차>

  달리던 기차에서 내린 군인 잭슨은 농가에 스며든다. 벨이라는 열 여섯 살 많은 여자와 지낸다. 세월이 지나 1962년 그들은 벨의 종양을 제거하러 토론터로 갔다. 도시 풍광에 격세지감을 느끼기도 하고, 환자와의 관계에 친구라고 적기도 한다. 병실에서 벨은 아버지의 죽음이 자신에 대한 아버지의 성적 자책감 때문이란 걸 얘기한다.

 

 

  이 일을 계기로 잭슨은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나고(왜 떠났는지) 얼마 뒤 그녀의 부음을 듣는다. 새로운 일터에서 딸을 찾으러 주인을 만나는 일린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녀는 학창시절 친하게 지내던 여자이다. 잭슨은 군대로 갔고 유럽이 승리하자 일린이 있는 곳으로 귀향을 꿈꿨다. 하지만 그녀에게 되돌아가지 않았다. 건물 관리를 하는 새 일터에서도 그는 떠난다. 밤새 기차를 타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나설 것이다.

 

 

 

 

<9. 호수가 보이는 풍경>

  낸시는 상담 받을 의사를 만나기 위해 다른 마을로 간다. 시간만 흐르고 쇠락한 듯 보이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의사를 찾지만 찾지 못한다. 그러다 찾아들어간 요양원에는 아무도 없었고, 낸시는 그 안에 갇히는 상황에 빠지고 만다. 낸시는 정신질환으로 병원에 있다. 병상에서 꿈을 꾸었다. 호수가 있고, 남편이 살아 있고, 운전을 할 줄 알던 시절의 꿈을.

 

 

 

<10. 돌리>

  프랭클린과 나는 인생 늘그막을 준비 중이다. 프랭클린은 시인이고 나는 수학 교사 출신의 전기 작가이다. 우연히 찾아온 화장품 판매원 돌리가 옛날 프랭클린과 만난 적이 있는 사이라는 걸 알게 되자 나는 질투심에 편지를 쓰고 가출을 한다. 잠깐 배회하다 집에 와보니 프랭크는 고장난 돌리 차 대신 새 차를 사줬단다. 하지만 그게 다일 뿐 ‘싸울 여력’조차 없다는 프랭크의 진심을 이해한다. 질투심에 편지 부친 것을 절대 읽지 말라는 내 부탁을 남편은 실천할 것이다. 나라면 뜯어 봤겠지. 화가 나지만 이런 남편이 존경스럽다. 평생 그랬다.

 

 

 

 

<11. 시선>

  어린 시절 권위적인 엄마와 소통이 힘들었던 나는 세이디와 많은 얘기를 나눴다. 지역 라디오 방송에서 자작곡을 부를 만큼 끼가 있는 세이디는 우리집에서 일을 도와주던 아가씨였다. 남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혼자서 춤추기를 좋아하던 세이디는 댄스홀에 갔다 오다 교통사고로 죽는다. 굳이 보고 싶지 않은 죽은 세이디의 모습을 엄마와 함께 조문을 가서 보게 된다.

 

 

351 나는 그 일을 그렇게 쉽게 믿었다. 어느 날, 아마 십대였을 때, 마음 속에 어두운 구멍을 간직한 내가 지금의 나는 더 이상 그것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까지.

 

 

 

 

<12. 밤>

  낮 동안 활동량이 적었던 나는 -심지어 맹장 수술 등 아팠다- 불면에 시달린다. 밤에 밖에 나가보면 아버지는 외출복인 채로 시가 연기를 내뿜곤 했다. 영리해서 말대꾸를 하는 통에 아버지에게 가죽띠나 벨트로 맞아 본 적도 있지만 그 밤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삶에 대한 의미를 어렴풋하게나마 느끼게 된다. 아버지는 최선을 다하고 있고, 대출금 상환기한을 연장하기 위한 은행 출입용으로 단정한 옷을 입었고, 엄마가 몸을 떠는 병도 이해하고 있었을 거라고. 어쩌면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여자를 사랑했을 지도.

 

 

370 아마 아버지는 그날 아침 은행에 볼일이 있어서 더 단정한 작업복을 입었겠지만, 예상했던 대로 대출금 상환을 연장할 수 없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했지만 경기는 회복되지 않았다. 우리를 부양하고 그 당시 지고 있던 빚을 갚으려면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했다. 어쩌면 아버지는 어머니가 몸을 부들부들 떠는 것에 정식 명칭이 병명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증상이 멈추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여자를 사랑했다는 것을.

 

 

 

 

<13. 목소리들>

  나와 엄마와 잘 맞지 않는다. 춤 추기 좋아하는 엄마를 따라 댄스 파티를 여는 집에 가곤 했다. 엄마 옷을 가지러 파티집 2층으로 올라가다가 페기(아마 매춘부)를 달래는 영국 출신 군인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여자들 중 누군가가 페기에게 비열한 행동을 했을 것이다. 허벅지를 더듬으며 남자들은 페기를 중요한 사람 달래는 듯한 목소리를 낸다. 그 모습에서 감정 이입을 하는 나를 발견한다.

 

 

 

388 나는 그저 그 축복에 대해. 그런 축복을 받는다면 얼마나 근사할지에 대해, 그럴 가치가 없는 페기라는 여자가 그런 행운을 누린다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지에 대해 생각했다. 춥고 어두운 내 침실에서 그들이 나를 살살 흔들어 잠재웠다. 나는 스위치를 켜듯 그들을 불러내 그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떠올렸다. 오, 그 어느 때보다 더, 그들의 목소리는 나와 상관없는 제삼자가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그들의 손이 내 가는 허벅지를 축복하고, 그들의 목소리가 나도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고 확인시켜주었다.

 

 

 

 

<14. 디어 라이프>

  아버지는 농장 일을 했고, 엄마는 농장집 딸에서 교사로 신분 상승을 했다. 친척들은 엄마의 교사연한 태도를 불편하게 받아들였다. 아버지는 겸손한 편이었다. 말대꾸하는 나 때문에 엄마가 고자질을 하면 아버지는 허리띠로 나를 때렸다. 모피 사업 등도 망하자 아버지는 경비일까지 해야 했다. 사십대의 엄마가 파킨슨병에 걸렸다. 조금 성장하자 엄마에 대한 반감도 줄었다. 엄마는 농장에서 자란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를 원해서 시댁 식구들도 못마땅해했다. 미친 동네 할멈 네터필드로부터 나를 구한 영웅담도 엄마의 레퍼토리이다. 그 가족은 한때 아버지의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네터필드 딸이 투고한 한 편의 시를 통해 알게 된다. 네터필드 할멈은 자신을 떠나간 딸의 모습을 나를 통해 보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편지 투고한 그녀를 만나고 싶었지만 정작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게 진심이었다. 엄마 장례식에도 가지 않았다. 하지만 용서할 수 없는 삶은 없다.

 

 

 

415-416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에도 그리고 장례식에도 나는 집에 가지 않았다. 내게는 어린 자식이 둘 있었는데 밴쿠버에는 아이를 맡길 사람이 없었다. 우리는 거기까지 갈 경비가 없었고 내 남편은 의례적인 행동을 경멸했다. 하지만 그것이 왜 그의 탓이겠는가. 내 생각도 같았다. 사람들은 말한다. 어떤 일들은 용서받을 수 없다고. 혹은 우리 자신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용서한다. 언제나 그런다.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nine 2014-01-26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을 다 읽고서도 아직 리뷰를 못올리고 있어요. 글자는 다 읽었으되 작품속에 담긴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읽어냈는지 아직 모르겠어서요. 더 묵힌다고 나아질 것 없지만 그래도 좀 더 생각하는 시간을 두자는게 핑계인지 팜므님 말씀하신 게으름인지 잘 모르겠네요.
어떤 작품은 내 얘기 같기도 하고 어떤 작품은 금방 공감이 가지 않기도 한데, 확실히 작가는 보통 사람들이 그냥 겪고 지나갔을 일을 명료한 언어로 분명하게 드러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어쩌면 그래서 더 읽는 사람의 마음을 쓰리게 하는지도 모르고요.
용서할 수 없는 삶이 없는 이유는, 아마 우리 자신도 누구에겐가 용서를 구해야 할 일을 저지르며 살고 있기 때문 아닐까 싶네요.
잘 읽었습니다.

다크아이즈 2014-01-28 10:04   좋아요 0 | URL
<보통 사람들이 그냥 겪고 지나갔을 일을 명료한 언어로 분명하게 드러내주는 역할>을 잘하는 게 작가 맞는 것 같아요.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니 누구는 독자가 되고, 특별한 누군가는 작가가 되는 거겠지요?
나인님께서도 깊이 홀렸음에 틀림없어요,부지런한 님이 아직 리뷰를 못 올리실 지경이라면... 나인님 식으로 읽은 앨리스 먼로를 기다릴게요. 명절 잘 보내시어요.^^*

페크pek0501 2014-01-26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마음을 섬세하게 읽고 짚어내는 소산물이 소설이다. "
- 그렇다면, 인간이 이렇구나, 하고 느끼게 인간을 제대로 보여 주는 소설이겠군요.
그것이 소설의 임무이고 그래서 소설은 인간학일 테지요.
그런데 어떤 소설은 어려워서 뭘 말하는 것인지 모를 때가 있어요.

그런데 팜 님, 아주 꼼꼼한 독서, 꼼꼼한 리뷰에 감탄합니다.
저는 이 저자의 다른 책을 갖고 있는데, 이 책도 사야 할까, 생각중이어요. ^^

다크아이즈 2014-01-28 10:11   좋아요 0 | URL
소설의 정의는 잘모르겠지만 일단 인간 마음을 있는 그대로 짚어내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좋은 소설을 쓰는 건 맞는 것 같아요. 아니, 좋은 소설 뿐만 아니라 글 잘 쓰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런 통찰을 갖고 있겠지요.
우리글로 된 소설이 어려운 건 작가가 잘못 썼을 확률이 높고(단정 지어서 죄송해요ㅠ 독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점에서.) 번역한 소설이 어렵게 느껴지는 건 번역자의 책임도 반 이상은 된다는 게 제 개인적 견해입니다.

가진 책을 읽으신 뒤, 언니 취향에 맞으면 이 책을 구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설 잘 맞이하시고, 명절증후군 따위는 곁에 두지도 마시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7 0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게 공감합니다. 소설이 꼭 거대 담론만을 생산해야 하는 장르는 아니잖아요.
거대 담론보다는 미시적 관점으로 촘촘히 엮는
서사야말로 재미가 있는데 우린 너무 소설을 거창하게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크아이즈 2014-01-28 10:14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그러니까... 음, 곰발님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니까요.
여러 분야를 다 섭렵하고 계시지만, 전 개인적으로 곰발님이 소설로 전향해서(아니 매진해서!) 일가를 이루시길 간절히 바라는 걸요. 뭐, 소설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만.

제 바람을 뒤로 하고 왠지 님의 첫 책(? 죄송해요. 어쩌면 여러 권의 책을 냈을지도 모르는데)은 독서 관련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해요.^^* 흐흐~~

순오기 2014-01-27 0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앨리스 먼로, 고등학교 독서회 엄마들에게 대출만 하고 있네요~ ㅠ
잘 지내죠?
그동안 뜸해서 근황이 궁금하네요.

다크아이즈 2014-01-28 10:17   좋아요 0 | URL
독서회 엄마들 반응이 어떨지 궁금해요.
실은 저도 시청독서회 팀과 이 책을 토론했거든요.
저보단 공감을 덜하시는 것 같아 내심 서운했지 뭡니까!
사람 생각 다 같을 순 없잖아요. ㅋ
오기 언냐도 설 잘 맞이하시고, 설 가사노동은 조금만 하세요.^^*

세실 2014-01-27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체 이런 분석적인 장편의 글은 언제 쓰시나요? 새벽 3시? ㅎㅎㅎ
팜므님 글 읽고 나니 마치 이 책 한권 읽은거 같아요~~~ 굿!!!!!!!
해피 설날 되시어요^^

다크아이즈 2014-01-28 14:55   좋아요 0 | URL
뭐, 딱히 분석적이라고까진 할 수 없구요. 제 식으로 앨리스 먼로를 이해한 거지요.
근데 참 좋더라는. 공감 팍팍 땡기면서 이런 소설 쓰고 싶다, 막 이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지지 뭐에요.

근데 이보다 더 좋은 책이 프레이야님과 시아님이 권했던 <올리브 키터리지>에요.
도서관에서 사신 걸로 아는데, 다 읽어 갈지도...
그날 시아님이 잠자리에서 올리브 키터리지 원어 파일 녹음을 틀어주는데 뭔 말인지는 몰라도 막 가슴이 쿵쿵 뛰더라구요. 첫 편에 나오는 약국, 편이라는데 영어가 술술 들리면 참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지 뭐에요.

세실관장님은 가사 노동에서 면제? 명절에 도서관은 문 안 열지요?

세실 2014-02-02 09:56   좋아요 0 | URL
오늘은 도서관 문 열어요.
관장이 되서 좋은 것중 하나는 주말 근무할 일이 없다는거? 호호호~~~
요즘 주말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답니다^^

다크아이즈 2014-02-02 13:09   좋아요 0 | URL
문은 열어도 관장님은 안 나가셔도 되니 이런 좋을 데가.ㅋ
바지런하면 오늘 같은 날 도서관 가서 책 좀 빌려오면 되는데, 귀찮아서 그냥 사버립니다. 다 낭비예요.ㅠ

oren 2014-01-27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앨리스 먼로의 단편이 얼마나 뛰어났으면 노벨문학상을 받았을까요? 그리고 페이퍼 하나에 14편의 단편을 모두 소화하신 팜므 님은 어떤 상을 받을 수 있을지요? 하여간 두루 놀랍습니다.

저는 소설과 너무 멀어진 제 독서 경향이 아주 가끔씩 서글플 때가 있답니다. 예전에 젊을 땐 그래도 '소설'을 나름 열심히 읽었던 듯한데 말예요.(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소설이라도 저는 장편에 훨씬 더 매력을 느꼈던 듯싶네요. 대략 <파우스트>, <카라마조프 형제들>, <백경> 등은 [上,中,下]로, <죄와벌>, <적과흑>,<아들과연인> 등은 [上,下]로 된 책들을 읽었던 듯해요. 단편은 기껏해야 <한국근대문학전집-전5권세트>와 <안톤 체호프 단편선> 정도밖에 기억나는 게 없으니...쩝)

다크아이즈 2014-01-28 10:28   좋아요 0 | URL
오렌님은 소설과는 어울리지 않아요. ㅋ
혹 읽으시더라도 밑에 언급한 것처럼 웅장한 고전 쯤은 어울리실 것 같네요.
어쩜, 이런 잔잔하고, 섬세하고, 후벼파고, 속 뒤집고, 잘잘하고.... 기타 등등의 정서를 지닌 이런 단편들은 오렌님이 견뎌내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확실히 여성적 취향의 단편이거든요.
실제 성격은 제가 모르지만 독서 편력에서 상남자인 오렌님은 오렌님 스타일을 고수하시는 게 훨씬 멋지다고 사료되옵니다.^^*

이번 설에 영양 또는 안동에 가시는지요?
고향에 집안 어른들이 계신다면 당연 가실듯.
명절 잘 보내시어요.^^*

Jeanne_Hebuterne 2014-02-02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발이지 소설은 도덕 교과서가 아니다. 인간의 마음을 섬세하게 읽고 짚어내는 소산물이 소설이다.'

저 이 말이 무척 좋아요. 소설은 도덕 교과서가 아니라는 말, 특히요. 그 본질이 그런데 가르치고 교화하고 깨닫게 하는 것이 많다고 믿는 이들이 많은 요즘, 작가에게는 팜므 느와르님과 같은 독자 한 명이 소설을 도덕 교과서로 읽고 남을 가르치려 드는 독자 천 명보다도 소중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디어 라이프는 워낙 급히 나온 책인듯 하여 조금 꺼리게 되었는데 팜므느와르 님의 정성어린 주석을 보니 갑자기 궁금해지는군요. 어느날 이 책을 읽게 되면, 필연적으로 팜므느와르 님을 떠올리게 될 듯합니다.

다크아이즈 2014-02-04 13:12   좋아요 0 | URL
전 앨리스 먼로의 또 다른 소설을 기대하게 된 걸요. 에뷔님 덕이라고 고백하겠어요. 갑자기 소설 제목이 생각 안 나네요. 검색 들어갈게요.^^*
생각 외로 앨리스 먼로 소설에 공감하지 않는 분들이 많아서 좀 당황스럽긴 해요.
아마 북미 정서와 우리 정서가 달라서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아직까진 우리 독자들은 뭔가 남는 것, 뭔가 깨우침이 있는 것 등을 소설에서 기대하는 게 분명한 것 같아요. 글 쓴다는 게 두려워지기 시작합니다.^^*

Jeanne_Hebuterne 2014-02-04 15:05   좋아요 0 | URL
행복한 그림자의 춤, 읽고나면 리뷰 기대할게요! :)

다크아이즈 2014-02-05 09:50   좋아요 0 | URL
맞아요. 행복한 그림자의 춤 ㅋ
일단 보관함에 담았답니다.
에뷔님 멋진 하루^^****

냉이 2018-01-30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유려한 리뷰에 친추하고 갑니다.
소설을 읽으며 느낀 막연함이 있었는데,...
종종 들르겠습니다.
 
캐릭터 소설 쓰는 법 - 개정증보판 오쓰카 에이지의 강의 시리즈 2
오쓰카 에이지 지음, 김성민 옮김 / 북바이북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잘 쓰고 싶었다

 

 

 

  누구나 욕망한다, 그 무엇을. 하지만 아무나 욕망을 위해 제 실천력을 발휘하지는 않는다. 독한 자는 끝내 이기고, 어리바리한 이는 겨우 이런 글줄만 남긴다. 경험으로 미루어 보자면 실천을 방해하는 두 요인은 단연코 ‘의지박약’과 ‘의기소침’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그 둘을 극복할 자신이 없으니 자기합리화하기에만 바쁘다. ‘나만 이러는 게 아닐 거야. 다른 사람들도 이 겨울 지날 때까지는 그냥 빈둥거릴 거야. 새봄이 오면 그 욕망을 행동화하면 되지 뭐.’

 

 

  개뿔! 당연히 오산이다. 세상은 넓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많다. 그들은 신나게 달린다. 그렇다고 앞뒤 돌아보지 않는 것도 아니다. 앞과 뒤, 잘 맞춰가면서도 여유 있게 달린다. 의지박약이나 의기소침 같은 건 애초에 맘에 담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를 신뢰하고 제 미래를 확신한다. 머뭇거리며 시도하지 않았을 때의 실망감보다, 재지 않고 저질렀을 때의 성취감이 낫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신기하게도 누구든 남의 결점을 찾아내어 지적하는 건 잘한다. 나는 쥐뿔도 모르는 필자들이 미스터리 호러 소설의 서평을 쓰면서, 이 플롯은 엉망이라며 아는 척 평하는 걸 읽을 때마다 혀를 차게 된다. 그런 지적이나 하는 것이 ‘평론’은 아니다. 비록 이야기 구성은 엉성할지라도 독자들이 읽게 만드는 힘이야말로 프로 작가의 역량이다. 독자이면서 장차 작가를 꿈꾸는 여러분은 절대 ‘이야기가 엉망이다’라느니 하며 잘난 척 떠들어대는 사람들을 보고 배워선 안 된다. 남의 작품의 ‘결점’은 자신의 기술을 갈고 닦는 데만 활용할 일이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이라면, 이야기 구성을 치밀하게 설계해서 쓴다고 다 재미있는가 하면 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프로가 쓴 작품 중에도 도중에 옆길로 새거나 조역이면서도 주인공보다 더 눈에 띄는 캐릭터가 나오는 예는 얼마든지 있다. 138-139쪽

 

 

 

  들머리가 길었다. 그렇다. 내 최대의 욕망은 ‘글 한 번 잘 써보기’이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평생 과업은 이 하나밖에 없다. 돈도 많으면 원이 없겠고, 좋은 친구들도 곁에 있으면 더할 나위없겠지만 이 모든 걸 포기(?)하고서라도 글 한 번 제대로 쓸 수 있다면 바랄 게 없다는 생각을 하루에 몇 번씩은 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지 주제’를 제대로 안다. 스스로 얼마나 글을 못 쓰고 나아가 글쓰기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세상엔 글 잘 쓰는 사람들이 널렸다. 경상도 버전으로 ‘천지빼까리’다. 이곳 알라딘만 해도 그렇다. 어쩜 전문 작가들이 제 한몸 숨기고 싶을 정도로 내공을 가진 분들이 부지기수이다. (차마 한 분 한 분 거명을 하진 못하겠다. 내가 드나드는 서재는 한정 되어 있다. 그분들만 언급하면 아직 내가 발견하지 못한(?)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므로) 내 로망을 너무 가비얍게(!) 실천하고 있는 그런 분들을 보면 괴물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무작정 열심히 읽고 쓴다고 ‘잘 쓰게 되는 것’이 아님을 그들을 통해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열심히 쓴 적도 없지만, 쓴다 해도 그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근원적 절망감이 나를 힘들게 한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잘 쓰도록) 태어난 사람이다. 그냥 읽고 쓰다 보니 어느날 그렇게 잘 쓰게 된 것도 있겠지만 원래 남들보다 ‘문리’가 잘 터지도록 하느님이 ‘만들어주셨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야기의 기본 법칙 - 무언가 모자란다, 과제가 주어진다, 과제를 달성한다, 모자라던 것이 채워진다. -->주인공의 행동 원리가 일관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자주 나오는 건, 주인공이 ‘모자라는 것’(돈이든 사랑이든)을 손에 넣기 위해 ‘시련’에 도전하다가 ‘모자라는 것’이 무엇이었느지 주인공도 작가도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176쪽

 

 

  다 제쳐두고 ‘결여’와 ‘결여의 해소’라는 핵심만 외워도 어떤 장면에 사용하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인상은 크게 변한다.

  이야기의 법칙을 익힐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을 가르쳐주자면 민담이나 옛날이야기를 무조건 많이 읽어라. 반지의 제왕의 세계관이 고전 문학이나 신화를 토대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영화의 히트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또한 ‘이야기의 법칙’에 관한 연구가 각국의 민담 분석을 출발점으로 하고 있듯 민담이나 옛날이야기를 다독하는 것만큼 좋은 훈련은 없다. 179쪽

 

 

 

  가끔 엉뚱한 생각을 한다. 잘 쓰는 그들은 그들의 글에 만족할까? 남들이, 아니 내가 그들의 글을 인정하는 것처럼 그들 스스로도 잘 쓴다고 생각할까? 자만하지는 않겠지만 잘 쓴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을 것 같다. 자신의 글을 자신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 각종 공모전 당선작의 심사평 또는 소설이나 시집의 평론조차도 원글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쓰지는 못한다. 원작자 말고는 그 글에 대해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오직 글쓴이만이 제 글에 대한 전부를 꿰차고 있다. 그 온전하게 이해되지 않는 글들이 좋은 글이 되려면 ‘이해와 공감’이라는 부분집합의 스펙트럼이 넓어야 한다. 소설에서라면 한 마디로 이걸 ‘재미’라고 뭉뚱그려 말 할 수 있겠다. 입체적이고도 구체적인 내용에서 독자를 설득하고 이해시킬 수 있을 때 그 글은 잘 쓴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독자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글은 자신도 만족할 수 없다. 잘 쓴 글은 자신도 만족하고 독자도 이해시킨다. 일기장에 쓰는 글이 아니라 독자를 의식하는 글이라면 당연히 독자를 배려하는 글을 써야 한다. 자신을 만족시키지 못한 글을 쓸 때 글쓴이는 자괴한다. 스스로 못 쓰는 사람이라고 좌절하고 만다. 그렇다고 자신을 만족시키는 모든 글이 잘 쓴 글도 아니다. 주변에 보면 자신이 쓴 글에 대해 무조건적인 신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안타깝기는 하지만 솔직히 이런 부류가 부럽다. 오직 쓰는 데 희열을 느끼기 때문에 그들은 최선을 다해 쓴다. 잘 쓰고 못 쓰고는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 비문투성이에다, 감성적 문투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열심히 쓴다는 자체에서 만족감을 느끼니 그들이 부러울 수밖에. 만족하는 그들은 스트레스가 없으니 자괴하는 나 같은 그룹보다는 빨리 글 고지에 닿기도 한다. 어느 작가가 말하는 걸 똑똑히 지켜봤다. ‘잘 쓰는 자가 아니라 오래 쓰는 자가 이긴다’고.

 

 

  자기긍정과 자기 확신, 그 대척점에 있는 의지박약과 의기소침. 이 모든 것은 습관의 산물이다. 동기부여가 확실한 사람일수록 전자의 신념을 행동으로 축적한다. 자연스레 성과도 높고 만족감도 높다. 반대로 불투명한 동기부여로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는 자일수록 후자에 얽매여 시간만 낭비한다. 내게 재능이 있을까. 난 왜 이 정도밖에 안 되지. 이런 쓸 데 없는 고민으로 스스로를 옭아맨다. 자신을 너무 잘 아는 게 무기가 되어 스스로를 찌른다.

 

 

 

 

  옛날이야기와 <센과 치히로>에서도 공통된 ‘이야기의 법칙’;을 찾을 수 있다. 옛날이야기나 민담을 읽다 보면 <센과 치히로>에서 본 에피소드들과 ‘어딘지 모르게 닮은 부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미야자키가 <센과 치히로>를 만들면서 상당한 양의 옛날이야기 책을 읽었다는 흔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어딘지 모르게 닮은 부분’을 ‘발견하는 힘’이 ‘이야기의 법칙’을 깨닫게 하며 나아가 자신의 작품 속에 응용하는 힘이 된다. (182)

 

 

 

  자고로 장기판이나 바둑판에서는 구경꾼이 판을 더 잘 읽는다.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들은 구경꾼을 의식하지 않는다. 판을 아무리 잘 읽는다 해도 구경꾼은 구경꾼일 뿐이니까. 하지만 자기연민에 갇힌 사람들은 스스로 구경꾼이 되어 버린다. 주관적 당사자이자 객관적 관찰자의 역할 그 둘을 감당하자니 힘겨울 수밖에 없다. 주관적 뚝심으로 제 욕망을 밀고 나가기보다 객관적 공정성을 스스로에게 먼저 묻게 된다. 욕망이 답보상태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욕망하는 자는 겸손하기 보다는 뻔뻔할 지어다. 스피노자의 통렬한 한 마디, “그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 자신이 그걸 하기 싫다고 되뇌는 것과 같다.”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욕망하기 때문에 번민하는 이 아이러니한 일상! 제발이지 뻔뻔해지고 싶다. 글 한 번 잘 써보고 싶다!

 

  이처럼 ‘이야기의 문법’을 채용하는 기법은 쓰는 이의 오리지널리티를 뺏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성을 드러내는 공정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글쟁이가 되려는 사람은 ‘이야기’에도 ‘문법’이 있구나, 하고 어느 정도 의식하면서 남의 작품을 접할 필요가 있다. 문법을 너무 의식해도 말하기 힘들지만 때로는 의식하는 가운데 표현 기술도 향상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318쪽  - 비교하는 책 옛날 이야기 <노파 가죽>, 가와바타 야스나리 <이즈의 무희>,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여러분의 목적은 ‘이야기’의 ‘분석’이 아닌 ‘쓰기’이므로 필요 이상으로 ‘문법’을 의식할 필요는 없지만 ‘의식’해서 손해 볼 일은 없다. 아무튼 한번쯤 ‘이야기에는 문법이 있다’라는 관점을 가져보는 것도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루카스의 성공과 내가 만화 원작자로서 여기까지 왔다는 너무나도 스케일 다른 두 사례가 증명해준다. 319쪽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oren 2014-01-10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최근에 읽은 어떤 책에서는 참으로 놀라운 '실용적 조언'을 해주기도 하더군요. 너무나도 스케일이 달라서 그 말이 우리를 다소 의기소침하게 만들지라도 우리는 또 그 말을 조언 삼아 자신의 글을 가다듬는 데 힘을 보탤 필요도 있지 싶어요.

* * *

실용적 조언

따라서 우리도 숭고한 표현과 고매한 사상을 요구하는 구절을 쓸 때는, 호메로스는 이것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플라톤이나 데모스테네스나 또는 역사에서 투퀴디데스는 이것을 어떻게 숭고하게 만들었을까 하고 마음속으로 그려보는 것이 좋소. 왜냐하면 경쟁심은 이 위대한 분들을 우리 눈앞에 데려다줄 것이고, 그러면 그 분들이 우리의 생각들을 우리가 정해놓은 수준으로 끌어올려줄 것이기 때문이오. 나아가 호메로스나 데모스테네스가 여기 있었다면 나의 이 구절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또는 나의 이 구절이 그들에게 어떤 인상을 주었을까 하고 자문해본다면 그것은 더욱더 그러할 것이오. 우리가 그러한 배심원들과 청중이 우리가 하는 말을 듣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리고 그러한 영웅적인 심사원들과 증인들에게 우리의 작품을 꼼꼼히 살펴보도록 맡긴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큰 경쟁이 될 것이기 때문이오. 그리고 그대가 "내가 이렇게 쓰면 후세 사람들이 모두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고 덧붙인다면 그것은 더 고무적일 것이오. 누군가가 자신의 생애와 시대보다 오래 지속될 것을 말하기를 두려워한다면 그의 마음속 구상들은 필연적으로 불완전하고 발육이 부전하여 유산되고 말 것이며, 후세의 명성의 날을 위하여 결코 완전하게 태어나지 못할 것이오. (310∼311쪽)
- 아리스토텔레스, 『시학』中에서

다크아이즈 2014-01-13 11:27   좋아요 0 | URL
와우, 명불허전 오렌님.
이렇게 제게 필요한 말씀으로 용기 주시다니.
오렌님 없는 알라딘은 눈 없는 겨울 태백산이야요.ㅋ

잘 쓰고 싶다는 번민 앞에서 언제나 무너지는 제 일상이라니ㅠ
자학하는 것도 지겹습니다.^^*

페크pek0501 2014-01-10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꽤 유익한 페이퍼입니다.

"민담이나 옛날이야기를 무조건 많이 읽어라."
- 셰익스피어의 작품들도 알고 보면 다 옛 이야기의 모방으로 씌어진 것이죠.
그래서 모방의 천재 작가라고 하죠.
"‘잘 쓰는 자가 아니라 오래 쓰는 자가 이긴다’고."
- 이 말은 저 같은 사람에게 위로가 되는데요...
"뻔뻔해지고 싶다"
- 이건 제가 페이퍼로도 올린 적이 있는, 제가 그러고 싶은 말이에요.

오렌 님이 댓글로 옮겨 주신 <시학>의 글도 유익한 글이네요.
<시학>을 오래 전에 읽었는데, 다시 펼쳐 봐야겠어요. ^^

다크아이즈 2014-01-13 11:29   좋아요 0 | URL
이 책 실은 (장르)만화를 위한 입문서지만 꽤 건질 게 많더라구요.
순문학하는 사람들이 읽어도 전혀 손색없을 만큼 유익한 정보들이 꽤 있어요.
결국 뻔뻔해질 수 있는 자가 이기는 데 이것도 쉬운 게 아니에요.
페크 언니만 따라할게요. 늘 앞서가시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1-10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 잘 쓰고 계시는 분이 잘 쓰고 싶었다고 투정부리면 얄밉습니다... 허허허...

다크아이즈 2014-01-13 11:36   좋아요 0 | URL
곰발님이 이 말을 했기 때문에 제게 위안이 안 된다는 것 아시지요? ㅋ
현재 알라딘에서는 님을 따를 자가 없다는 게 제 개인 견해입니다.^^*
알라딘 접수한 곰발님 새해에도 파이팅하시어요.

논리만 되느냐 감성도 돼, 문장만 되느냐 사유도 돼, 그렇다고 진중한 성찰만 있느냐 통렬한 해학도 있어...
모든 걸 갖춘 님의 글이 저는 참 좋습니다.

순오기 2014-01-10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엔 알라딘에 충실하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을 요렇게 풀어주시는군요!^^
실천력이 모자란 사람이라, 나를 위해서도 새겨둘게요.
좋아요~~ ^^

다크아이즈 2014-01-13 11:52   좋아요 0 | URL
마자요. 실천이 중요해요.
작심삼일을 삼일마다 실천하면 된다는데 이것도 어려우니ㅠ
서로의 파이팅을 이 연사 외칩니다~~

프레이야 2014-01-10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런 책이 다있군요. 공감! ^^

다크아이즈 2014-01-13 11:38   좋아요 0 | URL
은근 건질 게 몇 개 있었어요.
사길 잘했나 하면 것까지는 하는 정도...

노이에자이트 2014-01-15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을 많이 읽다보면 작법을 연구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해요.그러다 보면 세계의 민담이나 전설들의 이야기 전개 유형에도 관심이 가고요.저는 천일야화를 읽으면서 이 이야기를 현대소설에 써먹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해봤어요.

다크아이즈 2014-01-17 10:41   좋아요 0 | URL
노이에자이트님도 소설에 관심이 많군요.
결국 세계의 민담이나 전설의 새로운 버전이 '지금이 소설'이라는 데 공감합니다. 그 범주에 천일야화가 으뜸군이겠는걸요. 천일야화를 접수해야겠어요. 고맙습니다.ㅋ

2014-02-11 17: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11 2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골목안 풍경 전집 - 김기찬 사진집
김기찬 지음 / 눈빛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유진’은 1985년 생 여아에겐 썩 어울리는 이름이다. 유진은 달동네 골목 돌담에 엄마랑 서 있다. (524쪽) 1960년대 산(産)인 유진엄마의 이름은 ‘말숙’ 또는 ‘복남’ 같은 것일 게다. 엄마의 트레이닝복 무릎은 낡고 불룩하다. 햇살은 무심히 엄마가 안은 애완견에다 그늘 한 번 드리우고, 서울 중림동 골목과 어울리지 않는, 유달리 하얀 엄마의 손등에 가서 박힌다. 미간이 넓은 네 살의 유진은 ‘짜가’일 게 뻔한 엄마의 아식스 바지에 매달려 천진한 미소를 짓는다. 그 골목의 사진 한 장은 그렇게 우리의 시간을 과거로 돌려놓는다.

 

 

  그 어떤 사전 정보 없이 열두 살에 도시로 떼밀려왔을 때 내가 받은 충격은 우주 빅뱅 그 이상이었다. 고향은 수몰대상지역이어서 새마을 운동 열풍에서도 예외가 되었다. 지붕 개량은커녕 전기도, 수도도 들어오지 않았다. 전형적인 깡촌 생활이 내가 열두 살까지 겪은 삶의 전부였다. 이사 간 도시는 당시로서는 신동네였다. 넓은 골목은 아스팔트로 잘 포장되어 있었고, 아이들은 아스팔트 위에다 분필로 모형을 그리고 돌차기 놀이를 했다. 맨땅이 익숙한 나는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고무줄놀이도, 돌차기도 내 눈에는 부자연스럽고 생경하기만 했다.

 

 

  문화충격은 위로부터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어린 눈에 더 이해할 수 없었던 건 지난한 도시 골목의 풍광들이었다. 시골에서는 아예 골목이란 개념이 없었다. 여러 집이 돌담을 사이에 두고 붙어 있어도 집과 집을 이어주는 길 역할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특별히 비루하거나 남루하다는 느낌 없이 시골은 그런 면에서 누구나 부르주아였다. 하지만 오래된 도시 골목에서는 삶의 신산한 냄새들과 소리들이 지글거렸다. 아스팔트 골목과는 다른 또 다른 충격이었다. 그때 어렴풋이 계급의식 같은 걸 자각한 것 같다.

 

 

  유진은 3,4년 간격으로 세 번 더 골목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마지막 사진은 일산의 어느 아파트 앞일 수도 있겠다. 남루한 도시 뒷골목을 떠나 번듯한 아파트 청소년으로 자랐다. 유진의 골목 찰나를 끈덕지게 따라잡은 이는 김기찬이다. 그의 두꺼운 사진집『골목안 풍경 전집』에는 수십 명의 유진들이 나온다. 비리고, 질퍽이는 삶에서 순간의 미소를 찾으려는 누군가에게 이 사진집은 서럽고 따가운 위안이 돼줄 것이다.  

 

 

    썸네일  썸네일 썸네일

 

   

  두껍고 제본 엉망인 이 사진집은 펼치는 수고가 만만찮다. 아무래도 뒷골목 체험은 이 책 펼치는 것만큼 무겁고 수고롭다는 걸 보여주려는 것 같다. ㅠ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12-12-23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팜님, 이 사진책 리뷰 반가워요. 역시나 참 좋구요. 골목은 제게도 향수가 있는 키워드에요. 낯선 골목을 누벼보는 상상 언젠간 이룰 수 있겠지요. ^^

다크아이즈 2012-12-25 05:01   좋아요 0 | URL
프레님, 메리크리스마스!
식구들과 멋진 밤 보내셨나나요?
전 글쓰기반 종강 수업하고 바로 들어와서, 사 놓은 치즈케익으로 세 식구 조촐한 파뤼했네요. 딸이 없어서 서운했지만, 누구 말처럼 솔로대첩 안 간게 어디야 하면서 위로했답니다. 그새 한 숨 자고 자정 넘어 일어나 놀고 있어요.
아침에 또 자겠지요ㅠ

라로 2012-12-24 0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가운데 아이들 같았을 때 저도 골목에서 막내 이모와 찍은 사진이 있는데!!! 어즈버~~~.
이 책 늘 관심만 갖었었는데 제본이 엉망이군요,,ㅠㅠ

다크아이즈 2012-12-25 05:03   좋아요 0 | URL
어즈버 사십 년 돼가네요. 저는...ㅠ
나비님, 제본은 엉망이었어요.
책은 독자를 위해 있는데,
제본이 엉망이거나 읽기 불편한 재질로 되어 있으면 이거 뭐지, 하는 생각은 어쩔 수 없어요.
나비님도 메리크리스마스 앤 해피 누이어~~

마녀고양이 2012-12-24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마지막 문구에서 제가 엄청 웃어버렸어요.
팜님의 유머가 정말 멋지시네요. ^^

아련한 추억이 들면서도,
이렇게 추운 겨울에는 제가 아파트에 산다는게 너무 감사해져버려요.
이런 이중성이라니! ㅡㅡ;;;

다크아이즈 2013-08-04 07:16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참에 마지막 말 뭐 썼지, 찾아 봤다는...
제 유머가 특히, 달여우님께 통했다니 그저 황송황송~~ 조아립니다.
저도 아파트 생활을 쉽게 포기하지 못할 것 같아요. 편하다는 이유로...
달여우님 뵙고 싶었는데 드디어 뜨셨군요. 지금 님 서재로 마중 갈게요.
메리 크리스마스~~
 
[eBook] 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야생해당화  - 2. 밀물

 

 

  누구나 야생해당화에 난 가시 같은 생의 송곳날에 찔리곤 하지. 해당화 덤불 무성하고, 흰 꽃 향기 진할수록  그 가시는 아프게 찔러대지. 케빈의 삶이나 올리브의 삶이나 그게 그거지.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결코 아름답고 달콤하지만은 않지. 아픈 과거를 잊기 위해 케빈처럼 미치광이를 친구해 미치려 하거나, 올리브처럼 위악의 제스처로 자책을 포장하려 하지. 

 

 

  누구나 조금씩 정상이 아니지. 우울증을 대물림해준 올리브의 친정 아버지도, 세번이나 정신발작을 일으킨 시어머니도, 우울증을 대물림받은 올리브 아들도 조금씩은 비정상의 궤도란 일상을 돌지. 자살을 시도한 케빈의 엄마도, 자살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케빈도, 마약쟁이 길거리인으로 전락한 케빈의 동생도 평범한 삶의 궤적을 가진 자들에겐 연민의 대상이지. 유산의 괴로움으로 들꽃다발을 만들어 위안받으려는 패티라고 별 다를 수 있겠어?

 

 

  퉁면스런 이면에 슬픔을 간직한 올리브, 나긋나긋하지 못한 행동 뒤의 아픔을 누르는 올리브, 단호한 목울대 뒤에 숨은 진솔하고 인간적인 올리브를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아. 살다보면 누구나 올리브가 되어 가는 거지. 무심하게 보이는 일상엔 위악으로, 누군가의 시선이 필요한 자에겐 팔 걷어 부치는 올리브를 그림처럼 떠올려보곤 해. 코끼리 같은 몸집의 올리브가 패티를 구하기 위해 화들짝 놀라 케빈의 차문을 열고 달려가는 걸 상상해봐. 

 

 

  바다끝 마리나 근처 절벽에서 코를 간질이는 야생해당화 향기가 스쳐와. 케빈은 그 흰 꽃 냄새를 맡다 말고 뾰족한 가시를 떠올렸을지도 몰라. 어쩌면 야멸차고 지리멸렬한 생이 지겨워 죽음을 선택한 엄마의 육신이 부엌 벽에 흩뿌려질 때, 테이블 위에는 야생해당화가 꽂혀 있었을지도 몰라. 슬픔이나 아픔을 간수하는데 꽃보다 나은 위안은 없잖아. 유산의 고통스런 기억을 잊으려 패티도 바닷가에 피어난 야생해당화를 꺾으러 발길을 옮겼잖아. 나리꽃도 좋았을 패티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울수록 생에 대한 간절한 희망이 보였다는 건 여간 다행한 게 아니야. 패티도 살고, 케빈도 살리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를 보며 나지막히 말해 보는 걸. 작가는 올리브의 다른 이름이구나, 하고. 

 

 

  앞으로 펼쳐질 올리브, 아니 엘리자베스의 꽃 이름을 무엇으로 달까, 이런 짠하고 아린 생각을 해봐. 야생해당화처럼 가시로 찌르는 게 삶인 걸. 찔리지 않으면 그건 살아냈다고,견뎌냈다고 할 수 없어. 그런 사람들은 이 책을 펼쳐도 무지 재미 없을 거야. 도무지 난감할지도 몰라.『올리브 키터리지』는 뭐,그런 소설이지. 다음 편 리뷰 제목은 꽃 이름이 아니어도 좋겠어.   

 

 

 

2. 밀물 - 간단줄거리

 

  케빈이 고향에 돌아왔다. 우울증을 앓던 엄마가 부엌에서 권총 자살을 한 이후 열세 살에 아버지와 동생과 이 마을을 떠났다. 바닷가 짠내가 찌르고 야생 해당화 덤불의 활짝 핀 흰 꽃이 혼란스럽게 다가온다. 

 

  패티는 어릴 적 케빈의 소꿉 친구다. 카페에서 커피를 따라주다 창을 통해 케빈이 차안에 앉아 있는 걸 보지만 모른척한다.

 

  케빈은 어릴 적 살던 집 근처 숲에서 라이플로 죽음을 선택하려한다. 엄마의 유전인자가 자신에게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 엄마가 자살할 때 싱크대 벽면까지 육신의 잔해를 뿌린 것을 기억하고 현재 집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자신의 그런 모습을 발견할까 싶어 담요를 덮고 결행할 생각이다.

 

  케빈을 발견하고 키터리지 선생이 조수석에 탄다. 케빈은 차창밖 양동이를 든 채 카페 안팎을 왔다갔다하는 여자를 바라본다. 패티라고 키터리지 선생이 전해준다. 결혼 뒤 유산이 잦아서 슬퍼하고 있다고도 말해준다. 케빈은 뉴욕에서 정신과 전공의 과정 중이지만 정신과 전문의가 되지는 않을 거라 말한다. 포말이 이는 바다쪽에서 야생해당화가 빛난다. 엄마처럼 소아과 의사가 되려했지만 불운한 어린 시절 때문인지 광기에 이끌린다. 미친 존재감의 클라라와 연애 경험도 있다.

 

  키터리지 선생은 자신의 아버지도 우울증이었고 그 유전인자가 아들에게 유전되었다고 고백한다. 아버지도 총으로 자살했다고 말해준다. 키터리지는 케빈을 공감하려 애쓴다. 묶인 요트 근처의 야생 해당화 꽃대가 누웠다 일어났다 다시 눕는다. 해당화를 꺾으러 간 패티가 그 가시에라도 찔린 듯 손을 턴다.

 

  유산의 아픔을 잊으려 꽃을 꺾기 위해 패티가 마리나(요트 정박장) 근처 절벽으로 나선다. 케빈과 키터리지가 차 안에 있는 걸 보고 안심한다. 휘청대는 해당화에 손이 찔린다. 키터리지는 우울증 유전자를 아들에게 물려준 자신을 자책한다. 시어머니도 정신병 경력자였기 때문에 거기서 유전인자를 받지 않았다고는 말 못한다고 돌려 말한다. 케빈은 듣기 괴롭다. 광기는 광기를 불러온다고 자신의 몸을 칼로 긋던 미친 클라라를 떠올린다.

 

  케빈의 동생은 마약 중독자로 길거리 인생이다. 아버지는 간암으로 죽었다. 의대 졸업식 때 들은 격려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란 말을 듣고 내면이 공포가 증폭되고 영혼이 조여오는 걸 느꼈다. 세상 모든 것이 <우리는 가정과 사랑의 세계에 속해 있고 너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 같다.

 

  어릴 적 살았던 집을 보니 엄마가 그립다. 키터리지 선생이 빨리 차안에서 내려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선생이 급하게 뛰쳐나간다. 꽃 꺾으러 갔던 패티가 암벽에서 떨어져 바다에 빠진 것이다. 케빈이 패티를 구하러 뛰어든다. 케빈은 패티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격렬하게 붙잡는 패티를 보며 그녀가 얼마나 살고 싶어하는지를 알게된다. 오, 미친, 우스운 알 수 없는 세상이여! 하고 되낸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로 2012-12-15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밤에 읽으렵니다. 올리브 키터리지잖아요,,더구나 밀물,,ㅠㅠ

다크아이즈 2012-12-16 04:15   좋아요 0 | URL
나비님, 이 작품 광팬인 분들이 알라딘에는 너무 많아 몇 줄 쓰기도 두렵습니다. 그래도 13작품 완주하는 게 목표인데 충고해주시면 도움 되겠지요. 밀물 읽으면서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는데, 너무 많이 울었다는...

프레이야 2012-12-16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물은 야생해당화였군요.
누구나 조금씩은 미쳤다, 태그에 공감해요^^
살고 싶어, 행복하게 살고 싶어, 몸부림 치는 그대들 아니 우리들
모두 애잔한 존재지요. 요즘 부쩍 사람의 얼굴을 마주하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2012-12-16 04: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약국 - 간단 줄거리

 

헨리 키터리지는 마을 약사. 일을 도와주던 그레인지 부인이 자다가 급사하자 새 여직원 데니즈를 고용한다. 그녀 남편 이름도 공교롭게도 헨리다. 젊은 부인 데니즈를 위해 남편 헨리는 약국까지 태워준다. 약사 헨리 키터리지는 그들과도 사이가 좋고 맘 속 깊이 데니즈를 챙기고 연민한다. 부인 올리브 키터리지는 30여 년 이상 수학 선생을 하고 있다. 냉담하고 부정적이며 데면데면한 성격이다. 그들 사이엔 크리스란 아들이 있다.

 

의약품 배달을 하는 소년 제리 매카시는 데니즈의 충고를 받아들여 방송대학 공부를 성실히 한다. 헨리 키터리지는 한결 같다. 데니즈에 대한 환한 시선을 버리지 않는다. 데니즈 남편의 불알친구 토니 쿠지오가 데니즈의 남편 헨리 시보도를 사슴으로 오인해서 사냥총으로 죽이고 만다. 젊은 과부가 된 데니즈를 헨리는 여전히 연민하고 사랑한다. 부인 올리브 키터리지는 성격대로 ‘과부 위로꾼’이라며 헨리를 향해 비아냥댄다.

 

제리 매카시의 청혼을 받아들여 데니즈는 약국을 떠난다. 세월이 흘러 약국 자리엔 대형 마트가 생긴다. 헨리는 옛날을 추억한다. 가끔씩 데니즈에게서 엽서가 오는데 처음엔 아무 수식어 없이 데니즈, 란 사인만 들어 있다가, 오랜 만에 온 데니즈로부터 온 카드엔 ‘사랑을 담아’라는 말이 적혀 있다. 아프리카꽃 옆에 놓인 그 카드를 올리브는 턱선으로 남편 헨리에게 가리킨다.

 

 

늙은 올리브는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 교회 앞마당에서 만나는 데이지는 남자 친구가 생겼다고 헨리에게 자랑한다. 헨리는 문득 생각한다. 오래토록 데니즈를 생각하는 동안 올리브도 동료 선생이었던 짐을 사랑하지 않았을까,하는. 충분히 그럴 수 있고 이해하게 된 헨리는 올리브에 대한 죄책감으로 말을 건네본다. 당신 날 떠나지 않을 거지? 올리브다운 답이 돌아온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 사람 참 지겹게 만드는 재주 있다는 핀잔만 돌아온다. 헨리는 남친이 생긴 데이지를 초대해야겠다는 말을 남긴다.

 

 

 

 

 

  아프리카제비꽃 

 

 

  식탁 위엔 아프리카제비꽃이 놓여 있겠지. 그 옆의 카드 한 장, 아내 올리브가 턱짓으로 가리키네. 남편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펜으로 봉투를 뜯네. 돋보기가 필요한 건 당연하겠지. 남편이 운영하던 약국에서 일을 돕던 데니즈에게서 온 엽서야. 약국을 떠난 지 이십 년이 훨씬 지났지만 그애는 생일마다 남편에게 안부 엽서를 보내곤 하지. 남편을 그 정도로 예우할 만큼의 교양과 사랑스러움은 지닌 여자지. 하지만 아내 올리브에겐 패션 감각조차 없는 맹추로 기억되는 여자지.

 

 

  그애가 남편을 남자로 깊이 사랑한 건 아냐. 아, 사실이 아니구나. 그애도 남편을 사랑했어. 다만 섣불리 그 감정을 드러낼 애가 아니었지. 그애는 누구에게 상처를 주고 그 상처를 감내할 만큼 강심장을 가진 애는 아냐. 남편은 그애를 몹시 사랑했지. 사랑이 뭐 별거겠어? 쉬는 시간에 약품 매뉴얼을 무릎에 놓고 들여다보는 그애의 안경 낀 모습이 귀엽게 보이고, 붉은 벙어리장갑을 떨어뜨린 그애를 위해 허리 숙여 장갑을 줍고, 입구를 벌려 그애 작은 손이 쏙 들어가는 걸 지켜보는 것. 뭐 그런 게 사랑인 게지.

 

 

  그애는 불의의 총기 사고로 너무 빨리 남편을 잃어버렸어. 그 애가 몹시 아파 간호를 해주고 돌아오던 날, 차창을 짓누르는 어둠 속에서 남편은 생각하지. 먼 북쪽으로 가 작은 집에서 그애와 살고 싶다고. 약사이니 일자리는 구할 수 있을 터이고, 그애와 예쁜 딸을 낳고 살 수도 있겠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지. 약품 배달원이던 남자와 결혼을 한 뒤 그애는 약국을 떠나지. 남편 생일 때마다 의례적인 카드가 날아들지. 단 한 번도 편지 끝에 ‘사랑을 담아’라고 쓰지 않지. 하지만 마지막 안부가 될지도 모를 아프리카제비꽃 옆 장면에서는 이렇게 카드의 끝을 맺지. ‘사랑을 담아 데니즈’. 몹시 애잔하지. 사랑을 담아, 라고 말할 때 우리는 데니즈의 사랑이 정리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지. 누구나 사랑에 빠졌을 땐 섣불리 사랑이라 말하지 못하지. 사랑을 놓아주고서야 우리는 쉽게 사랑이라 쓸 수 있지.

 

 

  목도리를 짜는 상태의 마음과 다른 목도리를 짜기 위해 그 짰던 목도리를 풀 때의 감정은 다르지. 두레박 물을 기다릴 때의 심정이랑, 갈증을 해소하고 난 뒤의 물맛은 다르지. 사랑의 본질은 같더라도 그 감응은 다를 수 있는 거야. 절절하고, 터질 것 같고, 아프고, 벼랑 끝일 때 우리는 사랑이라고 감히 말하지 못하지. 하지만 담담하고, 터진 뒤이고, 덜 아프고, 다만 담벼락 정도일 뿐일 때 우리는 사랑이라고 쓸 수 있지. 그러니 어떻게 올리브의 남편과 데니즈가 이루어질 수 있겠어?

 

 

  이런 얘기가 다는 아냐. 아내 올리브가 있잖아. 올리브를 주목해야 돼. 매사에 빈정대고, 퉁명스런 그녀는 다정다감하고 우유부단한 남편더러 이렇게 말하겠지. 과부 위로꾼아, 세상에 안 힘든 사람이 어딨어? 아,『올리브 키터리지』는 이런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야. 시작인「약국」편에서 주변인물로 나오는 올리브는 전형적인 주부상은 아냐. 독선과 상처의 심연 끝에 어떤 꽃이 피어날지 벌써 가슴이 따끔거려. 식탁 위 아프리카제비꽃, 그 청보라 꽃잎이 아직은 위태로워 보여. 자의식 강한 한 여자의 맵찬 삶이 저렇게 꽃잎 속에서 떨고 있어.

 

 

  님은 어쩌자고 이런 좋은 책을 선물로 주시는지!

 

 

 

 

 

 

 


댓글(9)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크아이즈 2012-12-02 0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3편 연작 단편 중 겨우 한 편을 읽었을 뿐인데 넘 먹먹해서 진도가 안 나가요. 진작에 우리는 왜 올리브 같은 엄마나 아내에 관한 얘기를 쓸 생각을(읽을 생각을) 못하는 걸까요? 너무 미국적 상황이라 받아들일 준비가 덜 돼서 그런 걸까요? 엄마를 부탁해, 같은 여성상이 전부는 아닐 터인데... 그래도 이토록 많은 독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이 보입니다. 도무지 잠 못 이루는 밤입니다. 이 한 권의 책...

라로 2012-12-02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는 올리브 키터리지를 여러번 읽었어요!!
님의 글은 나중에 밤에 잠자기 저에 읽을래요.
잘난척이 아니라 영어로도 여러번 읽었는데 정말 매번 같은 느낌을 받게 되는,,정말 좋아하는 책이에요!!!!>.<팜님의 리뷰를 읽게 된다는 것도 설레네요.

다크아이즈 2012-12-02 19:37   좋아요 0 | URL
나비님 역시 그렇군요. 이 좋은 책을 저는 왜 이제 알았을까요? 확실히 남성보다는 여성이 공감하기 쉬운 책입니다. 저도 힘겹겠지만 원서 꼭 사서 곁들여서 읽어볼게요. 나비님 덕에 장바구니 담습니다.

낮에 남푠이 운전하는 옆에서 <밀물>부분 읽었는데 너무 많이 울어서 점심도 못 먹고 들어와서 라면 끓여먹었네요. 적어도 올리브 정도는 돼야 여자로서, 인간으로서 공감할 수 있는 거잖아요. 이제 겨우 두번 째 파튼데 나머지 열한 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실은 프레님이 이 책 선물로 주신 건데 너무 원망스러워요. 어쩌자고 이런 책을 주셔서 저는 연말을 어찌 보낼까요? 슬픔, 따끔거림, 분노, 위안, 조울... 모든 감정이 교차하는 12월을 이 책과 함께 해야한다니 나비님 저는 어쩌면 좋아요. 다 읽고 나면 저 넉다운되는 거 아닐까요? 간만에 책다운 책 읽는 기분. 저 기진맥진해도 좋아요.

blanca 2012-12-03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정말이지...다 읽고 나면 그냥 눈물이 나더라고요. 이제 시작하셔서 그 감동을 맛보실 팜므느와르님이 부럽습니다. 이 작가의 책은 왜 더 이상 번역이 안 되는 걸까요? 아프리카제비꽃은 어떤 꽃일까요? 올리브 키터리지를 이제 시작하신 팜므느와르님에게 감동과 재미의 앞길이 펼쳐지기를....

다크아이즈 2012-12-03 22:31   좋아요 0 | URL
앗, 블랑카님 출현하셨다. 벌렁벌렁~~(저 감동 모드입니다 ㅋ)
진짜 더 이상 번역한 거 안 나오나요?
전 착하게 쓰는 작가보다 이렇게 통찰 깊은 작가를 좋아해요.
살다 보니 취향이 같은 여러 알라디너들을 공감할 수 있는 날도 오네요.
천천히 음미하고, 느끼면서 읽을 게요.

참고로 리뷰 쓰기 전에 아프리카제비꽃 이미지 찾아봤는데 청색도 아닌 것이 보랏빛도 아닌 것이 소박하고 아담하더군요. 편편마다 꽃이 등장해주니 그거 눈여겨 보는 것도 재밌네요.
블랑카님 새 글 빨리 올려주세요. 글 잘 쓰는 우리 블랑카님...

프레이야 2012-12-03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ᆢ 제가 더 행복해지는 이 충만감은 뭐죠. 팜님 글 참말로 좋아요. 격하게 울고 웃으며 읽으실 거에요, 나머지도. 이 글 찜해두고 수시로 읽겠어요. 전 그 책 읽고 아직도 글로 풀어내질 못하고 있거든요. 뭐부터 어떻게 말해야 될지 격하게 막막해서요. 넘 좋으면 말이 잘 안나온다지만ㅎㅎ 영어문장은 더 멋질거에요.

다크아이즈 2012-12-03 22:38   좋아요 0 | URL
프레님도 벌써 영문 접수하셨군요. 도대체 프레님을 비롯 이곳 사람들은 몸이 몇 개 일까요? 저마다 할 일 잘하고, 책도 다양하게 읽고, 리뷰나 페이퍼도 멋드러지게 갈무리하고... 군계일학인 프레님... 따라 갈 수도 없지만 그렇게 하다간 제 바짓가랑이 찢어질 걸요. 좋은 책 천천히 느끼면서 읽고 있어요.
제 독서대가 요즘 호사합니다.^^* 웬만한 책은 그냥 펴서 읽는데 이 책은 독서대에 모셔놓고 읽는 중 (좀 두껍기도 하고, 섬세하고 편안하게 보고 싶어서요.)

다락방 2012-12-03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앗. 저도 이 책 정말 좋아해요, 팜므느와르님. 엄청 좋아해요. 이 책 가지고 페이퍼도 아주 여러번 썼어요. 저도 이 책 정말 좋아서 읽지도 못하면서 원서를 사두었지 뭡니까!
아직 진도 많이 못나갔다 하셨는데, 마지막 편인가, 일흔 된 올리브가 데이트하는 이야기는 아, 정말 두고두고 생각나는 엄청난 이야기에요. 휴..

다크아이즈 2012-12-03 22:48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이런이런... 스포일러마저 저를 흥분하게 만드네요.
이제 겨우 밀물, 피아노 연주자까지 읽었는데 다 좋네요. 편편마다 등장하는 인물에 다 몰입하게 되어요, 갸들이 내가 되어 스며드는 이 느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같이만 쓸 수 있다면, 하는 격한 느꺼움이 마구마구 펌프질하옵니다.